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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덕수궁 야간 개장] 소박하게 아름다운 곳

by 운가연 2023. 5. 20.

1. 오늘 목표량을 일찍 마쳤다.

 

아마 작년부터 스케줄러에 덕수궁 야간 개장을 보러 가리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상시 오픈인데다 하루치 작업을 마치고 외출한다는 명제로 인해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때가 왔다. 가는 거다!

 

덕수궁은 월요일 휴일. 상시 9시까지 연다. 8시에 입장 마감. 입장료는 성인 천 원.

매표소에 한 달이나 1년 이용권 가격도 나와 있다.

근방에 살거나 직장이 있어서 한 달이나 1년 이용권을 끊고 자주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2. 원피스를 입고 통굽 샌들을 신었다.

 

코로나 이후 소소한 변화 중 하나가 신발장이 한적해졌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회의 등에 나갈 때는 원피스와 구두/샌들로 차려입는 편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피스가 뒤집어 입으면 그만인데 신경 쓴 차림으로 보인다는 거.

그리고 나는 높은 굽을 좋아하지. *^^*

원피스 입는 핑계로 하이힐 신어주는 거. ^^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미팅이 사라졌다.

청바지에 운동화가 편해지며 높은 굽이 부담스러워졌다.

..... 하이힐 신고도 뛰던 나 어디 갔니. ..........

 

그래서 미팅 때도 청바지 입고 가기 시작했다.;

내가 만나는 관계자 분들도 캐주얼한 차림이기에 실례는 아니다.

삭거나 생채기가 생긴 신발은 버렸지만 새로 사지는 않다 보니 신발장이 넉넉해졌다.

논알콜 박스로 사다 마실 무렵에는 논알콜 저장소이기도 했다. ...;;;

 

얼마 전 봄/여름 옷을 꺼내며, 몇 년 간 입지 않은 원피스가 많다는 걸 새삼 인지했다.

좋아, 입어주자.

김에 통굽힐도 신자!

통굽이면 한두 시간 걷는 거 일도 아니었어. ... 한때는. ㅋ

 

3. 덕수궁 도착

 

반가운 입구

길을 보자 덕수궁에 왔었다는 게 새삼스레 기억났다. 오래 전 몇 번인가 왔었다.

7시 반에 도착했고, 일몰 예정 시간은 7시 45분이었던 터라 아직 환했다.

 

덕수궁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소박하고 예쁜 곳이다.

고종이 정비하며 서양식 양식이 덧대어져 그리스 풍의 건물과 기와가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함께 있다.

느리게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중화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정관헌

어둠살이 깔리며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경복궁 야간 개장의 조명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예뻤다.

 

멀리서 본 정관헌

 

두어 번 정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양은 대체로 배경과 함께, 인물이 작게 찍어야 하고, 서양은 얼굴 클로즈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양은 관계를 중시하는 정서로 인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고, 서양은 개인주의적이라 찍어야 하는 사람 위주로 찍는다나 뭐라나.

잘 찍어줘야 하기 때문에 구도를 잡아달라고 하고 그대로 찍음. ^^

 

그나저나 모처럼 원피스에 힐 신고 갔는데 나도 한 장 찍어달라고 할 걸...

 

작은 곳이다 보니 갓에 도포차림의 남자분과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분이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몇 번인가 눈에 잡혔다.

나이가 지긋한 남녀였다. 부케를 들고 있는 사진도 찍는 걸로 보아 재혼일 수도, 은혼식이나 금혼식일 수도 있다.

 

따스한 장면이었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기에 더 그렇다.

'라떼' 부모님은 금술이 좋은 경우가 드물었다. 부모님의 주선으로 몇 번 만난 뒤 딱히 싫지만 않으면 결혼하는 부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연애 결혼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니까.

..... 진짜다. *조그맣게*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본 적 있나요?"

영화 제목은 도저히 기억이 안나는데 정말이지 강렬한 대사였다.

결국 저 부부도 불행해졌었다.

 

요즘 부부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당시 내 부모님 또래가 된 여러 지인들이 여전히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인다.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의 차이이기도, 부부의 문화가 달라졌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본 건 단면에 불과하지만, 나이 들어도 행복해 보이는 부부는 사람의 심금을 흔든다.

큰 건물은 즉조당, 멀리 보이는 건물은 준명당
즉조당 정면인 듯
현대 미술관 앞에 있던 근사한 나무. 고양이는 수첩에 인쇄되어 있던 거. 위치가 절모하다.

챙겨온 수첩과 펜이 수줍지 않게, 미술관 계단에 앉아 한 점 그렸다.

발이 좀 아팠지만, 아직 통굽이면 두 시간 걷는 건 가뿐하다는 걸 확인하고 기뻤다. 크크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와서 완연한 어둠 속에서 다시 보고 싶다.(23.05.19)

 

다꾸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