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오래된 다이어리를 이고지고 다닌 나 자신, 놀랍다. ...
이보다 더 오래된 다이어리도 있는 건 안 비밀. .....
시간 날 때 정리하려고 하면 아예 못할 거고, 어떻게든 틈을 내서 조금씩 정리/작별하며 살아보려 한다.
2. 술.
월간 스케줄러에 읽은 책, 친구 만난 기록 등등이 있다.
......뭔 술 약속이 일케 많았냐. ㅠ
24년 전, 한창 나이에, 나는 술 마시고 놀며 인생을 허비했다.
친구들 만나며 즐기는 시간도 필요하지.
놀기만 했다는 게 문제지.
저때 나는 막연한 꿈만 꿨다.
언젠가 **이 될 거야.
노력은 지극히 미약했다.
애초에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내가 바라는 건 다 이룰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저때 꾸던 꿈을 이뤘다. 꿈꾸던 직업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저때 더 노력했다면, 성실했다면, 지금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술마시며 보낸 내 이십 대의 어느 날, 아프다.
3. PC통신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이들의 이름이 나왔다.
2000년이면 PC 통신은 끝났으나 그때 맺은 인연 중 몇몇 과는 계속 함께했다.
그중 다시 보고 싶지만, 연락이 두절된 친구가 있다. ㄱㅇㅇ, 잘 살고 있나?
페이스북을 하게 되며 PC 통신 시절 친구들과 다시 연이 닿았는데 이 친구는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ㄱㅈㅇ 언니. 나보다 두 살 많았다. 가깝게 지내진 않았지만 막연하게 좋아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몹시 드물던 채식주의자였다.
가까운 사람들 중 제일 먼저 결혼하기도 했다.
어느 날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마음에 나가며 몇 번 만났다.
언니는 날 쇼핑 친구 삼았다. 고기도 먹더라.
나는 쇼핑에 흥미가 없어서 몇 번 보다 내 쪽에서 시간이 안 된다고 했고 그 뒤 연락 없이 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반갑게 받았는데, 아, 돈 빌려달라는 전화였다.
한동안 연락없던 나에게까지 연락해야 할 만큼 급한 사정이 있던 게 아니라,
돈을 빌리고, 못 갚고, 독촉 받고, 다른 데에서 또 빌리고, 이런 삶에 잠식된,
너무나도 능숙한 톤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직접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돈을 빌리려고 했다.
내 친구의 친구라서 몇 번 본 친구도 내게 전화해서 남편 취직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었지.
오죽 급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럴 능력도 안 되었고, 전화번호부 1번부터 건 것 같은,
역시 부탁에 단련된 톤이었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다.
한때 친구로 많이 좋아했지만, 훗날 치 떨리게 했고, 이제는 지나간 시간, 흘러가버린 강물이 된 이름도 보였다.
어느 다이어리를 보던 이런 사람들은 있겠구나, 싶다.
스티커 사진이 갓 유행할 무렵이라 나와 친구들, 나와 당시 남친;; 나 없는 친구들 스티커 사진들이 2~3면에 붙어 있었다.
연락 닿는 친구들에게, 2000년 너다! 하고 보여주니, 한 친구는 너무 괴로워함. ㅋㅋㅋ
문제의 남편 직장 구해달라던 친구의 친구도, 친구가 친구의 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줘서 붙어 있었다.
증명사진도, 다 쓰지 않으니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지라, 그 사진들도 있었다.
고딩멤버들과 생일이면 만나고, 선물도 주고받던 때였다. 서로 생일 안 챙긴지 꽤 됨.
그래도 신년회는 하기로 함.
해마다 한 번은 만나며, 의좋게 늙어가자, 칭구들아. ㅋㅋ
4. 그리고 나의 어여쁜들.
내 소중한 아이들. 내 어여쁜. 딱 8일 함께했던 나의 둘째. 8일 째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잊고 있던, 아우가 여친에게 선물;;받은 롭이어 토끼.
토끼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아우는 토끼에 흥미를 잃었고, 내가 보살피게 되었던 아이.
어느 날 갑자기, 아파 보여서 병원에 데려갔고, 그대로 별이 되었다.
그 아이가 떠난 날짜.
그리고 첫째, 두 번째 둘째가 우리 집에 왔던 날의 기록.
아, 내가 중간에 뭔가 착각해서, 아이들이 열다섯 살에 떠난 줄 알았는데, 열일곱 살이었구나.
평균 수명이 15년에서 20년이라지. 딱 15년 채워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열일곱 살이었어.
그 사실이 준 마음 아픈 위안...
작별하기 전에, 이 악필을 눈 크게 떠가며 읽기 잘했다고.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어서, 너희가 우리집에 온 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
아이들 관련한 부분은 오려서 다꾸 노트에 붙였다.
5. 몇 부분만 간직하고 버렸다.
여기 그때 쓰던 다이어리용 스티커가 있는데, 그건 쓰기로 했다;; 징하다 나. ...
스티커 사진도 다꾸 노트에 붙였다.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은 떼어버릴까 하다가,
잘 떼어지지도 않고
사진 좀 가지고 있다고 세상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하고 간직하기로.
다행히 다시는 마주치지 않길 바라는 사람은 스티커 사진이 없다.
6. 먼 훗날
다이어리 꾸미기 노트도 정리하겠지.
거기서 또 중요한 기억만 남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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