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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겨울 구례] #3. 평화식당, 사성암, 살구나무빵집

by 운가연 2023. 12. 29.

1. 오전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제 화엄사 강행군 여파로 ㄴㄹ는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나는 펜과 노트, 첫날 먹고 남긴 삶은 달걀 따위를 가지고 1층으로 가서, 원두커피를 내려 마셨다.

음... 믹스커피를 마셔야 했다. ㅋㅋ

 

 

그림을 좀 그리다 추워서 올라옴. 아, 열쇠를 가지고 갈 걸. ㄴㄹ를 깨워야 했다;;;

하지만 ㄴㄹ도 일어날 시간.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챙기고 나옴. 이번 여행 때는 면 마스크 2개를 다 잃어버림. 목도리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과정에서 날아간 듯. 아이고, 아까워라.

 

나가기 전 놓고 가는 거 없나 몇 번이고 확인함. 가려는데...

 

ㄴㄹ : 저 멀티탭 여기 거야?

나 : ............ 내 거네?;;

 

케이블만 챙긴 나. 빵 터진 ㄴㄹ. 놓고가는 거 없는지 내가 확인하는 걸 본 지라... ㅋㅋㅋㅋㅋ

뭘 잘 놓고 다니니 자꾸 확인하는 거임. ㅋㅋㅋ

 

2. 가방은 어찌할 것인가.

 

ㄴㄹ와 나 둘 다 체크카드를 안 가져 옴. 즉, 현찰을 찾을 방법이 없음.

ㄴㄹ가 한참 뭔가 검색하더니 말했다.

 

ㄴㄹ : 앱으로 돈 찾을 수 있다!

나 : 머라?! 그런 신세계가 열렸다고라고라고라?

 

구례공용버스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 감. 거긴 농협. 안타깝게도 농협은 ㄴㄹ의 앱이 먹히지 않음.

ATM을 찾아 다른 편의점으로 하염없이 걸음. 만 원 찾기 성공!

 

휴대용 휴지를 사서 돈을 바꿈.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하필 1,100원짜리라 동전 생김. 크아앙-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서 가방을 라커에 보관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3. 평화 식당

 

 

식당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ㄴㄹ가 말했다.

 

ㄴㄹ : 여기 시청이 있네? 이 근처 다 맛있겠다!

 

그러구나!

우리가 가려던 식당은 안타깝게도 월요일 휴무. 가까운 곳에 있는 평화 식당에 가서 ㄴㄹ는 육회 비빔밥, 나는 익힌 고기 비빔밥을 시켰다. 육회 맛 잘 모름;;;

 

 

고추장은 일반 맛, 매운 맛 두 가지. 나는 매운 맛을 택했다. ㄴㄹ는 고추장을 아예 넣지 않고 비볐다. 그때 사장님이 오심.

 

사장님 : 고추장 안 넣으셨네요. 우리가 직접 만든 고추장인데...

나 : 그런 것 같더라고요. 시판하는 고추장이 아니었어요.

 

ㄴㄹ는 사장님이 섭섭해하는 기색에 냉큼 고추장을 한 숟갈 넣음. ㅋㅋㅋㅋㅋㅋ

직접 만든 누룽지도 주심. 만들어 두면 손님들이 한 주먹씩 가져간다고 뿌듯해 하심.

 

집에서는 '밥'은 햇반 기준으로 1/4 정도만 먹는데, 이날은 비빔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첫날 ㄴㄹ에게 밥 남겼다고 구박 받았는데 ㅠㅠㅠㅠ

ㄴㄹ는 반찬 거의 안 건드렸지만 난 나물 반찬 겁내 열심히 먹었는데. ㅠㅠㅠㅠ

웨 반찬은 남겨도 갠찮고, 밥은 다 묵어야 하는 거지? 흑흑-

 

암튼 이날은 싹 비움. ..... 비극(?)의 시작;;;;

 

4. 사성암으로...

 

어제 힘들었던 ㄴㄹ는 오늘은 걷기 부담스러워했다. 나도 힘들었다.

나는 발에, ㄴㄹ는 허리에 파스 붙임. ㅋㅋ

 

택시 기사님 : 사성암 걸어서 못 가요. (창밖에 보이는 오산을 가리키며) 저 꼭대기를 걸어서 어떻게 가. 주차장에 가면 셔틀버스 있어요.

 

나 : 주차장 가서 봐서 걸을 수 있으면 걸으려고요.

택시 기사님 : 인도 없어요, 위험해. 가서 한 번 봐요.

 

주차장 도착. 셔틀 버스를 결제함.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며 알았다.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걸.

인도가 없는데다 길이 구불구불하다. 즉, 걸어 오르내리다가는 버스가 돌다 사람을 못 봐서 사고나기 딱 좋음.

무조건 셔틀 버스 타야 함.

 

가는 길 풍광 죽이고...

 

셔틀 버스 기사님 : 2시 20분 경에 올게요. 더 일찍 내려오면 전화해요.

우리 : 감사합니다!

 

올라올 때도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고, 내린 곳에 셔틀버스 전화번호가 있었다.

구례 버스는 택시인가? ㅋㅋㅋㅋㅋ

 

풍경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미친듯이 사진을 찍음.

 

 

 

 

 

사성암은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 세운 사찰로 유명했다.

 

여수 돌산도에서 본 항일암이 떠올랐다. 항일암이 더 복잡하고 사찰이 많지만, 사성암도 아름다웠다.

 

 

본 순간 찬사가 터졌다. 여길 어떻게 지었지?

 

셔틀버스 덕에 편하게 오긴 했지만, 걸어 올라와서 이 풍경을 봤으면, 더한 감동이 찾아왔을 것 같았다.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움직이는데 ㄴㄹ가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ㄴㄹ : 바로 앞에 계단을 두고 어디 가? 어쩜 좋아, 널 어떡하면 좋으냐.

나 : 아, 아, 안경 탓이야! 이 넘의 변색 렌즈 탓이라고! <-- 아님;;; 주의력/관찰력 부족임;;;

 

 

 

 

올라가며 본 풍경.

 

사찰에 간 우리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돌벽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는 유리광전을 찾아 절벽을 바라보았다.

 

부처님 상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걸까?

 

나 : 아닐 거야, 저 벽에 있다면 덩쿨들을 정리했겠지.

 

그리고 불당 안을 봤으나 못 본 나. ㄴㄹ가 또 터짐.

 

ㄴㄹ : 저기 있잖아! 아, 야를 어쩌면 좋으냐. ㅋㅋㅋㅋ

 

저 안에 잘 계신데 못 본 나;; 대단하다;;;

 

종교인이 아니다. 그래도 부처님 앞에 잠시 합장을 했다.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위에서 보이는 풍경 사진을 정신없이 찍어댔다. 다시 봐도 아름답다.

 

 

 

 

 

설악산과는 또 달랐던 오산에서 본 풍경. 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내려와서 다음 장소, 소원바위, 지장전, 산왕전, 도선굴로.

 

 

작은 바위 굴이 있다.

 

내가 찍은 귀목나

 

같은 장소에서 ㄴㄹ가 찍은 귀목나무. 렌즈가 셋 달린 폰, 대단하다!

 

어떤 부처님 상은 요염한 느낌을 준다.

 

소원바위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몹시도 세속적인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산왕전

 

 

산책로

 

계단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올라가다 보니 그냥 오산 등반길이었다. 다시 내려옴.

 

 

구석구석 샅샅이 훑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날 위해, ㄴㄹ가 아픈 허리를 붙잡고 함께 돌아주었다. 고마워, 칭구!

 

잘 보고 내려오니 기사님이 말한 그 시각이었다. 기사님 내공이 보통이 아니심.

이번에 올라오신 기사님은 다른 기사님.

시내로 나간다는 말에 버스 정류장에서 세워주시며, 10분 후에 올 예정이고, 손을 들어야 버스가 선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런데!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게 문제가 발생했다. 급신호!

 

13일에 대장 내시경을 마친 이래, 18일인 이날, 5일간 큰볼일을 못 봤다;;;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 최고 기록은 보름이다. *쿨럭*

아마도 조금 전, 수제 발효식품, 고추장의 위력인 것 같았다.

 

10분이 지났으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앞이 셔틀버스 정류장인데, 화장실 있을 텐데, 다녀올 것을. 그러나 갈 수 없었다. 왜?! 이 버스를 놓치면 2시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니까. 엉엉-

 

마침내 마을버스 옴. 그런데 노선이 이상함. 나는 화급히 떨어진 자리에 있던 ㄴㄹ에게 상황 보고하고 기사님에게 물어봄.

 

기사님 : 이쪽 마을 들렀다가 버스터미널 가요. 물어보면 되지, 위험하게 왜 움직여요?!

 

화내실만 함. 구불구불한 산길이니. 죄송합니다. 즈어가 급신호가 와서여. 엉엉-

으른답게 잘 참아내는데 성공.

 

마을버스가 구례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제야 우리는 '공용'의 의미를 알았다. 어디든 가고 싶으면 이 버스터미널로 오면 되는 거였다. 푸하하하하하하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내보냄. 크캬캬캬

 

5. 살구나무빵집

 

우린 하릴없이 구례 시내를 걸어서 구경하다, 카페에 가서 쉬기로 했다. 지도에 보니 양갱을 파는 카페가 보여 가보았으나 문 닫음. 지친 우리는 버스터미널 내에 있는 카페로 감.

 

 

이럴 수가! 터미널 내 카페라 맛없으리라는;;; 편견을 깨고;;;; 견과류 과자는 달지 않고 고소했으며, 커피도 끝내주고,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니 귀여웠다!

 

ㄴㄹ는 친구들 나눠준다고 몇 개 더 삼.

 

지도 꾸미기를 하고 싶은데 종이가 커야 하려나. 으음...

 

세 시간처럼 흐른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언냐 어디 갔다, 이제 와? ㅠㅠ

 

나도 보고 싶었어.(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