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1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1 - 가즈아!(현재글)

언제부턴가 연말과 연초가 힘들었다. 연말에 힘든 일이 생기고,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지만, 연초에 연말보다 더 큰 일이 터지고는 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연말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연초에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그렇게 연초가 정신없이 흐르고, 봄이 왔다. 새 장편을 쓰는 동안 교정본을 받았고, 넘겼고, 장편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새 장편을 쓰던 어느 즈음에 이 원고를 마치면 반드시 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여행 직전에도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산 같은 언덕을 넘어야 했다. 진짜 간다, 내 반드시 가고 만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해외도 가려면 갈 수 있었는데,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너무 헐렁하게 있다 오면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전주로 정했다. 두어 번 스친 적은 있는데 마음에 흡족할 만큼 돌아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으면서 어떻든 가본 적은 있기에 친숙하게 느껴졌다. 좋아, 전주 너로 정했다.

집에 전주 관련 책이 있었다. 전주 여행 준비겸 읽어볼까, 하고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책이 들어오면 앞에 포스트잇을 붙여, 언제 샀는지, 누가 줬는지, 언제 읽기 시작해 다 읽었는지 따위를 적어놓고는 하는데, 2년 전인 16년 7월에 "이 달 안에 전주 여행 계획 중. 나혼자 2박 3일" 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년 전 읽다 다 못 읽었던 기억만 있지, 그때도 여행을 준비했는 줄은 몰랐다. 이때는 못 갔다. 왜 못 갔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못 갔겠지?

2년이 지나 다시 "이 달 안에 전주 여행 계획 중."이라고 쓰며 이번에는 반드시 가리라 다짐했다.

처음에는 2박 3일을 계획했다가 아니다 3박 4일로 하자, 에서 에라 4박 5일이면 어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여행을 가겠어, 하다 보니 문득, 전주만 보고 올 필요 있나? 싶어졌다.

여행 직전까지 너무 바빠서 여행 준비도 제대로 못해 전주 외에 또 어딜 가면 좋은지 감도 오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에서 기본 정보는 다 찾을 수 있지만, 그것도 뭘 찾으려는지 목표가 확실할 때지. 무작정 떠나려니 막막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보니 차없이 떠나는 국내 여행에 관련된 책이 있었다. 오, 좋고나. 적어도 여기 있는 도시는 차없이도 갈 수 있단 말이지? 전자책으로 질렀다.

폰이 바뀌니 좋긴 좋구나. 전자책도 편하게 볼 수 있고. ^^

짐을 쌌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1) 혼자 쉬자 2) 그림 많이 그리자, 두 가지였다.

1) 혼자 쉬자

나는 여행에 가서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폰에 메모를 할뿐, 그때 그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는다. 사진을 올리면 누가 좋아요, 라도 눌렀는지 확인하게 되는데 그럼 혼자 떠난 여행 같지 않다고 할까.

홀로 떠나는 여행의 핵심은 고립이다. 일상, 사람, 집을 떠나 오롯이 혼자 있는 것.

2) 그림 많이 그리자

마음 한 구석에 늘 그림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하루에 다만 30분이라도 그림 그리는 데 시간을 쓰려 했는데 5월 말 마감을 달리느라 중순부터는 그림 포기. 다른 일도 다 안 하고 글에만 집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림을 많이 그리기로 했다. 스케치북도 두 종류나 샀다! 둘 다 꽉 채워 오리라 굳은 다짐을 했다.

짐은 전날에 쌌다. 여행짐 별 거 있나. 속옷, 양말, 여벌 옷, 잠옷, 세면도구. 우리나라 여행은 엔간한 숙소에는 다 샴푸, 치약, 수건이 구비되어 있어 편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림도구!

욕심껏 다 챙겼다. ......

50색 마커, 82색 프리즈마 색연필, 작은 수채화 킷, 펜, 붓펜 여러 개. ^^

7박 8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짐에 대해 짧게 쓰자면 이렇다.

요 몇 년 친구들과 몇 번 여행이나 하루 걷기 나들이를 갔다. 그때마다 스케치북을 챙겼고, 여행 때는 새로 샀다. 그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고, 여행 일기도 쓰곤 했다.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크기의 하드커버에 적당히 두꺼운 종이가 있는 스케치북을 샀는데 이 종류는 앞으로 사지 않기로 했다.

수채화를 하자니 애매하고, 들고다니기에는 무겁다.;;;

이번 여행 때 왠지 얇고 손바닥만 한 수채 스케치북이 땡겨 하나 더 충동 구매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중에는 두꺼운 건 놓고 다니고 이 아해만 가지고 다녔다. 얇은 걸로 여러 개 사 가자.

펜화나 연필화를 연습해야 한다. 걸으면서 돌아다니면 힘들고 지쳐 생각보다 수채화 도구 만지기 쉽지 않다. 수채화한지 오래 되어 가물가물하기도 했고;;;

그래도 도구 다 가지고 간 건 잘한 일이다. ^^

앞으로도 다 가지고 다녀야지.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옷은 너무 많이 가져갔다;;; 챙길 때는 괜히 부족할까 걱정되고 욕심이 나 챙겼는데 한 번도 안 입은 옷도 있다. 여벌 바지는 한 벌로 충분하다. 장기 여행은 세탁하며 돌아다니는 거고...

7~8년 정도 된 돌돌이. 가방 자체의 무게가 있는 편이고 작다.

짐을 욱여 넣으며 더 큰 걸 사야했다 싶다가

아니다, 이 가방 안에 안 들어가는 건 안 가지고 가는 게 맞다, 로 마음을 바꾸었다.

덕분에 옷 몇 벌 뺐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

옷가지, 그림도구 다 들어갔다. ^^

여행 때 들고 다닐 가방은 많이 낡긴 했는데 편하고 가벼워 그냥 들고 갔다. 패션쇼 하러 가나, 여행가는 거지. ㅋ

그래도 전에는 여행갈 때는 막 입어도 되고, 망쳐도 아깝지 않은 옷을 골랐는데 이번에는 원피스를 두 벌이나 넣었다. 원피스 입고 돌아다니니 그냥 내 기분이 좋더라.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서 이때 아니면 언제 바람 쐬어줄까 싶기도 했고. ^^

버스표 예약도 안했다. 평일이고 가는 버스 많으니 일어나서 편한 시간에 가기로 한 것.

좀 늦장 부린 감이 없지는 않은데, 쉬러 가는 거다, 편하게, 편하게 모드로 했다.

여행을 가려고 집을 나서니 늘 다니는 골목조차 낯설고 기분좋게 느껴졌다.

동네 사람드으으을~ 저 여행가요오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ㅋ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건 3시 14분. 20분 차 타려다 급한가 싶어 30분 차로 샀는데, 내가 타야 하는 9번 터미널이 코앞이었다. 푸하-

10분 차이다. ^^

잠시 낙서하며 멍 때리다 버스에 올랐다.

11년만의 혼자 여행이었다. (18년 6월 1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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