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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스케치북을 다 썼다 - 14.03.11~23.07.1

by 운가연 2023. 7. 23.

14.03.11. 합정 알파문구에서 구입.

14.09.16. 첫 그림. 14.07.12. 마지막 그림.

 

ㅈㅁ, ㄴㄹ와 조금 길게 태국 배낭여행을 가잔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여행지에 가서 그림을 그리리라 들떠 화방에 갔고, 그때 AD 작은 크기의 하드커버 스케치북의 존재를 알았다. *두둥*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도구에 대한 욕심은 없는 편이었다. 돌이켜보건데 집에 뭘 놔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룸을 책장으로 꽉꽉 메우고 게걸음으로 살던 때였다.

 

하드커버라 어디서든 꺼내 그리기 좋다는 거. 딱 여행 갈 때 가지고 가세요, 라고 쓰여 있는 듯한 느낌.

새 도구가 주는 기쁨 속에서 꽤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걸로 기억한다.

 

이보다 작은 걸 먼저 샀고 나중에 더 큰 이걸 샀다.

 

여행 갈 때 쓰리라 벼르며 6개월을 책장에 묵혔다가, 14년 9월 16일, 갑자기 여행 가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서 당일치기로 정동진에 가며 처음으로 썼다.

 

여행 다꾸를 하고 싶었다. 그림에 어우러지게, 혹은 표 자체를 예쁘게 붙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전자담배가 나온 초기구나.

셋이서 같이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국내 여행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불분명해서, 여행 가기로 하고 스케치북을 산 거니 최소 14년에 여행 가자, 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시험 삼아 태백 여행을 간 건 15년 8월 14일이다. *두둥*

 

물붓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때 여행 다이어리를 꽤 열심히 검색해 봤었다. 외국인이 펜으로 슥슥 풍경 그림을 그리고 필기체러 그림과 어우러지게 감상을 적은 것들을 보며, 와,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어! 열망이 뿜뿜 샘솟았었다.

그림과 글의 배치도 어렵지만 악필이라는 것도 문제. *쿨럭*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아예 그림만 그리고, 글은 메모해뒀다가 티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구나.;;;

그림 + 글, 다시 시도해보자.

 

태백 여행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언제 여기다 여행기 올려봐야지.

 

태국 여행은 여차저차해서 다시 가지 못했다. 15년 기준으로 어느새 8년이 지났다니;; 하하;;;;;;;

 

90년대 후반에 혼자 경주 여행을 갔던 기억이 있는데, 스마트폰 이전, 차에 네비게이션이 없던/일반적이지 않던 때라, 헤맨 기억과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었는데 상했다는 것과 사장님 표정을 보니 알면서 판 게 분명해 보였다는 것과 지금처럼 상했다고 따지고 바꿔달라고 하기 뭔가 어려웠던 시대라 그냥 넘어갔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리고 내 여행은 해외 배낭여행이었는데, 15년이 여행 이후 셋이 제주도, ㄴㄹ와 둘이 통영, ㅈㅁ과 수원 등등 여행을 다녔고, 내게 국내여행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근 1년, 다시 이 스케치북은 잊힌다.

다시 꺼낸 건 16년 7월 10일.

 

ㄴㄹ, ㅈㅁ과 한강에서 텐트치고 멍 때리는데 재미를 붙였을 때다.

나들이 다이어리를 어떻게 해야 예쁘게 꾸밀 수 있을까 궁리하다 컬러 프린트로 사진을 출력해서 붙이는 등 용을 썼다.

 

여기 아래 붙인 줄 테이프. 아직도 덜 쓰고 남아있을 걸? ...

16년은 한강에서 멍 때리기, ㄴㄹ와 남산에서 이태원 걷기 등등을 했던 해다. ㄴㄹ가 서울 곳곳을 걷는 걸 좋아해 많은 코스를 알고 있어서 나는 따라가기만 했었다.

 

그림과 글을 어울리게 배치해보려던 노력.

저 내용에서 핵심은,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차장이 있는 줄 알았다는 거. .........

 

이날 사건 중 하나는 길에서 충동적으로 사먹은 와사비 아이스크림이었다.

ㄴㄹ가 입간판을 보고 "와사비 아이스크림이다!" 하고 달려가기에 먹어본 줄 알았다. ... ㄴㄹ도 처음이었다. ㅋㅋ

 

ㄴㄹ 시식평 : 밥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고 이어서 메밀국수 먹는 것 같아.

내 시식평 : 뷔페에서 디저트 접시에 회를 같이 담아 아이스크림에 와사비 묻은 것 같아.

 

그리고는 걸을 때 본 사진들을 몹시 재미없게 오려 붙이고 단상을 적은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스케치북 낭비였다, 싶기도 하고, 그날들을 돌아보는 추억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없이는 그림을 못 그려서 낙서력을 올려보려고 이런저런 낙서를 하기도 했다.

낙서력에서 그린 두 아이는 가릉이와 연이다.

몇 쪽을 넘기면 19년으로 넘어가고, 뺭이에게 새 낚시대를 사 준 일기가 나온다.

 

이 카페는 없어졌다.

21년으로 넘어간다. ㄱㅎㅊ쌤의 드로잉 강좌를 들은 후다. 이 강좌는 내게 실제 사물/풍경을 보고 그릴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 ........... 만 자연은 여전히 어렵다. ㅠㅠ 배운 것만 그릴 줄 아는 인간. 껄껄

 

22년 그림에는 쩡이가 있다.
23년 7월 12일. 콜라주. 고양이만 내가 그려서 붙인 것. 사진을 찍은 뒤 여백에 그날의 주요 일을 적었다.

마지막 한 쪽 남은 걸 방치하다 며칠 전 콜라주를 하며 다 썼다.

구입한 날부터 다 쓰는데 9년 걸렸다. *삐질*

그리고 지난 9년의 일들을 일부나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전 일기에 쓴 팡이 사태 이후, 집 정리를 하며 새삼 집에 얼마나 많은 종이들이 놀고 있는지를 봐 버렸다.

아이패드 그림에도 재미를 붙인 지라, 매일 그려도 다 쓰려면 한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낄-

종이 그림은 종이 그림대로 매력이 있는 지라 요즘 부지런히 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