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4월 2일 일요일. 통영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전 8시 반에 깼다. 날이 맑았다. 숙소 작은 창문으로 서피랑 99계단이 보였다. 잠깐 뒹굴고 나왔다. 새파란 하늘과 화사한 햇빛이 아까워 숙소에 있을 수가 없었다.
1. 통영삼도수군통제영
걸어서 10분~15분 거리에 통영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어제 본 제승당이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었는데,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1603년 선조 36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복원을 많이 해서 넓었다. 입구에 있던 망일루에 오르자 통영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바다도 살짝 보였다. 높은 건물이 없던 시대에는 탁 트여 바다까지 막힘없이 볼 수 있었으리라.
세병관은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마루가 제일 넓다고 했다. 수 백 년, 수많은 환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살짝 올랐다. 함부로 밟기 미안한 기분이 들어 오래 있지는 않았다.
세병관을 나와 계속 둘러보았다. 야트막한 담을 따라 어린 동백나무들이 자랐다. 모과나무에도 진분홍 꽃망울이 열렸더라. 늘 시장에서 과일로만 보던 모과나무와 꽃을 보니 신기했다. ... 서울 촌것;;;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앵두나무였다. 세상에, 앵두나무 꽃도 벚꽃과 비슷하게 생겼어? 꽃이 더 크고, 잎이 가늘고 긴 느낌, 벚꽃처럼 완전히 무리지어 피지는 않았다.
이게 왜 충격이었느냐면 어릴 때 우리 집에 앵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지. 열매 따먹은 기억만 있고 꽃은 전혀 기억에 안남았다.;;; 어릴 때는 먹을 것만 관심 있었구나. 껄껄-
근데 앵두나무 사진 안 찍었어. ㅠㅠ
이곳에 통영시립박물관에서 본 12공방을 재현하고, 해당 분야의 장인을 소개해 두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며 기록했다. 이런저런 용어들이 쏠쏠했달까. 나중에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에 오르니 멀리 서피랑이 보였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날씨도, 나무도, 기와도, 풍경도, 모든 게 다 좋았다. 내가 기와를 영 못 그린다. 느낌만 주어 그리는 걸 잘 못하고, 선으로 하나하나 그리는 그림에 익숙하다 보니, 기와 하나하나 그리자니 어렵고, 느낌만 주는 건 안 되고. 언제 기와 그리는 법 제대로 연습해야지.
여기 올린 세 점은 다 이 여행기를 올리며(24년) 그린 그림이다. 이제는 기와를 그리는데 많이 익숙해졌다 싶고, 형태가 깨지지 않는구나 싶다. 뿌듯하다. ^^
2시간 정도 둘러보고 ㄴㄹ 일어났을 시간 같아 문자를 보내니 일어났다고. 숙소로 돌아왔다.
2. 해변 산책
ㄴㄹ와 체크아웃을 하고 중앙 시장이 있는 바닷가로 나왓다. 남망산 조각 공원을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빠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바닷가를 걸었다. 여기는 어젯밤에도 왔고, 오며가며 지나쳤는데 다른 길을 따라 걸으니 또 느낌이 색달랐다. 멀리 보이는 소나무, 전나무 사이에 핀 벚꽃들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통영에 오면 저 길을 따라 걸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너 편에 있는 흰 건물이 무얼까 궁금해서 집에 와 찾아보니 통영시민 문화회관이었다. 그 뒤로 야트막한 남망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걷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3박 4일이 눈 깜빡이고 나니 사라졌다. 슬슬 아점을 때려야 할 때. 어제 지나가던 할머니가 추천해 준 동해식당에 가서 해물 뚝배기와 멍게비빔밥을 시켰다.
멍게비빔밥은 초장 없이 비벼 먹는다고. 우린 해물 뚝배기에 딸려나온 밥까지 2인분을 비볐다. 살짝 싱거웠지만 담백하니 맛있었다. 멍게 향 짱!
해물 뚝배기도 얼큰한 해물 국물맛이 일품에 비단가리비, 새우, 조개 등등 해산물도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반찬으로 깨돔도 나왔다. 바삭하게 구워서 별미였다. 우린 거의 대부분의 반찬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이번 여행 때는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거나 뭔가 간단하게 때워서 제대로 사먹은 건 순대두루치기, 다찌집, 동해식당 밖에 없는 듯. 다찌집은 기대가 너무 컸던 터라 아쉬웠지만 마지막에 먹은 동해식당이 그 서운함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그래, 그냥 밥집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게 아니었어.
다음에 다시 통영에 오면, 여기서 해물탕을 먹으면 어떨까 싶어졌다. 해물 뚝배기가 이렇게 푸짐한데 해물탕은 어떻겠어. 엄청 기대된다.
밥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왔다.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일반 차도는 길이 막혔지만, 우리는 괜찮았다. 버스전용차선의 위엄이렷다. ^^
통영에 있던 게 꿈처럼 어느 덧 서울이었다.
집에 와 넘들 화장실을 청소하고, 밥 새로 주고, 물도 갈아 주고 나니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번 여행 때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두꺼운 스케치북이 아니라 얇은 스케치북 여러 개를 가져가야 한다는 거다. 두꺼운 거 가지고 다니다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특히 이번 스케치북은 지난 가을 제주 여행 때 반 정도 쓴 거라... 표 따위를 붙여 더 무거웠다.;
서너 장 남아 집에 와서 마저 그려 채웠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가 되려나......... 갸울 ^^ (1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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