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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서울 산책] 경희궁, 딜쿠샤, 홍난파 가옥, 파파도나스, 이상향, 천냥호프노가리

by 운가연 2024. 4. 8.

0. 어제 열심히 썼는데 뭐 실수해서 날린 뒤 멘붕 왔었다. ㅋㅋㅋ

 

심기일전해서 새로 씀.

 

1. ㅈㅁ이 휴가를 받았다.

 

ㄴㄹ와 셋이 서울 산책을 할 작전을 짰는데, 아뿔싸, 셋이 시간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았다.

결국 나와 ㅈㅁ이 걷고, ㄴㄹ와는 저녁에 만나 일잔하기로.

올빼미라 오전 중에 못 일어나서 ㅠㅠㅠㅠ 코스가 짧아짐. 송구하오!

 

2. 경희궁

 

2시 반 경 경희궁에서 만났다.

 

경희궁은 처음이었다. 아담해서 편하게 걷기 좋은 곳이었다. 입장료 무료.

 

경희궁 정문

 

꽃봐라. 일하느라 집앞에 꽃이 진 걸 보고서야 폈었다는 걸 알았더랬다.

 

작년 이 맘 때에도 칭구들 덕에 꽃을 봤었다. 올해도 덕분에 꽃을 보고 지나가는고나.

 

 

천천히 한바퀴 돌고 주변도 조금 걸었다.

 

담장 너머에서 본 경희궁.

 

 

3. 경희궁을 나와 딜쿠샤를 향해 걸었다.

 

 

 

 

꽃이 지듯, 잠들며 의식이 점멸하듯, 어느 날 나도 사라지겠지. 요즘 이 생각이 자주 들어 조금 무섭다.

인생에 제대로 이룬 게 없는데...

 

지난 시간이 삽시간에 흐른 것처럼 느껴지듯, 어느 날 노년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진 인생을 돌아보겠지. 요즘 길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남처럼 보이질 않아. 머지 않은 내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데, 타운쉽 게임에 시간 너무 써. 껄껄

 

4. 홍난파 가옥

 

가는 길에 우연찮게 만난 홍난파 가옥. 누구더라, 누구더라, 하고 있는데 ㅈㅁ은 알더라.

해박하다! <고향의 봄> 작곡가.

 

2층은 카페 같았다. 딜쿠샤에 가야 하는 지라 사진만 찍고 지나쳤다. 언젠가 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할 날이 올까.

 

요즘은 "다음에 오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음이라는 게 없음을, 시간이 삽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

새로 가고픈 곳은 언제든 추가되기도 하지.

그렇게 어느 날의 기억으로, 막연한 소망으로, 삶 속에서 지워진 하고 싶었던, 가고 싶었던 곳은 얼마나 많을까.

 

 

5. 딜쿠샤

 

정면에 있는 붉은 벽돌집이 딜쿠샤다.

 

사업가 앨버트와 연극배우 메리 부부가 살던 곳으로 산스크리트어로 희망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앨버트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와서 사업을 했다. 메리와는 일본에서 만나 결혼 후 함께 조선으로 온다.

 

메리가 출산할 무렵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한 간호사가 메리의 침대에 독립선언서를 숨겼다. 앨버트가 발견해서 만세운동 관련 기사를 써서 뉴욕타임스에 실렸다고.

 

부부는 일본이 외국인을 추방시킬 때 추방되었다. 앨버트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했으나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후에 유해는 한국에 묻혔다고 한다.

 

딜쿠샤는 아들이 태어난 후 지은 집으로, 방치된 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공동주택처럼 모여 살았다고 한다. 아들이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를 찾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거처로 쓰였다는 사실에 감사했다고.

 

현재는 문화재로 복원되어 부부가 쓰던 물건,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난 딜쿠샤 난생 처음 들었는데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ㅈㅁ은 잘 알고 있었다. 딜쿠샤 복원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유튭에 있다고. ... 언젠가 찾아보겠지. 크흑-

 

2층 7~8개의 방마다 여권, 당시 쓴 가방, 메리가 앨버트에게 청혼받을 때 받은 호박 목걸이, 당시 쓰던 가구 등 볼거리가 많았다. 역사에 무지한 나를 몹시 반성하게 만든 곳이다.

 

 

 

딜쿠샤 앞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서 있었고, 권율장군의 집터라는 석판이 보였다.

누군가 치킨과 소주 한 잔, 젓가락을 놔두었는데 젓가락 방향이나 놓인 모양이나 권율장군에게 바치는 모양새였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저런 상을 차려놨을까. 잠시 바라보다 딜쿠샤를 떠났다.

 

6. 지하철을 타고 응암으로 갔다.

 

ㄴㄹ가 너무 맛있다고 한 이상향이라는 퓨전 중국집에 가기로 함. ㄴㄹ는 거의 모든 메뉴를 다 먹어봤다고.

 

ㅈㅁ과 나는 배가 고팠다. ㄴㄹ가 오려면 40분 가량 남아 있었다.

이상향은 삽시간에 만석이라, ㄴㄹ는 우리가 자리를 잡아두길 바랐다.

문제는 둘 다 배가 너무 고파서 ㄴㄹ가 오기 전에 한 판 먹을 기세.

그러면 흥이 안나잖아. ㅠ

 

게다가 나 소식좌라고 자꾸 구박받는데 ㅋㅋㅋㅋ 먼저 먹기까지 하면 어째.

 

일단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좌석이 거의 비어 있었다. 5시 경,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각이었다.

우린 카페에서 커피로 잠시 허기를 달래며 창밖으로 손님이 차나 안 차나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고나. 내가 가자고 한 카페는 구조 상 중국집이 안 보임. ㅋㅋㅋㅋㅋㅋㅋㅋ

 

ㅈㅁ이 바로 앞에 있는 파파도나스에 가자고 함.

아메리카노 2잔, 도나스 한 개를 사서 나눠 먹으며 ㄴㄹ를 기다렸다.

 

ㄴㄹ는 현재 위치 정보 서비스로 자기가 얼마나 왔는지 우리에게 공유했다. 이런 게 있다니!!!

신세계다!!!

 

7. 이상향

 

나와 ㅈㅁ은 슬슬 가게에 갔다. ㄴㄹ는 모든 메뉴를 먹어봤는데 다 맛있으니 먼저 시키라고 함. 보통 중국집처럼 빨리 나오지 않으니 시켜도 된다고.

 

ㅈㅁ과 나는 가지그라탕을 시켰다. ㅈㅁ은 ㄴㄹ를 마중가고 나는 앉아서 드로잉.

 

ㄴㄹ는 음식이 오기 전에 왔다.

가지 그라탕

 

ㄴㄹ픽. 크림볶음 짬뽕.
오향장육 냉채

와- 셋 다 훌륭했다!

진짜 여기 메뉴 다 먹어보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ㄴㄹ에게 음식 세 개 밖에 못 먹었다는 구박 받았는데 ㅈㅁ도 배부르다고 했다고! ㅋㅋ

 

나 : 너 농구하니까 같이 농구하는 친구들이 잘 먹어서 그러는 거 아님?

ㄴㄹ : 아니, 걔들도 나처럼 못 먹어.

나 : 네가 잘 먹는 거야! 내가 소식좌가 아니라긔! ㅋㅋㅋㅋㅋㅋㅋㅋ ㅈㅁ도 배부르다잖아! ㅋㅋㅋㅋ

 

셋이서 요리 세 개 시켰으면 잘 먹은 거 아님? ㅋㅋㅋ

왜 소식좌라고 구박받아야 하냐고. 네가 잘 먹는 거야, 우리 나이에 밥 한 공기 다 못 먹는 사람 많다고. ㅋㅋ

 

이날, 몇 년 간 옷장에서 나온 적 없는 옷을 꺼냈다. 앞으로 돌아가며 입어주려고.

 

ㄴㄹ : 옷은 예쁜데 십 몇 년 전 유행이다, 버려라.

ㅈㅁ : 난 (유행) 몰라서 괜찮은데?

나 : 그럼 안 버릴래.

ㄴㄹ : ... (못마땅한 얼굴로, 제발 버렸으면 하는 목소리로) 그래, 앞으로 우리 둘 다 버리라고 하면 버려라.

 

옷이 환경 오염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줄 알아? 한 번도 안 입고, 한두 번 입히고 유행 지났다고 버려지는 옷이 을매나 자원낭빈디! *열변*

 

... 유행 잘 모르고 예쁜 옷이니 입자. ㅋㅋ

 

8. 2차는 천냥 호프 노가리

 

싸고 맛난 곳. 먹태 먹었는데 사장님이 우리 주문을 깜빡 하시는 바람에 ㅋㅋ 먹기 바빠 사진 찍을 생각도 몬함.

 

여기서 재미난 대화를 나눴다. ㄴㄹ가 해준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이렇게 머릿속에서 셀 때

머릿속에 양이 지나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사람이 있고,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헤에? 나는 그려지는 쪽.

 

이어, 생각할 때 문장형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는 문장형으로 생각하는 편.

 

이를테면 ㄴㄹ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가 사람들 생각을 문장으로 듣는 모습을 보고, 문학적/영화적 연출이라고 생각했다고. 헤에... ㄴㄹ는 문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은 책이나 만화를 읽고 볼 때 목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들린다. ㄴㄹ는 안 들린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독서를 할 때 3D 영화를 보는 감각이다. 영화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꿈보다는 선명한 그런 정도에서 목소리를 듣고 풍경을 보며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간다.

 

어릴 때는 진짜 집중력이 좋았기 때문에 이야기책을 읽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위화감이 찾아왔다.

 

왕자가 백마를 타고 숲길을 걷는 장면이 갑자기 집의 거실로 바뀌는 거다.

 

소설에서 각기 다른 인물이 대화를 하면 각기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 카톡할 때 친구 목소리가 들린다. 때로 혼자 가상의 상대를 두고 대화한다. 머리가 복잡해서 정리가 필요할 때 그렇다.

 

그러다 보니 만화가 애니화될 때 늘 초반에 위화감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내가 본 원작일 경우, 내가 들어온 목소리가 아니니까.

소설이나 만화가 실사화가 되는 건 괜찮다. 소설에서 내가 상상한 외모와 인물이 다르고, 만화 인물과 배우의 생김새가 다르니까.

 

ㅈㅁ은 피곤한지 졸아서;;; 어떤지 못 들었다. 담에 듣기로. ^^

 

9. 불광천 흐드러진 벚꽃

 

칭구들과 나는 방향이 달랐다. 혼자 두 정거장을 걸으며 불광천 벚꽃을 만끽했다.

 

해지기 전, ㄴㄹ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아래는 귀가하며 찍은 밤의 벚꽃

 

 

 

인위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내년에도 또 꽃 보러 가야지. 칭구들아, 건강하자! (2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