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택시를 타고 금강교를 건너 미르섬으로 갔다.
미르섬은 산책로로 꾸며진 곳이었다.
오래 전에 아들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에서 끝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뒷모습이 뭐라고 이렇게 비장하게 서술하지?
그때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젊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을 때의 낯섦과 당혹감을 기억한다. 낯섦은 실제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당혹감은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세월이, 늙었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걸을 때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 나란히 걸으려고 하면 앞서게 된다. 반 발 뒤에서 걷는다는 느낌으로 걸어야 나란히 걷게 된다. 그래서 아이와 걸을 때 아이를 내려다보며 걸음 속도를 조절하듯, 수시로 아버지의 발을 보며 걷는다.
이 뒤에 택시를 탈 때였다. 아버지는 아직 지팡이를 익숙하게 다루지 못한다. 지팡이를 들고 택시에 오르는데 자칫 택시에 있는 실내등에 지팡이가 부딪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실내등을 보고 있었고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던 건 안다. 그래도 택시 기사의 뒷모습에서 긴장하는 게 느껴진 지라 나는 조심스레 지팡이 끝을 잡아 내렸다. 아버지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읽었다.
아버지 : 마라톤 풀코스도 뛰었는데... 다 늙었어.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지리산 종주를 했던 아버지는 어느덧 늙어 지팡이에 의지하고, 어리던 나는 자라서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다. 부모의 피보호자로 자란 자식은 어느 순간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 그게 순리다. 그리고 그 순리를 통해 자식은 자신의 미래를, 늙음을 보며 할 수 있는 대비를 하게 된다.
지난 7월(24년 7월)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했다. 산책길 걷기, 유튜브 운동 따라하기가 아닌 돈 내고 등록해서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 삶의 마지막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운동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살 어리지만 몸은 훨씬 안 좋다.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운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요양원에 100세가 넘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리에 누워서 피딩튜브에 의지해,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 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운동 부지런히 해야지. 골감소증도 있어서 운동 절실하다.
2. 드로잉들
3. 아버지와 나눈 소소한 대화들
아버지와 나는 일상, 사회에 생긴 각종 사건들, 기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둘 다 헛갈리는 건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고는 한다.
미르섬 전체를 꽃밭으로 조경하려는지 구획을 나눠 식물을 심어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위 사진이 마늘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 이거 마늘이야.
나 : 에이, 설마 꽃밭에 마늘을 심었겠어요?
아버지 : 생긴 게 마늘인데? 좀 크긴 하다만...
그래서 '마늘처럼 생긴 큰 꽃' 등등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코끼리 마늘'이라는 게 나왔다. 보통 마늘보다 10배 크고 마늘보다는 대파에 가까운 종이라고. 꽃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예쁘더라. 그러니까 님도 보고 뽕도 따듯, 꽃도 보고, 줄기(마늘쫑)도 먹고, 마늘도 먹고. 그런 용도로 심었나 보다. (추정)
코끼리 마늘 : https://namu.wiki/w/%EC%BD%94%EB%81%BC%EB%A6%AC%EB%A7%88%EB%8A%98
나는 아버지에게 "저기 꽃봉오리 있다!" 라고 외쳤고, 눈이 나쁜 아버지는 한참 만에 찾고 "오, 진짜 있네." 라며 신기해 했다. 어린아이들이 꽃 한 송이, 나비 한 마리에 신기해하듯 아버지와 나도 그러했다.
이후 검색해 보니 마늘과 파도 꽃이 피더라. 어쩌면 당연한 건데, 왜 마늘과 파는 꽃이 핀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상추는 심은 적이 있어 꽃을 봤다. 노랗고 작은 꽃이 예뻤던 만큼이나 상추에도 꽃이 핀다는 게 낯설었다. 시장과 마트에서 식물의 먹는 부분만 사다 먹는 도시 인간의 시야는 몹시 좁다.
나비는 많은데 벌이 없다. 벌이 사라져간다는 건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막상 눈앞에서 벌은 없이 나비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정말로 자연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부터 채식 비율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러다 아마 올해부터 집에서 먹을 때는 채소, 동물복지 무정란, 육류도 동물복지로만 한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 마리의 경우에는 동물복지인 자담치킨을 제외하고는 육류(어패류, 갑각류 포함)를 먹고픈 욕구 자체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넘들 사료는 치킨을 베이스로 한 걸 사고, 참치캔, 동결건조 닭가슴살을 간식으로 준다.
화장품, 욕실 제품도 비건으로 사기 시작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다만 주변에 권하지는 않는다. 밖에서 사람 만날 때는 상대가 먹자는 것 다 먹는다. 강요/요구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 나도 주변에서 채식하는 사람들 봐왔으면서도, 몇 년 전부터야 줄여나갔고, 최근에서야 몸에 뱄다.
4. 아버지가 고기를 먹자고 했다.
나는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썼다시피 밖에서 사람 만날 때는, 특히 아버지를 만날 때는 아버지 먹고픈 거 먹는다. 가끔 내가 고를 때도 있는데, 먹어 주시기는 하지만 표정 안 좋음. ㅋㅋ
꽃가람 왕갈비에서 갈비를 먹었다. 부녀가 오면 사장님이나 직원분들이 보기 좋다며 반긴다. ... 쑥스럽;;;;
5. 밤떡명가
이대로 하루를 마치기는 아쉬워서 숙소 근처에 문 연 카페에 갔다.
나이 지긋한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역시 부녀가 함께 오자 날 좋게 보심. ...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착한 딸 소리 들음;;;;
아버지 : 우리 딸 몇 살로 보여요?
.... 아부지;;;;;;;; 아이코야, 동안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하는 티가 너무 남. 그러나 사장님은 내 나이 정확히 읽은 눈치. 망설이던 사장님은 아버지를 배려하여 한두 살만 낮춰 이야기함.
사장님 : 화장 조금만 하면 훨씬 예쁠 텐데... 화장 해요.
아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이 여행 때는 선크림도 빼묵;;; 평소에는 안 바름. 여행 가서 오래 걸을 때는 바름.;; 근데 깜빡함;;;;
아버지는 밤떡을 두 개 남겨서 숙소로 챙겨옴. 다음 날 먹어봤는데 담백하니 맛있었다. (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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