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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산책] 창천근린공원

by 운가연 2022. 9. 28.

가끔 글, 그림, 여행은 내게 삼위일체 같다는 기분이 든다. 여행을 갈 때 내게 아주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여행기를 쓰는데 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C통신에서 인터넷 시대로 바뀌며 개인 홈페이지를 쉽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나왔었다.

나무? 그런 이름이었나? 이제는 기억이 안나는군. ...;;;

도메인을 산 뒤, 프로그램에 있는 테마 중 하나를 골라 하라는 대로 하면 홈페이지 하나가 완성되었다.

싸이월드가 먼저였는지, 블로그가 먼저였는지, 파란이 먼저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믈한데;;;;

파란이었나? 유료화로 전환한 이후 사람들이 빠르게 빠져나가 버렸던?;;;

암튼 굳이 프로그램을 쓰지 않아도 아이디만 만들면 개설되는 블로그 류가 생긴 후 사라진 프로그램.

블로그 류가 생기기 전, 그 프로그램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이유도, 내 첫 배낭여행기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나란 인간, 가벼운 산책, 나들이, 한두 시간 걷기를 해도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남겨야 완성시킨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크림 없는 크림빵 기분 들고 말이지.

크림이 없어도 달달한 빵은 먹을 수 있고, 그림 그리려다 보면 업데이트할 게 한없이 밀리고, 해서 가끔/종종/ 그림을 빠뜨리지만. .... 갸갹;;;

 

작업 마치고 기분이 가라앉아서 야경볼만한 곳을 검색하다 바람산 어린이 공원이라는 게 떠서 가보기로 했다.

신촌도 자주 가는 곳인데 바람산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네이버 지도에 의지해서 천천히 걸었다.

공원 이름에 무려 어린이가 들어가는데, 이 모텔 골목 뭐란 말인가?

잠시 당황했지만, 다른 길로 오면 모텔 골목을 피해서(?)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언제적 일이지?;;;

 

머나먼 옛날, 남친과 함께 수없이 왔던 곳 아닌가. ......

아, 옛날이여, 아, 지나간 20대의 추억이여. ㅋ

그때 그곳, 잘 있을까. ... ㅋ

 

바람산 어린이 공원은 작은 돌탑이 있는, 몇 평 안 되는 정말 작은 곳이었고, 바로 맞은 편에 창천근린공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바람산어린이공원을 목적지로 왔지만, 막상 간 곳은 창천근린공원이 된 느낌적인 느낌?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걷기 위해 온 지라 용감하게 계단을 택했다.

공원이면 빠질 수 없는 운동기구 몇 가지, 베트민턴 코트, 야외 의자와 탁자가 있었다.

여기도 아담한 곳이라, 공원 산책은 무리고, 친구와 애인과 와서 야경을 보며 담소를 나누기 좋은 곳이었고,

실제 그렇게 두어 명씩 나란히 혹은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째서인지 풍차가 있었다. 상상을 더해 그려보았다.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나무 판자 길을 따라 가면 마포구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역시 상상력을 더해서 그려 봄.

 

멀리 커다란 시계가 보이는데, 저 건물이 뭔지 궁금했다.

 

잠시 멍을 때린 뒤 올 때와 다른 길로 내려갔다.

 

불 꺼진 신촌 거리

 

한 정거장 거리인 홍대는 이 시각까지 불빛이 휘황찬란한데, 신촌은 금방 어두워진다.

지나간 20대에 남친은 인천에 살고, 나는 신촌에 살았다. 인천에서 신촌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었다.

착한 남친이 신촌으로 와줘서 주로 신촌에서 데이트를 했고, 헤어질 시간이 오면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남친이 가는 모습을 보았다. ... 우리집 근처에서 만난 지라 차마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고는 못하겠다.;;;;

 

기분이 꾸질한 저녁에 기분전환 삼아 간 신촌에서, 우연찮게 서랍 속에서 발견한 어릴 때 사진을 본 기분에 젖었달까.

 

가는 길에 안전귀가 도우미를 만났다. 최근 안전귀가 도우미 시스템이 생겼다는 건 들었지만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다. 혼자여서인지 가는 곳까지 바래다줄 지 물으셨다. 친절했고 고마운 기분이 들었지만 최종 목적지인 집이 이 근방이 아니라서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사양했다.

 

살면서 아찔한 순간들을 집 근처에서 겪었다. 주택가 은근 한산해서, 다 사람 사는 집인데도, 위험한 일들이 있었다. 소리 지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있는 거다. ..... 깨진 병이 코앞에 있는데 소리 지르기 쉬울까. ..............

 

고마운 분들이고 수고로운 일이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경의선숲길 쪽으로 가서 좀 더 걷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도 원피스를 입었다. 일부러 산책이라도 나가지 않는 한 입을 일 없는데,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며 몇 년 째 옷장에서 자리만 차지한 아해들 차례대로 바람 쐬어주는 중. ^^ (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