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려 7시 반에 깼다.
날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노자인데, 2월 정도부터 오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늦게 일어나는 이유는 늦게 자기 때문이고, 늦게 자는 이유는 살짝 수면 장애가 있기 때문이지. 하루 일찍 일어나 몸이 피곤해도 제대로 자지 못해 늘 새벽에서야 잠들곤 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제주도 여행 이후 오랜 수면장애가 가신다 싶더니 올해 2월 부터 일찍 자고 오전 8~10시에 일어나는 게 가능해졌다. 쿠오-
8시경 일어나면 출근하는 당시 같은 주택 거주민으로 인해 화장실이 복잡해 9~10시, 아무리 늦어도 11시에는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더니 이날, 자정 무렵에 잠도 잘 들었고, 푹 자서 7시 반에 일어났다. 꺄-
(그러나 이건 어쩌다 있었던 일에 불과하다. 도로 올빼미 된지 오래다. + 이때가 여행 가면 오전에 눈이 번쩍 번쩍 떠지던 시작점인가 보다. 그 전에는 여행 가도 일찍 못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행 오기 전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는 확인했었다. 우린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출발했다.
ㄴㄹ는 아직 자고 있었다. 나는 리조트에서 보이는 풍경 사진을 찍고, 그림도 그렸다.
일어난 ㄴㄹ는 먼저 뉴스를 확인했다. 박ㄹ혜 구속! 꺄- 혹시나 했다. 다행이다. 심지어 비도 그쳤다. 신난다!
ㄴㄹ가 드라이를 해 주고, 눈썹도 그려 주었다. 거울 보고 깜짝 놀랐다. 미용실 언니가 예쁘게 잘라 준 머리였구나. 그건 내가 관리를 못한 거구나;;
나 : 머리가 너무 짧아. 아가씨스럽지 못해. 길러야겠다. 나 아가씨스러움에 대한 로망이 있음.
ㄴㄹ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ㄴㄹ : 네가 아가씨스러움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길게 늘려 말하자면 “썬크림도 안 바르고, 머리는 빗 대신 손가락으로 슥슥 빗고, 팩은 외출할 때 화장 받으라고나 겨우 하고, 눈썹도 제대로 그리기는커녕 예쁘게 그리는 방법에 대해 1도 고민 안 하는 네가?” 가 되겠다. ......
나름 차려입고 나가야 할 때는 하이힐도 신고, 치마도 입고, 팩도 하며 최선을 다한다긔!
방에 화장대는커녕 제대로 볼 수 있는 거울도 없고, 빗도 안 쓰고, 눈썹연필은 필기구와 같이 꽂아놓지만;;; 그래도.... 로망은 가질 수 있잖아. *조그맣게*
(이 또한 과거의 시간이다. 17년 가을 이후, 나는 다시 외출할 때 비비크림도 바르지 않는다. 빗은 구비했다. 산 건 아니고 어디서 생김. 눈썹연필은 화장실에 놔둠.)
아침은 간단히 커피로 떼웠다. 어제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와 단 캔커피를 샀는데, 아메리카노는 ㄴㄹ 입맛에 너무 탄맛이 강했고, 단 커피는 커피에 설탕 타 마시는 내게도 너무 달았다. 둘을 섞으니 딱 맞았다.
머리도 잘 됐고, 커피도 맛있고, 구속이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기분 좋게 출발! ^^
우린 룰루랄라 리조트를 나섰다. 오늘은 시내 쪽으로 숙소를 옮긴다.
10시 44분. 숙소를 나와 새로운 숙소인 충무비치 호텔에 가는 법을 검색했다. ㄴㄹ가. ^^
어제 탄 곳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101번이 왔고, 벚꽃 만개한 도로를 15분 정도 달려 서호 시장에서 멈췄다. 여기서는 통영의 유명 관광지를 대부분 걸어서 갈 수 있다.
숙소로 들어가는 유리문을 열자 동전을 넣고 걸 수 있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너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충무비치호텔 사장님은 친절했다. 나중에 ㄴㄹ가 말했는데 통영 남자어른들은 느낌이 사근사근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있었다.
3시 입실이기에 짐을 맡기고 나왔다. 네이버 지도만 있다면 국내 여행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 6년 된 3G 폰을 쓰는 인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수도 있음. ... (이때 쓰던 폰은 아이폰 4S로 8년을 쓰고 더는 필요한 앱을 깔 수가 없어서 몇 년 전 8+로 갈아탔다.)
가는 길도 즐거웠다. 통영중앙시장과 통영활어시장을 지나 걷다 보니 ‘시민탕’ 굴뚝이 우뚝 솟아 있었다. 서울은 찜질방으로 바뀌고 목욕탕이 없어진 지 꽤 되지 않았나? 아직 있는 곳들이 있으려나? 그런데 통영에 오니 목욕탕이 보이는고나.
바다에는 모형 거북선들이 떠 있었다. 안을 볼 수 있는 모양인데 안까지 보지는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동피랑이 나왔다.
2. 동피랑
동피랑은 통영 여행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이다. 흔히 벽화로 유명하다지만 동피랑의 진짜 볼거리는 탁 트인 전망이라는 게 나와 ㄴㄹ 생각이다. 입구에서 ㄴㄹ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ㄴㄹ : 여기 진짜 잘 그린 벽화 있었는데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네.
나 : 오래 되면 새로 그리나 보다.
ㄴㄹ는 몹시 섭섭워했는데, 나오며 보니 그 벽화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린 둘 다 배를 잡고 웃었다. 칭구여, 우리 비타민 B군을 먹자.
조금만 올라가도 바다가 보였다. 바다와 바다를 감싼 야트막한 건물들, 배……. 지난 주 ㄴㄹ와 부암동 길을 걸으며, 다음 주에는 바다를 보겠지, 했는데, 그 다음 주가 온 것이다! ... 그리고 꿈처럼 지났지;;;
앞에서 오던 사람이 우리에게 막다른 길이라고 알려 주었다. 어떠랴. 우린 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이 내려다보였다. 이래서 동피랑, 동피랑, 하는구나. 이렇게 좋을 수가!
‘빠담빠담’이라는 드라마를 찍은 촬영지도 있었다. 모르던 드라마지만 관광객답게(?) 사진을 찍었다.
동피랑은 아담한 곳이었다. 우린 정상에 있는 동포루까지 올랐다. 여행은 휴식이다. 이런 행복한 휴식,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필요하다. 이탈리아는 유급 휴가가 몇 주씩 된다고 한다. 부럽다.
저녁 무렵에 여기 왔으면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커피를 마셔도 좋았을 텐데……. 슬슬 배가 고팠다. 점심을 때려야 했다. ㄴㄹ가 열 검색을 시작했다. 서호 손짜장이라는 곳이 엄청 맛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맛집을 소개한 사람도 지나가다 들어갔는데 대박이라고 했다고. 뭔가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 가는 거다!
가려다 잠시 동선을 점검했다. 나는 ‘이순신 공원’에 가고 싶은데 서호 손짜장은 반대편이었다. 이대로 짜장면을 먹으러 가면 이번 여행에서 이순신 공원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ㄴㄹ : 간단한 걸로 출출함만 달래고, 이순신 공원 갔다가 점심 먹을까?
나 : 그러자!
그러나 뭔가 어쩐지 딱 이거다, 하고 땡기는 게 없었다. 배가 그렇게 막 고프지도 않았다. 네이버 지도님께서 말씀하시길 동피랑에서 이순신 공원까지는 1.59킬로미터라고 했다. 그쯤이야 걷지. 우린 걸었다.
가다보니 베트남 사람이 하는 쌀국수집으로 추정되는 곳이 보였다. 간판에 베트남 글자로 추정;되는 글자가 있었기 때문. 이쪽으로 와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맛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우린 이미 서호 짜장면을 먹기로 마음을 정한 터.
걷는데 ㄴㄹ가 말했다. “멸치수협?”
주민센터처럼 생긴 건물에 “멸치수협”이라고 쓰여 있었다. 헤에, 멸치수협이라는 게 따로 있어? 그 밑에는 “멸치권현망수산업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나중에 이게 뭔지 찾아봤다. 원래 이름은 “기선권현망수협”이었다. 기선은 기관을 갖춘 동력선을 활용하여 멸치를 잡는다는 뜻이고, 권현은 일제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만선과 풍어를 상징하는 일본 바다 수호신인 ‘권현신’의 권현이고, 망은 그물을 뜻한다고. 그런데 아무래도 이름이 어려워 작년에 “멸치권현망수산업협동조합”으로 바꾼 듯했다. 줄여서 멸치수협인가보다. 말 그대로 멸치 관련한 협동조합 이름인 듯.
여기를 지나자 오른쪽은 배가 묶여 있는 바다였다. 가는 길은 시끄러웠다. 오른쪽에 배나 배에 들어가는 부품을 수리하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던 탓이었다. 간판에는 제관, 배관, 용접 따위가 쓰여 있었고 금속을 자르는 소리와 매캐한 금속 냄새가 났다. 딱히 인도라 할 것도 없어서 사람과 차가 눈치껏 피해 다닌달까. 그런데 간판에 “얀마 **”이 보였다.
우린 누가 뭐랄 것 없이 “헉, 가게 이름이 얀마야?” 했다. 설마 야임마의 얀마는 아닐 테고……. 나중에 영문으로 yanmar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보았다. 배에 들어가는 부품 상표가 아닐까 추정. 이 외에도 지금은 쓰지 않는 옛날 외국어 표기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디젤을 듸젤이라고 쓴다거나. 오래된 가게들이 그만큼 많은 게 아닌가 싶다. 간판 구경을 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이순신 공원에 도착했다. 대략 12시 14분. 우린 아직 아침도 먹지 못했다.
공원 앞에 작은 트럭들이 서 있었다. 오, 가벼운 간식을 때리고 들어가 공원을 볼 수 있는가,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이제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핫도그는 다음 생에 먹는 걸로. ㅋㅋ
우린 공원을 향했다. 가는 길에 지그재그로 커다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계절이 일러서 잎이 없어 무슨 나무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커다란 나무들이 곧고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은행나무가 아니었나 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을 때려 보니 은행나무는 아니었다. 가을에 간 사람들이 그 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잎들이 붉었다. 단풍나무도 아닌 듯하고.
운치 있는 길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뒷모습 사진을 많이 찍더라. ㄴㄹ가 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는 하던 대로 좀 이상한 자세를 잡았는데 ㄴㄹ의 요구는 명확했다.
ㄴㄹ : 다리 모으고, 웃어.
좀 어색했지만 다리도 모으고 어쩐지 이러고 사진 찍는다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ㄴㄹ가 사진을 보여줬는데 잘 나왔더라. 오오- 피사체를 넘어서는 찍사의 능력을 찬양하라!
가로수 길은 150미터 정도 되고 가파르다는데, 그때는 전혀 힘들지도 않았고, 가파르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소란스러운 거리를 걷다가 나온 한적한 길이 좋아서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한 듯.
3. 이순신 공원
길을 지나고 마침내 이순신 공원이 나왔다. 탁 트인 바다, 야자수! 통영 2회차인 ㄴㄹ도 이순신 공원은 처음이었다. 우린 둘 다 흥에 올랐다. 공원은 진짜, 진짜, 진짜 너무 좋았다. 앞으로는 맑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고, 뒤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어 희고 분홍색 벚나무, 큼직하고 흰 목련, 복스러운 노란 개나리들이 탐스럽게 피었으며 소나무들도 늠름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래서 옛날 선비들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놀러다녔구나. 이리 좋을 수가.
ㄴㄹ가 바다를 보더니 말했다. “비단가리비 부표다!” 오, 눈도 좋아. ^^
공원은 꽤 넓었다. 우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갑자기 ㄴㄹ가 깔깔 웃었다.
ㄴㄹ : 앞에서 바닷바람이 계속 불잖아. 그래서 나무들이 뒤로 쓸려서 (허리를 뒤로 젖히며) 읍! 하고 몸에 힘을 꽉 주고 있는 것 같아.
나 : 정말 그러네.
ㄴㄹ는 좋은 여행 동무다. 보는 눈이 있달까.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말해 준다. 그러면 나도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ㄴㄹ 덕에 나무들을 보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읍! 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나 : 소나무는 그냥 자기 멋대로 자라. 전혀 읍! 하고 있는 느낌이 없어. 그래서 옛날 선비들이 소나무를 지조와 절개의 나무로 생각했나 봐. 겨울에도 잎이 푸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삼 바람이 불든 말든 자기 자라고픈 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짜 굳건한 기운이 느껴졌다.
공원은 꽤 컸다. 어떤 곳은 길을 닦아 두었고, 어떤 곳은 나무 계단을 만들었고, 또 어떤 곳은 그냥 숲길이었다. 좋은 풍경 속에서 걸으니 이런 저런 일들로 힘들었던 마음이 모두 가시는 기분이었다. 돌아가면 진짜 열심히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여행기를 쓰는 17년 4월 12일 기준으로 정말로 미친 듯이 달렸고, 달리고 있다.
걷다 보니 나무로 만든 해먹이 있다. 한 번 누워 보았다. 이럴 수가! 다른 세상이다. 이렇게 편할 수가. 눕기 전에는 해먹이 이렇게 편한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풍경이 너무 좋아 생각하지 못했을 뿐 아침에 나와 내내 걸어 조금 피곤했다는 걸 알았다.
ㄴㄹ도 눕더니 진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늘이 맑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게 어디냐. 날씨가 우릴 도왔다.
우린 높은 곳에 있는 정자를 향해 걸었다. 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벚꽃 아래 의자에 앉은 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둘이 보였는데, 그 자체로 그림이고 영화 포스터였다. 거기에도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거기 누워 잠시 여유를 만끽했다.
물론 집에서도 디비 누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디비 누워 있으면 죄책감이 몰아친다. 작업 해야 하는데, 그림 그려야 하는데,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가. 여행은 게으르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게으름 자체가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게으름을 부릴 때에는 죄책감이 아닌 행복이 차오른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떠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기에, 게으른 나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즐기면 된다는 거.
장소도 중요하다. 늘 있는, 노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공존하는 내 방이 아니라 산 좋고, 물 좋고, 꽃 좋은 곳에 누워 있으면 그 자체가 바로 충전이다.
우리는 가장 위에 있는 학익정에 올랐다. 풍경에 견주어 사진들이 영 별로다. 흥분해서 마구 찍어댈 뿐 구도라는 걸 너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이 찍었는데 ㄴㄹ 사진이 훨씬 예뻤다. 다음에는 나도 생각 좀 하고 잘 찍어야지.
내려오다 보니 건물이 하나 보였다. 뭔가 했더니 ‘통영예능전수관’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이정표에서 ‘이순신 공원’ 밑에 ‘통영예능전수관’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본 기억이 났다.
우린 마지막으로 이순신 동상 아래에 썼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ㄴㄹ가 말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죽으려고 갑옷을 벗었고, 죽었잖아.”
내가 말했다. “영원히 살았지.”
군사정권 시절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 우상화를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은 역사에서도 드문 인물이다. 문무를 겸비했으며, 청렴결백했고,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그걸 군사정권에서 찍소리 않고 그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한 인물의 표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장군이었으니 은근슬쩍 스스로와 동일시하기도 좋았겠지. 그랬다한들 이순신 장군이 실제 역사에서 행한 일, 인품들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우린 공원을 나왔다. 이날 ㄴㄹ는 자신은 충분히 봤다고 생각하면서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어하는 나를 위해 더 걸어주었다. 고맙다.
4. 서호 손짜장
나 : 우리 진짜 어디 하나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잘 보고 간다.
ㄴㄹ : 우리가 놓친 건 밥때지.
우린 명랑하게 웃었다. 진짜 밥을 먹으러 갈 때였다. 동피랑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오기는 먼 거리였다. 올 때는 이순신 공원을 본다는 기대라도 있었다만 잊었던 피로가 몰리는 게 가는 길은 더 멀겠지, 했는데, 얼라?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멸치수협이 나타났다.
ㄴㄹ : 우리 축지법이라도 썼나?
나 : 그러게.
정말이지 기분 좋게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버스를 탈까 했다. 내가 어차피 몇 정 거장 안 되면 택시를 타도 좋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우린 결국 걷기로 했다. 뭐지?;;;
ㄴㄹ가 가면서 말했다. 얼추 반 왔어.
나 : 무슨 소리야! 반은 아니지! 1/3 온 거지.
거리상 1/3이 맞았다.
ㄴㄹ : 1/3이나 반이나.
나 : 어머나? 그 둘이 어떻게 같아?
ㄴㄹ : (결연하게) 의심은 곧 배신이다!
나 : 그건 또 뭔 소리야!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아까 걸어 온 거리가 나타났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몇 걸음에 하나씩 통영꿀빵을 팔았다. 하나쯤 먹고 싶었다. 시식용으로 내놓은 거라도 먹어볼까 했는데 사지도 않고 그냥 먹고만 가기는 좀 그럴 것 같았다. 결국 통영 여행 끝날 때까지 꿀빵은 먹지 못했다. 먹어 본 ㄴㄹ 맛이 아주 단 빵이라고 했다. 대단히 특별한 맛이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아까 걸었던 길이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내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옆 골목으로 바다가 보인다. 통영은 시내와 바다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우린 서호 손짜장에 도착했다.
ㄴㄹ : 걸었으니 버스 정복.
나 : 뭔 소랴?
ㄴㄹ : 아무 말 대잔치. ㅋㅋ
나 : ㅋㅋㅋ
우린 해물짜장면과 매콤한 해물짬뽕을 시켰다. 짜장면은 간짜장 처럼 면과 소스가 따로 나왔다. 짜장면이 먼저 나와 사진을 찍는데 짬뽕이 나왔다. 짬뽕을 가져다 준 분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찍어요.”
이 분 만이 아니라 통영 분들은 다 친절했다. 그 친절함이 상업적이고 직업적인 친절함이 아니라 좀 더 소박하고 따뜻한, 진심어린 친절이다. 그래서 통영에 있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짜장면, 짬뽕 둘 다 맛있었다. 짬뽕은 매운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달리 맵지 않았기에, 매운 맛을 먹자고 한 ㄴㄹ를 찬양한다! 보통 짬뽕이면 살짝 담백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ㄴㄹ는 음식을 고르는 데는 탁월한 촉이 있다. 짜장면도 매운 맛 먹자고 했었는데, 내가 매운 맛, 보통을 하나씩 먹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 것. 그런데 짬뽕을 먹어보니 짜장면도 매운 맛 시켰더라도 부담 없었겠더라.
배를 뚜드리며 만보기 게임 워커를 확인했다.
나 : 헐, 나 400 걸음도 안 걸었대.
ㄴㄹ : 엥? 우리 만 보는 넘게 걸었는데?
나 : 이상해, 정말 이상해! 지난주에 부암동 걸었을 때도 그랬어. 처음에는 이 옷 때문인가 했지만, 어제 혼자 산책했을 때는 제대로 걸음 수 셌거든. 원인은 하나다!
ㄴㄹ : 뭔데?
나 : 너다! 너랑 걸을 때만 안 돼!
ㄴㄹ : 음하하하하하하 네 폰이 내 기에 눌리는군.
나 : 분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통영 여행 내내 내 워커는 작동하지 않았다. 2만 보 넘게 걸은 날도 8인가 나왔을 정도. 크흑-
24년, 가게를 검색해 봤는데 서호 짬뽕이라는 상호가 뜬다. 예전에는 손짜장으로 유명했다는 곳인가 보니 여기 맞나보다. 7년 전에 갔던 가게들이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이 동네는 1년 사이에도 마구 바뀌어서 말이지.
5. 서피랑
우린 배를 두들기며 나와 서피랑으로 향했다. 서피랑은 서호 손짜장(서호짬뽕)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99계단을 올라 조금 더 가니 서포루가 나왔다. 서피랑은 동피랑보다 작고, 찾는 이도 많지 않다고 했다.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는데 역시 여행 온 듯한 분이 우리에게 여기는 벽화 마을이 어디 있는지 묻기에 우리도 처음이라고 답했다. ㄴㄹ도 서피랑이 처음이었다. 그 분은 여기는 벽화 마을이 없다는 걸 알고 실망한 눈치였지만 우린 달랐다. 우린 여기가 너무 좋았다. ㄴㄹ는 심지어 여기가 동피랑보다 좋다고 말했다. 조금만 올라도 사방이 다 보이는 게 제주도 백약이 오름에 올랐을 때가 생각났을 정도였다.
ㄴㄹ는 동피랑은 어디인지, 이순신 공원은 어디쯤인지 지리를 확인했다. 그래서 ㄴㄹ가 길을 잘 찾는구나. 부암동을 걸을 때도 북한산, 인왕산 등등 위치를 확인했었다. 나도 덩달아 멀리 보이는 동피랑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담벼락에 색색을 칠한 곳이 보였다. 괜히 반갑고 설레였다.
우린 정상에서 메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ㄴㄹ와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른 면도 있지만, 서로 다른 관점들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귀하다.
서포루를 펜화로 그려봤는데, 와, 진짜 그림 너무 못 그렸;; 차마 못 올리겠;;; 전체를 그리며 부분을 간략하게 묘사하는 기술이 없고, 명암 표현이 서툴다 보니, 전체 형태는 일그러졌는데 세부는 쓸데없이 자세한, 이상한 그림이 나와 버렸다.
나 : 이거 그때 그 그림 같다.
ㄴㄹ : (빵 터져서) 진짜.
그때 그 그림, 이란 몇 년 전 ㅈㅁ과 경복궁에 가서 그린 향원정 그림을 말한다. 그 그림도 이 그림처럼 뭔가 형태는 안 맞는데 세부가 쓸데없이 복잡한 그림이었다. 우린 그 그림을 가지고 스파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쫓기던 스파이가 훔쳐낸 필름을 급히 향원정에 감추고, 외국인이라 뭔지 모르니 그림으로 그려 위치를 표시했는데 너무 엉망으로 그려 찾을 수가 없었다, 뭐 그런 이야기였다. 낄낄
우린 서피랑을 내려왔다.
6. IN 서피랑
가다 보니 책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안타깝게도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잠시 외출한 듯 보여서 카페에 가 쉴 겸 기다리기로 했다. ㄴㄹ가 카페를 검색했다. 나는 부근에 카페가 없나 살폈다.
나 : 어, 저기 예쁘다.
ㄴㄹ : 나 카페 검색함.
ㄴㄹ가 검색한 카페와 내가 찾은 카페는 같은 카페였다. 카페 이름은 IN 서피랑.
노란 식탁, 파란 색에 흰색 줄을 넣은 벽. 아기자기한 소품들. 작고 예쁜 카페였다. 벽에는 특이하게 멸치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세상에,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란다. 아무리 봐도 사진 같지 않은데 말이다. 아마 현상을 보통 현상지가 아니라 결이 있는 종이에 해서 그림처럼 보이나 보다. 사장님은 늘 보는 반응인데도 전혀 질리지 않는 얼굴로 “다들 사진인 줄 아세요.”라며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오고 싶어지는 그런 카페. 사장님은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역시 친절하고 착한 느낌이었다.
가격도 쌌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음료가 거의 3,000원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는 귀한 가격이다. ㄴㄹ는 커피를, 나는 자몽차를 시켰는데 가게에서 딸기차를 권했다. 자몽차는 다른 데서도 마실 수 있지만 딸기차는 드물다는 이유였다. 나는 딸기차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불길했다;
ㄴㄹ가 자기가 마셔 보고 싶다고 커피 대신 딸기차를 시켰다. 살짝 맛 봤는데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다. ㄴㄹ는 맛있다고 했다. 자몽차는 딱 좋았다.
낙서를 하고 노는데 사장님이 “이것 좀 드셔보세요.” 라며 쥐포처럼 보이는 것과 말린 채를 가져 왔다. 사장님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거 뭐 같으세요?”
나 : 쥐포요?
라고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었다. 쥐포면 뭐 같은지 물었을 리가 없지. 사장님은 기다리던 답을 들은 듯 활짝 웃었다.
사장님 : 쥐포 같죠?
나 : (ㄴㄹ에게) 뭔지 알겠어?
ㄴㄹ : 아니, 전혀 모르겠어.
사장님이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 : 아귀포랑 아귀채예요.
나 : 우와, 처음 먹어 봐요. 엄청 맛있네요.
사장님 : 우리 카페가 건어물 카페거든요.
나 : 헤에?
건어물 카페라니, 처음 듣는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랑 건어물 카페는 뭔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통영이니 어울리나.
사징님은 생각 있으면 사라고 말했다. ㄴㄹ는 맛있어서 자기 몫을 사고, 아귀채 하나는 안주로 하자고 했다. 나는 이 날은 사지 않았다.
잠시 끽연짬을 즐기고 다시 가게 안에 들어서다가, 아뿔싸, 했다. 가게로 들어가 ㄴㄹ에게 말했다.
나 : 아놔, 이 카페 들어올 때 봤는데. 입구에 ‘아귀채 팝니다.’라고 쓰여 있던 거. 근데 그걸 깜빡했네. 아까 이거 뭔지 물어볼 때, 훗- 제가 건어물 전문가거든요. 아, 아귀채구나! 할 수 있었는데.
ㄴㄹ : 난 알았어.
나 : 엥? 알았다고?
ㄴㄹ : 난 건어물 좋아하거든.
나 : 근데 왜 모른 척했어?
ㄴㄹ : 그냥, 눈 빛내며 오시기에 쇼에 동참해 주고 싶었지.
나 : ........... 혼자 천사하기 있기?
ㄴㄹ : ㅋㅋㅋㅋㅋㅋ
카페에서 쉬다가 다시 옆집 선물가게가 문을 열었나 보니 아직 닫혀 있었다. 카페 사장님이 거기 가시려는 거면 진작 말하시지, 라며 아는 가게라고 전화를 해 주셨다.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카페 문을 열지 않는다고.
동피랑, 이순신 공원, 서피랑까지 걸었더니 피곤했다. 숙소에 가서 잠시 쉬었다.
7. 남망산 조각공원
한 시간 반 정도 쉬고 나니 좀이 쑤셨다. 7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숙소에서 보내자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ㄴㄹ는 퇴근하고 집에서 쉬던 시간이라 쉬고 싶다고 말했다.
으음……. ㄴㄹ 없이 나홀로 길을…… 찾자! 할 수 있다!
나는 용감하게 밖으로 나갔다. 3G인 내 스마트 폰이 바깥에서도 잘 작동해 주었다. 덕분에 살짝 헤매긴 했어도 중앙시장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거리에는 충무 김밥 집들이 늘어섰고, 바다에는 거북선 모형이 떠 있는 곳을 지나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니 어둡고 인적이 없었다. 야밤에 혼자 걸어도 되는 걸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가다가 이렇게 멀지 않은데, 하고 확인하니 길도 지나친 듯했다. 구멍가게 주인인 듯한 할머니와 앞에 있는 남자분에게 길을 물었다. 남자분은 외국인 노동자인 듯했고, 할머니는 통영 분으로 추정;되었는데, 둘 다 남망산 조각공원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다. 남자분은 그냥 말을 못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명 멀지 않은 곳인데 모른다고? 으음…….
하긴, 나도 서울 지리 잘 모르지;;
돌아서서 다시 길을 찾았다. “남망산 조각공원”이라고 표지판도 붙어 있다. 아하하하하하;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었다. 몇 미터 단위로 가로등을 밝혔지만 그래도 어두워 무섭기는 했다. 용기를 내어 전진!
얼마 걷지 않아 공원이 나타났다. 조각들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저씨, 커플인 듯한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올라간 순간, 아, 정말 잘 왔다, 했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다 야경이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가만 밤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혀, 먼 동화 속의 나라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내 솜씨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몇 장 찍어 보았고, ㄴㄹ의 명연을 빌려 생눈으로 실컷 봤다.
내려오는데 혼자 올라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아주머니 : 혼자 보기 괜찮아요? 안 무서워요?
나 : 어, 저도 어두워서 좀 무섭긴 했는데, 야경은 정말 멋지더라고요.
아주머니 : 낮에 가서 지금 내려오는 거예요?
나 : 아니요? 금방 보고 오는 길이에요.
아주머니 : 아, 가까워요?
나 : 네, 금방이에요.
아마도 ‘남망산’이라 등산을 생각하셨던 듯한 아주머니는 바로 앞이라는 말에 웃으며 가셨다.
나는 진지하게 저녁 먹을거리를 고민했다. 중앙시장 안에 있는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입구에 있는 보쌈과 순대두루치기를 파는 곳은 문을 열었다.
ㄴㄹ에게 문자를 쳤다.
나 : 순대두루치기 어때?
ㄴㄹ : 콜!
어쩐지 서울 양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있었다. 일단 순대두루치기를 포장하고, 양을 봐서 다른 걸 시켜야 한다는 이성의 지시를 무시하고……. 어묵과 잡채까지 시켜버렸다. *두둥*
아주머니가 묵직한 봉지를 주는 순간, 아, 삽질했다, 는 걸 알았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이미 시켰다. 나는 봉지를 들고 열심히 길을 걸었다.
그리고 길을 잃었지.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음 날, 길이 눈에 익고 나니, 어떻게 여기서 길을 잃을 수 있지,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어두운 골목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야 말았던 것이다. 지름길 간다고 이상한 길로 들어선 게 죄지;;;
그렇게 헤매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 중 한 장면을 재현한 조각이 아니었을가. 자세히 보기에는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휴대전화가 무서웠다. 얘가 꺼지면 나는 방법이 없는데, 올 때는 길 찾기 잘 하더니 갈 때는 자꾸 헤매고, 이정표로 삼을 것도 없고, 아, 어쩌지;; 하는데 경찰차가 보였다.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나 : 죄송한데 제가 길을 잃어서요. 혹시 명정동 주민 자치센터 아세요?
경찰 아저씨 1 : 혼자세요?
나 : 네. 친구는 숙소에서 기다려요.
경찰 아저씨 1과 2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말했다. 타세요.
나 : 감사합니다!
나는 덥석 차에 올랐다. 에고, 이렇게 폐를 끼치면 안 되는데;;; 밤이고 무서웠다.
경찰 아저씨 1 : 명정동 주민센터 쪽에는 호텔이 없는데…….
나 : 아, 그 앞에 충무비치호텔이라고 있어요.
경찰 아저씨 2 : 지도 잘못된 것 같은데……. 일단 저희가 아는 곳에 데려다 드릴게요. 거기 아니면 주민센터로 갈게요.
나 :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저씨들은 날 호텔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 : 여기 맞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아저씨들 : 조심히 가세요.
뭐가 문제였나 나중에 한참 생각했다. 충무비치호텔과 주민센터는 멀지 않았다. 나는 대충 거기면 호텔까지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저씨들은 딱 호텔을 생각하신 거다.
감사합니다, 정말 덕분에 잘 왔어요. 앞으로는 이런 폐 끼치지 않도록 길 잘 찾겠습니다. (__)
ㄴㄹ는 내 이야기를 듣고 빵 터졌다. 그리고 나는 포장한 음식을 꺼냈다. 우와, 15,000원짜리 순대 두루치기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서울에서 나오는 양의 3~4배는 되었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나는 ㄴㄹ가 잡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옛날 언젠가 ㄴㄹ가 잡채를 진짜 맛깔나게 먹던 기억이 있어서. 그건 엄마가 해 준 잡채였고, ㄴㄹ는 엄마 잡채만 먹는다고 했다. 헤에...
난 좋아해서 배 뚜드리며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때 나는 소식좌가 아니었다. 7년 전 나, 낯설다. (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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