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카테고리에서 [순정만화]란 대략 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나왔던 만화의 한 장르를 말한다.
순정만화의 정의는 당시 작가들과 독자들이 '순정만화'라는 인식하에 창작하고 읽었던 만화라는, 다소 느슨한 정의를 쓰려 한다. 장르를 정의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으니 이 정의가 절대적이라 주장할 생각은 없다.
2. 이따금 나는 나 자신을 '순정만화 세대'라고 부른다.
'순정만화 세대'는 폭 넓게 쓰이는 말은 아니다. 그냥 내가 하는 소리다.;;
어리게는 아동기, 많게는 20대 초반에 접한 문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토록 영향을 미친다.
8~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음악들이 심심찮게 언급되는 건, 그 시대에 어렸던/젊었던 사람들이 구매력 있는 중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크크-
나는 순정만화와 함께 십대를 보냈고, 지금까지도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르가 순정만화다.
내가 중드 고장극, 특히 선협물을 좋아하는 것도 순정만화의 영향이다.
자고로 남자란 긴 생머리. *아무 말;;;*
3. 이 카테고리의 첫 글에 책과 작별하기로 결심한 내용을 올렸다.
어렵게 책과 작별하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게 만화책이었다.
만화책은 만화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 폐기물이 되는 게 아니야.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되는 거라고!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마음을 굳힌 뒤 여덟 칸 책장을 이중으로 꽂고, 위에 눕히고, 책장 꼭대기까지 쌓인 만화책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4.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순정만화로 방을 가득 채웠었다.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나오던 90년대 초반, 아득바득 그 잡지들을 다 보았다. 친구들과 나눠서 사서 돌려보기도 했다. 전에는 만화 대여점에서 얇고 크게 나오던 책을, 댕기에서 '댕기네 책들'이라는 브랜드로, 서점에서 유통하는 소장용으로 발매했을 때 열광하며 샀다.
우후죽순 나온 잡지가 오히려 전성기를 짧게 끝나게 했을까. 한 편 한 편 공을 들일 여유가 없어진 일부 작가들의 그림체가 다소 단순해졌고, 그리고, 잘 모르겠다. 2000년대에 들어서고 얼마 후부터, 순정만화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쓰이지 않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위에 썼다시피, 우리 집에는 그때 그 책들이 여전히 쌓여 있었다.
꽤 많은 책들을 만화박물관에 기증했고, 읽고 싶다는 지인에게 주고, 게으른 내가 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당근에 내놓기도 했다. 90년대를 전후한 만화책을 수집하는 애호가를 만난 덕에 마음 편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분께도 언젠가 그날이 오면, 어쨌든 누구나 언젠가는 빈손으로 떠나야 하니까, 박물관에 기증하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작별하기 전에 읽기로 결심했었지만, 이사가 급한 상황이었던 터라 리디에 스캔한 전자책이 있는 만화책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냥 작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사가 미뤄짐.;;
그래서 아직 남은 순정만화들은 읽고 작별할 수 있게 되었다.
... 이 속도로는 평생 못하지 싶은데 깔깔-
지금까지는 모으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남은 인생은 비우며 보내는 거지.
이미 2~30년 씩 묵은 책도 있는데, 갑자기 급할 거 없다.
5. 다시 읽으며, 순정만화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 작업의 많은 요소를 순정만화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순정만화 하면 흔히 꽃미남이 등장하는 청춘연애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많은 순정만화 작가들이 알폰스 무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의 배경으로 꽃을 넣었다.
거기에서 꽃미남이라는 말이 나왔는 지도?
어쨌든 꽃미남과 평범한 여주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로맨스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많은 순정만화들이 역사, 주인공의 다양한 연령대에 따른 고뇌와 갈등, SF,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를 그렸다.
그때는 몰랐다. 왜 순정만화 작가들이 프랑스 혁명 혹은 가상 국가의 혁명을 배경으로 그려야 했는지. 어째서 주인공이 다소 추상적인 고뇌를 하는지. 검열로 인해서 역사물과 판타지의 외형이 필요했고, 주인공의 고뇌 또한 직접적인 단어로 서술할 수 없었던 거다.
단편들은 일상에 환상적인 요소를 섞어 툭 던져서, 이 세계는 그냥 이런 세계야,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밀고 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내 초기 작업들도 그런 형태가 많았다. 지금도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환상/판타지 작업을 하고 싶은데, 이 이야기는 외부 상황이나 여차저차한 일들이 많아서 생략.
6. 원래는 순정만화 한 편 리뷰를 올리려고 했는데...
사설이 길어져서 리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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