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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여수] 2일차 - 마감, 헤밍웨이 카페, 이순신 공원

by 운가연 2022. 7. 3.

1. 마감.

 

어제 밤바다에 취해 과음해버렸다. 일어나니 가벼운 두통이 있었다. 꺅-

숙취를 싫어해서 과음하지 않는데, 여수 밤바다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던 거.

 

두고 잠들기 아쉬운 풍경 아닌가..

왜 버스커 버스커가 "여수 밤바다~ 밤바다~" 노래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수 바다는 구조상 수평선이 아니라 건너편이 보이기 때문에,

밤에 보면 특히 도시의 불빛으로 인해 바다라기 보다는 거대한 호수나 강처럼 보인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에서 조명을 밝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지도 모른다.

전력 절약형 LED 전등을 쓴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그러나 바다는 바다. 바람이 불면 파도치는 소리가 황홀하다.

 

올초에 어디선가 "여수 밤바다" 노래가 흥행하면서 여수에 관광객이 몰렸다는 글을 읽었다.

오며가며 어쩌다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들으면서도, 딱히 여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 기사인지 글을 보자 갑자기 여수에 가고 싶어졌다. .... 이상한 군중심리 ㅋㅋ

그래서 올 초에 2022년 버킷 리스트에 여수 여행을 적어두었다.

더위는 비교적 타지 않고,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이라, 봄에 가려고 했는데 일이 많아지며 계속 다음 달, 다음 달로 미뤄졌다.

건당 돈을 받는 프리랜서다 보니 일이 늘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마감에 시달려 보고 싶었다! 꺅- *^^*

6월도 아슬아슬해서, 이러다 프리랜서의 장점을 잃고 7~8월 한창 휴가철에 가게 되려나.

그래도 갈 수 있으면 그게 어디야, 했다.

 

그런데 이 몸이, 6월 일감을 빨리 끝낸 것이다. 뽜솨!

지금이 기회다. 7월에 새 일을 맡게 되면 마음 편히 여행가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숙소를 검색하고, 이 숙소가 딱 19-24일이 비어 있기에 냉큼 예약했다.

... 숙소 비는 날에 맞춘 일정. 까르르-

 

이 날 최종 마감을 해야 하는 일거리가 있었다.

여행을 와서,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서 마감이라. 이것이야말로 프리랜서의 로망 아닌가!

 

작업물을 들고 헤밍웨이카페로 갔다.

내가 있는 숙소 바로 위쪽에 있는 카페로, 여기도 옥상에서 보는 밤바다 전망이 끝내준다고 했다.

 

참고로 언제부터인가 옥상을 루프탑으로, 전망을 뷰로, 벼룩시장을 플리마켓으로, 거리 공연을 버스킹이라고 부르는 게

보수적인 데다 늙어가는 나는 아쉽다. ㅋㅋ

 

옥상에도 연필 조형물로 벽을 세웠다. 재미난 구성이다.
헤밍웨이카페에서 연출 사진 ㅋㅋ 자몽에이드.

추억돋는 옛날 '다방' 느낌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작업물을 펼쳤다.

어르신들 4~5명이 모여서 여기는 함박 스테이크가 맛있다며 시키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한지 몇 년 되었다.

여행 날짜를 맞추기 쉽지 않다. 밥 한 끼 먹을 시간 내기도 어려우니 당연한 일이다.

가끔 다음에 같이 여행 가자, 는 이야기를 나누지만, "연락할게." "다음에 밥 먹자." 처럼

본의 아니게 피차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혼자 여행은 혼자 여행의 맛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여행은 즉흥적으로 짐 싸서 떠나면 그만이다.

인터넷도 잘 터지고, 말도 다 통하니 일단 가서 뭘 할지 검색해도 된다는 거.

가서도 충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

 

이를테면 기껏 카페로 왔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숙소로 돌아가서 일하기로 마음 바꿔도 누구 하나 뭐랄 사람이 없는 거. ㅋㅋ

 

역시 집이 최고지, 하루라도 잠을 잔 곳이라 그런지 숙소에서 작업하고 싶어졌다.

카페 라떼를 사서 숙소로.

사장님은 친절했고 다정한 목소리로 밤에 오면 더 예쁘니 꼭 오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여기가 간단한 식사와 술도 파는 지라 저녁에 와서 옛날 경양식 돈가스와 맥주를 마시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숙소와 가까운 곳이라 전망은 거의 비슷해서 결국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자몽에이드는 내 입맛에는 살짝 달았는데 커피는 진하고 맛있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와 함께 최종 마감을 한 뒤 시계를 보니 2시가 못 된 시각. 약속 시간은 4시였다.

오늘은 순천에 사는 사촌 ㅁㅈ을 만나기로 했다.

야를 보는 게 몇 년 만인지...

ㅁㅈ이 결혼 전에는 명절에 한 번씩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시댁에 가기 때문에 보기 어려워진 거.

딸도 둘인데 작은 어머니께 맡기고 둘이 데이트 하기로 했다.

 

비는 시간을 어쩔까 하다가 이순신 공원을 찍었다.

걸어서 50분. 약속이 없으면 걸을 만도 한데 택시 타도 얼마 안 나올 거리였다.

많이 걸을 날은 아닌 지라 챙겨온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야, 너 진짜 얼마 만에 입니. ㅠㅠ

코로나로 오프라인 약속이 확 줄고, 회의가 화상 통화로 바뀌며 원피스를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기사님 : 이순신 공원을 왜 가요?

나 : 사촌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비어서요. 가볍게 산책이나 하려고요.
기사님 :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우려고 했어요. 근데 산이 남은 거예요. 그래서 남은 산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대로 둬도 좋을 것 같아서 전망대로 해서 공원을 만들었죠. 한 번 올라갈만 해요.

나 : 감사합니다! 여수 너무 근사해요. 내일은 돌산도에 있는 향일암에 갈까 하고 있어요.

기사님 : 향일암에서 15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거든요. 거기서 돌산도 전체가 보이는데 굉장히 근사해요.

나 : 아, 대부분 향일암만 보고 내려오는군요.

기사님 : 그렇죠.

나 :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

 

택시에서 내려서 이순신 공원으로 올랐다.

 

기사님이 "거길 왜 가요?" 라고 의아한 어조로 물은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근처 살면 산책삼아 올 곳이지, 택시까지 타고 올 건 아니었다. 크크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성된 꽃 공원은 내 취향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나 어쩌랴. 이미 온 것이다.

 

어제 종일 어깨 빠지게 가지고 다니면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수채화 도구를 꺼냈다.

가벼운 도구라도 오래 걸으면 무겁다. ㅋㅋ

 

크게 검훙아 없던 곳에서 수채화를 하게 되다니?!

여행 때마다 수채화 도구 열심히 가지고 다니는데 막상 안 그림. 

수채화가 어렵고, 간편 키트라고 해도 물도 꺼내야 하고 휴지도 써야 하고 아무래도 번거로운 거.

 

다 그리고 ㅁㅈ에게 연락을 하니 4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약간 늦을 거야 각오했지만, 4시에 만나기로 하고 4시에 출발한다니?

ㅋㅋㅋㅋ 역시 우리 ㅁㅈ.

 

오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릴 터. 여기서 한 시간을 더 있기는 애매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가까이에 '장도'라는 섬이 있었다.

도보로 30분 거리라 걸을만 할 듯해서 일어섰다.

그렇게 걷다가 택시 기사님이 말한 전망대가 보였다. ... 까맣게 잊고 있었음. ㅋㅋ

으악, 저걸 이제 보다니!

 

짙은 회색 돌언덕에 검은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놨는데 인상적이었다.

여수는 사이버펑크적인 느낌이 나는 도시였다.

구상 중인 연작 그림 등등에 영감을 주는 풍경이 많았다.

그 사진들은 필히 따로 정리해둬야지.

 

계단을 따라 올라감.

 

정상은 사극 풍의 담장을 둘렀다.

 

뭔가 재미난 대비.
저 위풍당당한 건물은 무언가, 했는데 ㅁㅈ 말이 자이 아파트라고.

높은 언덕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에 들었던 나는 내려와서 공원을 나가면서도 여러 점 사진을 찍었다. (2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