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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남도여행] #3. 순천 - 고모와 ㅁㅈ을 만나다 - 24.09.29.

by 운가연 2025. 4. 21.

1.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갔다.

 

순천 역에서 택시를 타고 고모 댁으로 갔다. 4~5만 원 나옴. 크아앙-

 

사전에 연락도 안 한 데다 고모가 전화를 안 받아 걱정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갔다. 거의 집에 있다니까.

몇 달 전 아버지에게 고모가 입맛을 잃었다는 말을 들어 걱정이 되었다.

고모는 팔순을 넘겼다. 입맛이 없다는 건 하나의 조짐일 수도 있다.

고모부는 아직 허리가 꼿꼿한데 고모는 어느덧 허리가 반으로 굽었다. 

문득 앞으로 고모를 몇 번이나 만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는 조카이기에 날 예뻐했고, 난 고모댁에 가면 고모가 붙여 주는 전에 미쳤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전이었고 다른 누구도 만들지 못한다. 고모도 이제 못 만든다.

아주 얇은데 다양한 채소의 맛이 합쳐지며 새로운 맛이 나온달까?

 

택시에서 내려 불확실한 기억으로 열심히 길을 더듬어 고모 댁에 도착.

고모는 마당에서 부추를 다듬고 있었다. 부추꽃 태어나서 처음 봤다.

고모에게 부추 꽃은 늘 보는 것, 못 먹는 부분, 손으로 뜯어내는 곳이었고

도시인에게는 와, 부추에도 꽃이 피는구나, 하고 사진으로 남기게 되는 순간.

부추꽃은 원형으로 무리지어 피었다.

 

상추도 계속 자라게 놔두면 줄기가 두꺼워지고 관목 높이로 자라며 꽃이 핀다.

대파도 꽃 핀다. 오래도록 이걸 모르고 산 도시인.

 

보통은 내가 그린 그림을 대표로 하지만 이번에는 부추꽃을 하고 싶어졌다.

 

고모는 이제 식사 준비를 못한다. 치매와는 다른 형태로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자꾸 한 말을 반복한다. 어떻게든 날 밥을 먹여야 하고, 날 다시 순천 시내까지 보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고모부가 마을에 있는 유일한 택시 기사에게 전화했는데 이미 다른 곳으로 갔다고.

그래서 고모가 막내 아들에게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민폐다!*

 

고모의 막내 아들이자 사촌 오라버니는, 아마 초면은 아닐 텐데, 초면에 가깝다. 서로 1도 모름. ...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날 알았다.

사촌 오라버니는 들어오기 무섭게 왜 사람 귀찮게 하느냐, 택시 태워 보내면 되지, 일갈했고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러게요!"를 시전했다.

내 뜻이 아님을 열심히 어필한 것. ...

택시가 없어서 시내로 나갈 다른 방법이 없긴 했다만... 깔깔-

뭐, 택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는 거였잖아. 푸크크크-

 

같이 시내로 가서 회랑 이거저거 시켜 먹었다. 계산은 내가 했다!

내가 계산해서 고모가 당황했다.

 

나 : 아이고, 고모, 고모가 해 준 밥을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이 먹었게요. 조카도 고모에게 밥 한 번 살 수 있는 거야!

 

철딱서니가 없어서 명절에 고모 댁에 갈 때마다 빈손이었고 그걸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

설거지나 좀 거들고 말았;;; ㅠㅠㅠㅠㅠㅠㅠ

 

고모에게 밥을 산 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다행히 마지막이 아니었다. 헤헷-

 

나는 명절 스트레스를 신문이나 뉴스로만 봐와 서 일부 사람들만 겪는 일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님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결혼해라, 취직했니? 연봉은 얼마야? 애 낳아야지, 아들 낳아야지, 연애 해야지, 등등의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어릴 때부터 봐온 사촌 ㅁㅈ이 내 직업을 몇 년 전, 여수에서 만났을 때 알았을까.

그때 ㅁㅈ이 문득 "저 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요." 해서 이야기했던 거. ㅋㅋㅋ

 

그런데 고모도 나이가 드셨나. 생전 안하던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나보다 막내 아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든다.

 

난생 처음 나에게 결혼 해야지, 하는 고모의 말은 잔소리라기보다는 마냥 귀여웠다.

 

고모 : 결혼 해야지.

나 : 왜요?

고모 : 남들 하는 거 다 하는 게 순리야.

나 : 요즘 결혼하는 사람 만큼 이혼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럼 이혼도 해야겠네요?

고모 : 이혼은 하면 안 되지.

나 : 남들 하는 거 다 하는 게 순리라면서요.

 

억지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는데도 겉보기 논리는 갖추자 반박을 못한 우리 고모, 귀엽다!

 

이 두 점은 밥 먹은 식당 앞 도로. 순천은 제법 큰지라 거리 느낌이 강진과 사뭇 달랐다.

 

사촌 오라버니가 감사하게도 ㅁㅈ과 만나기로 한 카페까지 날 태워다주었다.

감사했습니다. 크아아앙-

고모도 열심히 손질한 부추와 고춧가루 감사했어요!

 

2. ㅁㅈ과 접선하다.

 

ㅁㅈ과 카페 페이트론 커피 로스터에서 만났다. 언제 봐도 반가운 내 예쁜 사촌 동생!

 

 

카페에 한 살 정도 되었다는 치즈 아가가 있었다. 와, 울 예쁜이들 넘 보고 싶어지더라.

삼냥이 집사인 나는 집 나와 있으면 넘들이 보고 싶고, 두 딸의 엄마인 ㅁㅈ은 모처럼 얻은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둘째 딸이 30분~1시간 간격으로 전화함. 아이고야;;;;;;;

 

카페 앞 거리 풍경

 

3. 순천만 국가 정원

 

ㅁㅈ이 순천만 국가 정원에 가자고 했다. 딸들은 도입부에서 신나고 금방 지쳐 꼼꼼히 둘러보지 못했다고. ㅁㅈ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이동이 편했다.

 

순천만 국가 정원은 크고 화려한 인공정원이었다. 계획에 따라 구획을 나누고 디자인을 했다.

하늘의 푸른색은 마음을 들뜨게 했고, 호수와 백조는 탄성을 자아냈다.

 

여행 다니면 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2~3년 전부터 찍기 시작했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ㅁㅈ 덕에 이번 여행에서 내 사진을 실컷 찍었다.

 

옷가게를 하는 ㅁㅈ은 자기가 파는 옷을 입고 왔고 홍보용으로 올릴 사진이 필요했다. ㅁㅈ에게 인물 사진 예쁘게 찍는 법을 배웠다. 다리를 사진 거의 아래에 두고 찍어야 길어 보인다고. 혼나면서 배움. ㅋㅋ

 

 

이전에 플라밍고를 실물로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흰색과 산호색의 조화, 숙인 고개의 선이 고혹적이었다.

그러나 플라밍고의 고향은 순천이 아닐 걸? 플라밍고들에게 묻고 싶었다. 여기서 사는 거 괜찮니?

 

홀린 듯 백조를 바라보던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백조는 사육되는 게 아니어서 조금 더 마음이 편했다. 당장 내가 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만 많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래야 무언가 해야 할 기회도 오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 기회라는 게, 잡는다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딝에 속하는 아이가 아닐까...

 

인공적인 언덕을 조성해 놓았다. 올라가진 않았는데 여러 점 그렸다. 다음에 가면 올라가봐야지.

 

 

 

 

인물 사진은 보그 사진첩에서 오림.
앞글에 인공적인 공원 조성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도 올렸지만, 잘 조성된 공원에서 거닐 때 오는 충만함에 푹 빠진 시간이었다.
이 구름, 귀여워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4. 장독대 정원 카페

 

순천만 국가 정원 안에 있는 장독대 정원 카페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수다 삼매경.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제대로 기억나는 건 없다. 다만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둘 다 너무 신났다는 건 선명하다. 둘이 만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5. 나눌터 - 도토리 요리 전문점

 

건강에 큰일을 겪고 부쩍 몸을 챙기는 ㅁㅈ과 도토리 요리 전문점에 갔다. 도토리 좋아한다.

 

 

ㅁㅈ은 고맙게도 갑자기 온 나와 함께 기차 시간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물론 ㅁㅈ은 이 핑계로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여수 여행을 갔던 것도, 아버지가 여수에서 순천 가깝다고 알려주어 ㅁㅈ을 따로 만나게 되어 부쩍 가까워진 것도, 인생의 선물 같다.

 

6. 여행 일정 정리

 

모란공원과 강진만 생테 공원 사이에 강진 호수공원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