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에서 깨니 드물게 몸이 개운하고 가뿐했다.
어제 갯장어를 먹은 덕임을 실감했다. 보양식이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구나.
어릴/젊을 때는 몸에 좋다는 건 뭐든지 먹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에엑, 왜 저래, 같은 느낌이 강했다. ...
영양제라니, 저런 쪼꼬만 알약(?) 같은 거 하나 먹는다고 몸이 뭐 얼마나 좋아지겠어?
보양식하면 왜 사죽을 못 쓴담.
나이가 들면서,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른들을 이해했다.
영양제와 보양식을 챙기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나도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시작은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였다.
정확히 어떤 영양제를 먼저 먹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몸이 삐그덕거리니 뭐라도 하게 되더라.
그러다 밀크시슬이 좋다는 말에 먹었다가 처음으로 효과를 실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2~3시간 멍하고 기운 없는게 사라지더라. 허어얼?
영양제를 다 먹고 귀찮아서 다시 안 샀더니 몸이 축나는 게 느껴지더라. 흐어어얼?
그러다 한 번은 지인 ㅈㅁㅅ님이 여름에는 보양식이라며 낙지를 먹자고 했는데, 그 낙지 먹고 몸이 3~4일간 가뿐해서 보양식을 실감했다.
보양식이라는 걸 먹어 보았는데 딱히 효과를 실감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건 아직 건강해서, 축난 게 없으니 채울 것도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어릴/젊을 때 나처럼. ... 크흑-
물론 어릴/젊을/건강했을 때 내가 이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해서 어른들이 영양제/보양식을 열심히 챙기는 걸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플 일도, 늙을 일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
그래서 어른들이 그때 내게 말했던 거다. "너도 내 나이 되어보면 알 거다."
그렇구나. 겪어야 알게 되는 거구나. ...
내가 그 나이에 도달했구나. 크흑-
2. 돌산도
장군도에 가보기로 했다. 장군도는 숙소 바로 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섬으로 해안선 길이가 600미터 밖에 안 되는데, 돌산대교 옆에 있는 선착장에서 나룻배를 타면 된다고 했다.
풍경으로 보던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는 거야. 꺄-
햇볕은 적당히 뜨거웠다. 나는 땡볕 아래 걷는 걸 미친 듯이 좋아한다.
'라떼는' 그러니까 내 아동기에는 썬크림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여름방학에 물놀이 다녀오면 까맣게 타고 등 껍질 벗겨지는 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자랐고, 땡볕 아래 걷는 걸 사랑해서 4년 전 전주-군산-부여-공주-수원 여행 때 썬크림도 안 바르고 걷다가 상한 피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
여름이면 입술 부근부터 시작해서 허옇게 피부가 일어남. 크아아아앙-
그래서 그 이후 여행부터는 얼굴에는 반드시 썬크림을 바르고 있다. 골밀도감소증이라 병원에서 얼굴에는 발라도 몸에는 바르지 말라고 했다. 아아, 골밀도감소증이라니. 이 내가! 크흑-
내가 더위를 별로 안 타는 이유를 코로나가 알려 주었다. 한참 어디 들어갈 때마다 체온 체크해야 했던 무렵에 내 체온은 35.9도로 나올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평균 체온이 조금 낮은 편인 것이다. 열이 많은 사람이 추위를 안 탄다고 하듯, 나는 열이 적어서 더위를 덜 탔나 보다.
차가 다니는 도로 한쪽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거리는 한적했고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여수에서는 평범하나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를 따라 걷는 한적한 시내를 따라 걸으며 나른한 기분에 잠겼다.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선착장이 있어야 하는데 뭔가 선착상스러운(?)게 안 보여서, 그냥 지나쳤다;;;;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고 돌산도를 걷고 있다는 데 만족했다.
벤치가 보여서 잠시 앉아 쉬며 부모님께 전화하는 착한 일(?)도 했다.
아버지가 썬크림은 발랐느냐고, 우리 딸 타면 안 된다고 하셔서, 세월을 느꼈다.
아버지는 노년에 들어선 뒤에도 썬크림 같은 거 안 바르시고, 왜 바르는지 이해 못하셨는데;;;
아버지도 이제는 이해하시나보다. ㅠ
전화를 끊고 나서 어디로 갈지 생각하다가 첫날 지나친 모터보트를 타기로 결정. 엑스포 대로를 건너 오동도 입구까지 걸었다.
엑스포 대로를 걷다가 터널을 만났다. 터널에도 인도가 있었다. 터널이기 때문에 차가 지나는 소리가 엄청 크게 울리고 어두운 터널을 일부 조명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앞뒤로 지나갔다. 사이버펑크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터널을 걸어서 지난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구도고 뭐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 1도 안하고 마구 셔터를 눌러대는 내가 터널에서도 사진을 안 찍다니?
기분 어지간히 좋았던가봉가.
사진은 남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마음에 남아있다.
오동도 앞 모터보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내가 앞에 서서 요금표를 쪼려보는 모습에, 사장님(이셨나?)이 혼자니 가격이 부담스러울 테지만, 타 보면 좋다고, 만 원 깎아준다며 열심히 권했다.
사실 내가 고민한 건 탈지, 말지가 아니었다.
기왕 탈 거, 제일 멀리 가는 코스를 탈 것인가, 그건 부담스러우니 조금 싼 걸 탈 것인가, 였다.
내 첫 여행이자 배낭여행은 인도다. 갠지스 강을 못 갔다. 다시 갈 기회가 올 줄 알았다. 이십 몇 년이 흘렀다. 인도 근처에도 못 갔다. ...
4년 전 공주에 가며, 연꽃이 한창일 때 다시 오리라 결심했다. 못 갔다.
2~3년 전 인가? 담양에서 경비행기를 탔는데, 가을에 오면 풍광이 끝내준다고 해서 꼭 다시 가리라 다짐하고 역시 못 갔다.
언제나 기회는 그때 한 번 뿐이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여행을 갈 지 알 수 없고, 기왕이면 안 가 본 곳을 가지, 어쨌든 갔던 곳을 또 갈 확률은 낮다.
언제 또 여수에 오랴. 나는 가장 비싼 코스를 만 원 싸게 탔다. ㅋ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가장 비싼 코스를 타는 게 좋을지 묻는다면, 꼭 권하고 싶지는 않다.
모터보트가 빠르기 때문에 짧은 코스든, 긴 코스든 체감 시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
가볍게 경험해보고 싶다면 4만원 코스를 타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10~15분 정도랬는데 시간을 정확히 재지는 않아 모르겠다.
내게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무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대답하겠다.
2~3분으로 느껴질 정도로 즐거웠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모터보트를 타러 가던 길에 계속 머릿속에
모터보트 타고가다가~아,
모터보트 뒤집어졌어~어,
하는 노래가 맴돌았다. ... 물론 뒤집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는 안에서 열심히 걸었던 오동도를 바다에서 보았다.
보트 운전하는 분이 토끼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일단 찰칵.
나 : 고양이 같은데요?
운전사 : 고양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베트맨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나 : 어머, 그러네요?
이후 기억에 남는 말을 했다.
운전사 :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토끼 바위는 꼭 있어요.
어머, 그러네. 사람의 연상력이란 거기서 거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게 갑자기 웃겨서 혼자 막 웃었다.
다음은 거북이바위였다. 그러고 보니 거북이 바위도 동네마다 있지 싶었다.
큰 바위 옆에 작은 바위가 붙어 있으면 거북이인 것이다.
운전사 : 오늘 운이 좋으세요. 바다가 맑거든요. 내일 비가 올 거라서 그래요.
나 : 왜 비 오기 전에는 바다가 맑아요?
운전사 : 비가 오고 나면 쓰레기가 바다로 쓸려오거든요.
나 : 아... 그래서 비가 오기 전, 그러니까 쓰레기들이 한바탕 바다로 왔다가 멀리 간 뒤 바다가 맑은 거군요. *어쩐지 슬펐다*
운전사 : 그렇기도 하고요. 비 오기 전에는 날이 흐리니까요. 날이 너무 맑으면 플랑크톤이 번성해서 물빛이 탁해져요.
오호라, 그렇구나. 재미난 거 배웠다. 신남. ^^
참고로 다음 날 비는 오지 않았다.
내 여행 일정은 19-24일이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20-24일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흐릴 뿐 오지 않았다.
23-24일로 넘어가는 밤에 잠깐 왔다.
날씨님이 도우셔서 여행이 평안했다. ^^
빠른 속도로 파도를 타는 보트를 타다가 내리니, 순간 휘청해서 넘어질 뻔했다. 마중 나온 직원 분이 괜찮냐고 물으심. 겁내 부끄러웠음. ...
나가는 길에 만 원 할인한다고 꼬드긴 분이 재밌었느냐고 물었다.
나 : 엄청 재밌었어요! =^^=
재밌었다. 여수에 다녀온지 어느덧 한 달 가량 지난 거, 정녕 실화인가. ㅠ(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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