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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전시회] 삶, 우연의 연속 - 김효찬 개인전

by 운가연 2023. 1. 24.

안국에 있는 아트 비 프로젝트에서 하는 김효찬 쌤의 전시회를 보고 왔다.

6년 만의 전시라고 하셨는데, 나는 효찬 쌤 전시회 처음. 안지 6년이 안 된 것 같다.

효찬 쌤은 몇 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에 드로잉 강좌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내 그림을 한 단계 도약하게 해준 강좌. 인생 강좌다.

그림 그리고 싶은데 못 그리는 분 효찬 쌤 강의 들으세요, 두 번 들으세요.

그 강좌로 인해 연필선/밑그림 없이 바로 펜화/수채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림이 훨씬 자유로워졌달까.

실패하는 그림은 없다, 라는 말도 큰 울림이 되었다.

강의를 들으며 '왜' 실패하는 그림이 없는지 알게 되면 그냥 저 문장만 듣는 것보다 훅 와닿는다.

아마추어로, 취미로 그려온 그림이지만, 내 그림은 효찬 쌤의 드로잉 강좌를 듣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인생 강좌였다.

 

쌤이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고 하셔서 찍음.

 

고양이를 좋아하는 지라 특히 고양이 그림에 열광함.
그저 감탄만 ㅠ
이 그림 제목은 '겨울은 봄의 심장' 르 귄의 "(빛은) 어둠의 왼손"이라는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이런 작명/감각 아름답다.

 

효찬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만 꼽자면 그림에서 서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딩 때 미대가려고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구성을 배우는데 '주제'라는 게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원 쌤이 '주제'를 놓고 '부주제'를 그리라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진짜 감이 1도 안 왔다.

아주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해했다.

사물 자체가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나는 '서사'가 없이 사물 그 자체가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거다.

그림의 크기와 칸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주는 서사가 물론 존재하지만,

내게 주제는 문학에서 말하는 서사/주제였던 거.;;

지금도 그림에 공간 구성, 물체만의 주제가 아닌 문학적/시적 느낌의 서사/주제가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물론 문학적 서사/주제가 없는 그림이 있겠느냐만;;; 그런 게 강한 걸 좋아한달까.

 

고양이 기준으로 왼쪽 귀는 의도한 게 아니라 번지기의 조화가 만들어낸 효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그림이 고양이가 되었다고.

멋진 그림이 많았지만 일단 이 정도만 올린다. 23년 1월 28일까지 하니 다른 그림 궁금한 분들은 가보시길. ^^

 

반갑게 반겨 주시는 쌤에게 여러 황금 조언을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 있는 그림은 다 한 달 반 동안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작은 그림은 5~6점, 큰 그림은 2~3점 펼쳐놓고 마르기 기다리는 동안 다음 그림을 그린다고.

압축한 에너지를 쏟는 방식이랄까. 그리는 시간은 짧아도 에너지는 엄청 쏟게 되는 거.

 

일단 번지게 두고, 그 번짐에서 무엇이 보이는 지를 보고 완성시킨다고 하셨다. 바로 위 항아리 고양이 그림 처럼. 고양이 귀가 그려진(!) 모습에 고양이가 되었다고.

 

내게 사진 보고 그리지 마라, (그림) 그만 좀 배우라, 고 하셨다. 빵 터짐. ...

사진 보고 그리는 건 확실히 그림이 느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하나 건져지는 것과 실력이 느는 게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닌 거.

 

빵 터진 건 그만 좀 배우라는 말 때문.

나 또한 작가 지망생에게 종종 하는 말이라는 거. "작법서 그만 사세요." "강의 그만 들으세요." "일단 걍 쓰세요."  ㅋㅋ

 

그림 강의는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글 쓸 때 "워드로 글 쓸 때는 오른손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의 놀림이 중요하죠. 한글을 쓸 때는 손목에서 힘을 빼시고요." 하지 않잖아. ...

그런데 그림은 아크릴이 다르고 수채화가 다르단 말이지. 기법 같은 거....

특히 프로크리에이티브나 포토샵은 사용법을 좀 알아야 한다능?;;;

그래도 쌤 말씀대로 당분간 뭐 배울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진 걸로 내 그림을 도약시키는 데 집중해보려고 한다.

쌤이 "일단 선을 하나 긋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셨다. (참고로 존댓말 쓰심. 낵아 걍 편하게 옮긴 거;;)

 

그렇게 그린 3점.

 

야는 정말 아무 의도가 없었다.
야는 의도가 있었지만 의도대로 가지 않았고 결과물에 만족함.
야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음. *쿨럭* 의도없이 결과에 맡기려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자, 용기!

효찬 쌤 전시회에 다녀오면 에너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고, 기대를 초과하는 큰 에너지를 받았다.

귀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괴발개발 습작 시절에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근자감이 있었다. 나 대박 잘 써. 가능성 만땅. 더 잘 쓰게 될 거 확실함.

그런데 예전에 비하면 훨씬 실력이 는 지금도, 그림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자신이 없다.

누가 칭찬해 줘도 다 빈말 같다;;;;;;;;;;;

그림에 대해서도 근자감을 갖고 열심히 그리기로. ^^ (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