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일치기

양평 - 강과 오솔길을 따라 걷기, 빵공장은 덤

by 운가연 2021. 8. 26.

21년 8월 25일.

 

1. 고독이 용트림 쳤다.

 

재택근무여서 워낙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는 편도 아니다.;;;

그래도 코로나 이전에는 한두 달에 한 번은 지인을 만나 속풀이 수다 시간을 가졌는데, 코로나 이후 끊겼다;;

만나려면 못 만날 건 아닌데 여러모로 신경 쓰이고 힘들어졌다.

 

작업을 마친 밤이면 으레 허허롭기 마련인데 갈수록 심해졌다.

 

그래, 이열치열, 이한치한. 여름에는 사우나를, 겨울에는 아아를, 고독에는 더 큰 고독을!

혼자 당일치기로 어디든 다녀오는 거야!

 

2. 양수리 빵공장

 

어쩌다 양수리 빵공장 소개 게시물을 읽었다. 충동적으로 검색해 보니 양평에 있었다. 오오, 북한강과 남한강이 흐르는 곳이네!

 

양수역에서 내려서 강을 따라 걸으며 산책을 하다가 에쁜 빵집에서 달달한 빵과 커피를 먹고 마시며 피로를 풀고 돌아오면 딱이겠고나!

 

3. 어제 마감을 하나 했다.

 

이거야! 마감을 한 다음 날 기분 전환 겸 당일치기. 이야말로 작가의 로망아닌가!

 

4. 그림도구와 먼 길 가는데 읽을 책을 챙겨 집을 나섰다.

 

우리집에서 양수역까지는 지하철 역으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지하철 노선도가 알려주었다.

 

가즈아! 가는 거야!

 

5. 양수역 전역은 운길산 역이었다.

 

운길산 역에서 책을 덮었다. 책 읽으며 정줄 놓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게 한두 번이 아냐;;

책을 덮고 보니 건너편 창문으로 북한강이 보였다. 강이다! 우와, 강이다아아아!

 

우리집에서 한강 가깝다. 한강도 강이다. 그러나 기분전환이란, 모름지기 거리도 중요한 것.

가끔 서울에 여행온 셈치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볼까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건, 바로 이 거리 때문이다.

집에서 먼 곳에 다녀오고 싶은 거라고.

게다가 한강은 한때 합정에서 살 때 산책 삼아 많이 다녔지;;

 

양수역에서 내렸다. 오래된 아파트, 야트막한 건물들, 텃밭들... 서울을 벗어났구나.

살던 지역을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지하철 역을 나오니 양수리에 수풀로 양수리라는 자연생태 공원이 있다는 팻말이 보였다. 오, 저길 둘러보면 되겠고나.

양수리는 아주 작은 섬으로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 곳이다.

 

양수리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물은 거의 말라 보이지 않았다.

 

운길산 역으로 가는 양수철교. 이 다리는 건너지 않았다. 어쨌든 다리가 나왔는데 사진을 찍지 않으면 여행자로서 직무유기 같단 말이지. 낄-

북한강을 따라 작은 섬인 양수리를 한바퀴 돌면 어떨까 싶어졌다. '두물머리 물래길 산책로'라는데, 오솔길들이 잘 나 있어서 자연스레 걷다 보면 산책로를 따라 걷게 되어 있었다.

 

느리게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해서 차없는 뚜벅이들에게 좋은 곳이었다.

 

때로는 북한강이 보였고, 때로는 양쪽에 나무, 꽃, 연잎을 두고 걸었다. 연잎을 많이 기르는 것 같았다.

 

양수대교

 

예쁜 둘래길

 

 

북한강이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하고 묻는데 나는 둘 다 아니라는 걸, 나는 강이나 호수를 따라 걷기를 좋아한다는 걸 이번에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강이 좋다. ^^

 

강을 따라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을 걷다 보니 몸에 쌓인 독소가 모두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사람을 너무 못 만나서 힘들었는데, 사람이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게 힐링이 된다니 신기했다.

 

아, 인간의 양가성이여. ㅋㅋ

 

앞서 가던 아이.

저만치 앞서 가던 고양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흠칫 놀라 종종걸음을 쳤다.

 

나 너, 따라가는 거 아니야. 긴장할 필요 없는데;;;

 

고양이는 어떤 집으로 슥 들어갔다. "사진 찍어도 되니?" 하고 물으니 나와서 날 잠시 바라보았고, 사진을 찍고 나니 오른쪽 수풀로 들어갔다. 사진 찍게 해줘서 고마워.

 

이번 외출에서 내가 바란 모든 것.

걷다가 목재로 된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났다. 아마 끝에 포토존이 있지 않을까. 슬슬 피곤해지던 참이라 들어가볼지, 말지 고민하다 들어갔는데, 오길 정말 잘했다.

 

사진에 보이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 푸르른 녹음, 고요한 쉼터, 이번 나들이에서 내가 바란 모든 게 들어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뒤 나무 밑에 의자가 있는 풍경에 꽂혀 몇 장 더 찍었다.

걷다 보니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여긴 제법 사람들이 보였다.

 

조형물처럼 놓인 나무
오리들

 

연꽃들

연꽃을 보자, 몇 년 전 공주와 부여 여행을 다녀온 뒤, 7~8월 연꽃이 만개할 시기에 다시 와야지, 라고 생각한 기억이 났다. 결국 못 갔지. 시기에 맞춰서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맞추려다 일정만 꼬이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양평에 와서 예기치 못하게 연꽃을 봤다. 몇 년 전에는 조금 일렀고, 이번에는 조금 늦어서 한가득 피어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본 게 어디인가.

 

두물머리 둘래길을 따라 걷다가 '세미원'이라는 게 보였다. '열수주교'라는 고전적인 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곳이다. 입장료는 5천원인데 오늘 문화의 날이라 3천원이라고 했다.

 

잠시 고민했다. 많이 걸었다.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양평 멀지도 않은데 다음에 올때 들를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으나 들어가기로 했다. 인생에 다음이라는 건 쉽게 오지 않는다. 어렵게 다시 갔는데, 첫사랑은 다시 안 만나는 게 좋다는 말처럼, 처음처럼 감흥이 오지 않아 상심하기도 했다. 이제껏 본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 3천 원을 내면서까지 들어가야 하나, 가 다시 못올 곳에 3천원을 못 쓰랴, 로 바뀌었다.

 

요런 다리를 건너서 들어가야 한다.

다리가 좀 흔들거리고, 턱이 많아서 넋놓고 걷다가 넘어질 뻔. ㅋ

 

강에 부레옥잠이 떠 있었는데 물살에 따라 흔들려서 오래 보면 멀미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다, 부레옥잠. 초딩 때 부레옥잠이 물에 뜨는 원리를 배울 때 반 갈라서 물에 넣고 눌러, 안에 있는 공기가 밖으로 나오는 걸 확인하는 수업이 있었더랬지. 그래서 잊히지 않는 이름, 부레옥잠.

 

다리를 건너가면 야트막한 한옥담이 나오고, 안에는 작은 한옥이 있다. '세한정기'라고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를 기본으로 세미원의 한 부분에 정원을 조성하고 이름을 '세한정'이라고 지었다고.

 

늘씬한 소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꽂혀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작은 한옥 구조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꾸민 의자, 연꽃들로 가득찬 아담한 곳이었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는데 살짝 노을이 졌다.

 

다리는 찍어야해. ㅋ

돌아갈 시간이었다. 양수리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건너편에 반짝이는 건물이 보이더니, 가까워지자 '양수리 빵공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내 최종 목적지였고나. ^^

 

양수리 빵공장은 굉장히 큰 건물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시간이 늦어서인지 2층까지만 한다고 했다. 비싼데 비싼 값을 하는 맛난 빵집이라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간 시간에는 반 이상이 품절되어 있었다. 그래도 남은 빵들도 다 군침돌아서 고르는데 애먹었다. 빵 좋아한다. ^^

 

처음에는 2층에서 바깥을 보며 빵을 먹을까 하다가, 야외에도 자리가 있는 걸 발견, 야외로 옮겼다.

 

카페라떼. 치즈케이크 하나. 견과류가 들어간 빵 하나. 크림과 망고가 올라간 크로아상 하나. 혼자 빵집에서 지르기에는 거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 있잖아, 사치하고 싶은 날. ㅋ

 

빵집에서는 크로아상만 먹었는데, 크림이 가운데에 몰린 게 아니라 가장자리까지 풍족했고, 적절하게 달고 맛있었다. 단 걸 좋아하지만, 혀에 닿는 순간 설탕맛이 직격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망고도 많았고 역시 흡족했다.

 

치즈 케이크는 집에 와서 좀 먹었는데 부드럽고 좋았다. 견과류가 올라간 빵은 내일 먹을 듯.

 

피곤했지만, 2시간 가량 걷는 내내 짊어지고 온 펜과 종이를 꺼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ㅋㅋ

 

풍경화는 여전히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흑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중에 모기에게 뜯기면서, 그래도 한 점은 그려야 한다, 고 꾸역꾸역 그렸다. ㅋ

 

강이 보이는 한적한 오솔길을 녹초가 되도록 걷고, 야경을 앞에 두고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그림까지 그렸다. 몸에 쌓인 독소가 모두 배출되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두웠다. 물에 비친 조명으로 북한강이 옆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걷다가 고양이를 만나 안녕, 하니 야옹하면서 앵겼다. 헉;; 나, 아무것도 없는데 ㅠㅠㅠㅠ 이어 형제나 가족이겠다 싶은, 동글동글한 얼굴이나 약간 짧은 꼬리나 체형이 꼭 닮은 두 넘이 더 나타나더니 야옹야옹 울면서 날 따라왔다. 으악;;;;

 

결국 따라오다 포기하고 갔지만...;;;

 

지하철 역에 도착.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다. 고심 끝에 고양이 캔 3개를 사서(2+1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캔을 따 주니 고양이들이 더 나타났;;;; 셋 다 따주고, 빈 캔은 집에서 버리려고 챙겨왔다.

 

집에 돌아와, 내 귀여운들 밥 주고, 뻐뻐해 주고, 검색해보니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에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곳들이 있더라. 종종 이런 시간을 가지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