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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아버지와 공주, 봄] #3. 자식은 언젠가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

by 운가연 2024. 9. 3.

1. 택시를 타고 금강교를 건너 미르섬으로 갔다.

 

미르섬은 산책로로 꾸며진 곳이었다.

 

 

오래 전에 아들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에서 끝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뒷모습이 뭐라고 이렇게 비장하게 서술하지?

그때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젊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을 때의 낯섦과 당혹감을 기억한다. 낯섦은 실제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당혹감은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세월이, 늙었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걸을 때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 나란히 걸으려고 하면 앞서게 된다. 반 발 뒤에서 걷는다는 느낌으로 걸어야 나란히 걷게 된다. 그래서 아이와 걸을 때 아이를 내려다보며 걸음 속도를 조절하듯, 수시로 아버지의 발을 보며 걷는다.

 

이 뒤에 택시를 탈 때였다. 아버지는 아직 지팡이를 익숙하게 다루지 못한다. 지팡이를 들고 택시에 오르는데 자칫 택시에 있는 실내등에 지팡이가 부딪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실내등을 보고 있었고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던 건 안다. 그래도 택시 기사의 뒷모습에서 긴장하는 게 느껴진 지라 나는 조심스레 지팡이 끝을 잡아 내렸다. 아버지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읽었다.

 

아버지 : 마라톤 풀코스도 뛰었는데... 다 늙었어.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지리산 종주를 했던 아버지는 어느덧 늙어 지팡이에 의지하고, 어리던 나는 자라서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다. 부모의 피보호자로 자란 자식은 어느 순간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 그게 순리다. 그리고 그 순리를 통해 자식은 자신의 미래를, 늙음을 보며 할 수 있는 대비를 하게 된다.

 

지난 7월(24년 7월)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했다. 산책길 걷기, 유튜브 운동 따라하기가 아닌 돈 내고 등록해서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 삶의 마지막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운동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살 어리지만 몸은 훨씬 안 좋다.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운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요양원에 100세가 넘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리에 누워서 피딩튜브에 의지해,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 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운동 부지런히 해야지. 골감소증도 있어서 운동 절실하다.

 

2. 드로잉들

 

 

 

 

 

3. 아버지와 나눈 소소한 대화들

 

아버지와 나는 일상, 사회에 생긴 각종 사건들, 기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둘 다 헛갈리는 건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고는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미르섬 전체를 꽃밭으로 조경하려는지 구획을 나눠 식물을 심어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위 사진이 마늘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 이거 마늘이야.

나 : 에이, 설마 꽃밭에 마늘을 심었겠어요?

아버지 : 생긴 게 마늘인데? 좀 크긴 하다만...

 

그래서 '마늘처럼 생긴 큰 꽃' 등등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코끼리 마늘'이라는 게 나왔다. 보통 마늘보다 10배 크고 마늘보다는 대파에 가까운 종이라고. 꽃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예쁘더라. 그러니까 님도 보고 뽕도 따듯, 꽃도 보고, 줄기(마늘쫑)도 먹고, 마늘도 먹고. 그런 용도로 심었나 보다. (추정)

 

코끼리 마늘 : https://namu.wiki/w/%EC%BD%94%EB%81%BC%EB%A6%AC%EB%A7%88%EB%8A%98

 

코끼리마늘

부추속에 속하는 식물로, 다양한 국가에서 작물로 광범위하게 재배되는 종이다. 일반 마늘 보다 종자의 크기가 약 1

namu.wiki

 

일찍 꽃봉오리를 올린 코끼리 마늘 발견.

 

나는 아버지에게 "저기 꽃봉오리 있다!" 라고 외쳤고, 눈이 나쁜 아버지는 한참 만에 찾고 "오, 진짜 있네." 라며 신기해 했다. 어린아이들이 꽃 한 송이, 나비 한 마리에 신기해하듯 아버지와 나도 그러했다.

 

이후 검색해 보니 마늘과 파도 꽃이 피더라. 어쩌면 당연한 건데, 왜 마늘과 파는 꽃이 핀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상추는 심은 적이 있어 꽃을 봤다. 노랗고 작은 꽃이 예뻤던 만큼이나 상추에도 꽃이 핀다는 게 낯설었다. 시장과 마트에서 식물의 먹는 부분만 사다 먹는 도시 인간의 시야는 몹시 좁다.

 

국화 계열 꽃으로 추정;;;;

 

나비는 많은데 벌이 없다. 벌이 사라져간다는 건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막상 눈앞에서 벌은 없이 나비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정말로 자연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부터 채식 비율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러다 아마 올해부터 집에서 먹을 때는 채소, 동물복지 무정란, 육류도 동물복지로만 한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 마리의 경우에는 동물복지인 자담치킨을 제외하고는 육류(어패류, 갑각류 포함)를 먹고픈 욕구 자체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넘들 사료는 치킨을 베이스로 한 걸 사고, 참치캔, 동결건조 닭가슴살을 간식으로 준다.

 

화장품, 욕실 제품도 비건으로 사기 시작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다만 주변에 권하지는 않는다. 밖에서 사람 만날 때는 상대가 먹자는 것 다 먹는다. 강요/요구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 나도 주변에서 채식하는 사람들 봐왔으면서도, 몇 년 전부터야 줄여나갔고, 최근에서야 몸에 뱄다.

 

금강교. 차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걸 좋아한다.

 

4. 아버지가 고기를 먹자고 했다.

 

나는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썼다시피 밖에서 사람 만날 때는, 특히 아버지를 만날 때는 아버지 먹고픈 거 먹는다. 가끔 내가 고를 때도 있는데, 먹어 주시기는 하지만 표정 안 좋음. ㅋㅋ

 

꽃가람 왕갈비에서 갈비를 먹었다. 부녀가 오면 사장님이나 직원분들이 보기 좋다며 반긴다. ... 쑥스럽;;;;

 

5. 밤떡명가

 

이대로 하루를 마치기는 아쉬워서 숙소 근처에 문 연 카페에 갔다.

 

밤떡명가
소식좌인 아버지가 하루 종일 잘 드심. 고기 먹고도 디저트 시킴. 나는 배 불러서 건드리지도 못함. ㅋㅋ

 

나이 지긋한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역시 부녀가 함께 오자 날 좋게 보심. ...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착한 딸 소리 들음;;;;

 

아버지 : 우리 딸 몇 살로 보여요?

 

.... 아부지;;;;;;;; 아이코야, 동안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하는 티가 너무 남. 그러나 사장님은 내 나이 정확히 읽은 눈치. 망설이던 사장님은 아버지를 배려하여 한두 살만 낮춰 이야기함.

 

사장님 : 화장 조금만 하면 훨씬 예쁠 텐데... 화장 해요.

 

아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이 여행 때는 선크림도 빼묵;;; 평소에는 안 바름. 여행 가서 오래 걸을 때는 바름.;; 근데 깜빡함;;;;

 

아버지는 밤떡을 두 개 남겨서 숙소로 챙겨옴. 다음 날 먹어봤는데 담백하니 맛있었다. (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