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들어 가고 싶다고 점 찍은 전시회를 놓치는 일들이 생겼다.
기회가 많이 와서 일하는 시간과 양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게을러서, 라는 자책도 든다.
여행 온 김에 박물관에 전시회까지 보게 되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기쁜 마음으로, 어떤 전시인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간 전시회는 무거웠다.
2. 수원시립미술관 - 어떤 Norm(all)
두 가지 기획 전시 중이었는데 하나는 어떤 Norm(all), 다른 하나는 '물은 별을 담는다' 였다.
정상적인, 평범한 이라는 뜻의 영단어 노멀normal과 모두를 뜻하는 올all의 합성어로 지은 제목이었다.
정상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가정 폭력, 아동학대와 유기같은 범죄는 열외로 치더라도,
성소수자 가족이 있는 경우는, 백 보 양보해 예외로 하더라도
이혼, 한부모 가정, 1인 가족 비율이 여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들어섰고,
가족 안에서 극심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 있는 가정을 정상가정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잘 모르거나 살다 보니 연락이 드물어진 게 아닌,
명절이면 만나며 지내던 직계 가족, 친척들이 있던 집의 경우,
노부모나 돌봄 노동이 필요한 가족의 부양에 쓰는 시간과 돈의 비율, 유산 분배 문제 등으로
절연한 친척/가족/형제가 없는 집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는 이 기획이 몹시 반가웠다.
1층 세 관에서 진행하고 3관, 1관, 2관 순으로 봐야 하는데 안에서 안내해준다.
3관 도입부는 텍스트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어느 명절 날, 유별나면서 평범한 가족의 대화다.
폭언, 막무가내, 과음, 과도한 요구, 거친 거절, 크고 작은 텍스트만으로도 명절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3. 이번 글은 어떤 Norm(all) 첫 번째 전시관, 그 중에서도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감상이다.
기억에 의지해서 쓰는 거라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전시관 안에 고독사한 사람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틀어져 있었다.
고독사한 사람이 살던 방을 치워주는 업체 사람들이 나와서 인터뷰를 했다.
시신이 며칠 지나 발견되는 경우에는, 부패하는 과정에서 체액 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체액 등은 '일반 폐기물'로 '의료 폐기물'이 아니다.
즉,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이 업체 사람이 여러 행정부처에 문의를 했는데, 병원에서 발생하면 의료 폐기물이나 가정에서 발생하면 일반 폐기물이라고 한다.
업체 사람이, 병원에서 작은 상처를 거즈로 한 번 닦은 것도 의료 폐기물인데, 어떻게 시신에서 나온 체액 등을 일반 쓰레기봉지에 담아서 버리느냐, 고 하니까, 그럼 소각장에 가서 버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부고를 들은 가족은 시신을 인계받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데, 세상에, 시신이 '물품' 란에 있다. 하..............
가족이 없으면 그래도 나라에서 무연고자로 화장을 해주기라도 하지, 가족이 있는데 연락두절로 사는 경우가 문제다.
다만 가족이 경제사정이 어려운 경우, 무연고자로 처리해주며 편의(?)를 봐주기도 하는 듯.
장애인/노인도 비슷한데, 연락두절로 어디 사는지도 모를 지라도 가족이 있으면 정부 지원을 못 받는다.
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장애인 관련 시설을 운영하던 사람이, 시설 앞에 버려지는 장애인들이 있다고 했다.
그 운영자가 말했다. "버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맡기고 싶었던 거겠죠."
사람은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사실상 24시간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으면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래도 가족이 있다고 지원은 안 되고, 결국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의 경우에도 같았다.
심지어 국가유공자였는데도, 자식이 캐나다에 살고, 연락처도 모르는데도 국가 유공자 행정처?인지;;; 에서 장례를 못 치러주고, 결국 무연고자로 화장될 수밖에 없었다.
반려동물 또한 마찬가지. 한 고독사 현장 정리하는 업체 사람은, 반려동물이 있으면 무조건 안 간다고 했다.
가족/친척들이 반려동물 포함 다 정리해달라고 하는데, 역시 사망자의 가족이 있으면,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 아이들을 다 입양처를 알아볼 수도 없고, 길에 그냥 버릴 수도 없고, 그냥 안 간다고 했다.
다른 분은 아이를 포함한 동반 자살 현장에는 안 간다고 했다.
그 분들도, 사람이다.
가족이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시신 보관소에서 냉동고 온도를 낮춰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했다.
고독사로 죽었고, 가족도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에 대한 존엄이 사라진다고 했다.
신발 신고 들어와서 그 집에서 쓸만한 건 다 가져간다고.
유품정리사들이 갔을 때는 이미 정말 쓰레기 밖에 남지 않는다고.
그래도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곳인데, 죽었다는 이유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라는 탄식이 느껴졌다.
충격적이게도 유품 소각은 불법이고, 간혹 눈 감고 해주는 곳도 가격이 비싸서, 제례를 치르듯 의미있는 물건들만 태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는 내 세 넘들을 사랑한다. 생명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반려동물 장례식도 갖은 정성을 쏟는 업체들이 널렸는데, 피를 나눈 가족의 유품을 제례처럼 태우기조차 힘들다니...
한 편으로 여러 참담한 사례를 보다 보니, 제례처럼 유품 소각을 해주려는 가족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게 안도될 지경이었다.
가족들이 고독사한 가족을 돌보지 않으려는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장례시켜주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최소한 그 정도의 여유는 있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관계다. 고독사한 사람은, 이미 그 가족과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었거나 지극히 소홀해진 경우다.
본질은 사람인가 동물인가, 가 아니라 핏줄인가 아닌가, 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마무리는 해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가에 더해 그간 정서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에 있다.
초딩 시절 자주 놀러오던 이모가 있었다. 이혼을 했고, 아이도 없어 혼자 살았다.
나는 그 이모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대놓고 남동생만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이모가 마음 약한 우리 엄마를 이용해 수시로 우는 소리를 해 돈을 받아내고, 갚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가족/친척들과 연을 끊었고, 그 뒤 다시 만난 기억은 없다.
2~3년 전 그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이모가 그 이모가 생전에 들었던 보험금으로 장례를 치러주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직계 가족들의 유산 포기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다른 이모도 오라고 하지 않았다. 사망 원인도 모르고 묻지도 않았다. 내가 직접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한다.
이혼이 흔했던 때가 아니었다. 이혼하기까지의 과정도 지난했을 거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이혼녀'라는 세간의 시선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고.
수입이 시원찮았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받아 주는 우리 엄마에게 그랬던 거겠지.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들도 유산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는데, 없는 사람은 오죽할까.
삶의 질이 달린 문제인데.
고인에게 소액이나마 재산이 있는 경우 딱히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고인의 가족/친척, 혈연상 남인 사람까지 고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그 돈을 받으려고 날 선 각축전을 벌인다고 한다.
사람은 과거에 현재를 덧대며 살아간다.
유품 정리사들은 시간여행을 하듯, 현재에서 과거로 가 그 사람의 행적을 정리한다.
고인이 생전 소중하게 아끼고 닦아온 유품들을, 자식들은 와보지도 않고 그냥 버리라고 말한다고 한다.
고인이 고이 간직한 유품은 천주교인 경우에는 마리아상과 촛대, 그리고 아이들의 사진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즉, 그 사진은 죽은 사람의 추억이지 남은 사람의 추억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고인이 그토록 애지중지해온 자신들과의 기억은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고인처럼 자신의 물건이 아닌 아이들의 물건을 간직한다...........
인터뷰한 유품정리사가 "물건은 죽기 전에 줘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자기 기억 속 추억만 소중하다."고.
적어도 생전에 주면, 그 물건을 주고받는 순간 때문에라도 잠깐은 간직할 지도 모르지.
집에 가서 버릴 수도 있지만...
부모자식 관계도 계속 소통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계속 소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단절은 때로 일방의 외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렇게 부모 품에 매달리다가, 결혼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린 이후부터
부모에 대해 정서적 단절을 하는 경우를 왕왕 봐왔다.
부모가 달리 자식에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냥 돌아서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 문제를 도와달라는 게 아닌 그저 작은 격려만 바랄 뿐인데도, 그마저도 거부하는,
자신의 인생에서 자식이 빠져주기를 바라는 부모들 또한 존재한다.
인터뷰에 나온 한 사람은 (어떤) 고독사는 "지연된 자살"이라고 했다.
몸이 안좋거나 등등 자기 몸에 위기를 느끼는 데도, 방치해버린다는 것이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을 중단한다...
이 전시회 후,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려는 노력을 멈추면 안 되겠다, 유언장에 장례비와 장례를 주관할 이와, 주관자에게 남길 유산;;; 정도는 마련하고 죽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 가까이 살아야겠다거나 사촌들에게 잘해줘야하겠다는 마음도 든다.;;;;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지는 사실 꽤 됐다.
독신인 친구들과 이따금 아프면 감기약 정도는 지어서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내 어여쁜들 둘을, 열다섯 살에 보내고, 뺭이를 입양하기까지 내 나름의 고뇌와 과정이 있었다.
외동으로, 너까지만 돌본다, 했는데, 뺭이 때처럼 아픈 아가들을 치료 시키다 셋이 되었다.
그래서 내심, 다시는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는다, 는 미래를 모르는 인간의 덧없는 다짐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늙어가느니만큼 정말 신중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무릎과 허리가 약해지는 걸 실감하며, 넘들 케어가 쉽지 않아지는 걸 느끼며, 응, 더는 안 돼, 하긴 했지만,
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해서, 나라는 보호자가 없으면 삶의 벼랑으로 몰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말로 이 아이들이 내 마지막 아이들이 되어야 하는구나, 싶다.
죽음이란, 뭘까.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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