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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영화] 암살

by 운가연 2022. 8. 24.

* 결말까지 스포일러 있습니다.

 

* 스샷을 찍어서 올리려면 시간이 너무 걸려서 이미지 없습니다.

몇 장면만 찍어볼까 했는데 웨이브는 스샷을 지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웨이브에서 봄.

 

 

암살. 2015년 영화.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정재의 "총알이 두 개지요."를 따라해서 안 봤는데도 본 것 같은 영화였다. *... 그럴 리가;;;*

 

때는 1933년. 엄혹했던 일제치하다. 젊은 염석진(이정재 분)은 매국노인 강인국(이경영 분)과 데라우치 총독이 만나는 자리에 잠입해 두 사람을 암살하려 한다. 그러나 돈줄인 데라우치를 목숨 걸고;; 구한 강인국으로 인해 작전 실패.

염석진은 총에 맞아 손가락 하나가 날아가고, 몸에 총 구멍도 두 개 생긴다. *구멍이 두 개지요.*

 

데라우치의 부하가 강인국에게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누구에게 발설했는지 묻는다.

 

강인국 : 아니요.

부하 : 부인에게도?

강인국 : 당연히 아닙죠!

 

하지만 부인에게는 이야기했던 강인국은 슬쩍 부인에게 묻는다.

 

강인국 : 당신, 아무에게도 말 안했지?

안성심(부인, 진경 분) : 왜 나는 의심하지 않아요?

강인국 : 나도 죽을 뻔했어!

안성심 : 당신이 왜 죽으면 안 돼요? 일본은 전쟁 한 번 안하고 이 나라를 먹었어요. 그래도 이것도 나란데, 누군가 그냥 드린 거죠. 당신 같은 같은 인간이. 가서 이야기하세요. 난 당신하고 같이 한 거라고 말할 테니까.

 

그러면서 피 묻은 천을 보여준다. 부인은 염석진에게 데라우치와 강인국이 만날 장소를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부상당한 염석진을 집에 감추고 숨겨주고 있었다.

 

진경은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었다. 짧게 나오지만, 모든 장면에서 화면을 장악했다.

 

안성심은 일본인들 앞에서 태연하게 친정에 간다며 집을 떠난다. 가마에는 아직 갓난아기인 쌍둥이 딸과 염석진이 숨어 있다.

 

강인국은 자기 부하들에게 쌍둥이 딸만 데려오고 부인까지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염석진은 생포되고, 유모는 쌍둥이 중 한 명을 데리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집사(김의성 분)가 안성심에게 총을 겨누며 말한다.

 

집사 : 죄송합니다, 마님. 눈을 감으시죠.

안성심 : 내가 왜 자네 앞에서 눈을 감나?

 

안성심은 떳떳하고 올바른 일을 했다. 나라를 판 남편의 행위에서 눈을 감지 않고 옳은 일을 하고자 했다. 그녀는 눈을 감을 이유가 없다. 결국 집사의 총은 발포된다.

 

세월이 흐른다.

 

강인국과 가와구치 마모루 -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 승리 이후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만주 일대의 조선인을 학살한 19사단 지휘관, 찾아봤는데 재창조한 인물이지 이 이름 자체가 실존인물은 아닌 것 같다 - 를 암살할 계획이 잡힌다.

 

강인국의 딸과 가와구치 마모루의 아들이 결혼하기 때문에, 상견례 때 둘이 만나는 자리를 노리기로 한 것.

 

여기에 투입되는 인물이 안옥윤(전지현 분), 속사포(조진웅 분), 황덕삼(최덕문 분)이다.

 

안옥윤은 명사수, 속사포는 신흥무관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인 독립군, 황덕삼은 폭발문 전문가이다.

 

경성으로 가는 길에 독립군과 싸우러 가는 일본 병사들을 발견한 안옥윤은 기관총 사수만 잡고 가자고 한다. 기관총 하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 안옥윤이 시력이 안 좋아 한쪽이 깨진 안경을 끼고, 그 안경으로도 백발백중이라는 등 여러 중요한 복선이 깔려 있다.

 

그런데 염석진이 사실은 배신자였다.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매국노를 암살하려던 그는 체포된 후 고문과 죽음의 공포 앞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염석진은 일본에 세 사람의 사진을 건네고 그들이 경성에서 누군가를 암살하려 한다고 한다.

염석진과 일본 수사관은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로 알려진 전문 킬러에게 세 사람의 살해를 의뢰한다.

 

깨진 안경을 새로 맞추려 미츠코시 백화점에 간 안옥윤. 거기서 안옥윤의 쌍둥이이자 갓난아기 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미츠코가 안옥윤을 얼핏 본다. 원래 쌍둥이였는데 한 명이 죽었다고 듣고 자랐지만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보일 때마다 "내 쌍둥이 살아 있어." 라고 집사에게 말하며 찾아달라고 해왔다.

 

집사는 마지못해 백화점에 가서 미츠코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직원이 안옥윤이 안경을 맞추러 왔었다고 한다. 집사는 안옥윤이 적은 주소를 받아온다.

 

하와이 피스톨은 셋 중 속사포를 먼저 죽이려 하나 부상만 입히고 실패.

하와이 피스톨은 살부계를 쓴 아들들 중 하나였다. 아버지들이 나라를 팔려고 하자, 아들들이 친부를 죽이기는 어려우니 다른 이의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던 것. 하지만 하와이 피스톨은 도망쳐버리고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간다.

그러다 미츠코의 약혼자인 카와구치 슌스케가, 부딪치는 실수를 했을 뿐인 조선의 어린 여자아이를 가차없이 총으로 쏘는 장면을 보게 된다.

하와이 피스톨은 자포자기한 채, 청부살해로 돈 모아 하와이로 가서 돈 펑펑 쓰며 사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목격한 일, 어린 소녀를 죽이고도 잔인하고 흡족한 웃음을 짓는 카와구치 슌스케로 인해 각성한다.

딱히 이 장면이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 앞에서 직접 보는 일의 힘은 강하다. 결국 도망치긴 했으나 살부계까지 썼던 인물이니까 본디 아무 생각 없던 인물은 아니었다.

 

부상당한 속사포의 행방이 묘연한 채, 암살 계획은 강행되나 실패한다. 그 과정에서 황덕삼과 일본인이나 조선 독립을 지지하는 키무라(김인우 분)가 죽고 만다.

안옥윤은 이 과정에서 미츠코를 본다. 안옥윤 또한 쌍둥이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게 미츠코일 줄은, 즉 강인국이 자기 아버지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일 지라도 그녀의 임무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와이 피스톨이 부상당한 안옥윤을 돕는다. 둘은 이전에 스치며 피차의 안전을 위해 부부행세를 한 적이 있었다.

안옥윤은 열성적인 독립운동가이자 20대의 청춘이다. 커피도 마셔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어했다.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에게 끌린 것도 과히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 전지현이라서? ...*

 

신문에서 미츠코의 사진을 본 염석진은 강인국에게 사실을 말하며 비싸게 정보를 판다.

 

집사가 가져왔던 주소를 본 미츠코는 안옥윤을 찾아간다.

 

미츠코는 마냥 해맑다. "우리 집으로 가자. 아빠가 다 해결해 줄 거야. 아빠는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안옥윤에게 자기가 가져온 예쁜 옷을 입으라고 한다.

 

미츠코는 역사의식이 없다. 부잣집 외동딸로 쇼핑을 즐기며 철부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그녀에게 먼 나라 이야기이다. "나도 독립군 좋아해. 하지만 네가 하는 건 싫어." 전형적인 철부지 대사다.

아마도 당시 이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있다. 어디선가는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식하며 고공농성을 한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당면한 문제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쳐가는 뉴스피드 속 한 장면일 뿐이다.

 

뒤늦게 집사에게 안옥윤에 대해 들은 강인국은 안옥윤이 있는 곳으로 온다. 사람들이 오는 소리에 미츠코는 안옥윤에게 잠깐 숨어 있으라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강인국이 들어온다. 해맑게 웃는 미츠코. 강인국은 한 방에 미츠코를 쏴죽인다. 따라온 경찰(?)이 "무섭습니다, 사모님도 그러시더니 딸까지..." 라고 말한다.

 

강인국 : 나는 모르는 년이야.

 

강인국은 자기가 직접 정을 주며 키운 아이가 아니라고, 딸은 이미 있다고, 부를 쌓는데 방해가 되는 안옥윤을 죽인다. 나라가 뭐냐고, 돈만 벌면 된다고 친일을 하며 배를 불리듯 말이다.

하지만 그가 가치없다고 쏜 딸이 그가 직접 기른 소중한 딸이었듯, 나라 또한 강인국 자신만 몰랐을 뿐 중요한 존재였다.

이런 복합적인 연출을 좋아한다.

 

강인국은 돈을 위해 부인과 친딸까지 죽인다. 안옥윤은 친부가 타겟이라는 걸 알고도 주저하지 않으나 그는 나라를 되찾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함이다. 부녀의 대조. 기성세대는 나라를 팔아먹었으나 일제치하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독립을 위해 싸웠다.

 

강인국이 미츠코를 죽이는 걸 숨어서 목격하고, 친모조차 죽였음을 알게 된 안옥윤. 마침 미츠코가 준 예쁜 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미츠코가 되어 집으로 간다. 몇 번 걸릴 뻔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눈치챈 집사는 죽이고 시체는 침대 밑에 감춘다.

 

결혼식이 열린다. 부케 안에 총을 감춘 안옥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간다.

아버지/권력자는 딸/나라를 죽이고 팔았으나, 딸/나라는 항복하지 않았다. 결혼식장은 피로 물든다.

일본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을 병합했으나 그 이후 수많은 잔혹행위를 저질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저항하고 거부했듯 말이다.

 

부상당한 채로 속사포도 싸움에 합류한다.

 

속사포가 던진 마지막 수류탄이 불발된다.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

안옥윤을 제외하고 모두 죽기 때문에 작전이 완전히 성공적은 아닌, 실패라는?

반민특위는 곧 사라지고 친일파들이 현재까지도 계속 활개치고 있다는 의미?

혹은 당장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래도 결국 독립하며 승리했다는 것?

 

속사포는 안옥윤에게 묻는다. "대장, 우리, 작전, 성공한 거지?"

안옥윤은 "네."라고 답하고, 부상이 심각해 살아남기 기대하기 힘든 속사포는 그 말에 기댄다. 와, 조진웅 연기 엄청났다.

 

속사포는 수류탄을 맞춰 어떻게든 터뜨리려 하나 끝내 전사한다. 소수가 많은 일본군을 상대할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속사포의 기관총.

 

미츠코가 아닌 안옥윤임을 알아본 강인국.

 

강인국 : 미츠코, 내 딸은 어디 있어?

안옥윤 : 죽이셨잖아요, 그 손으로, 어머니도.

 

그가 나라를 팔았고, 그가 딸을 죽였다. 그리고 이제와서 누굴 찾는가. 역시 복합적인 연출이다.

 

강인국은 집안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는 친일파의 말도 안 되는 썰을 푼다. 그래도 친부라 일순 안옥윤의 눈에 눈물이 맺혀 시야가 가려진 틈에 강인국은 죽은 일본인의 총을 집어 안옥윤을 죽이려 한다. 그런데 총이 묶여 있어서 바로 겨눌 수가 없다. 이는 이 전에 속사포에게 줄이 묶여있는 총이 던져질 때 쌓인 복선이다. 그 찰나의 틈에 하와이 피스톨이 강인국을 쏜다. 예전에는 도망쳤던 살부계의 일을 완수한 것이다.

 

여기에 염석진도 합류해 악착같이 이들을 잡으려 한다.

 

강인국은 미츠코와 카와구치 슌스케를 인질로 해서 일단 빠져나온다. 그리고 카와구치 슌스케는, 그가 가차없이 어린 소녀를 쏴죽였듯, 하와이 피스톨의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존재처럼 한 방에 죽임 당한다. 인과응보.

 

안옥윤은 미츠코인 척 빠져나가고, 하와이 피스톨과 그의 집사는 다른 길로 도망치려 하나, 영리하게 앞길을 막은 염석진에 의해 처참하게 죽고 만다.

 

세월이 흐르고, 독립이 된다. 독립군에게 계속 자금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츠코가 된 안옥윤으로 관객은 추정할 수 있고, 등장 인물은 모른다.

 

반민특위가 열린다. 친일 행위로 재판장에 선 염석진, 심지어 높은 경찰 자리까지 꿰찬 염석진은 재판장에서 옷을 훌러덩 벗으며 그 유명한 대사를 한다. 내가 친일파를 암살하려다 총까지 맞은 사람이다. "총알이 두 개지요."

그리고 옆구리에 있는 총알 구멍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뻔뻔한 작태다.

 

이 장면이 멋졌던 이유 중 또 하나는, 이정재가 앙상한 채 배만 볼록 나온 노인의 꼬장꼬장한 몸을 재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정재 정도의 배우라면 식스팩인들 못 만들었을까.

 

염석진은 증인을 살해해, 유유히 법의 판결을 피한다.

 

해방 후 바로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하고, 미군이 들어와 친일파에게 다시 자리를 맡기며 생긴 역사의 사슬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겁도 없이 혼자 시장 거리를 활보하는 염석진. 그때 얼핏 미츠코의 모습이 보인다. 미츠코를 따라간 그는 오래 전 일과 마주하게 된다. 김구에게 염석진이 밀정이라면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던 이가, 16년 만에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 것.

 

염석진은 외친다. "해방이 될 줄 알았어? 해방이 될 줄 알았으면 안 그랬지!"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으나 김구의 지시를 간직한 이에 의해 그는 처벌받는다. 이는 영화적 쾌감을 주지만 현실은 다르다. 절대다수의 친일파가 처벌받지 않았고, 여전히 권세를 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잊지 않는다. 마지막 탈출구를 찾아 떠나기 전 하와이 피스톨의 집사가 말한다. "우리 잊으면 안 돼."

 

우리는 잊지 않는다.

 

덧 : 어쩌다 보니 언급을 못했는데, 경성의 연락 본부 중 하나를 맡고 있던 김해숙의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조연으로 잠시 등장했던 배우들조차 하나하나 빛이 났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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