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에게는 기질이라는 게 있다.
비교적 단단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한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신체조건이 163센티미터까지 자랄 사람이,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165 혹은 167까지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180센티미터까지 클 수는 없듯, 타고난 기질도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는 완화할 수 있지만, 안고 살아야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타고난 기질이 다소 불안정한 지라, 순서에 기대는 편이다.
일 -> 집안일(선택) -> 독서(필수) -> 그림 그리기 or 그림 강좌 듣기(에너지가 남으면)
이 순서를 지키기 위해 꽤나 노력한다. 습관에 기대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도 그럭저럭 하루 작업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반복되는 일상이 날 나가떨어지게 하면 여행을 가거나 뭔가 기분전환 거리를 찾는다.
며칠 전에 안산자락길을 걷고 온 일이 그랬다.
보통 하루 기분 전환을 하면 한동안 괜찮은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안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바닥을 치지 뭔가.
계속 미루던 볼일을 하나 해치우기로 결심하고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원피스란 참으로 편리하다. 걍 뒤집어 입으면 된다. 상의/하의 코디를 맞출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제법 차려입은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팬데믹으로 인해, 안 그래도 바람 쐴 날 없던 원피스들이 옷장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이런 날 입어줘야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좋아한다. 바람이 불면 살랑거리는 느낌이 좋다. 단, 강한 바람이 불 때면 조심해야 한다. 특히 지하철에서 내린 뒤 출발하는 지하철 때문에 강풍이 불면, 아무도 원치 않는 마릴린 먼로를 연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그 가벼운 긴장감이 필요했다. 자주 가는 곳인데도 낯설게 하기 위한 방편. 걷기로 한 날이라 구두는 포기했지만, 모처럼 원피스를 입고 걸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볼일을 본 뒤 검색을 하니 가까운 곳에 '밤섬공원'이라는 게 있었다. 여러 번 와봤는데도 이런 공원이 있는지 몰랐다. 지도를 보니 공원이라기엔 수줍은, 손바닥만한 곳 같았지만, 그게 어디랴.
자주 오가는 곳에서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따라 있는 줄도 몰랐던 곳에 가니 그 자체로 꽤 괜찮았다.
작은 정자와 앉아 쉴 의자 몇 개가 있는 아주 작은 공원이다. 작지만 한강 도시 풍경이 보이는 지라 잠깐 멍때리기에 좋다.
정자는 그리려면 손이 많이 가는데 재미나게 그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패스.
요즘 상상을 덧붙이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한두 달 취미 미술학원에서 배우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 뻔함을 벗어나고 싶다. 무엇보다 상상화는 늘 내 로망이었다. 아주 독특하고 귀엽고 그로테스크하기도 한, 팀 버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노력해야지. 상상화도 그리다 보면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를 거고, 손도 늘겠지. 갸르-
밤섬공원을 떠나 광흥창 역쪽으로 가다가 나무를 조금 심어놓은 공간이 보여서 사진을 한 점 찍었다. 기린?이 있던 곳에는 건물 하나가 슬쩍 솟아 있었다.
상태가 메롱해서 작업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이럴 때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달래는 중. 나 자신과 싸우면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나다. 하루 이틀 이 몸뚱어리와 정신을 가지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살살 달래가며 써야지.
산책 많이 하고, 손놓고 있던 그림 그리며 멘탈 관리에 만전을 기하자.
상태 안 좋을 때 쓰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음험한 어둠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두 주먹 불끈* (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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