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여행 #1 - 진짜 가자!
태백여행 #2 - 태백이답!
태백여행 #6 - 바람의 언덕(현재글)
아침은 여유있게
오전에 해바라기를 때리고, 오후에 풍력발전기가 있는 바람의 언덕에 가기로 했다. 정식 이름은 매봉산 풍력발전 단지.
그러나 우리는 셋 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일어나긴 했는데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번 셋이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나는 그럭저럭 여행지 정보를 찾아왔고, ㄴㄹ는 가는 방법을 잽싸게 검색하고, ㅈㅁ이는 길눈이 밝았다. 그리고 셋 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아니었다. 여행 친구가 되려면 아침형과 저녁형이 맞아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느즈막히 일어나는 사람들은 서로 힘들다.
가장 튼튼한 위장의 소유자, ㅈㅁ은 눈 뜨자마자 바나나와 달걀을 먹었다. 우린 그저 감탄. 나도, ㄴㄹ도 뒹굴다 슬슬 일어나 사과, 바나나, 달걀을 먹었다. 어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에 커피도 부어 마시고, 11시가 넘어 모텔을 나왔다.
12시 20분에 바람의 언덕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오는 버스는 3시 10분과 6시 10분인가 그랬다. 기차가 6시 20분 차니, 바람의 언덕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해바라기를 때리기로.
내가 해바라기를 보러 간다, 를 해바라기를 때리고, 아침을 먹고를 아침을 때리고, 로 하니 ㄴㄹ가 자꾸 웃었다.
ㄴㄹ : 또 때려? 때리지마, 좀. ㅋㅋ 다양한 동사를 활용해.
점심을 때리러(!) 갔다. 순댓국밥을 먹느냐, 기사식당에 가느냐. 셋 다 크게 땡기는 것도, 꺼리는 것도 없어 메뉴가 많은 기사식당에 들어가 각기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불 모자라니 한 테이블은 하나로 통일해달라고. 그래서 황태 해장국을 때렸다.
밥을 먹는 중에 ㅈㅁ이 우리 셋 다 먹는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ㄴㄹ는 국에 말아먹는다. 나는 밥을 먹고 국을 먹는다. ㅈㅁ은 밥을 떠서 국에 적셔 먹는다. 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이렇게 차이가 나나.
아침으로 이거저거 먹은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는데, 놀랍다 ㅈㅁ,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나는 국물 먹고 밥은 반 정도. ㄴㄹ도 밥은 남겼는데...
ㄴㄹ : (ㅈㅁ에게) 대단하다. 나도 잘 먹는 편인데... 이야, ㅈㅁ!
ㅈㅁ도 나이가 들며 살이 좀 붙었지만 그래도 먹는 양에 비하면야... 부러운 체질이다.
우리 옆자리는 어쩐지 묘한 느낌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부부로 보이지 않았고, 여자는 화장이 과한 데다 어쩐지 남자한테 굉장히 굽신거렸다. 어떤 관계인 걸까? 어쨌든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나와서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다가 ㄴㄹ가 말한 산 높이 솟은 풍력발전기를 보게 되었다.
ㄴㄹ : 내가 어제 말한 게 저거야!
나 : 대박, 대박, 진짜 대박!!!
어제 용연동굴 보고 시간이 어정쩡해 바람의 언덕에 갈까 했는데 시간도, 날씨도 애매했다. 게다가 ㄴㄹ가 동굴 가는 셔틀 버스에서 멀리 산 위로 풍력기가 있는 모습을 봤는데, 라퓨타의 거대신병을 보는 것 같았다고, 흐린 날 빠듯하게 가는 게 아니라 다음 날 여유 있게 가면 좋겠다고 한 것. 아, 그게 저거구나. 진짜, 대박...
10분 정도 가서 휴게소에서 내린 다음 셔틀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택시를 타면 고정 금액 8,000원에 정상까지 간다고.
하필 점심시간에 걸리는 바람에 셔틀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식사 중이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셔틀버스 출발. 거의 끝에 타서 서서 가야 하나 했는데, 접힌 의자가 있었다. 이거 편리하네? 옆좌석에 붙어 있다가 사람이 타면 펼치고, 내릴 때는 도로 접는다. 오오, 공간효율적이군.
오래 가지 않아 도착. 기대 이상의 신세계였. 초록 장미 같은 배추들이 늘어선 중에 날개가 셋 씩 달린 풍력 발전기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숙소에서 나온 지라 가방을 다 들고 있었지만, 우린 용감하게 걸었다. 가는 내내 감탄사를 뱉었다. 여기 조으다, 정말 조으다, 진짜 조으다.
우린 완전 흥분해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따위 생각하지 않고 걸었다.
모델로 수고해준 잠자리. 고마웠어. ^^
사진 찍는데 누리 손이 들어와 얻어걸렸다.
여기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3시 10분 다음에 6시 10분으로 텀이 길었다. 우리 기차 시간은 6시 20분이라 3시 10분 버스를 타고 가서 뭔가 맛난 걸 때리든, 해바라기를 때리든 하려 했는데 여기가 너무 좋아서, 여기서 놀다가 택시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기로. 첫날부터 엇갈리던 해바라기는 결국 못 때리고 가는고나.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여기가 너무 좋았다.
우린 환호하며 사진 찍고, 걷고를 반복하며 풍경을 즐겼다. 한참을 걷는데 우리 외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입구에서 잠깐 보고 가나보다했다.
ㄴㄹ : 아까 어떤 사람들은 여기 올 때 탄 셔틀 버스에 그대로 앉아서 내려간다 그러더라. 여기 이렇게 좋은데…….
그러게, 여기 너무 좋은데. 그렇게 정줄 놓고 걷다가...
ㄴㄹ : 이 방향이 아닌가봐. 여기서 더 가면 내려가는 길인 것 같아. 정상은 이 쪽이 아니라 입구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이었어.
나 :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
어쩔까 고민하는데 택시 한 대가 우리를 지나쳐갔다.
나 : 택시에 관광객있던데? 이 길 맞는 거 아냐? 아까 택시 타면 정상까지 간다 그랬잖아.
고민하다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듯 해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 때 앞에서 베테랑 여행자의 기운을 풍기는 일행 넷이 걸어왔다.
나 : 이 길 맞나요?
넷 중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가 대답했다.
아저씨 : 이 길 맞아요. 다른 길은 더 돌아가요.
그래서 우린 다시 돌아서서 걸었다. 네 분은 우리를 앞질러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점점 어깨가 아파왔다. 돌돌이를 끌고 있는 정명이 말했다.
ㅈㅁ : 네 짐 내 돌돌이 위에 올릴래?
나 : 고마운데.. 그럼 너 팔 아플 걸? 돌아가며 끌까?
그래서 내 짐을 정명 짐 위에 올리고 돌아가며 끌기 시작. 그렇게 걷는데 넷 중 여자분이 앞에서 모습을 나타내더니 손으로 엑스자를 그렸다.
여자분 : 이 길 아니예요. 내려가는 길이네.
우린 순간 ‘빵’ 터졌다. 이거 이 산이 아닌가벼, 아까 그 산이 맞는가벼, 지? 돌아서서 걷는데 넷 중 두 분이 우리 앞서서 걸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 아니예요~
여자분 : (이 길 맞다고 한 분이) 부끄러워서 앞질러 못 걷겠대요.
우리보다 걸음이 빠른데, 차마 우릴 지나치기 미안하셨던 것. 우린 또 웃음이 터졌다.
우리 : 괜찮아요, 지나가세요.
우리 반응을 보고 문제의 아저씨가 다가와 짐을 들어준다고 하는 걸 괜찮다고 사양했다. 네 분은 우릴 앞질러 갔다.
ㄴㄹ : 귀여우시다. 보통 괜히 무안해서 엉뚱한 소리하고 그러는데.
나 : 그래도 괜찮았어. 여기 오면서 너무 좋았잖아.
ㅈㅁ과 돌돌이를 교환해 내가 끌기 시작.
ㅈㅁ : 꾸이맨 내놓아라.
이 말 한 마디에 우리 모두 빵 터졌다. hp를 충전해야 하는 것이다. 어제 술안주로 먹고 남은 꾸이맨을 꺼내 건넸다. 그렇게 가방을 끌었던 사람은 가방을 내려놓으면 꾸이맨으로 응급처치. ㅋㅋ
마침내 시작점으로 돌아와 정상을 향해 가려니 오르막길이었다. 이 때쯤 ㄴㄹ도 가방 몰아주기에 동참했다.
ㄴㄹ 가방은 돌돌이 손잡이에 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돌돌이 손잡이에 걸었다가 뺄 때 잡으라는 손잡이도 있었고. 메면 등가방인데 풀면 안 쪽은 돌돌이 가방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탐나는 가방이었다. 어떻든 가방이 셋으로 느니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나 : 힘들 땐 힘들어도 가방에서 벗어났을 때 주는 자유가 있잖아.
ㄴㄹ : 나 자유 포기할래.
그래서 중간에 ㄴㄹ는 다시 자기 가방을 들고 정명과 내가 번갈았다.
정명 모자 빌려 가방 먼지 터는 ㄴㄹ. 홈런이오~
보기만 해도 무겁다. 꾸이맨 필수. 이 와중에 그냥 교대가 아니라 1박 2일 복불복처럼 가위바위보할까도 했었다.
뉘집 처자인가~
이십 몇 년 지기 정도되면 말이지, 새삼 사진 찍는다고 붙어서 친한 척 하지 않아.
가만히 서 있어도 한 앵글에 잡힌다는 걸 알거든.
풍경은 너무 좋은데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눈에서 보는 만큼 찍히지 않았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언제고 디카 강습 꼭 들어야지.
(2020년에 5년이 지난 이 여행기를 다시 보며, 내 사진 실력도 무작정 찍어대는 것도, 여행 다녀올 때마다 사진 강습 들어야지, 라는 다짐도 그대로라는 사실에 잠시 빵 터졌다.)
그리고 ㄴㄹ의 표현력에 다시 감탄. 어제 누리가 여긴 구름이 많다고 했다. 나는 날이 흐려 그렇지 뭐, 대충 넘겼는데..
ㄴㄹ : 여기가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가까워.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구름이 가까웠고, 풍경이 달리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가. 정말 구름이 눈 높이에 떠 있었다. 황지연못이 해발 600m에 있었고, 우린 더 올라왔으니까. 산들이 그냥 멀리 있는 풍경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산을 덮은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ㄴㄹ : 산은 원래 멀리서 보는 거잖아. 근데 산이 굉장히 가까워 보여. 그리고 산보다 (당연히) 작은 풍력발전기가 어마하게 크게 보이잖아.
그 시점의 차이로 인해 이 풍경이 이렇게 경이로워 보이는 거였다. 이야, 누리, 대단한데?
힘겹게 오르는데 내려오던 택시가 멈췄다.
택시기사 : (안쓰러운 듯) 그거 끌고 정상까지 오르려는 거예요?
ㅈㅁ : 네, 힘들어요.
ㄴㄹ : 뭐, 여기까지도 가지고 올라왔어요.
택시기사가 간 후...
ㅈㅁ : 여기 사람들 친절하다.
나와 ㄴㄹ는 또 웃음보가 터졌다.
ㄴㄹ : 택시 타라는 거였잖아.
ㅈㅁ : 그런 거였어?
아, 이 유쾌한 친구들........
여기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ㅈㅁ이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것.
ㅈㅁ : 난 여행만 오면 이래. 저번에 산에 올랐을 때도 떨어뜨려 액정 나갔지, 캠핑 갔다가 바닷물에 빠뜨렸지…….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오르다보니 마침내 정상이 다가왔다. 마지막은 계단이었다. ㅈㅁ은 돌돌이를 가지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오르지 않으려고 했다.
나 : 여기까지 와서 아깝잖아. 내가 계단에서 들어줄게.
ㅈㅁ : 그래.
역시, 사양하지 않는 게 친구. ㅋㅋ
ㄴㄹ : 저기다 가방 감추자. 누가 들고 가겠어?
누리 제안으로 돌돌이를 계단 아래 돌 뒤에 숨기고 정상으로 갔다.
정상이답!!!!!
마침내 도착한 정상은... 아쉬웠다. 뭐랄까, 풍력발전기의 밑둥이 보이자 환상이 깨졌달까. 산 위에 솟은 모습이 더 좋았다. 딱히 마음을 움직이는 풍경이 나오지 않았다. 우린 잠시 쉬다 그림 그릴 곳을 찾아 내려갔다. 택시 아저씨가 짧은 길을 가르쳐주며 말했다.
택시기사 : 택시 타면 더 빨라요.
감사합니다. ^^
우린 걸어서 내려갔다. 비탈이 가파른 길이라 돌돌이를 들고 내려가야 하는 ㅈㅁ이 고생 좀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할 일도 버려두고 스케치 여행을 왔는데 밖에서는 그림 한 점도 제대로 못 그리고 돌아갈까봐 점점 ㄿ초조해졌다. 그림 그릴 곳을 이리저리 찾다가 ㅈㅁ이 난간이 있는 곳을 발견. 그리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 : ㄴㄹ가 우산 펴면 그칠 거야.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도 비가 내렸다. 애매하게 내려 나랑 ㅈㅁ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ㄴㄹ는 우산을 폈는데 곧 비가 그쳤다.
ㄴㄹ : 나만 우산 꺼내면 비가 그쳐.
이번에도 그 마법이 통할 것인가? ㄴㄹ는 우산을 꺼내 그림 그리는 정명이를 받쳐 주었다. 비가 그쳤다! *두둥*
ㄴㄹ가 우산을 접자 잠시 후 다시 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ㅈㅁ : (비들이) 쟤 우산 접었다, 이 때다, 내려가자, 한다.
나 : 언능 다시 써.
그래서 ㄴㄹ가 다시 우산을 펼치니 비가 그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쉬운 시간이 지났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 언덕을 내려와서 셔틀버스에 올랐다. 빈자리가 운전석 바로 뒤였다. 잠시 후 차에 오른 기사 아저씨가 깜짝 놀라 물었다.
기사 : (정명이 돌돌이를 보고) 이 가방 뭐예요?
ㅈㅁ : 아, 제 거예요.
기사 : 이 가방을 들고 정상에 갔다 온 거예요?
ㅈㅁ : 그게 그렇게 높을 줄 몰랐죠.
기사 : 휴게소에 맡겼어야죠.
ㅈㅁ : 아.......... 그러게요.
여기서 잠깐. 휴게소에 가방을 맡기지 못한 이유.
1) 이렇게 멀지 몰랐다.
2) 어제 모텔에 가방 맡기려는데 안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아예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기사 : (마이크에 대고) 융통성이 있어야죠, 융통성.
나 : 아저씨, 그걸 마이크에 대고 말하실 것 까지야.............
우리 셋은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정명의 가방을 구박해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 : 풍력 발전기가 돌지 않는 이유 네 가지가 있는데 뭘까요? 다 맞추는 분 상품있습니다.
누군가 : 바람이 안 불어서요.
아저씨 : 네, 맞습니다.
나 : 충전이 다 되어서요.
아저씨 : (놀란 듯) 그건 전문가가 아니면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순간 떠올랐다. 이래 보여도 SF 작가............ 아무 상관없잖아! *쿨럭*
나머지 두 가지는 고장 났을 때, 태풍처럼 너무 센 바람이 불 때였다.
아저씨 : 어제 초등학생 하나가 아주 귀여운 오답을 했어요. 배추 추울까봐.
귀, 귀엽잖아!!!!!
아저씨는 그 외에도 흰 나무는 자작나무라거나, 여기 배추밭이 42만평이고 땅 주인은 13명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했다. 13명도 퀴즈였는데, 맞춘 사람에게는 본인의 사진에 사진을 해주겠다고. ㅋㅋㅋㅋ 도착할 무렵 요즘 태백시가 많이 어려우니 소비 많이 하고 가달라는 말로 마무리. 유쾌한 아저씨 덕에 즐거웠다.
(2020년에 다시 보며. 본인의 사진에 사진을 해주겠다는 게 무슨 말이지? 뭐 잘 못 쓴 듯 ㅋㅋ)
기차 시간까지 한 시간 여가 남았다. 순댓국을 먹으려다, 낙지왕짬뽕집으로. ㅈㅁ이 짬뽕 먹고 싶다기에 가자고 하니 정말 활짝 웃었다. ㅋㅋ
ㄴㄹ는 자장면. ㅈㅁ은 낙지해물왕짬뽕, 나는 낙지해물짬뽕. 왕짬뽕과 그냥 짬뽕은 해물 양이 다르더라. 면 양은 같고. 고량주를 시켰는데 없어서 소주를 시켜 ㅈㅁ과 나눠 마시고... ㄴㄹ에게 술 너무 마신다는 잔소리 살짝 듣고. ^^;
태백 음식들이 다 담백한데 매운 걸 먹으니 좋았다. 나는 도대체 왜 그랬는지 배가 터지도록 밀어 넣어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ㄴㄹ랑 ㅈㅁ이 아이스크림 후식을 때리러 간 동안 나는 앉아서 허덕허덕 쉬었을 정도.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 두어 시간 자다 깨니 ㅈㅁ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ㅈㅁ : 배부른 건 좀 괜찮아?
아, 진짜 정말............ 막판까지 미치도록 웃었다. 그걸 무슨 "몸살감기는 좀 어때?" 라는 말투로 물어보나. ㅋㅋㅋㅋㅋㅋㅋ
4시간에 걸쳐 서울로 돌아왔다. 청량리 역에서 셋 다 1호선을 타고 가는데 신설동에서 ㅈㅁ이 방송을 듣더니 말했다.
ㅈㅁ : 여기서도 2호선 갈아탄대.
나 : 헤에? 여기가 빠르려나?
ㄴㄹ : 여기가 빠를 걸?
문이 열린 상태라 더 빠른지 어쩐지 확인할 겨를 없이 내렸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어제 집을 나오기 전에 검색했을 때는 시청에서 갈아타라고 나왔고, 보통 앱에서 추천하는 게 가장 빠르지 않나?;;
2호선 갈아타는 곳에 가서 보니 다음 역이 용두란다. 게다가 방향도 한 방향만 있다. 용두? 2호선에 그런 역이 다 있어? 문은 열려 있는 상태고... 건너편은 없고... 일단 타서 확인하니, 아, 2호선 성수에서 신설동을 오가는 작은 노선이 있는데 거기였다. 아, 놔...
ㄴㄹ야,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빨리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
작년 혼자 정동진 다녀올 때도 청량리에서 거꾸로 한참을 갔는데; 사고가 끊이질 않아.
자리에 앉아 잠시 어디쯤 왔나 멍하니 앞을 보는데 맞은 편 아줌마가 든 가방이 낯익었다. 내 가방은 길에서 산 키플링 짝퉁이다. 그냥 비슷하게 따라한 건줄 알았는데, 내 앞에 똑같은 디자인의 진품이 있었다. ............... 와방 부끄러웠다;;;;
집에 와 가릉이, 연이에게 뻐뻐하고, 오는 길에 사온 진로 포도주 1병과 맥주 1병을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여행은 동행이 중요하다. 많이 양보해주고, 배려해준 친구들 덕에 재미났다. 언제 또 가잡! 다음엔 2박으로! 꺄- (1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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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난 여행 후기를 보니 감회가 새롭구나. 이후 ㄴㄹ와 둘이서 3박 4일로 통영을 한 번 다녀오고, ㅈㅁ과 셋이 4박 5일로 제주도도 다녀왔다. 혼자서도 국내여행을 했고, 작년(2019년)에는 베트남도 다녀왔다.
올해 여행 계획도 다 짜뒀었는데 코로나가 날뛰고 있다.
내 사랑스러웠던 천사 둘은 이제 없고, 예기치 못했던 인연이 다가와 삶의 기쁨이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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