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모녀 회동
1. 설이 다가와 요양원에 계신 어마마마를 만나러 갔다.
어마마마가 좋아하는 돼지갈비집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휴무일.;;;
그 옆 양꼬치 집은 내부 공사 중. 뜨하;;;
크리스마스 무렵 어마마마 만나러 갔을 때도, 문은 열려있는데 사장님이 안 계시거나, 문을 닫거나 해서 애를 먹었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보다는 나았다.
그때는 요양원 가까운 음식점에 가려고 했는데, 거긴 음식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걸음이 위태로운 어마마마를 모시고 가느라 엄청 고생. ㅠ 어마마마가 더 고생. ㅠㅠ
심지어 택시도 안 잡히는 동네. ㅠ 카카오 택시도 거의 안 불러짐. ㅠ
그래서 이번에는 시내 쪽에 잡았는데도 비슷한 상황 발생.
다행히 시내라 몇 걸음만 걸으면 되었다.
2. 커피를 마시러 감.
어마마마, 진열된 빵에 시선 고정.
나 : 고르세여!
먼저 소금빵을 집은 어마마마. 그거 하나만 드시려 하다, 소시지 빵을 보고 눈에서 레이저 뿜으심. ㅋㅋ
소금빵, 소시지빵, 라떼 두 잔을 시켜 자리로.
와, 따뜻한 라떼가 아니라 미지근한 라떼. 진짜 심각하게 맛 없었.... ㅠㅠㅠㅠ
암튼 어마마마는 소시지빵에 행복해지심.
나 : 건강식만 먹다가 소시지 먹으니까 맛있으세여?
어마마마 : (진심 한아름) 어!
대화 1.
어마마마 : 너무 심하게 싸우는 사람은 퇴소시켜.
나 : 아... ㅇㅇ 감당 못할 수도 있져.
어마마마 : 너무 아파도 가족에게 보내. 여기서는 시체 안 치워.
나 : 아...
어마마마 : 가족도 병원으로 보내.
나 : ㅇㅇ 요양병원으로 보낼 거예요.
어마마마 : 그래야지, 그걸 가족이 어떻게 해. 나도 나중에 요양병원으로 보내.
나 : 나도 언젠가 요양원에 가겠지, 다음은 요양병원이고. 그래도 엄마, 걷는 연습 해.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있어야지.
어마마마 : 내 나이가 몇인데. 어쩌겠어.
나 : 엄마 나이에 건강한 사람 많거든요?
어마마마 : 하긴 그렇더라.
어마마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심한 건, 내 삶의 커다란 결정이었다.
나에게 우울증이 왔다. 나도 살아야 했다.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는 힘들어 했다. 당연한 일이다. 당사자니 오죽 힘들었을까.
가끔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속 목소리는 늘 우울했다. "나 이제 여기서 못 나가지? 집에 못 가지?"
나는 빈말로라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목소리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지내는 재미를 찾았다.
첫 1년 동안 엄마를 보러 가지 못했다. 죄책감, 집에 가고 싶어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마음에서 못 갔다.
엄마 목소리가 밝아진 뒤에도 몇 달이 지나서야 첫 면회를 갔다.
엄마는, 거짓말 안 보태고 지난 10년 간 본 적 없는 것 같은 환한 웃음으로 날 맞았다.
정신 면에서 한결 건강해지고 화제도 풍성해졌다.
약을 제때 먹고, 식사를 건강식으로 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외부/타인과 교류가 생기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 편으로 걷는 게 전보다 더 위태로워졌다.
일부러 운동하지 않는 한 걸을 일이 없기 때문에 다리에서 근육이 빠지는 거다.
엄마에게 제발 밥 먹은 뒤 복도 걸으며 운동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말로 해서 듣고 스스로를 챙겼다면, 집에 더 계셨겠지, 싶지만, 말이라도 안 할 수는 없던 거.
대화 2.
어마마마 : 빵에 가격이 안 쓰여 있었어.
나 : 빵에 가격이 쓰여 있었으면 눈치껏 싼 빵 골랐을 텐데, 안 쓰여 있어서 비싼 빵 골랐을까봐?
어마마마 : ... 어.
나 : 아이고 엄마, 더 드셔. 빵 안 좋지만, 어쩌다 한 번인데 뭐. 딸램이 어마마마 빵 사 줄 돈이 없을까.
둘 다 잠깐 웃었다.
아마 가격 쓰여 있었을 거. 엄마가 못 본 거.
대화 3.
어마마마가 요즘 보는 드라마 줄거리를 들려주심.
어마마마 : 걔(여주인공)를 좋아하는 남자가 둘이나 있어.
나 : 원래 드라마 여주가 글쳐.
어마마마 : ...... 우리 딸은 한 개도 없는데.
나 : 애인도 없는 딸, 코묻은 돈 뺏어서 빵 먹었을까 봐 걱정한 거?
엄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라고, 둘 다 빵 터져서, 5분을 끅끅 대며 웃었다.
엄마 :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웃기다.
그리고 또 웃었다.
엄마 : 걔는 남자가 둘이나 있어. 우리 딸보다 안 예쁜데.
나 : 와, 그래도 엄마 밖에 없네. 배우보다 딸이 예쁘다 그러고.
엄마 : 남자친구 사귀어. 기왕이면 본부장에, 아파트 있고, 차도 있고...
나 : ... 목표가 갈수록 거창해져.
그리고 또 둘이 한참을 웃어댔다.
나 : 엄마, 빵에 가격은 안 쓰여 있었어도 칼로리는 쓰여 있었다?
엄마 : 칼로리가 뭐야?
나 : 살이 얼마나 찌는지.
이게 뭐라고 또 실컷 웃었네. 울 어마마마 살 빼야 함. ㅠ
엄마 : 우유 들어간 커피가 비싸지?
나 : 몇 백 원 차이 안나. 왜? 애인 없는 딸 코묻은 돈 걱정 돼?
또 웃고....
결론은, 어마마마는 이제 라떼보다 아메리카노라는 거.
가격 때문인지 묻자, 여기 커피가 맛이 없고, 우유 들어간 커피도 이제는 별로라고 이야기하심.
크리스마스 때 간 카페에서도 라떼 마셨다. 그때는 별 말 없으셨는데, 여기 커피가 너무 맛없어서,
심져 우유 비린내가 날 정도로 맛이 없어서인 듯.
요즘 나의 노후를 생각한다. 내 노후는 어떤 모습이 될지.
얼마 전 아버지께서 부모님(내겐 조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아버지 연세가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을 어떤 톤으로 회상하게 될까.
그때 나는 어떠할까.
17년 가을, 내 어여쁜들이 생애주기를 마쳤을 때 죽음은 내가 겪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 죽음 내가 겪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게, 자명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들어섰다.
늙음이,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