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와 유명한 안과에 갔다.
일단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나는 검사실 밖에서 기다리는데 안에 있던 의사가 자동문 잡아주는 모습에 우라빠구나 하고 가서 맞이함. 의사쌤 고마웠다. 눈이 잘 안 보이는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모습이라 조금 더 믿음이 가기도 했고.
아버지에게 백내장과 녹내장 둘 다 있는데 혹시 수술이 가능할지, 수술하면 좋아질지 상담받으러 갔던 것.
아버지가 이전에 갔던 병원은 백내장 수술하다 녹내장 건드릴 위험이 있고, 크게 얻을 게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일단 안 좋은 왼쪽부터 백내장 수술을 해보고 보자는 말이 바로 나와서 조금 당황한 부녀.
아버지가 먼저 들은 말이 있어서 주저한 지라 일단 안경을 맞춰서 생활 가능한지 보고, 그래도 답답하면 왼쪽부터 하자고.
안경 도수 받음.
집에서 노인 백내장으로 검색하다 보니 노안 백내장 수술 1위 수상, 어쩌고 하는 안과들이 있더라.
그런 병원 두 곳 더 둘러보기로 함.
2. 병원이 3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탐.
1층에 도착하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젊은 남자분이 열림 버튼을 계속 눌러 주었다.
건물 나올 때 유리문도 잡아 주고.
걸음이 느린 우리 아버지를 배려해준 것.
고마웠어요. ㅠㅠ
3. 아버지가 수제비를 먹고 싶다고 했다.
광화문에서 일할 때 점심 시간에 자주 가던 곳이 있다고. 그런데 이름 기억 못함.
유명한 수제비집이니 다 안다고 택시 잡은 아버지.
나는 카카오택시에 익숙하지만 아버지는 지나가는 택시 잡는 걸 선호하심.
기사님은 나이 지긋한 분이었는데 유명한 수제비집이면 거기라고 안다고 가심.
... 불안해서 가는 길에 근방 유명한 수제비집 검색하는데 맛집으로 뜨는 곳이 많았다. ㅠㅠ
근데 기사님도 길을 잘 못 찾음. 아버지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으로 어찌어찌 수제비집 도착.

난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러다 보니 안에 있는 조갯살을 열심히 먹게 됨.
나 : 바지락 맛있네요.
아버지 : 바지락 아니고 그보다 싼 조개야.
헤에... 겉보기에는 거의 비슷한데 이걸 구분하시다니!
하지만 저렴하다고 맛 없는 거 아니고 내겐 바지락 만큼 맛났다.
아동기, 초딩 때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쑤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맛이 없어 먹기 곤혹스러웠고, 어느 날 그 행사(?)가 사라졌을 때 안도했다.
수제비의 질감도 별로고, 담백한 맛도 취향이 아니고, 진한 멸치 육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전 그 행사가 사라진 게 내가 맛없다고 말해버려서는 아니었길...
설사 그랬더라도 아버지 마음에 그게 남아있지 않기를...

아버지는 평소 모자를 쓰는데 이 날은 모자가 없었다. 먹는 모습 사진 찍는데 고개 숙인 아버지의 휑한 정수리에 마음이 아렸다.
우라빠, 언제 이렇게 늙었지? ㅠㅠ
잔소리는 딸의 의무. 이날 아버지에게 "옷에 뭐가 묻었든 안 묻었든 무조건 한 번 입은 옷은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하라."고 했다.
아빠 : 왜?
나 : 사람들이 딸 없는 줄 알아.
눈이 안 좋다 보니 옷에 묻은 얼룩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최근 아버지는 약속 시간에 잘 늦는다. 보통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서 근방을 걷곤 했다. 늦는 거 싫어하심.
걸음이 늦어져서 같은 거리를 가는 데도 시간이 배로 걸리기 때문에 늦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몸을 따라가지 않아, 평소 걸린 시간을 계산하며 움직이는 거.
그래서 이날 병원이 쟈철에서 5~10분 거리인데 40분 전에 만남.
아버지 늦을 것 대비, 늦는 걸음 대비.
아버지의 신기한 기술 중 하나가 "지금 한 일곱 시 반 됐냐?"하면 딱 맞곤 했는데 이젠 안 맞는다.
걷는 게 위태로워 내가 잡아주려고 해도 거부하더니, 이날 처음으로 먼저 잡았다.
이후에도 종종 내 팔을 먼저 잡는다.
이날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아버지 : 딸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 입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고, 뭉클하고, 울컥했다. 딸에게 의지해야 할 만큼 약해졌고, 의지할 딸이 있어 안도하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4. 카페 진선에 갔다.
무려 1997년부터 있던 카페. *두둥*
수제비 먹고 여기서 차 한 잔 하는 게 한때 아버지의 루틴이었다.


카페에 가긴 해야 했다. 며칠 뒤 건강검진이 있어서 사전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모바일 보고 읽는데, 문진표 작성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저런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지 않다,
5단계로 대답해야 하는 문항이 겁내 많잖아.
질문할 때마다 아버지 : 그건... 뭐...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결국 폭발한 나.
나 : 아부지, 매우 그렇다, 조금 그렇다, 그렇다, 아닌 편이다, 매우 아니다, 로 답하라니까?
아버지 : 생각을 해야지.
나 : 딸 목아프다긔! 질문 100개라그!
아버지 : 100개나 돼?
대충 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고. .............. ㅋㅋㅋ
근데 이 문진표 좀 이상했다.
주관식으로 답변하는 게 있었는데 아버지는 천지인 자판.
근데 문자에서는 되는 '어'가 여기선는 안 되어서 '어'가 안 들어가게 문장 바꿔서 적어 냄. ㅋ
5. 내가 울던 파리라는 노래가 앞부분만 생각난다고 하셔서 유튭에서 찾아드림.
유튭에서 직접 찾는 법 가르쳐드림.
한 번 검색해서 노래 틀고 다시 검색창으로 가서 이전에 쓰인 노래 x로 지우고 광고 건너 뛰어야 하고...
아버지가 익히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인내심이 없는 것일 수도.;;;;
인지능력이 정말 많이 떨어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6. 아버지 집 근처로 가서 인생 첫 원근 안경을 맞춤.
아버지가 아무 데서나 해도 된다고, 여기서 맞추고 집에 가라는데,
집 근처에서 맞춰야 문제 생겨도 아버지가 안경점 가서 고치기 수월하다고 몇 번이나 설득해서 감.
아, 제발 괜찮다는 말 좀 안 했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지 : 짜장면 먹고 갈래?
나 : 아부지 시장하세요?
아버지 : 저녁은 먹어야지.
수제비 먹은지 3시간 지났고 사이에 커피와 수제 쿠키 하나도 반 노나 먹었는데 벌써?!
나 : 아부지, 딸은 연비가 좋아. 아직 배 안 꺼졌어요. 앞에 같이 앉아 있으까?
아버지 : 아냐, 배 안 꺼졌으면 가.
이런저런 수발;;에 지치기도 했고, 안 먹는 딸 앞에 두고 먹으려면 아버지도 불편한 기색이라 작별.
이제 아버지도 병원을 모시고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실감을 했다.
혼자서도 가던 병원이면 모를까, 새 병원은 적응하지 못한다.
사실 병원 어렵잖아. 수납 다르고 접수 다르고 진료실 다르고 후...
더해서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
아버지가 그럴 시기가 된 것이다.
한동안 어머니의 병원에 내 일정이 모두 잡혀 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건강한 게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잠깐의 자유(?)가 지났고, 이제 아버지의 병원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
인생은 돌봄의 연속이다.
사랑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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