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버지 팔순이었다.
작은어머니가 몇 달 전부터 아버지 팔순되면 순천으로 내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아버지의 환갑과 칠순을 챙기지 않았다.
작은어머니가 몇 번이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팔순도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아버지와 아주 가깝다.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고, 매달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전화하다가 얼마 전부터 매일 전화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5년 5월이다.)
다만 생일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건 아버지의 책임이다. *당당*
아이들은 생일이라는 걸 모른다. 부모/어른/주위사람이 아이에게 생일을 알려주고 축하해주면서 생일은 축하를 주고받는다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생일을 모른다. *두둥*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은 의심한 적이 없다. 생일을 모를 뿐이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많이들 그랬다. ㅋ
그래서 아마도 20대 어느 무렵, 아버지가 생일과 어버이날을 그냥 지나치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보였을 때 당황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린이날을 챙긴 적이 없다;;
어린이날도 부모가 챙겨주며 자연스레 어버이날도 알려주는 거 아닌가?
아이들은 사회 예의를 어른/주변사람들에게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잖아.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거 아니라고.;;;
여차저차해서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꽤 오래도록 가족끼리는 원래 생일 안 챙기는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주변 지인에게 물으니 가족끼리도 챙기더라. 헤에;;;;
나는 내 생일을 포함 주변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20대 까지는 고딩 친구들과 같은 달 생일인 애들끼리 밥도 먹고 선물도 주고받고 했었다. 다들 만날 수 있는 날짜 잡는 거니 생일 당일에 보기는 힘들었고. 그러다 다들 바빠지면서 흐지부지 된 후 생일에 대해서는 아무 개념 없이 살았다.
남자친구와 생일 당일을 보내 본 적이 없는데, 장거리 연애였던 터라 당일에는 볼 수가 없었기 때문.
생일 당일에 뭘 한 기억은 초딩 이후 몇 번 없다. 카카오톡 등등 프로필에 내 생일 다 비공개로 해두는 편. 생일 축하 받기 번거롭다. 축하 받으면 나도 챙겨야 하는데 힘든 거.;;;
30대에 들어서서 어버이날이면 아버지 사무실에 꽃바구니를 보내기 시작했다. 생신도 몇 번은 챙겨서 같이 밥을 먹었다.
아버지가 퇴직한 뒤 생신을 다시 건너 뛰기 시작했다.;;;
뭐랄까, 사무실로 꽃바구니를 보낸 건 아버지 체면을 생각해서였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할까? 집으로 꽃바구니 보내봐야 시들면 버리는 게 일이잖아. ...
그래서 아버지 생일/어버이날 챙기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고 뭐 그러했다.
내 생일은 24년에 딱 한 번 아버지에게 축하받아 봤다. 한 달에 한 번 밥 먹는데 진짜 어쩌다 우연히 내 생일로 날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날 문득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 생일이다. 나도 한 번쯤 축하한다는 말 들어보자."
아버지는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 기다려 보라고 했고, 내가 생일인 걸 고새 까묵은 시점에서 축하한다고 이야기했다.
... 뜻밖에 뭉클했다.;;;;;;;
그래도 팔순 챙길 생각은 못했던 나;; 아버지에게 내 생일 또 축하받을 생각도 없;;;; 아버지가 나 사랑하는 거 잘 알고 있다.;;;
뭐, 암튼 작은어머니가 거듭 말해서 아버지 손잡고 순천 내려감.
1. 아버지가 라면을?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ㅁㅈ가족과 16일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움직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15일 오후 기차로 내려갔다.
아버지와 단둘이 기차를 타고 순천에 내려간 적이 있나? 없을 걸?
큰 사촌동생 ㅁㅈ이 결혼해서 명절에 시댁에 가 얼굴을 못 보게 되더니 작은 사촌동생 ㅎㅈ마저 결혼해서 못 보게 된 뒤 나도 안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지막에 간 게 17년인 듯.
1박~2박 아버지 시중 들기가 버거웠다. 우리 아버지 진짜 손 많이 간다.
ㅁㅈ, ㅎㅈ마저 못 보자 가는 보람이 사라졌;;;
이후에는 아버지 혼자 내려갔다.
근 7년 만에 내려가는 순천이었다. 아버지는 순천역에서 내리면 늘 가는 분식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김밥과 라면을 드신다고?!
울 아버지가, 낯설다;;;
김밥과 라면은 음식으로 취급도 안하던 분이었는데;;;;
2. 아버지가 늘 머문다는 모텔에 갔다.
아버지 : 방 따로 쓰자.
나 : 좋져!
이전에는 방을 같이 썼었다. 아버지는 숙소는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해서 굳이 넓고 좋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옷 갈이입고 나오기 등등 귀찮긴 해도 나도 하루이틀만 참으면 되니까.
그런데 방을 따로 쓰자고 하심. 아이고 신나라.
아버지도 나와 같이 방을 쓰기 불편해진 거다.
아마도 지난 공주 여행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나이 들면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져서 깨게 된다. 낯선 숙소고 야맹증이 심해서 화장실을 못 찾았고, 내가 깨서 찾아드림.
그게 미안하고 신경 쓰였나 보다. 아버지도 안약도 넣어야 하고 이거저거 해야 하는데 내가 옆에 있으면 괜히 불편하기도 할 테고.
방을 혼자 쓰게 된 건 너무 좋았다. 소소하게 시중 들어야 하는 게 많아서 나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2. 16일.
ㅁㅈ이 열두시에 우릴 데리러 순천역으로 온다고 했다. 아버지와 나는 그동안 순천역 근처 개천을 산책했다.
걷다가 아버지가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호두과자 파는 카페에서 호두과자를 한 상자 포장하고 앉아서 잠시 쉬었다.
이게 작년(24년) 11월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나이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운동하고, 한두 시간 걸으니까, 아버지의 상태가, 그러니까 어디 아픈 게 아닌 노환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인한 야맹증으로 초저녁만 되어도 제대로 못 보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낮에는 잘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장수했으니 유전적 유리함이 있을 거라는 것, 자주 보는 만큼 조금씩 악화된 아버지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것, 무엇보다 아버지니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방심하고 있었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팔순 맞아 간 순천 - 24.11.16. (0) | 2025.05.12 |
---|---|
[남도여행] #3. 순천 - 고모와 ㅁㅈ을 만나다 - 24.09.29. (2) | 2025.04.21 |
[남도여행] #2. 강진, 홀로 걷다. - 24.09.28. (1) | 2025.04.20 |
[남도여행] #1. 나주, ㅇㅁ를 만나다. - 24.09.27. (2) | 2025.04.19 |
[아버지와 공주, 봄] #4. 다음 생에도 우리 아빠가 되어 주세요. (0) | 202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