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드라마] 각시탈

운가연 2022. 8. 29. 15:58

드라마지만; 카테고리를 또 만들기는 좀 그래서;;; 일단 영화 카테고리에.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웨이브에 각시탈이 있더라. 2012년 작품이니 꼭 10년 전 드라마다.

 

각시탈을 볼까 한다고 했더니 친구가 "각시탈을 맡을 배우를 찾았는데, 일본 활동을 하는 젊은 배우들이 항일주제라 많이 고사했다, 그러다 주원이 선뜻 맡아줘서 제작진이 고마워했더더라." 라고 말했다.

이게 내가 이 드라마를 보기 전, 드라마에 대해 아는 내용의 전부였다.

 

일제 시대, 각시탈이라는 제목으로 인해 '얼굴을 가리고 일제에 대항하는 영웅' 이야기라는 것만 짐작했을 뿐.

 

이강토(주원 분)가 일본 형사로 나오고 각시탈을 잡으려는 모습에, 아, 주원이 악역/친일파로 나오는구나, 하다가,

왜 시나리오 포커스가 각시탈이 아닌 주원에게로 가는 거지? 하다가,

아, 주원이 개과천선(?)해서 각시탈의 뒤를 잇겠구나, 했고,

주원의 친형(신현준 분)이 각시탈인 걸 보고, 아, 형이 죽은 뒤 각시탈이 되겠구나, 했다.

 

독서 인생을 살아왔는데도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빠르게 감지하지 못하는 편인데 ㅋㅋ

덕분에 반전을 즐기며 많은 스토리들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 ^^

 

초반은 꽤 재밌게 봤다.

주원을 어디서 봤지? 저 눈매 기억나는데, 하고 검색해 보니 제빵왕 김탁구였다.

과도한 가부장 분위기에 여차저차해서 결국 끝까지 못 봤;;;;

그래도 배우는 기억에 남았었다.

주원, 와, 백만 불짜리 눈매에 연기 보소. 울부짖는 연기 진짜 일품이었다.

 

기무라 슌지 역의 박기웅도 어디서 봤지, 하고 찾아보니 추노였다.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역시 각인되었던 배우다.

.. 추노도 끝까지 못 봤다.;;;;;;

공형진 쪽 스토리라인은 멋졌지만, 주연배우들 쪽 스토리가;;;; 와;;; 서로 쳐다보는 장면만으로 몇 분을 끄는 거냐;;;;;;

박기웅과 공형진 등 계속 보고 싶은 스토리와 배우들이 있었는데도;;;; 

... 결국 포기. ㅠ

...... 이쯤에서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과도한(?) 로맨스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커다란 세계관 - 노비와 서자들의 고통 - 을 잡아놓고, 그걸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으로 삼아버리면, 뭔가, 설정이 아깝달지?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는 기분이 든달지;;;

그래서 원작 소설은 상당히 재밌게 봤던 '해를 품은 달' 드라마도 끝까지 못 봄;;;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각시탈'을 끝까지 못 본 이야기다. 11화 24분까지 봄.;

처음에는 몰입도도 강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거치적거리기 시작했다.

 

일본 팬들의 반응을 걱정한 건 배우보다 제작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강토(주원)의 아버지는 고종에게 충성했으나 동지들에게 배신당해 죽는다.

이강산(신현준)은 고문 받다 정신이 나간 시늉을 해서 풀려난 뒤

각시탈을 쓰고  아버지를 배신하고 죽인 자들에 대해 복수하려 한다.

그런데 이 배신자들이 한 명 빼고 다 조선인 매국노다.

즉, 이 드라마는 실질적으로는 조선인 vs 조선인의 싸움이라는 거다.

우병준(김규철 분), 이시용(안석환 분), 조영근(고인범 분)이 문제의 배신자들인데, 대부분 감초역처럼 희화화된 캐릭터다.

이시용이 제일 심하지만, 다들 뭔가 좀 모자란다고 느껴질 정도다.

즉, 진짜 머리를 쓰는 악랄한 악역은 역시 이들 중 일본인인 기무라 타로(천호진 분)라는 거다.

 

이 기무라 타로는 냉혹한 경찰서장이자 아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아버지다.

그런데 각시탈의 손에 큰아들이 죽자, 남몰래 눈물을 쏟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악당(?)들 중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유일한 입체적인 인물이 일본인이라는 거다.

심지어 "너(조선인)는 미국에게 점령당했으면 미국에게 알량거렸을 터이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인이다." 운운하신다. ...... ㅡㅡ;;

 

콘노 고지(김응수 분)은 총독부 경무부장으로, 기무라 타로와 대적하는 인물인데,

이강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며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지 않고, 일본인의 비리를 수사하는 대쪽 같은 인물' 되시겠다.

................. 어이!

 

솔직히 처음에 콘노 고지가 이강토를 승진시키며, "능력만 있다면 내지인(일본인)과 반도인(조선인)을 차별하지 않겠다." 운운했을 때, 쟈가 나쁜 놈이려니 했다. 즉, 말뿐이며 사실은 이용하려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강토가 각시탈이 되겠구나, 라는 걸 알게 된 후 내가 상상한 시나리오는,

당시 시대 현실에서 조선인은 살기 위해 일본에 충성해도, 잘해야 화살받이 취급, 안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아야 하고,

바깥에서는 조선인들에게 동포를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인식한 이강토가,

즉, 조선인으로 태어난 이상 조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각성을 하는 게 아닐까였다.

 

그런데 콘노 고지로 인해서, 마치 기무라 타로처럼 내지인을 핍박하는 나쁜 놈도 있지만, 콘노 고지처럼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처럼, 미화되었다는 거다. ................. 뭐하자는 거지?

 

기무라 타로의 아들인 형사 기무라 켄지(박주형 분)는 끊임없이 주원을 괴롭힌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일본인으로 인해 고통받는 조선인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모가 전혀 없지는 않다.

심지어 기무라 켄지가 주원의 어머니를 죽이며, 주원의 각성에 일조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feat. 그것이 알고싶다*

 

기무라 켄지가 일부러 죽인 건 아니라는 거다. 각시탈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총으로 위협만 했을 뿐인데, 아들(신현준)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달려들어 얼결에 총이 발사된 거고, 신현준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는 거다. ........... 야!

 

각시탈(신현준)은 늦게나마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고 기무라 켄지를 쫓는다.

주원이 각시탈에게 총을 쏜다. 총을 맞은 각시탈은 주원의 집으로 도망친다.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며 낄낄 댄 주원. 가면을 벗기니 형이다.

그리고 형은 죽는다.

방에 들어가니 어머니도 죽어 있다.

이후 신현준을 도와 온 아버지의 심복을 통해 일의 전말을 듣는 주원. 각시탈로 각성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조선인인데 일본인 편에 붙은 주원을 미워한 조선인이 주원의 집에 불을 지르며, 방화사건으로 처리된다.

그러니까 다시 쓰지만 주원의 집을 불태운 건 조선인이라는 거다.

심지어 이강토의 어머니가, 일본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강토에게 사람들이 다 있는 데서 "(연을) 끊자."고 했고,

이강산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바보 행세를 하고 있는데도,

이강토는 멀쩡한데 그 불로 인해 죽은 건 어머니와 이강산이라고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죽은 모자를 가련히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심지어, 누가 봐도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바보 형을, 이강토를 대신해서 종종 사람들이 괴롭혔다는 거다.

............................... 야 ㅡㅡ;;;

그래, 그럴 수 있어. 우리나라는 가족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니까.

적어도 한 명쯤은, 이 모자를 가련히 여기는, 이 모자가 이강토를 거부하고 있음을 알고 애틋하게 여겼다면

일케까지 마음이 심란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강토가 주는 돈을 던졌는데도, 왜 이 모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걸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

이강토가 우리집에 누가 불 질렀느냐고 하니까 계란이 날아오는데,

모자가 죽지 않았으면 몰라, 그 화재로 모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이 하나같이 다, 그 모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한다는 거다.

 

각성한 주원은 각시탈을 쓰고 기무라 켄지를 죽인다.

잘 봐봐. 기무라 켄지는 사고였어. 주원은 작정하고 죽였지.

 

이 장면을, 기무라 켄지의 친동생이자 조선인을 위하는 마음 착하던 일본인 기무라 슌지(박기웅)가 목격하게 되고, 그가 형사가 되는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가 된다.

.................... 야?!

일본인 쪽에 무슨 핑계를 이렇게 다닥다닥 만들어 주냐?

일본에 수출할 때를 대비한 건가?

브로맨스로 서로 적대하면서도 진한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해도, 시대극 만들 때는 그 시대를 좀 고려하자. ㅡㅡ;;

 

그리고 콘노 고지(총독부 경무국장)는 기무라 타로의 비리를 수색하는데, 야, 그때 비리 없던 일본인 경찰서장이 어딨고, 총독부 경무국장 씩이나 되는 인물이 비리 없이 청정하시다고?

 

어이.................. ㅡㅡ;;;;;;;;

 

일본인 순사 중 하나는 너무 순둥순둥해서, 감시해야 하는 조선인들의 놀림감이 된다. ........ 저겨?

 

조선인들이 순사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대드는 장면도, 그러려니, 그래, 드라마적 연출이고, 순사를 싫어했다는 걸 화면에서 보여줘야겠지, 하긴 했다. 싫음보다 공포가 더 컸기에, 두려웠기에 싫어할 수밖에 없던 거고,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래, 뭐. ... 흔히 하는 말대로 '드라마잖아.'

 

근데 뒤로 갈수록, 뭐냐, 이건?

고문 받고 나온 사람이 뭐 이리 멀쩡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라면 넘어가도 별 무리 없는 장면들이기는 하다.

히트친 드라마답게 다양한 캐릭터와 관계를 만들어냈다.

약방의 감초 같은 희화화된 인물들도 중견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근데 일제시다잖아여. ...........

그리 만만하게 그려도 되나여. .............

 

그래도 계속 보는데, 기무라 슌지가 이강토에게 목단이를 밀착감시하라고 한다.

목단이. 처음 나올 때는 기대가 컸다. 이강토와 어린 시절 생사를 같이 넘긴 연이 있는 인물.

목단이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다. 목단이도 서커스 단원이라 몸놀림이 날렵해서, 순사를 피해 이리저리 잘 도망다닌다.

무력하게 도움만 기다리는 여캐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었다.

 

이강토는 각시탈이 목단이를 구하는 모습에 둘이 무슨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목단이를 잡아 고문한다.

그러다 저러다 이강토는 목단이가 어린 날 자기와 생사고락을 넘겼던 첫사랑, 죽은 줄 알았던 그 아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각시탈로 각성한 이강토는 목단이를 지켜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feat. 그것이 알고 싶다.*

이강토가 각시탈이 되기 전, 목단이를 잡아 진짜 '고문'을 했었다.

고문은 몸만이 아니라 정신도 무너뜨린다.

그런데 목단이 자기를 고문한 형사 앞에서 너무 겁이 없어. ...

좋아, 뭐, 용감한 여주니까. 그럴 수 있어. 드라마잖아?

 

목단을 24시간 감시하라는 주원. 혼자 로맨스 찍는다. .........

머라머라 입으로는 구박하면서 빨래하는 거 도와주고. ................

물론 남녀 주인공이니 필연적이라고는 해도,

달달한 음악 흐르면서 은은한 눈길로 목단을 보는 이강토의 장면이, 나는 도무지 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ㅠ

조선인인데도 친일하는 형사와 독립운동가의 딸이라 감시받는 여자 사이에 연출될 장면인가? ㅠ

아무리 이때 이강토가 각시탈로 각성했고, 목단이에 대한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고는 해도,

목단이는 이강토가 각시탈이 된 걸 모르잖아?

이강토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괴로워했다면 납득했을 거다.

감시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두려워야 하는 장면에, 왜, 달달 음악이 흐르냐.;;;

 

게다가, 목단이는 각시탈이 형->아우로 바뀐 걸 모른다.

이것도 몹시 거슬린다. 왜냐면, 목단이를 세 번 구한 건 형이었으니까. 목단이 마음이 설렜던 건 형이었으니까.

가면 써서 모른다지만, 자기가 누구 좋아하는 지도 모르는, 그냥 구해주면 다 좋은 건가?

목단이 오매불망 찾는 어린 시절 첫사랑은 동생인 이강토다.

 

날 목숨 걸고 세 번이나 구한 멋진 분. 아앗, 설마 그 분이 어린 시절 그 도련님인가? 두근두근!

그런데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모르고 여전히 두근두근!

....... 머냐. .........

여캐가 너무 바보가 되잖아. ㅡㅡ;;;;

목단이의 감정은 철저하게 무시된 채, 아, 네가 두근두근하는 그 사람 내가 죽였는데, 이강토의 괴로움만 강조된다.

...... 아놔. ㅡㅡ;;;;

목단이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턱선이나 뭐든 조금 다르다는 걸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챘다면, 보면서 덜 괴로웠을 텐데. ...

 

11화를 보던 즈음, 이 드라마 자체가 일본에 수출될 때를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순화(?)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그렇게 차근차근 지금까지 본 시나리오를 짚어가며, 거치적거린 요소들이 정리되고 나니....

더는 뒤가 궁금해지지 않아서. ...........;;;;;;;;;;

 

결국 그만 보게 되었다. ㅠ

 

배우진은 멋지지만... 그걸로 넘기에는 다소 무리다. ㅠ

요즘은 결말까지 포스팅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느 날 궁금하면 줄거리 찾아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