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혹은 고등학교 때도 방학이면 새벽까지 놀고는 했다. 아마도 시작은 pc 통신이었던 것 같다. 새벽까지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
대학에 들어가 강의를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되자 오전 강의는 다 피하고 오후 강의로 몰아듣기 시작.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완전히 몸에 배게 된다. 오후 강의도 아슬아슬하게 일어나 밥을 못 먹고 가다보니 오후 5시가 첫 식사가 되고는 했다.
그러다보니 오전에 밥 먹으면 소화가 안 되었다. 지금도 일어나서 최소한 1시간은 지나서야 밥을 먹는다.
누워서 잠들 때까지 2시간 뒤척이기는 기본. 그게 싫어서 누우면 최대 30분 안에 잠들 수 있게, 다른 말로 기절할 때까지 버티고, 점점 더 늦은 새벽에 자고, 새벽에 잤으니 늦잠 자고, 늦잠 잤으니 밤에 잠 안 오고, 악순환이 되어 버렸달까.
꽤 오래 전부터 오전 기상이 간절해졌다. 어쩌다 오전에 일어나면 확실히 그날 하루 많은 일을 하더라고. 그게 통 안 되었는데....
작년 가을 ㄴㄹ, ㅈㅁ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근 20년 넘게 굳었던 생활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11시면 졸려. 7시에 막 일어나. 늦게 자도 새벽 1시.
오전 기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둥*
처음에는 긴가 민가 했다. 잠깐 이러다 마는 거 아냐? 했는데, 웬걸? 현재(2017년 5월 1일) 기준으로도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4월에 정신없이 일 하느, 몇 번 늦게 자고, 정오 전에 일어나는, 아슬아슬한 오전 기상이 몇 번 없던 건 아니지만, 괜히 잠들기 싫어 버틴 게 아니라 진짜 일하다 보니 그랬던 거고.
.... 라지만 새벽 2시까지 쓰고 2시간은 논 거;;;;
.... 사람이 아예 안 놀 수는 없다. 아하하
그래도 밤 11시부터 새벽 4~5시까지 노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 시간에 착상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냥 잠을 자러 가지 못하고 때우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진작 이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쯧-
2024년 기준으로는 도로아미타불 됨. ...
그래도 매일 해야 할 작업은 해내고 있다. ...;;
오전 기상은 통영 여행 때도 무사히 작동했다. 하루에 최소 만 걸음, 많이 걸은 날은 2만 5천 걸음 이상도 걸었는데 시계를 맞추지 않아도 7~8시면 눈이 떠졌다. 심지어 숙면을 취해 일어나면 몸이 가뿐했다. 우왕 ^^
17년 4월 1일 토요일, 통영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도 자정 넘어 잠들어 8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낙서를 하며 놀았다. ㄴㄹ는 아직 자고 있었다.
2시간 반 정도 낙서를 하다 보니 나가고 싶어졌다. 아, 차라리 눈 뜨자마자 나갈 걸. 지금 나가면 ㄴㄹ 일어났을 때 내가 없으려나, 고뇌하며 지도를 보니 통영 시립 박물관이 코앞에 있었다. 그럼 ㄴㄹ 깨서 연락하면 바로 돌아올 수 있겠네. 출동!
1. 통영 시립 박물관
나는 어디서나 길을 잃을 수 있다! 지도를 제대로 못 보고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섬. 아하하하하하하
이때는 아이폰 4S를 쓸 때였다. 슬슬 벽돌이 되어가 갈아탈까 고민할 때였고, 이 다음 해인 18년에 아이폰 8+로 바꿈.
통영 시립박물관에서는 얻은 게 많았다. 앞에 썼다시피 가기 전에 통영에 대한 공부를 하나도 못하고 왔다. 박물관에 온 덕에 통영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통영에서 출토된 유물 등등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소가야였다가 7세기에 신라에 편입되었다고 추정한다고 했다.
1955년부터 이순신의 시호를 따라 충무로 불리다가 1995년 충무시 일원과 통영권 일원이 통영시로 통합되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정말이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임진왜란 당시 그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했는데도 모함으로 백의종군 - 일반 사병으로 군에 있는 것 - 을 두 번이나 했고, 백의종군을 하는 와중에 새로 신설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삼도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말한다. 전에는 이 세 곳을 한 사람/직책이 통솔한 적이 없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임명하며 생긴 것.
어릴 때 위인전에서 본 막연한 기억이라 확실하지 않고, 잠깐 해 본 검색으로는 잘 찾아지지 않는데... 그때 내 기억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과정은 이랬다.
백의종군을 하는데, 원균이 대패하며 결국 이순신 밖에 없다는 생각에 선조가 직책을 내렸다. 이순신은 어명을 받고 부임지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가는 도중이었는지 다시 어명이 와 한 직급 더 높은 직책에 앉으라고 한다. 그래서 또 거기로 가려고 준비하는데 또 어명이 와서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지위를 신설했으니 가라고 했다.
일병으로 있는데 별 하나짜리 장군이 되라는 말을 듣고, 가려는데 3개 짜리로 승진이 되고, 그래서 가려는데 5개 짜리로 승진한... 그런 느낌?;;
근데 이건 어릴 때 기억이라 확인해야 한다.
아무튼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영이 신설된 곳이 바로 통영이었고, 통영이라는 이름은 삼도수군통제사영을 줄여 부르던 것으로 통제사영 또는 통제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영은 한때 한때 공예명품 산지였다고. 1604년 선도 37년에 통제영이 두령포 현 통제시 문화동으로 옮겨진 후 그 안에 군사용 군수품과 임금, 고위 관리에게 바치는 진상품을 제작하는 공방이 밀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솜씨 좋은 장인이 모여들어 우수한 생활용품을 만들며 통영 공예 문화의 꽃을 피웠다.
1895년 고종 32년에 통제영이 없어진다. 그때까지 12공방 체제를 갖추어 부채.장석.그림.가죽.철물.고리짝.목가구.금은제품.나전칠기 용품 등 생활용품을 제작했다.
총 2층으로 작은 곳이지만 고대 유물이 있는 일반 전, 민속실, 역사문화실 등으로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언젠가 작업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적으며 구경했다.
2.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남은 잡채로 간단하게 아점을 때리고 출동했다. 오늘 목표는 한산도였다. 12시 45분에 숙소에서 나와서야 배 시간을 확인했는데, 으아아아악? 1시부터 1시간 단위다. 지금 못 가면 시간이 애매해진다! 지도 상으로는 600미터라고 한다.
우린 달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배를 탈 수 있었다. 헉헉...
ㄴㄹ와 진짜 숙소 잘 잡았다고 했다. 첫날 묵은 숙소보다는 작고, 베란다가 없고, 바다 전망은 아니지만 싸고(!) 무엇보다 위치가 너무너무 좋았다!
동피랑, 서피랑, 중앙시장, 남망산 조각공원, 한산도 행 항구 등등 어지간한 건 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숙소에서 바다 보이면 좋지만, 사실 숙소에서 바다 보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냥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면 기분이 넘나 좋은 거지. ^^
배를 탔다. 갈매기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은 새우깡을 던졌다. 근데 새우깡 아닌 건 안 먹더라. 입에 물었다가 뱉는 모습도 봤다;;
엄마와 둘이 온 어린 여자아이가 자기도 주고 싶은지 애가 타는 얼굴을 했다. 안타깝게도 배 안에서는 새우깡을 팔지 않았다.
나도 주고 싶었다. 오는 길에는 주기로 했다.
바다가 좋은가, 산이 좋은가. 바다를 보면 바다가 좋고, 산에 오르면 산이 좋다. 날은 흐렸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게 어디인가. 날씨도 우리를 도왔다. ^^
한산도를 일주하기는 시간이 좀 애매했고, 1킬로미터 거리인 제승당에 가기로 했다. 이순신의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한산도에 진을 친 이후 늘 이 집에 기거했고, 집무실이기도 했다고.
한산도는 걷기 너무 좋은 곳이었다. 오른쪽에는 바다, 왼쪽에는 산.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 꿀벌들이 날아다닌다. 짙은 녹색잎들 사이로 선홍색 동백이 드물게 피어 있다. 동백은 꽃잎이 벌어질 정도로 활짝 피지 않는다. 다 피었을 때가 반쯤 핀 느낌이다. 그래서 동백을 수줍어한다고 하는 걸까.
귀로는 바다 소리를 듣고, 코로는 소나무 향을 맡고, 눈으로는 바다와 나무, 꽃들을 보고, 발은 걷기 기분 좋은 땅을 디딘다. 오감이 호강한다.
가다 보니 휴게소가 나왔다. 나는 잡채를 먹었지만 ㄴㄹ는 빈속. 컵라면과 커피, 새우깡, 밀크티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휴게소에서는 막걸리, 파전도 팔았고, 벽에는 당시 수군들이 신호를 위해 쓰던 방패를 걸어 두었다. 이런 모양은 후퇴하라는 신호, 저런 모양은 전진하라는 신호였다. 사진을 안 찍은 게 아쉽네.
컵라면이 익었다.
ㄴㄹ : 맛 볼래?
나 : 음....... 너 아점 안 먹어서 뺏어먹기 좀 그러니 국물만 한 모금 마실게.
마시고 내려놓기 무섭게...
나 : 면도 한 젓가락만.
그리고 진짜 한 젓가락을 먹었다.
ㄴㄹ : (빵 터지며) 너 또 1초 만에 말 바꿈! ㅋㅋㅋㅋㅋㅋ
나는 첫날에도 1초 만에 말을 바꾸어 ㄴㄹ를 빵 터지게 했었다. 썼다시피 첫날 숙소에 물이 없었다. 보통 냉장고에 생수병이 있는지라 우린 물은 사가지 않았다. 일단 거대 야쿠르트를 꺼내 반쯤 마시고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부족했다. 물이 필요했다. 나는 내일을 위해 남겨둔 야쿠르트를 마시기로 했다.
나 : 안 남겨. 다 마실 거야.
ㄴㄹ : 그래, 그래, 다 마셔버려. 내일 또 사면 되지.
나 :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냉장고에 넣으며) 엑, 질린다.
ㄴㄹ : 야! 너 다 마신다고 한 지 1초도 안 지났어!
ㄴㄹ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컵라면을 반쯤 먹었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금방 그치려니 했는데 폭우가 된다 싶더니 가게에 앉았던 손님 중 한 명이 외쳤다.
손님 : 우박이다!
나는 놀라 뛰어가서 구경했다. 진짜 굵은 소금 같은 우박들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라면 먹던 ㄴㄹ도 사진기를 가져왔다. 나도 그제야 정신을 차려 사진기-휴대전화를 들고 와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 우박이라니, 우박이라니! 초등학교 때인가 본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한 30년 전인가? 우와- 우박이 떨어진다!
ㄴㄹ : 우리 진짜 운 좋았다. 1시 배를 못 탔으면 이 빗속에 한산도 올 엄두 못 냈을 거고, 조금만 일찍 왔으면 휴게소에 오기 전에 저 비를 맞았을 테고, 더 늦었으면 제승당 가는 길에 맞았겠다.
나 : 그러게. 진짜 하늘이 도왔다.
우린 일단 기다려 보았다. 우박이 그치고 비도 좀 잦아들었다. 우린 휴게소에서 파는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용감하게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니 좋은 점이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끊임없이 그때 그때 느낌과 풍경을 기록한다. 그런데 비가 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요즘은 생활방수 되는 폰도 있지만, 내 폰은 아직 작동해 주는 것만도 고마운 지경이니.
덕분에 잠시 기록을 멈추고 그 순간의 느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바다에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인적없는 섬을 걸었다. 그냥 모든 게 다 좋았다.
그런데 빗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두둥*
우린 마침 가까이 있던 옛날 우물터에 들어갔다. 지붕도 있었다. 다시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와, 뭐가 이리 파란만장하냐.
우린 비옷을 입고 펑퍼짐해진 서로를 찍으며 깔깔 웃었다.
사진 찍으며 놀다 보니 비가 잦아졌다. 우린 밖으로 나왔다. 멀리 새로 온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색색의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제승당에 도착할 무렵 거짓말처럼 비가 개고 햇빛이 쨍하고 비췄다.
ㄴㄹ : 30분 전까지 비가 왔다고 누가 믿을 거야;
나 : 그러게나 말이다. ㅋㅋㅋ
옛말에 섬 날씨와 노인 건강은 예측할 수 없다던데, 이날 이 말의 의미를 알았다.
제승당에는 활쏘기 연습하는 곳이 있었다. 일부러 사이에 물이 있는 곳을 건너 과녁을 두기도 했다. 육지에서 활을 쏠 때와 바다에서 쏠 때 거리감이 달라서 일부러 연습하라고 만들어 뒀다고.
천천히 제승당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갈 때는 비 때문에 몰랐는데 내려오며 보니 철쭉 혹은 진달래를 길 양쪽에 심어둔 모습이 보였다. 꽃이 피면 정말 볼만하겠다.
우린 잠시 바닷가에 비옷을 깔고 앉아 양말과 신발을 벗어 말렸다. 문득 시계를 보니 곧 3시 23분이었다.
나 : 3시 반 배 놓치면 4시 반 배 타야 함.
ㄴㄹ : .... 뛸까?
나 : 우리 어차피 올 때 4시 반 배 예약하긴 했어.
멍 때리며 신발을 말리느냐 뛰느냐. 우린 뛰었다.
그리고 나는 애먼 배로 뛰어들 뻔했지. ㅋㅋ
그런데 탑승자 명단 확인 때문에 그냥 탈 수 없다고 했다. 탈 때도 신분증을 지참해야 했다. 우리처럼 뛰어 가 표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표소 직원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배에 차를 싣는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민폐 끼칠까 마음이 불안.
다행히 표를 바꿔 온 뒤에도 아직 차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탑승객 명단을 필히 확인하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건 다 2014년 4월 16일에 있던 사고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진짜 중요한 건 노후한 배는 운행하지 않고,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 아닌가? 여전히 30년 이상 운행해 폐기해야 하는 배가 운항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린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돌아가는 배에서 새우깡을 샀는데, 갈매기가 없었다. 나도 갈매기에게 새우깡 주고 싶은데.
나는 떡밥 던지는 심정으로 새우깡을 던졌다. 잠시 후 갈매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바다다. 그리고 배는 운항하고 있다. 바람이 거세서 새우깡을 잘못 던졌다가는 바다에 빠지기 일쑤.
나는 몇 번 실패하며 조금씩 요령을 깨우쳐갔다. 갈매기들이 어디 쯤 왔을 때 던져야 정확히 입쪽으로 갈 수 있는지 파악한 것.
갈매기와 나는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갈매기들이 허공에 멈춰 나에게 눈빛을 쐈다.
갈매기 : 지금이야, 지금! 나 준비 됐어!
새우깡을 던진다. 갈매기가 정확히 물고 날아간다. 다른 갈매기가 그 자리에 온다.
갈매기 : 나도, 나도 준비 됐어!
그 강렬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ㄴㄹ가 갈매기와 내가 교감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려다 역광이라 못 찍었다고.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증인^^은 있고, 그 순간의 느낌, 갈매기의 표정이 생생하다. 반복하다 보니, 이 자리가 명당이다 싶었는지 바로 그 위치에서 대기하는 갈매기를, 다른 갈매기가 위에서 발로 차는 일까지 발생.;;;
한산도에서 통영항까지는 20분 남짓이었다. 육지가 다가오자 갈매기들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새우깡을 던졌다. 그리고 새우깡 다 떨어짐.
갈매기들은 다른 사람들이 던지는 새우깡을 노리려 사라졌다. 나는 아드레날린이 분출해 갈매기들 사진을 정신없이 찍었다.
그러다 주위를 보니, 갈 때도 같이 탔던 모녀가 타 있었다. 이번에는 새우깡을 사서 여자아이도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졌다. 갈매기들은 곧잘 받아먹았다. 여자애는 신났지만, 갈매기가 너무 가까이 오면 무서워서 까르르 웃으며 도망치기도 했다.
우린 통영에서 내렸다. 비, 우박, 화창한 날씨. 파란만장한 2시간이었다.
일단 젖은 신발을 말리고 양말을 갈아 신으러 숙소로 돌아갔다.
2. 숙소에서
누리가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정진이 나왔다. 헐.......... 이정진, 나이 들었다. 헐, 토니 안도 나이 들었다;;;
이정진은 예전에 하버드 인 러브스토리에 출연한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그 뒤 어쩌다 보니 내가 본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아 작품을 본 기억이 많지 않은데..... 아, 하버드 인 러브스토리가 어느새 13년 전 드라마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배우들이 나이 든 모습을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가 종종 나는모르는 배우 이야기를 하며 “젊었을 때는 엄청 예뻤다.”고 할 때마다, 음냐, 네, 했는데…….
진짜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쉬고 나와 어제 문 닫아서 못 간 선물가게에 갔다. ㄴㄹ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냉장고 자석을 몇 개 골랐다. 취미로 냉장고 자석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아, 진짜 그림, 직접 만든 인테리어 소품 등을 놔둘 수 있는 작업실 갖고 싶다. 크흑-
그리고 아귀채를 사러 갔다. 나도 사고 싶어지더라고. 이번에는 아귀채를 파는 IN 서피랑 카페가 문을 닫았다. 아쉽게 돌아서려는데 눈썰미 좋은 ㄴㄹ가, 옆 가게도 카페와 연결된 곳이었다고 했다. 거긴 열었기에 아귀채를 두 개 살 수 있었다. 맥주 안주 해야지. ^^
사실 이 아귀채는 굉장히 맛있었는데.... 나는 맵고 싱겁게 먹는 편이라 결과적으로 맥주 안주로는 좋지 않았다. 여기서 알려준 대로 고추장에 마요네즈 좀 섞어 밥반찬하는 게 더 어울.... 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찬도 싱겁게 먹는다;;;
입맛에 따라 다르니, 짭짤하니 맥주랑 먹기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터. 나는 짭짤해서 맥주를 너무 빨리 마시게 되어 별로였다. 나는 한 병 가지고 한 시간 정도 느리게 마시는 걸 좋아함; 무려 맥주를 ㅋㅋ
우리 집에 500이 들어가는 텀블러가 있다. 입 부분이 뚫려 있어 음료를 가지고 다닐 건 아님. 이게 나처럼 천천히 맥주 마시는 사람에게 딱이다. 뚜껑이 있어 김이 새지 않고, 오래 마셔도 시원하다.
살 걸 사고 저녁을 때리러 갔다.
3. 통영 다찌집
다찌는 ‘다 있지’의 준말이라고도 하고, 어원은 확실하지 않은데 아무튼 통영은 ‘다찌집’이라는 게 유명하다고 했다. 식사라기보다는 술상으로 화려한 해산물에 술이 나오는 것.
한 상 거하게 먹고, 그 뒤 부터는 만 원인가에 새로운 안주거리와 소주 혹은 맥주 한 병이 나온다고 한다.
우린 이 다찌집에 가고 싶었다. ㄴㄹ가 검색한 다찌집에 갔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미안한 얼굴로 주말에는 예약 안 하면 못 먹는다고 했다.
그뒤 간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어쩌지?
그때 허리가 구부정하고 다리를 살짝 저는 할머니가 밥 집 찾느냐고 옆 골목 ‘동해식당’이 맛있다고 했다. 지나치며 본 기억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다찌를 먹으려다 일반 식당에 가면 너무 서운하잖아. 우린 골목을 뒤졌고, 마침내 5천 원 비싸긴 해도 다른 다찌집을 찾을 수 있었다.
다찌!
ㄴㄹ는 술은 마시지 않겠다고 해서 다찌 2인분에 맥주 2병, 음료 1병을 시켰다. 이어 해산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 비단가리비, 커다란 소라, 구운 생선, 조림 생선, 조개탕 등등.
진짜 배가 터지게 먹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기본은 다 끝났고, 이 뒤 부터는 만 원 추가에 맥주/소주/음료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린 너무 배가 불러 사양했다. 그런데 둘 다 뭔가 서운한 기분이었다. 이걸 기대해 ㄴㄹ는 아점을 컵라면으로 때웠고, 나는 남은 잡채를 먹었다. 물론 잡채 넘나 맛있었던 거. ^^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간 다찌집이 유명 다찌집보다 조금 약했던 건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횟집에서 나오는 ‘쓰끼다시’ 같은 느낌이었다.
24년에 이 일기를 보니 7년 전 나, 낯설다. 저렇게 푸짐하게 나왔는데 아쉽게 느껴지다니. 7년 전 나는 진짜 잘 먹었구나.
우린 편의점에 들러 아쉬운 마음을 달래 줄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돌아오기 무섭게 유명한 다찌집을 검색했다. 뭐가 다른지 알고 싶어서 ㅋㅋㅋㅋ
ㄴㄹ가 괜히 찾아보고 속만 쓰릴 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괜한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 계절마다 메뉴가 다르니, 유명한 집에 있던 게 여기 없다고 여기가 더 안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걍 우리 기대가 과했나 보다. ㅋ
잠깐 쉬고 나니 좀이 쑤셨다. ㄴㄹ는 더 쉰다고 해서 혼자 나왔다.
4. 카페 로피아노
중앙시장 쪽으로 가서서 천천히 바다를 둘러보았다. 남망산 조각공원 쪽은 어둡고, 바다 보며 멍 때릴까, 하는데 불빛이 유독 예쁜 2, 3층을 쓰는 카페가 보였다.
뭐지? 예쁘잖아. 가볼까? 나는 슬금슬금 카페로 갔다.
3층은 단체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어 2층에 자리 잡았다. 아, 이 카페 너무 좋았다.
라이브공연도 하는지 마이크가 있었고, 사장님은 백발을 어깨까지 기르고, 빨간 나비넥타이를 메고, 분홍색 스키니에 가까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박. 다른 분은 인상이 닮아 아들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긴 곱슬머리였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자몽에이드를 시키고 낙서를 했다.
옛날에 팀 버튼 전시회를 갔는데, 팀 버튼은 호텔에 갈 때마다 냅킨에 종이를 그린다고 했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몇 상자 분량이라나. 그중 일부가 전시회에 걸려 있었다.
나도 냅킨을 집어 그림을 그려 보았다. 쉽게 찢어지니 살살 그려야 하고, 세밀한 그림은 어렵다. 그래서 붓펜으로 슥슥 그렸는데 그게 또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사장님이 내가 냅킨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냅킨을 채워 주는 멋진 감각을 발휘. ^^
실컷 그림을 그리다 사장님을 모델로 한 그림을 냅킨에 그리고 슬쩍 두고 왔다. .... 수줍;;;;
숙소에서도 실컷 그림을 그렸지만, 바다가 보이고, 남다른 분위기의 카페에서 그리는 건 또 달랐다. 이래서 장소, 도구가 다 중요한 거다.
자정 무렵 숙소로 돌아와 ‘그것이 알고 싶다 - 태극기 집회’를 보고 잤다. (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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