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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아버지와 공주, 봄] #2.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by 운가연 2024. 9. 1.

1. 밥을 먹고 홍휘관으로 갔다.

 

여길 택한 이유는 아버지가 침대에서 못 자기 때문이다. 몇몇 모텔/호텔에 전화해봤는데 온돌방이 없다고...

그래서 홍휘관, 방이 좁다는 평이 있던 터라 4인실을 택했다. 아버지와 좁은 방에서 부대끼기 싫어서. 12만원.

방에 들어간 순간 당황;;;

이게 4인실이라고?

2인실 아냐?;;;;

4인이 자려면 딱 붙어서 자야할 각.

 

화장실은 진짜 심했다. 샤워기가 구석에 붙어 있어서 그 아래에 사람이 서는 공간이 안나옴.

세면대 앞에서 샤워기를 들고 씻어야 함.

12만원에 모텔은 스파 욕조나 안마기도 있는데... 헐;;;

 

숙소는 잠만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깨끗하고 넓다고 만족하심.

12만 원이라고는 말 안 함.;;;

 

아버지가 만족하니 되었다. 넘어감.

 

2. 바로 앞에 있는 공산성으로 갔다. 

 

 

백제 웅진기에 지어져서 당시에는 웅진성이라고 불렸다고. 지어진 시기는 미상이고, 당시에는 흙으로 지은 토성이었으나 나중에는 돌을 쓰는 석성으로 개축되었다고.

 

공산성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3. 스핑크스와 아버지

 

스핑크스는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인지 묻는 수수께끼를 냈다.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는 다리가 네 개가 되었다.
아이가 기다가 걷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습하듯, 아버지도 새로 장착한 다리 두 개를 잘 쓰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딸이 먼저 제안한 첫 여행에서 잘 걷고자 지팡이를 챙겼고, 부모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조심스레 바라보듯, 나는 위태로운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다.

 

 

6년 전 수해로 인해 복구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곳은 아직 그대로였고, 새로 추정왕궁지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하느라 막힌 곳들도 있었다.

 

아버지가 자꾸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지 물어서 나는 수시로 네이버 지도를 보여줬는데, 눈이 나쁜 아버지에게 휴대전화 앱은 너무 작았다. 다음에는 아이패드 가져가야겠다. ... 그림 그리려고 사서 웹툰 보는데 쓰고 있는 내 아이패드;;;

 

가설 1) 아버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근거 : 공산성이 백제 시대 성이 맞는지 등등을 물어서 검색하고 팻말 보며 설명해 드림.

 

가설 2) 걷기 힘들어서 그만 걷고 싶어서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지를 물어본 거다.

근거 : 걷기 힘들 때를 대비해서 지팡이를 챙겨온 점.

 

아버지가 지팡이를 짚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계단을 내려올 때가 특히 위태로워 보였는데, 지팡이로 바로 아래 계단을 잘 짚어야 하기 때문. 눈도 안 좋은 지라 옆에 바짝 붙어 지켜봄. ... 나 혼자 스릴러;;;

부축은 거부하심.;;;;

 

4. 나무와 꽃 이야기

 

아버지 : 저 나무 몇 살로 보이냐?

나 : (엄청 두꺼운 걸로 보아) 한 500살?

아버지 : 2~300살일 거다.

나 : 어떻게 알아요?

아버지 : 떡갈나무는 빨리 자라거든.

 

자연에 대한 지식이 많은 지라 아버지와 다니면 재밌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후 내가 떡갈나무를 알아보는 눈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크앙- ㅠㅠ

 

 

아버지 : 요즘 보이는 민들레는 다 외래종이야. 토종은 줄기가 짧아.

 

헤에?! 몰랐다;;;;;;

이 글을 쓰며 민들레 토종과 외래종을 검색해 봤다. 토종은 줄기가 짧고 꽃도 좀 작은 듯.

외래종이 번식력이 더 왕성하다고...

어째서인지 민들레는 당연히 토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토종이든 외래종이든 꽃은 꽃이고, 목재 수입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낯선 곳에 떨어진 생명이 살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도태되는 이들의 존재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작은 민들레도 살아남기를 바라본다.

 

4. 공산성 드로잉

 

 

 

 

원경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감이 잘 안 온다. 넓은 면적에 유리하고 색감으로 표현하는 수채화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지나치게 흔한 그림이 나올 염려가 있다. 나만의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전에는 막막하다는 이유로 아예 손을 놓아버리던 원경을, 이번에는 그리려고 많이 노력해 보았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5. 무령왕 동상

 

 

공산성을 내려오는데 멀리 한 인물의 동상이 보였다.

 

아버지 : 누굴까?

나 : 무령왕이겠죠. 공주잖아요. 무령왕릉으로 제일 유명한... 설마 여기다 다른 왕의 동상을 만들어놨겠어여?

 

확인해야 하는 아버지.

공산성에서는 뒷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 갔다.

 

나 : 무령왕 맞네.

아버지 : 어떻게 알아?

나 : 저어어어기, 쓰여 있어여.

아버지 : 그게 보여?

나 : 전 아부지보단 아직 눈이 좋으니까여.

 

딸이 쓰여 있다고 하면 믿어주시믄 참 좋겠는데;;;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아버지. 동상 앞까지 가기는 다리가 힘들고.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드림. ㅋㅋㅋㅋ

 

6. 메리봉봉

 

잠시 다리를 쉴 겸 카페에 가기로 했다. 한 건물 위에 "여기 1층에 인생을 살면서 꼭 먹어야 하는 디저트가 있습니다." 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넘 재밌어서 가보기로.

 

 

아버지는 유자차. 나는 자몽에이드. 디저트가 유명하다고 해서 왔음서, 점심이 안 꺼져서 디저트는 못 먹었다. 푸크크-

 

메리봉봉에서 그린 그림. 아버지가 갖고 싶어해서 줬다.

 

(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