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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작은 클리어 파일 하나를 다 채웠다 - 101030~230726.

by 운가연 2023. 7. 30.

B5보다는 작고 A5보다는 크다.

 

엄밀하게 따지면  19.07.25~230726이다.

뒷부분은 정리한 크로키 북 등에서 뜯어낸 걸로 채워버려서리.

 

19년 9월에 남원 여행에서 그린 그림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 그림에서는 건질 게 없었다.

여행 자체도 크게 기억남는 게 없다.

 

19년 8월에 춘천 여행을 다녀와 그린 그림을 넣었다.

 

뻔한 풍경 그림에 질려서 환상적인 요소를 넣어보려고 했다.

춘천 여행은 난생 처음 레일바이크를 탔고, 다녀온 뒤 여행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것 외에, 여행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혼자 국내 여행을 시작한 무렵이라 요령이 부족했다.

숙소 정보도 충분히 알아보고 가야 했다. 얼결에 들어간 곳이, 한동안 손님이 없어서 방치된 곳이었다.

정말 몇 년 간 세탁하지 않은 침대보와 이불보 때문에 누울 엄두가 안나서 새벽에 튀었다.;;;

그 전에는 숙소에서는 잠만 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대체로 역 근처 모텔을 잡아 왔었다.

아마 저런 곳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다만, 이때 이후 숙소 검색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춘천 여행의 실패를 딛고, 해외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었다. 해외 여행은 근 10년 만이었다.

19년 11월에 베트남 후에에 갔다.

강산이 달라졌다. 숙소 예약, 휴대전화 유심 구입 등등 숙지할 게 너무 많았다.

중간에 몇 번 포기하고 다음에 갈까, 하다가,

다음이 어딨어?! 언제 가자, 가자, 하다 10년 지났다고 날 다그쳐서 갔다.

끝내주게 재밌었다.

다녀온 직후에 코로나가 터지며 나라들이 문을 걸어닫았다.

안 갔으면 어쨌을 거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해외여행 다시 가고 싶다.

당장은 도배 후 집 정리도 안 끝났고, 외벽 누수 문제로 인해 국내 여행도 계획하기 어렵지만...

또 가야지, 어디든, 어떻게든!

 

베트남, 다낭, 드래곤 브릿지.

야경을 그리기가 힘들어 어두운 색지에 색연필을 쓰면 어떨까 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집에 색지도 많았다.

2013년에 입체카드 만들기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산 색지, 각종 포장지들 아직도 남아 있다. 깔깔-

워낙 물건을 못 버리는 탓이기도 하다.

물건의 쓸모를 채우지 못하고 버리는 게 힘들다.

낵아 너희, 어케든 다 써줄게!

 

고양이만 내가 그린 거.

23년 7월, 다꾸하려고 모아둔 이미지들 소진할 겸, 콜라주를 시작했다가 재미를 붙였다.

아이패드를 포함해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잘 되지 않을 때도 무언가 만들어 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이게 꽤 괜찮았다.

작업을 마친 뒤 몰려오는 공허에 좋은 방어벽으로 작동해, 술을 덜 마시게 한다.

 

큰 고양이만 내가 그려서 붙인 거.
코끼리만 내가 붙여서 그린 거. 여자를 왼쪽 선을 넘어가게 붙였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이 파일은 콜라주로 채우려고 했는데 변수가 발생했다.

 

책장을 옮기느라 책과 스케치북/다이어리 등등을 다 뺐다.

이때 덧없는 그림과 다이어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꽂고 나서 정리하려고 하면 또 몇 년 훅 간다. 꽂을 것만 꽂고 나머지는 작별해야 한다.

크로키북, 스케치북, 갖은 수첩 등속을 넘기며 점검했다.

살 그림이 많은 크로키북은 버릴 그림을 뜯어내고, 버릴 페이지가 많은 크로키북은 살 그림을 떼어냈고,

그렇게 떼어진 그림이 이 클리어 파일에 들어오며 다 차버렸다.

 

이번에 살아난 그림 중 제일 오래된 건 2010년 그림이다.

굳이 가지고 있을 만큼 잘 그린 그림은 아닌데, 나름 공들여 그린 기억이 남아서 살렸다.;;

 

펜으로 그리고 마커로 명암 넣는 방식에 재미 붙였던 때.

 

몇 해 전 보낸 아해들을 그린 그림들은 완성도와 상관없이 모두 살렸다.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몰랐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넘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귀엽고 예쁘다고 말해주고 다정하게 대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아해들에게 얼마나 잘하든, 그게 앞서 보낸 아해들에 대한 보상은 되지 않는다.

그 아해들에게 못해준 건 영원히 못해준 걸로 남았다.

환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곳에서 예쁘게 태어나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이런 덧없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