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7년에 다녀온 통영 여행기를 올리기로 했다.
그 전 해에 다녀온 태백 여행기는 올렸으면서, 왜 통영 여행기는 올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래 여행기는 예전에 써둔 여행기를 복붙하면서 수정을 좀 했다.
1. 여행 준비 - 17년 3월 14일
ㄴㄹ와 3월 30일 목요일~4월 2일 금요일까지 통영으로 3박 4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두둥*
여행기를 위한 폴더를 만들려고 보니 이미 통영 여행 폴더가 있었다. 뭐지? 무려 4년전 2013년에 ㄴㄹ, ㅈㅁ과 통영 여행을 가기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헐....
물론 우린 여행을 가기는 갔다. 작년(16년) 가을에는 제주도, 그 전해에는 태백에.
ㅈㅁ은 일하느라 못가고, ㄴㄹ 친구이자 나도 얼굴을 익힌 ㅁㅇ에게도 물었으나 사정이 안 되어 이번에는 둘이 가기로.
17년 3월 14일 화요일. ㄴㄹ가 퇴근하고 우리 집 근처 더 착한 커피로 왔다. 오늘 할 일은 숙소 검색과 동선 짜기.
처음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1) 통영 시청 부근에서 1박
2) 도남해수욕장 부근에서 1박
3) 한산도에서 1박
그런데 동선이 애매했다. 통영 유람선 터미널에서도 한산도행 배가 있을 줄 알았는데 더 북쪽, 즉 통영 시청 부근에 있는 통영항에서만 한산도행 배가 떴다. 그리고 한산도에도 둘이 머물기에 적당한 숙소가 없다.
ㄴㄹ가 열 검색을 때리기 시작. 몇 번의 조정을 거쳐 첫날은 도남해수욕장 부근에서 1박, 남은 2박은 통영 시청 부근에서 하기로 했다.
도남해수욕장 부근에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요즘 뜨겁다는 루지, 통영국제음악당 등이 있다. 첫 날은 비교적 먼 곳에서 자고, 둘째 날 시청 쪽으로 오면 시외버스를 타기에도 편할 것 같았다.
좋았어, 이제 숙소 검색!
ㄴㄹ는 검색하고, 검색하고, 검색한 끝에 결제했다 더 싼 곳을 발견해 취소하고, 다시 결제했다. 한 문장으로 썼지만 시간과 공력이 상당히 들어갔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으니 첫날 숙박한 곳 사장님이 지금은 이 가격에 방 못 잡는다고 했다. 가장 싼 방도 우리가 결재한 금액보다 최소 만 원은 더 내야 했다.
ㄴㄹ를 찬양하라! 찬양하라!
다음은 어떻게 갈 것인가. 둘 다 멀미를 좀 했다. 바로 가는 기차 편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갈아타야 했다. 혹시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대략 낭패. 결국 다 우등고속버스를 예약했다.
이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둘 다 버스에서는 기절했고, 좌석도 넓고 편해서 달리 힘들지는 않았다.
이날 ㄴㄹ는 흥에 겨워 돌아갔다. ^^ (17.03.14.)
2. 짐싸기 - 17년 3월 29일
17년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이 해 가을에 넘들을 보낼 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보고 싶고 미안한 게 너무 많다. 이렇게 미안한 게 많지 않았으면, 그렇게 부실한 집사가 아니었으면, 다음에도 내 고양이로 태어나 달라고, 많이 많이 사랑해주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듬뿍 사랑받길...
내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여행기였다. 이걸 명확히 인지한 건 첫 여행을 다녀오고도 한참 뒤의 일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물론 여행 그 자체, 떠나있는 그 순간, 여행지에서 보고 듣는 모든 걸 좋아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그게 나란 인간이다.
그리고 그림....
2002년,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수첩을 가져갔다. 이거저거 그려 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풍경은 거의 그려본 적이 없었으니까.
미술학원을 다니고, 교재를 사거나 빌려 보고, 모작을 하고, ㄴㄹ, ㅈㅁ과 나들이 겸 나가 그려보며 조금씩 자신을 얻었다. 잘 그리지는 못해도, 풍경 앞에서 빈 종이를 펼쳐 두고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황망함은 사라졌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내게 가장 중요한 짐은 그림도구다. 현장에서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몇 점 못 그린다는 말이다. 욕심껏 다 가져가봐야 짐만 된다. 3박 4일이면 그때 그때 메모를 해두었다가 돌아와 기억에 의지해 여행기를 쓰는 게 가능하니 글을 많이 쓸 수첩은 필요 없다.
스케치북은 제주여행 때 샀던 게 반 정도 남았다. 수채화를 잘 안 먹기는 하지만 아쉬운 데로 쓸 만하다.
요즘 펜화에 사인펜으로 조금 색을 입히는 방식에 끌려서 펜과 사인펜을 챙겼다. 수채화는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통영에 다녀온 적 있는 ㄴㄹ가 색이 예쁜 곳이라고 해서 일단 넣었다.
그 외의 짐은 단순하다. 세면 용품, 휴대전화, 충전기, 옷가지지 뭐. 우리나라는 엔간한 숙소에는 다 샴푸 등속이 비치되어 있으니 로션만 가져가면 그만.
옷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몇 벌 없으니까. 옷을 안 산지 꽤 되었다. 외출복은 돌려 입는데, 매주 캘리그래피 강좌를 가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더라. 뭐, 단벌로 보이면 어떠랴. ㅋ
청바지는 블루진 한 벌, 블랙진 한 벌이다. 한 벌은 입고 가고, 한 벌은 여벌로 가져가기로. 잘 때 입을 옷, 날이 따뜻할 때 입을 얇은 상의 추가. 추위에 대비해 스카프 두르고. 더우면 가방에 넣어도 큰 짐 안 되니까. 바퀴가방에 넣을 것도 없이 작은 가방에 다 들어갔다. 10~20분이면 짐 싸기 끝.
이제 자고 일어나면 통영에 간다. 마음이 어지러운 일들 속에서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해당 지역을 소재로 한 여행기든, 소개 책이든 뭐든 한 권은 읽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했다. 썼다시피 이런 저런 일들도 있었고 여행 직전에 새 작업에 들어갔다. 뼈대 단계에서는 작업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빨리 나올 때 부지런히 만들어 둬야 한다. 며칠 뼈대를 잡다보니 삽시간에 여행 전날이었다.
여행 준비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못할 때도 있는 거라고 나를 달랬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몰랐으면 내가 이걸 놓쳤겠구나, 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어차피 모르고 지나가면 내가 뭘 놓쳤는지도 모를 터. 놓치는 걸 아쉬워하기 보다는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좋은 풍경 보고, 그림 그리고, 여행기 쓰리라.
다음 날 아침 고속터미널에서 ㄴㄹ를 만났다. ㄴㄹ는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다. 어제 퇴근하고 바로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깨 2시간 반 동안 짐을 쌌다고 했다.
피차 이해 못함;;
나 : 엥? 왜 2시간 반이나 걸려?;; 나 20분 걸렸는데?
ㄴㄹ : 어떻게 20분 만에 짐을 싸?;;;
나는 등에 메는 작은 가방 하나에 그림 도구 넣어 가지고 다닐 가방하나로 끝이었다. ㄴㄹ는 바퀴가방, 메는 가방, 가지고 다닐 가방까지 셋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왜 짐 싸는 시간이 다른지 이해했다. ㄴㄹ는 매일 옷을 갈아입는 편이다. 난 3~4일 여행은 걍 한 벌로 버틴다;;; 물론 혹시 옷을 버릴 때를 대비해 여벌옷을 가져가긴 한다. ㅋㅋ 각기 자기만이 짐 싸는 법이 있는 법. ^^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고등학교 때 부터인 ㄴㄹ와 나는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도 극과 극일 때가 있고, 영화 취향도 다른 편,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도 같으면서 다른 지점이 많다. 그런데 이런 다른 점이 또 재미 아닌가. 그게 왜 별로야? 그게 왜 싫지? 때로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 하며, 아, 그걸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아는 것도 소소한 재미랄까. (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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