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ㅁㅈ이 차를 몰고 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횟집을 예약해 둔 ㅁㅈ.
고모와 고모부, 작은어머니와 작은아버지, 고모의 딸인 사촌언니와 사촌형부, ㅁㅈ과 제부, ㅁㅈ의 두 딸, 아버지와 나까지 대가족 모임이었다.
사촌 언니 : 봐, 다 딸이 모셔.
그러했다. ㅋㅋ
조카아들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조카딸이라는 말은 있다.
아들은 안 챙기는데 ㅁㅈ이 우리 아버지를 챙겼다.
제부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
아버지는 순천에 1년에 2회를 초과해서 간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두 분 다 더 이상 운전을 안하고 못한다. 그때마다 ㅁㅈ과 제부가 차를 끌고 나와 우리 아버지를 챙겼다.
앞으로 순천에 갈 때는 필히 나도 가리라 다짐했다. 울 아부지 손 많이 가는데 시중이라도 내가 들어야지. ㅠㅠㅠㅠ
이날 ㅁㅈ이 말하길, ㅎㅈ이 형부(내게는 제부)가 하는 모습에, 자기 남편도 울 아부지 올 때마다 같이 나가줄 줄 알았다고. 그런데 남편이 장인어른의 형님까지 만나러 가기는 힘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ㅎㅈ이 결혼한 초기에 한두 번인가 보고 못 봤지;;
큰 제부가 많이 애 써주는 거다. 작은 제부 말대로, 장인어른의 형님까지 챙기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2. 아부지가 케이크를?
ㅁㅈ이 케이크를 사러 가자고 했다.
나 : 울 아부지 케이크 안 묵는디?
카페 가면 조각 케이크 시킬 때 있는데 나만 먹지 아버지는 안 드심.
ㅁㅈ : 어르신들 케이크 좋아하세요.
그래서 케이크 삼. ㅁㅈ이 사겠다는 거 "우라빠다!" 하고 내가 삼. ... 오늘 고생 시키는 것도 미안한디 케이크는 내가 사야지.
놀랍게도 아버지가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드심!
아, 우라빠가 현대적인 치즈케이크, 초코케이크, 이런 거 말고 빵에 생크림과 과일 올라간 고전적 케이크 좋아하는구나;;;;
ㅁㅈ이 아는 걸 내가 몰랐다;;;
아직 초등학생인 두 조카는 케이크에 촛불 부는 순간을 기다렸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조카손녀 둘과 함께 아버지는 촛불을 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거 바라셨구나. 챙길 걸, 하는 마음, 같이 내려오길 잘했다는 마음.
본인은 내 생일도 모르면서, 아버지는 챙김받고 싶어하는 건 모순 아냐?;;; 싶은 쪼잔한 마음. ...
부모자식의 관계는 공정한 물물거래가 아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날 사랑하고 아끼고 정신적으로는 지지하고 실질적으로는 지원해왔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만큼 해드렸나? 그 1/100이라도 했나? 1/1000은? 1/10000이라도?
내가 받은 게 훨씬 많으면서,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올해(25년) 한 번 더 순천에 다녀오며, 몹시도 오랜만에 만난 ㅎㅈ의 시선으로 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로 아버지에게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밥은 내가 계산했다. 대가족이 횟집에서 먹었으니 출혈 지출이었으나 내가 내는 게 마땅했다. 우라빠 생일이다. ...
두어 달 전 남도 여행 때 고모 밥을 처음 사드렸는데 그게 마지막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으로 조카들 용돈도 줬다.
하고픈 일 하고 산다고 허리띠 졸라매고 사느라 마땅히 챙겨야 하는 걸 챙겨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라도 챙기고 살아야지.
3. 카페
커다란 뜰이 있는 정원이라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로 오기 좋았다.
이날 형부와 사촌언니의 로맨스를 살짝 들었다. 속편은 다음 기회에 듣기로. ㅋㅋ
우리나라에는 명절 스트레스라는 게 있다. 취직했니? 결혼은? 아이는? 아들 낳아야지. 연봉은? 여친은? 남친은? 기타등등 기타등등.
나는 이런 질문공세에 시달려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봐온 ㅁㅈ이 내 직업을 몇 년 전에야 알았을 만큼, 우리는 만나면 일상 잡담을 나누지 신상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이게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 모르고 살았다.
고모와 아부지 사진을 찍고 고모와 고모부 사진을 찍었는데, 남동생과 찍을 때는 무덤덤, 고모부와 찍을 때는 웃음이 보이는 고모. 귀엽다.
가족이 하도 많이 못 느꼈는데, 나중에 ㅁㅈ이 말했나? 고모가 몇 번이나 ㅁㅈ의 두 딸을 보고 "쟈들은 누구 딸이냐?"고 처음처럼 물었다고. 팔순이 훌쩍 넘은 고모.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앞으로 또 볼 날이 올지조차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ㅇㅅ와 ㅇㅅ
ㅁㅈ의 두 딸은 성격과 외모가 판이하다. 큰딸 ㅇㅅ는 힙합 스타일. 작은 딸 ㅇㅅ는 아이돌 스타일. 둘 다 자기 옷을 직접 골라 입는다고. 성격이 워낙 달라서 둘은 친하지 않다.
ㅁㅈ과 ㅎㅈ도 남매인데 분위기와 성격이 판이하더니 ㅁㅈ의 두 딸도 그렇다.
자라며 서로를 용인하며 가까워지길 바란다.
나이가 들며, ㅁㅈ과 ㅎㅈ이 친자매처럼 느껴진다. 갈수록 이 관계가 특별하고 소중해진다.
우라빠를 이렇게 극진히 챙겨주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거.
나만의 몫이 아니라는 거.
실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커다란 위안과 힘이 되어준다.
ㅇㅅ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따라다니고 잡고 싶어했고, 잡은 메뚜기를 개구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관심이 없었다. ㅋㅋ
나는 살살해, 이제 그만 놔주자, 더 하면 메뚜기가 다칠 지도 몰라, 라는 정도로 개입했다.
아래는 두 조카의 그림.
작은 조카 ㅇㅅ의 그림이 많은 건 둘이 손잡고 산책해서 사진이 많았기 때문.
아이 그림은 어렵다. 비율 잘못 맞추면 청소년 됨. ㅠ
다음에는 큰 조카와 더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싶다.
4. 컬러링 도안 느낌으로.
어머니가 최근 급격한 시력 저하로 검사를 받았다. 백내장이라 수술해야 한다. 수술일은 6월 말로 잡혔다.
눈이 갑자기 나빠지니 만화책을 못 읽어서 심심하다는 어머니에게 컬러링북 두 권을 보내니 너무 즐거워했다.
다 칠했다기에 좀 더 두꺼운 걸로 네 권을 보냈는데, 아뿔싸, 이번 건 어머니의 악화된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받아보고 아주 진한 선이 아니면 덧그려서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간 그림에 쓴 돈과 시간이 얼마인데, 라는 생각에 직접 두꺼운 펜으로 그려서 보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컬러링 도안을 찾은 뒤 적당한 걸 그려 보냄. 잘 보인다고 좋아해서 기뻤다.
다른 사람의 도안 보고 그리는 게 물론 편하고 완성도 면에서 더 낫겠지만, 훈련 겸 그림 그릴 때 컬러링 도안 느낌으로도 그려서 보내볼까 한다.
5. 작은어머니와 잠시 대화
지금도 아들선호가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더 했다. 작은어머니는 딸만 둘이다.
고모와 고모부도 딸이 사위와 데려왔고 우리 아버지를 챙기는 것도 조카딸이다.
작은 어머니는 예전에 아들 낳았다고 위세(?) 부리던 지인들이 이제는 자기를 부러원한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작은 어머니 : 아들은 놓을(낳을) 때나 좋지, 자라고 보면 딸이 최고다. 지금 (아들만 있는 주변 사람들) 다 내(나) 부러워한다.
한편으로 손주를 돌보는 고충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ㅁㅈ의 두 딸 키우고 나니 ㅎㅈ이 출산해 손자를 돌보게 된 것. 딸과 앞 두 손주가 다 여자아이였기에 남자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된다고도 했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대체로 힘도 세고 해서 나이 들고 약해진 몸으로 감당이 될까도 걱정했다.
막상 ㅎㅈ은 엄마 힘들면 보육원 보내거나 할 테니 안 해도 된다고 했다는 말에 "그럼 하지 마세요." 했는데 조금 해보고 힘들면 그만할 거라고 했다.
후일담은 올해(25년) 봄에 순천 다녀온 일기에 쓰겠다. ㅋㅋ
6. 귀가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팔순 맞아 간 순천 - 24.11.15~16. (1) | 2025.05.12 |
---|---|
[남도여행] #3. 순천 - 고모와 ㅁㅈ을 만나다 - 24.09.29. (2) | 2025.04.21 |
[남도여행] #2. 강진, 홀로 걷다. - 24.09.28. (1) | 2025.04.20 |
[남도여행] #1. 나주, ㅇㅁ를 만나다. - 24.09.27. (2) | 2025.04.19 |
[아버지와 공주, 봄] #4. 다음 생에도 우리 아빠가 되어 주세요. (0) | 202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