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진군도서관
이날 일정이 있던 강진군 도서관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강진은 인구 3만 2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그에 견주면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다만 중간에 몇 분이 나가심. 아마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참석자들이 즐겁게 끝까지 자리할 수 있을지도 궁리하게 되었다.
도서관 쪽에서는 많은 걸 준비해주셔서 즐겁게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일정 후 금두꺼비 강진본점에서 돌솥비빔밥을 다같이 먹었다.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을 듣고 씐났다. ㅋㅋ
어릴 때는 동안 소리를 자주 들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마다 신분증 보여달라는 말이 성가셨다.
어느 순간 젊은 아르바이트 생은 안 물어보고, 어르신들 급의 사장님들은 보여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 민망했다. 신분증에 쓰인 숫자 한 번, 내 얼굴 한 번 쳐다보셔서. ....
신분증 보여주기가, 내 나이가 들통나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닌 시기가 찾아왔다.
어느 기점을 지나자 다들 내 나이를 정확히 읽기 시작했다.
이 당연한 일이 갑자기 서러워졌다.
예의상 한 말일 지라도 어려보인다는 말에 들떴다.
어릴 때는 예쁘게 꾸미고 싶어한다. 나이가 들면 어려보이고 싶어한다.
어림은 곧 생명력이고, 그 생명력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늙음은, 나이듦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말이고,
살아있는 존재에게 죽음은 저항하고 싶어지는 거란 말이지.
밥 먹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2. 영랑생가
강진에 유명한 관광지가 몇 있는데 대중교통으로는 무리였다. 소도시는 마을 버스가 하루에 한두 번 다니고, 작은 동네를 다 들르기 때문에 차로 가면 30분 거리도 대중교통으로는 두 시간씩 소요되기도 하고, 나오는 버스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걸어서 볼 수 있는 곳만 보기로 했고 그중 첫 번째가 영랑생가였다.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로 유명한 시인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말아
삼백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벌써 낯선 단어들이 보인다. 언어는 빠르게 변화한다. 맞춤법도 그러하다. 백석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어느 정도 현대 맞춤법으로 순화했다고 하는데도 읽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옛 시인의 시를 그때 그 형태 그대로 읽을 수가 없다. 우리말로 쓰인, 단어와 운율의 엄정함이 소설보다 엄격한 시에 번역이 필요해진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대표작이라서인지 모란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음식점, 카페, 숙소가 많았다.
영랑생가는 모란공원과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 간간이 찾아온 사람들이 보였다.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고, 하늘은 쨍하니 푸르렀다. 혼자 무작정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좋은 날이었다.
모란과 사촌이라는 작약 등을 심어 놓은 하우스도 있었다.
3. 강진 호수 공원
강진 호수 공원까지 걸었다. 호수는 땅에 고여 있는 커다란 물이다. 지하에서는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까? 강이나 바다는 한없이 뻗어나가서 내가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호수는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제한, 한눈에 내가 보고픈 만큼 다 볼 수 있다는 게 호수를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왼쪽에 그물과 함께 펜스가 쳐져 있다. 격구장이었다. 몰랐다. 네이버 지도 따라 걷다가 얼결에 들어갔는데 막혀서 돌아나옴. 내가 돌아나오는 모습에, 모자와 수건으로 볕을 방어하며 격구를 즐기던 분들이 어디 가는지 묻고, 아까 내가 들어갈 때 막혀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음을 미안해 했다. 심지어 여기 유료인 곳인데. ㅠㅠ
내가 들어갈 때는 하필 관리자 분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 나오며 마주쳐서 상황을 설명했고 관리자 분도 이해해 주셨고, 이 날씨에 뚜벅이로 여행하는 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밥을 먹고 나오며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우와, 저 구름 봐!"였다. 서울에서는 지상 가까이 내려온 구름을 보기 어렵다. 온 사방이 건물이라 산이 땅과 닿아있는 모습 또한 낯설었고 그만큼 고즈넉한 평온함을 주었다. 이때 받은 인상은 이후 했던 작업에 좋은 영감이 되어 주었다.
다음 목적지는 강진만 생태공원이었다. 네이버 지도에 의지해 무작정 걷는데 앞에서 개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큰 토종개들이었는데 여서 일곱 마리 모두 목줄을 하지 않았다! 날 보며 경계하고 짖으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다가가면 공격받을 것 같은 기분에 돌아섰다. ... 어째서 목줄을 하지 않은 거지? 어째서 그냥 풀어놓은 거지?
머릿속에서 소도시 스릴러가 자라기 시작........ *쿨럭쿨럭쿨럭*
4. 전봇대
길게 뻗은 도로, 양쪽에 늘어선 전봇대, 새파란 하늘을 향해 연결된 듯한 까마득한 도로의 끝을 보는데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인 착각이 들었다.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그 흔한 날벌레 한 마리 마주치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풍경을 볼 때의 황홀함과 유사한 감정이 날 찾아왔다.
격구 장을 나와서 강진만 생태공원까지 걷는 내내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ㅎㅊ 쌤이 밀도가 부족할 때는 전깃줄이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복잡해서 그릴 엄두가 안났었다. 막상 그리니 재밌더라. 뭐든지 일단 그려야 한다.
5. 강진만 생태공원
꽤 넓은 곳이었는데 사람은 두세 번 정도 본 것 같다. 이 한적한 장소에 온 사람들에게 나 혼자서 작은 동질감을 느꼈다.
이날 함께 밥을 먹은 분 중 한 분이, 강진만 생태공원에 다양하고 작은 생물들이 많다거나, 순천만 국가정원처럼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셨는데, 다음 날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보고 이해했다. 한편으로 순천만 국가정원을 예시로, '녹색 면죄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관련 기사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92063.html)
정원 열풍 거품에 가려진 돌봄의 미학 [.txt]
2013년 개최된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이후, 정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증폭되고 있다. 정원 열풍이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
www.hani.co.kr
6. 카페 8월 8일
지친 다리를 쉬어줘야 할 때였다. 적당한 카페를 찾아 걸었다. 걸으면서 신선했던 게 인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도 인도가 없어, 하수도 위에 그냥 서 있어야 했다. 소도시라서 일까. 그래도 얼마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횡단보도 시작과 끝에 있는 조명은 있더라.
가끔 소도시에서 1~2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뚜벅이가 살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못한다. 무려 1종 보통을 땄던 패기어렸던 나, 어디 갔냐. ㅋ 운전을 배울 자신이 없다.
그때는 오토가 드물었는데 지금은 오토가 보편화되어 있고 네비게이션도 기본이고, 운전이 쉬워졌다는데, 눈이 나빠진 게 문제. ㅋ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제대로 배워야 소도시에서 장 보며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자전거를 어설프게 탄다.;;
뭐, 이러든 저러든 먼 훗날의 일.
7. 쓸쓸함이 몰려왔다.
'부엌여행'이라는 식당에서 '토마토치즈 밥토리'를 포장했다. 아란치니를 한국식으로 만든 음식이었다.
숙소에 돌아오자 아직 초저녁이었다. 더는 갈 곳이 없었다. 올빼미 과라 갑자기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으면, 전망을 친구 삼아 혼술 + 그림을 즐겨볼 텐데, 강진에는 딱히 그럴 만한 숙소가 없었고, 모란 모텔은 깨끗한 보통 모텔로 이렇다 할 전망이 없었다.
여행 때는 sns도 안 하고, 업무와 넘들 봐주는 친구 외에는 카톡도 하지 않는 원칙을 꽤 오래 지켜왔는데 이날은 친구에게 톡을 걸었다.
이때만해도 절친이었던 뫄뫄, 우리 넘들 봐주는 ㅈㅁ과 셋이 화상 통화를 했다. ㅈㅁ과 나는 술을 마셨고, 자려고 누웠던 뫄뫄는 용감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고, 뫄뫄가 자러 간 뒤에도 ㅈㅁ과 한참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적적하지 않은 밤을 보냈다.
서울을 벗어나서 살 때 걱정되는 게 가끔 사람이 고파지면 서울로 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영상통화가 현장감이 있더라. 가끔 영통을 할 수 있으면 소도시에서 살 수도 있겠다 싶어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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