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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남도여행] #1. 나주, ㅇㅁ를 만나다. - 24.09.27.

by 운가연 2025. 4. 19.

1. 강진에서 일이 생겼다.

 

몹시 신나고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오전 일찍 가야 하는데 올빼미에다 잠순이라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못 자고 피곤한 상태로 가느니 하루 일찍 가서 강진 관광을 하면 어떠할까, 프리랜서만이 할 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늘 그러듯 ㅈㅁ이 내가 없는 동안 넘들 밥을 주기로 했다.

 

나 : 청소한다고는 했는데, 진짜 집이 엉망이고 책상 정리는 도저히 못하겠다.

ㅈㅁ : 우리 집에 와서 내 방을 보면 네 자존감이 올라갈 거야.

나 : 누구 자존감이 올라갈 지는 두고 보자꼬나. ㅋㅋㅋㅋㅋㅋ

 

내가 위안을 삼는 게 있다면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의 책상도 난장판이었다고 한다.

물론 책상 위가 난장판이라고 다 아인슈타인이 되는 건 아니다. ...;;;;

 

2. 서울에서 강진고속터미널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그걸 못 찾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두둥*

네이버 지도에서 가는 경로를 열심히 검색하다, 나주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크고 작은 건 결국 인생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지나가서야 그때 이랬어야, 저랬어야 했구나, 라는 걸 알게 되듯 여행도 그러하다.

 

하지만 예측대로만 굴러가는 인생과 여행은 재미가 없지.

예기치 못한 일이 주는 즐거움이 있지 아니한가.

나주역으로 가는 KTX를 타러 가다가 문득 ㅇㅁ 생각이 났다.

 

대학교 때 나는 아싸였다. 딱히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성격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겉돌았다.

당시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처럼 아싸가 있었고 같이 밥 먹을 친구는 있었다.

ㅇㅁ는 그때를 함께 보낸 몇 안 되는 친구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ㅇㅁ가 결혼하고, 임신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옮기게 된 뒤 사실상 연락이 두절되었다.

 

몇 년 전 혼자 춘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폭망한 여행이었다. 인상적인 풍경을 보지도 못했고, 숙소 상태는 너무 안 좋았다. 그때 이후 숙소를 엄청 꼼꼼하게 따지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돌아오게 되는 여행은 없으니, 그 여행에서 나는 ㅇㅁ를 건졌다.

ㅇㅁ가 춘천으로 이사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 카톡과 문자를 보내보았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ㅇㅁ는 휴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ㅇㅁ는 나주로 이사갔다고 나주 오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주행 KTX를 타러 가며 불현듯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강진까지 가는 경로로 나주를 택한 것도 무의식의 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는 길에 ㅇㅁ에게 카톡을 보냈다. ㅇㅁ는, 기억이 휘발된 어떤 이유로, 보통 오전 중에 카톡을 못 받는데 마침 이날은 카톡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주 역에서 ㅇㅁ를 접선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임신했을 때 마지막으로 봤는데, 딸이 어느새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뚜둔*

 

 

 

3. 사람이 나이가 드는 기점은 언제일까?

 

사람이 나이가 드는 시점은 "어쩜 너 하나도 안 변했다!" 라고 말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ㅇㅁ와 나는 서로에게 "야, 너 그대로다!"를 시전했다. ...... 그럴리가. 깔깔-

 

물론 그렇게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십수 년이 흘렀는데도 20대 모습이 있었다.

그건 우리가 어릴 때 이 나이대의 외형, 늙음의 정도를 꽤 높게 잡는데 막상 만나면 그 정도로는 늙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억과 추억이 현재의 모습에 덧씌워지는 걸까?

혹은 둘 다일지도...

 

4. ㅇㅁ와 보낸 하루

 

메밀국수로 점심을 때리고, ㅇㅁ 집에서 놀고, 딸과 ㅇㅁ 남편 ㅈㅎ도 만났다. 동갑내기라 말 편하게 했었는데, 세월을 건너 뛰어 만나서인지 잠깐 호칭과 존댓말 사이에서 어색했으나 원래대로 말 놓기로.

ㅇㅁ는 ㅈㅎ씨라고 불렀는데, 시댁 앞에서 ㅈㅎ아, 라고 하기가 그래서 씨를 붙였고, 그게 일상에서도 굳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 둘이 결혼까지 이어지는데 한 몫했다. ㅇㅁ가 나중에 ㅈㅎ이 그 일로 내게 고마워한다고 했다.

 

나 : 얼마나 다행이야. 그때 너만 아니었어도........ 라고 하지 않는 게. *쿨럭*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이 부부가, 다른 사람은 모르는 굴곡을 지나왔으면서도 여전히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아끼는 부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ㅇㅁ가 크림 파스타와 샐러드를 해주었다. 우와, ㅇㅁ가 하는 음식을 다 먹네?

ㅇㅁ는 팬데믹 전에는 아예 요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외식이 힘들어지고 여차저차해서 요리를 시작했다고. 상당히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부근 빛가람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친구들이 오면 데려가는 필수 코스라나. 모노레일도 타고 빛가람 전망대도 보고 갖은 수다수다를 떨었다. 얼마나 수다를 떨었느냐면 밤에 자는데 ㅇㅁ의 쟁쟁 울리는 목소리가 꿈에서까지 들렸을 정도다.;;

 

 

전망대 유리에 비친 날 표현하고 싶었는데 내가 안 보임. ㅋㅋ
빛가람 전망대에 있던 조명으로 보는 어류

 

빛가람 전망대 내부는 여러 볼 거리가 꾸며져 있었다. 3D처럼 영상물로 나주 역사였나?;;; 를 틀어주기도 했다.

ㅇㅁ와 둘이서.

 

기억은 가물;;하지만 산책 후 ㅇㅁ, ㅈㅇ, 딸 ㅈㅇ와 한참 대화도 나누고 술도 마시다 잤다.

ㅇㅁ가 친구들 놀러와 자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었고 갑자기 연락하고 왔는데도 흔쾌히 재워줘서 고마웠다.

 

5. 다음 날

 

그래도 중요한 일 있다고 립글로스도 바르고 나름 단장을 했다. ㅇㅁ가 모닝 커피도 끓여주고 고속터미널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대학 시절 친구 중 연락하는 이는 ㅇㅁ와 ㅎㅅ 둘이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나이들어가며 서로를 챙기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