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일치기

[나들이] 선바위, 인왕산 숲속쉼터, 카페 럼버잭, 란저우우육면, 행복양꼬치

by 운가연 2024. 1. 16.

1. 구례를 다녀온 뒤 ㄴㄹ와 나 둘 다 여행이 고팠다.

 

ㄴㄹ는 주말은 다 된다고 했는데 문제는 내 쪽.

2월 말 마감인 일이 보름째 난항을 겪으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에, 기존 작업 피드백과 후반 마무리 일정이 겹쳤다.

 

아쉬운 대로 서울을 걷기로 했다.

구남친이 서울 걷기를 좋아해 ㄴㄹ는 여기저기 잘 알았다.

 

ㄴㄹ : 선바위 가서 기도하고 오자. 영험한 바위다.

나 : 가본 것 같아!

ㄴㄹ : 너랑은 간 적 없을 걸?

나 : 완전 옛날에 갔었어. 겁내 영험한 바위 본 기억 나.

ㄴㄹ : 그랬나?!

 

갔었다. 16년 1월 9일에. 일기를 매일 쓰면 이런 걸 알 수 있다. 깔깔-

 

 

2. 13일 토요일 오후 1시, 독립문 역에서 만났다.

 

지하철 거꾸로 타서 ㅠ 10분 늦음. 정신 챙기자!!!

 

독립문역 2번 출구에서 선바위는 10분 거리, 라고 ㄴㄹ가 말했으나, 그것은 취미로 농구하는 체력 좋은 ㄴㄹ 이야기다.

심져 얼마 전 건강검진 때 보니 1센티미터가 컸다고!

우리 나이에!

대단하다!

 

멀지는 않지만 도입부부터 오르막길이었다. 나는 처짐. ㄴㄹ는 잘 걸음.

계단도 평지처럼 올라가더라.

나는 그렇게 못 가서 ㄴㄹ가 수시로 기다려야 했는데 구박하지 않아 고마웠다.

ㄴㄹ는 헥헥대고 힘들어하면서도 내가 "못가겠어. ㅠㅠ"를 시전하지 않더라고 조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체력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목적지를 정하고 걸어가는 거 좋아함.

 

아, 계단이여어~ feat. 아, 옛날이

 

가는 길에 본 이끼. 자그마한 마을 같다.

 

선바위

 

선바위는 인왕산에 있다. 향이 피워져 있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봐도 봐도 신기한 바위다.

바닷가면 저런 바위 있음직해. 어떻게 산 중턱에, 이 바위만 이런 모양으로 서 있지?

 

가족, 지인들의 안녕을 빌었다. 2016년에는 몹시도 세속적인 소원을 빌었는데 안 이뤄져서는 아니다(?)

 

자연물에 기도한다고 무언가가 이루어진다는 건 이성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한편으로 이성이 있기에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상상에게, 상대가 이미 내 마음을 다 알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하듯,

바라는 바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

 

좀 더 올라 뒷모습도 봤다.

 

별사탕이 봉지 채 놓여 있어서 쓰레기인가, 주우려 했는데 ㄴㄹ가 공양물이라고, 정리하는 사람 있다고 했다.

그럼 어린아이의 공양물이겠고나.

좋아하는 간식을 공양으로 놓고 간 아이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예쁜 아이를 만났다.

 

내려와 초소 카페에 갔다. 꽤 큰 카페인데도 텐트 자리, 실내 자리 다 꽉 차 있었다.

야외에는 몇 좌석 있었지만 추웠다. 크아앙-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인데다 토요일이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

 

다른 카페에 가기로 하고 걷다가...

 

ㄴㄹ : 숲속 쉼터에 갈래

나 : 숲속쉼터가 뭐야?

ㄴㄹ : 가보면 알아.

 

그래서 또 계단 ㅋㅋ 을 올라 갔다. 일종의 도서관이자 쉼터로 음료는 팔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가 없었다! *두둥*

 

숲속쉼터는 전면이 통유리였다.

 

ㄴㄹ : 여름에 오면 온통 푸르러.

나 : 여름에 또 오자!

ㄴㄹ : 그르즈아!

 

3. 청운문학도서관

 

나와서 또 걷다가

 

ㄴㄹ : 청운문학도서관이라고 있는데, 거기 인공 폭포가 예뻐.

나 : 가즈아!

ㄴㄹ : 아, 겨울이라 운영 안하겠다. 그래도 보고 갈래? 정자 있어.

나 : 그르즈아!

 

 

폭포와 연못은 얼었고, 잉어는 피난갔지만, 우린 정자에 앉아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얼마 전 본 스맨파, 혐오표현이 지나치게 만연하지 않은가, 라는 우려 등등...

 

4. 카페 럼버잭

 

ㄴㄹ :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있고, 레모네이드가 맛있는 카페가 있어.

나 : 너 뭐 마시고 싶어?

ㄴㄹ : 레모네이드

나 : 거기 커피도 팔지?

ㄴㄹ : ㅇㅇ

나 : 가즈아하하하하하하하하

 

추워서 따뜻한 커피가 고팠다. 딱히 커피 맛에 까다롭지 않으니 레모네이드로 유명한 럼버잭에 갔는데, 커피도 맛있었다!

 

나중에 ㅈㅁ은 그 카페의 커피가 맛있는지 알려면 드립 커피를 마셔야지, 라떼는 엔간하면 맛있다고 했지만,

모르시는 말씀!

커피 맛난 곳은 라떼도 맛나다고! ... 그리고 우유타지 않은 커피 마시면 속 쓰려. ㅠ

특히 아아가 힘듬. 오전 공복에 아아를 마시는 ㅈㅁ의 모습이 내게는 몹시 놀라웠달까.

 

 

레모네이드가 왜 유명한지 알겠다. 컵이 크고, 설탕/사이다 때려박지 않음. 과하게 달지도 않았다.

자몽, 오렌지 에이드도 있는데 ㄴㄹ는 레모네이드가 제일 맛나다고.

이런 맑은 느낌의 음료라면 레몬이 제일 잘 어울릴 것 같더라. 자몽은 좀 더 진해야지.

여기 디저트 류도 겁내 맛나 보였는데, 이따 저녁을 먹을 거라 참았다. ㅠ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낙서를 끼적이고 ㄴㄹ는 휴대전화로 할 일을 했다.

 

날짜 잘못 씀. 13일임. ㅋ
13일임 ㅋ

 

최근 이런 식으로는 그림이 경지에 오르지는 못하리라는 자각이 든다. 성장하려면 그림에 올인해야 한다.

그림에 올인할 시기를 잡아야 한다.

 

각자의 시간을 마치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ㄴㄹ는 오래 살고 싶어한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도 오래 살고 싶거덩. 당연히 건강하게.

세상은 넓고, 여행가고픈 곳 많고, 하고픈 일 많은데, 오래오래 살아야지 않겠어?

그런데 주변에 오래 살고 싶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오래 살아서 뭐해, 가 많은 거.

오래 살자, 건강하게!

 

5. 란저우우육면

 

부함동에는 가보고픈 음식점이 너무 많았다! 일식 정식집, 명란을 주제로 하는 명란식당 등등.

날이 추웠던 터라 따뜻한 국물을 먹기로 하고 란저우우육면으로 출동.

가는 길에 미국에 다녀오느라 잠시 영업 쉰다는 피자 가게가 보였다. 멋진 피자 배워온다나?

오, 궁금타. 나중에 와 볼 기회가 오면 좋겠다.

 

토마토계란면

 

토마토계란면과 란저우우육면 얇은 면, 매운맛으로 골랐다.

토마토계란면까지는 정신이 남아 있었는데, 란저우우육면을 본 순간, 우와- 하고 먹느라 사진은 중간에 찍음. ㅋㅋㅋ

 

ㄴㄹ : 란저우우육면 곱배기 시킬까?

나 : ... 에;; 에;;

ㄴㄹ : 그래, 너 조금 먹고 나 많이 먹으면 곱배기겠지. ㅋㅋㅋ

 

ㄴㄹ에 견주면 소식좌 ㅋㅋㅋㅋ

 

진짜 맛있었다. 여기 요리도 맛있을 것 같다. ㅈㅁ이 같이 왔으면 시킬 수 있었을 텐데...

 

ㄴㄹ : 응암동에 양꼬치집 진짜 맛있어. 가지튀김도 맛남. 갑자기 먹고 싶다.

 

아마 중국음식을 먹으니 연상된 듯. 여기도 가지튀김 있더라. 언제 와서 먹어볼.... 날이 올까?;;; ㅋㅋ

 

6. 잘 먹고 경복궁 역을 향해 걸었다.

 

 

ㄴㄹ : 저기 고양이 있다!

 

해서 보니 벽화. 예뻐서 둘 다 사진 찍음.

이 사진을 본 ㅁㄱ님이 자기도 여기서 사진 찍었다며 보여주심. ㅋㅋㅋㅋㅋ

 

사람 마음 다 비슷한 거.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내 폰으로는 잘 안 찍혔지만 성능 좋은 ㄹㄴ의 폰으로는 달이 선명하게 찍혔다.

 

ㄴㄹ : 달 봐!

 

세상에, 정말 아주 얇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자연에서 저렇게 각도기로 그린 듯한 곡선을 볼 수 있는 건 달 뿐이다.

우린 자연의 경이에 잠시 넋을 잃었다.

 

ㄴㄹ는 늘 달을 찾고, 덕분에 ㄴㄹ를 만나면 자주 예쁜 달을 보는데, 이날 본 달이 그간 본 달 중에서 최고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다시 걸음.

 

ㄴㄹ : 이 길이 아닌가벼.

 

ㅋㅋㅋㅋㅋ

ㄴㄹ도 막 믿으면 안 되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지도앱을 켬.

 

나 : 도로 말고 경복궁쪽으로 걸을까?

ㄴㄹ : 그래.

 

가다가...

 

ㄴㄹ : 저 나무 뭐야?

향나무 추정.

 

바닷가에서 10년 뒤면 튼튼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소나무를 심은 건 봤지만, 도심에서 어린 나무를 심은 건 처음 보았다. 이 아해 하나만이 아닌 게 10년 장기 프로젝트인가 보다.

 

경복궁 역에 도착해서야 ㄴㄹ는 한참 전에 집에 갈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나 생각해서 같이 걸었다는 걸 알았다.

머야, 감동이자나!

 

7. 집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날 일기는 끝났어야 하나

ㅈㅁ까지 셋이 있는 단톡방에서 오늘 일을 이야기하다가....

 

ㄴㄹ : 응암 양꼬치집의 가지튀김 급 먹고 싶다!

ㅈㅁ : 낼 일찍 볼까? 월욜 출근이라 일찍 만나야 함.

ㄴㄹ : 이럴수가, 일욜 쉰다!

 

크흐흑 ㅠㅠ

 

나 : 걍 지금 보까?

ㅈㅁ : ... 너네 같이 있니?

ㄴㄹ : 아니, 둘 다 집이야.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다시 모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이 제일 먼 ㅈㅁ은 택시를 타서 일찍 도착하고, 낵아 젤 늦음.;;; 쟈철이 9분 뒤에 도착한다잖아. ㅠㅠ

 

응암 행복양꼬치에서 양꼬치, 가지튀김, 건두부무침, 숙주나물에 새로 2병을 비웠다.

행복양꼬치의 양꼬치는 내가 먹어본 중 제일 부드러웠다.

가지튀김은 보통 매콤한 것에 비해 탕수육소스처럼 달달했는데 과하게 달지 않아 좋았다.

건두부무침은 처음 먹는데, 역시 간이 세지 않고 새콤달콤하니 맛있었고, 숙주 나물은 한 번은 기본, 두 번째는 시켜야 하는데 ㅈㅁ이 먹고 싶어 해서 한 번 더 시킴.

아삭하니 겁내 맛있었다. 쯔유에 맛술 섞으면 비슷한 맛이 나려나?

 

11시 20분. 막차 타야 하는 시간에 일어남. ㅈㅁ은 택시타겠다고 함. ㅋㅋ

 

보름째 제자리였던 작업으로 인해 힘들었는데, 이날 걸으며 머릿속에서 궁리한 끝에 돌파구를 찾았고, 현재 전진 중이다.

 

13일임 ㅋㅋㅋ

 

다꾸도 함. ㅋㅋㅋ 나중에 날짜는 13일로 수정함. ㅋㅋ

 

 

직전에, 술 마시며 허비한 20대를 안타까워해놓고, 이날 완전 놀면서 보냈다.

하지만 20대 때으 나는, 정말 걍 놀기 위해 놀았고

현재으 나는 휴식이 필요해서 쉬었다.

 

20대란 시간을 허비하는 게 허용되는 마지노선이니, 그때의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물론 요즘은 아닐 수도 있다. 삶이 많이 각박해진 지라...

먹고사니즘이 나 20대 때보다 더 무거운 시대라...

 

충전 잘 했으니 힘내자, 이번 마감.

마감을 마치고 또 놀러 가야지. ^^ (2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