고갱 전시회 다꾸 - feat. 팡이.
1. 수원 여행 때 가져온 팸플릿으로 다꾸를 할까 하다가, 고갱 전시회 팸플렛을 발견했다.
전시회 날짜가 13년 6월에서 9월이다.
와, 이게 아직도 남아 있다니...
2. 이건 다꾸를 하다 떠오른 잡설이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했다. 별 것도 아닌 걸 꾸역꾸역 가지고 있었다.
... 10년 전 다녀온 전시회 팸플렛이 남아 있잖아? ...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며 침대와 책상은 바뀐 집의 구조 상 수용이 불가해 버리고 상황에 맞는 걸로 새로 샀으나
옷장은 30년은 되었고, 책장 중 2개는 아마 옷장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가구 중 제일 젊은 애가 여섯 살 먹은 책장이다.
3. 팡이가 발생했다.
두어 달 전, 베란다 바닥에서 곰팡이가 발생했다.
어쩌다 바닥이 젖으면서, 베란다에 놔둔 택배 상자 바닥에 곰팡이가 폈고, 바닥이라 내가 인지가 늦었다.
베란다는 넘들 출입금지라 곰팡이 제거제 팍팍 뿌리며 닦아내고 못쓰게 된 물건들을 죄 버렸다.
필요할 것 같아서 샀다가, 막상 쓰게 되지 않은 새 물건들도 있었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얼마 뒤 넘들 이동장, 종이 등을 보관하던 장농 안에 팡이가 핀 걸 보았다.
물건 싹 꺼내고, 싹 닦고, 김에 덧없는 물건들을 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던 팡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 가설은 이러하다.
1) 베란다에 핀 곰팡이가 내가 오갈 때마다 집에 들어왔다.
2) 내가 에어컨을 틀며 포자가 퍼졌다.
3) 오래된 데다 청소를 게을리한 인간, 습기찬 여름이라는 팡이 번식 3대 조건을 만족했다.
4. 팡이가 온 사방에 퍼졌다.
6월 18일에 장농에서 팡이를 발견한 이래, 매일 팡이가 핀 걸 발견해서 버리고 있다. 뜨아;;;
하루 작업을 마친 뒤 팡이 수색, 가까스로 독서 시간 확보, 가 일상이 되었다.
작게는 잘 안 써서 서랍에 박혀 있던 뒤집개나 40년은 되었을 것 같은 오래된 식칼의 나무 손잡이부터
크게는 장농, 양말 등속 넣던 서랍장까지.
장농은 다시 팡이가 발생해, 속까지 퍼졌다는 걸 인지하고 사람 불러 버렸다. - 내 힘으로 내놓기 불가. -
하루에 한 곳씩 수색하고 있다.
하루에 다 하는 게 불가능한 양이고, 책이 많은 만큼 책장도 많다.
책장에서 책과 물건을 빼고 뒤편을 확인하고 안팎을 박박 닦고 있다.
지갑 작던 시절에 산, 코팅 안 된 공간 박스는 3개 남고 열 몇 개가 버려졌다.
사실 남은 3개도 버리는 게 안전할 것 같긴 한데... 당장 수납 공간이 부족할 듯해서 지켜보고 있다;;;
팡이가 점령해 버려진 장농이 있던 뒤편과 그 방 구석에 팡이가 폈었다. 침실임.
조금이라 알콜 소독하고 박박 닦아서 살 법도 했는데, 아, 내 어여쁜이 그 구석에 머리를 박고 자네?
침실과 역시 팡이 얼룩이 생겼던 거실 일부를 도배했다.
물건 다 빼놔야 했다. ........ 침실에 있던 책장 물건 빼서 닦고 도로 테트리스한 지 얼마 안 되었었는데. ㅠ
그제 했는데 아직 물건 다 못 넣었다. 독서 시간 확보가 안 되어서 오늘은 필히 책을 읽어야 했다.
오늘은 팡이 핀 소품 몇 개 발견해 버리고, 옷 건조대 도로 설치한 게 전부.
팡이 필까 무서워 벽에서 떨어뜨려 설치한 지라 거실이 좁아졌다.;;
아직 남은 책장이 많다.
그래도 책장은 내가 책을 꺼내면 옮길 수나 있지, 옷장은 어쩔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그러다 뭐든지 다 있다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여자 혼자 냉장고도 옮길 수 있다는 지렛대와 바퀴를 파네?
다루는 요령은 필요하겠고, 한 쪽 면이 벽에 붙어 있을 경우, 붙어 있는 면은 바퀴를 넣기 어려울 것 같다.
다행히 그 지렛대를 살까 말까 고민하던 친구가 와서 같이 해준다고.
정리 정돈 마치고 나면 몸에서 쉰내가 난다. 매일 실내복을 갈아입느라 세탁기도 바빠졌다.
5. 기회로 삼자.
가볍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려면 언제든 버렸어야 했던 물건이다.
이번에 책장 점검하느라 물건 빼고 다시 넣을 때마다 버릴 것들을 솎아내고 있다.
짧은 망설임을 뒤로 하고 졸업 앨범을 버렸다.
디카가 보편화되기 이전, 필름 카메라로 찍고 현상했던 오래된 사진들 중
단체 사진류, 흐릿하거나 멀리서 찍은 류는 싹 버리고, 같은 날 찍은 건 좋은 것만 남기고 합쳐서 앨범 수를 줄였다.
오래 전에는 의미가 있었고, 쓰던 물건이었으나 이제는 쓰이지 않고 의미 또한 퇴색한 것들도 버렸다.
6. 가구 있던 빈 자리에 새 물건 들이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을 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여기저기 테트리스가 가능하다.
크고 작은 가구가 버려지며 공간에 여유가 생기고 있다.
작업실에 있는 책장을 하나씩 옮기고, 확인해서 버려야 할 건 버린 뒤에야 옷장 뒤를 점검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책장은 더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책장으로 쓰던 공간박스가 많이 버려져서, 책장을 더 버리면, 책들이 수납이 안 될 것 같다.
... 만에 하나라도 책장을 사야 하면, 뒷면이 비어있는 공간 박스로 사야지.
옮기기도 쉽고 환기도 될 테니...
7. 장기전이다.
미루지도 말고 무리하지도 말자.
8. 캣폴은 사야 한다.
넘들이 계단/캣타워 삼아 뛰어다니던 가구들이 사라지자 조금 당황하고 있다.
익숙한 길거리가 공사하며 확 변하는 것 같은 건데, 어른은 그러려니 하지만 아이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는 그런 상황.
캣폴 구입은 제일 마지막이다.
작업실 책장 옮기고, 옷장 뒤 점검하고, 도배를 새로 한 뒤에야 사는 것.
옷장 뒤편 아무래도 불안해. 도배 새로 해야 할 거야.
9. 팡이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청소와 환기라는 거. 넘들 때문에 팡이 제거제는 쓸 엄두를 못냄. 베란다는 넘들 출입금지였던 터라 썼던 거.
그간 청소할 시간에 책 한 줄 더 읽쟈, 모드로 산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
대가가 혹독하긴 한데, 후회하면 어쩔 거. 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