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여수] 4일차 - 서시장/교동시장 포장마차, 밤의 케이블카

by 운가연 2022. 8. 13.

1. 6시가 좀 넘어서 서시장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힘들어서 더는 걸을 수 없었다. 크-

낭만포차가 빨간색으로 통일된 현대적이고 세련된 포장마차라면, 서시장의 포장마차는 흔히 생각하는 파란색 천을 덮은 전통적인 느낌의 포장마차였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준비중인 지라 느리게 한바퀴 돌며 어디에 들어갈지 생각했다.

 

집이 순천이라 여수에 자주 놀러오는 사촌동생은 "다 맛있다."고 했다.

조리법, 재료, 메뉴 다 비슷하고, 어쩌다 블로거가 들러 후기를 쓰면 다른 사람들도 오게 되며 유명?해 진 곳이 있으나 어딜 가든 괜찮다는 말이었다. 여수 밤바다의 장범준이 들른 곳이 특히 주말이면 사람으로 미어터진다지만, 다른 곳도 다 괜찮다고 했다.

 

두어 바퀴 돌며 고심한 끝에 한 곳에 조심스레 머리를 디밀었다.

 

"혼자인데 괜찮아요?"

 

아주머니(여자 사장님)가 반기며 앉으라고 하셨다. 좋았으!

내가 여기를 택한 이유는, 한 면이 거리였기 때문이다. 시장 안쪽에 마주한 포장마차보다는, 한 면이 거리인 곳이 탁 트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여수에 와서 '여수삼함'이라는 메뉴를 너무 많이 봐서인가, 여수삼합을 시켰다. 뭘 시키든 어차피 너무 많지 않으려나 싶었고.

 

"가격은 똑같이 낼 테니 조금만 주세요. 너무 많이 남으면 죄송스러워서요. ㅠㅠㅠㅠ"

 

라고 했는데도 엄청 푸짐하게 나왔다. 계산할 때 너무 미안했다. "맛 없어서 남긴 거 아니에요. 너무 많았어요. ㅠㅠ"

 

아주머니는 "조금 준 건데..." 라며 배시시 웃으셨다.

 

여수삼합은 해산물, 돼지 고기, 묵은지 볶음이었다. 반찬으로 갓김치가 나왔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여수가 갓이 많이 나와서 갓김치가 유명하지. 여수온지 사흘 째인데 처음 먹음. 심지어 '밥(쌀)'은 한 번도 못 묵음. 지방은 한식 너무 푸짐하게 나와서 미안해서 못 들어가겠;;;;

 

가게에서 드로잉 슥슥

맥주는 배부르고, 청하는 없어서 '여수밤바다'라는 여수 소주를 시켰다. 16.9도.

천천히 소주 한 잔 하고, 고기랑 김치, 고기랑 관자 먹고, 어차피 다 못 먹을 터라 해산물과 고기 위주로 퍼묵퍼묵...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 하나였다.

 

아주머니(여자 사장님)가 지나가는 손님을 잡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냥 갔다. 내 곁으로 온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많이 먹고 가."

 

혼자 온 손님이라도 손님이 온 게 어디야, 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부부와 남편되는 분의 남동생, 셋이 하는 포장마차였다. 아저씨(남자 사장님)가 와서 삼합 김치 자르고 볶아줄 때 동생분이 "물이 한 개 밖에 없어. 다섯 개는 있어야 해." 라고 했다. 아저씨가 "물이 몇 개 있다고?" "한 개. 다섯 개는 있어야 해." 라는 대화가 반복되었다. 아저씨는 동생을 놀리는 게 재밌는지 개구지게 웃으며 "물이 몇 개 있다고?" 라고 자꾸 물었다.

 

학교 다닐 때 같은 과에 자폐 학생이 들어왔다. 우린 모두 비장애인 성인이었다.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되니 잘해줘야 한다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 반대보다야 훨 낫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몸의 장애면 움직이기 불편한 점을 보조해주고, 대화야 다른 친구들처럼 하면 되는데, 대화 자체가 서로 엇나가니 난감했던 것.

 

이 동생분이 자폐같았다.

 

정리가 안 되는 두서없는 글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써보자면;;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히트를 치고 있다고 들었다. 난 아직 못 봤다. 보고 싶은데 진짜 드라마 한 편 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달까;;;

자폐, 특히 천재형 자폐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양극을 가진 인물이기에 영화/드라마에서 극적인 캐릭터로 등장시킬 만한 요소가 있다. 오래 전 영화인 '레인맨'처럼...

자폐스펙트럼의 폭은 굉장히 넓고, 드문 장애가 아니라고 하는 데도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고 한다. 이를테면 동네마다 '동네 바보'가 하나씩은 있었다고들 한다. 자폐일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장애가 있어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며 같이 자랄 수 있었다는 소리고 동네마다 한 명 씩은 있을 수 있는, 역시 아주 드문 장애는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자가용이 많아지며 골목은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위험해졌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집앞으로 찾아 가 "누구야~ 노올자~"를 외치지 않고, 장애인은 부모의 전적인 보살핌 혹은 시설 입소가 불가피해졌다. 전처럼 동네에서 나눔나눔 같이 돌볼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이 동생분은 자폐인 특유의 규칙에 대한 집착으로 물이 한 개 밖에 없다는 게 불안했고, 아저씨는 그걸 알지만 물이 한 개 있다고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설명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기에 부드러운 장난기로 동생의 불안해하는 마음을 달래고 있던 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손님도 왔는데,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자, 동생분이 "저쪽이요!" 라고 했는데 얼핏 다소 거친 응대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부부는 그저 지켜보는 쪽을 택했고, 손님이 위치를 다시 묻자 동생분이 더 자세한 대답을 했다.

 

오늘 하루 스쳐가는 사람인 내가 세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거나 하는 건 분명 실례일 터다. 그래도 이 포장마차에 와서 따뜻한 시간을 보낸 건 사실이다.

아저씨와 이야기하다 "혼자 여행오면 밥 먹기가 힘들어요. 너무 많아서. ㅋㅋ" 하니 사장님이 "그렇죠. 저도 일 있어서 지방 가면 짜장면 먹게 되더라구요." 라고 했다.

그러더니 금풍생이라는 생선구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수에서만 잡히는데 엄청 맛있고 양이 적어 바깥까지 팔지는 않고 여수에서만 소비하는데, 그게 1인용 안주로는 양이 적당하다는 거였다.

 

"아, 물어보고 시킬 걸 그랬네요! 어차피 다 많을 거라는 생각에... ㅋㅋ"

"네, 삼합은 동네마다 배합이 다를 뿐 다 있는데, 금풍생은 여기서밖에 못 먹거든요."

"여행 온 거라서, 장담은 못하는데 혹시 여기 또 오게 되면 그땐 먹을게요."

 

라고 했지만 역시 못 갔다.;;;

 

서울 음식점 사장님들도 대부분 다 친절하다. 그런데 서울 사장님들은 굳이 말하자면 비즈니스적인 친절함이고, 지방 사장님들은 자신의 성격이 묻어나는 친절함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서울 깍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랄까. ㅋ

 

여수에 또 가게 되면 이 포장마차에 다시 가고 싶다. 그땐 꼭 금풍생이 먹어야지. ^^

금풍생이 표준어였나, 여수 말이었나, 지금은 헷갈리네; 표준어와 여수말 다 가르쳐 주셨는데 금풍생만 기록에 남아 있다. 크앙-

 

2.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를 왕복으로 끊었다. 표를 예매할 때 구매 후 60일인지 90일인지까지 탑승 가능해서, 오늘 한 번, 내일 한 번 탈까 했는데, 일단 타면 당일에 다 타야 했다. 꺅-

 

9시 반이 마지막이었다. 포장마차에서 신나게 노느라 시간이 촉박해짐. 크아앙-

 

그래도 가는 길에 야경 찍는 건 못 참지.

나 말고도 다급하게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가족이 있었다. 아직 아가는 아빠 등에 업혀 있었고, 두 딸은 열심히 걷고 있었다. 어쩐지 외롭지 않았다?;;;

 

터널을 따라 걷고

 

마침내 도착!

9시 반까지 탈 수 있는데 13분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이번에도 혼자 탔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타니까 낮의 풍경과 밤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신났달까. 또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잘 찍지도 못해 막상 건질 사진은 거의 없는데, 풍경에 취해 미친듯이 찍어댐. 까르르-

 

하멜 등대가 보인다.

케이블카에서 본 여수 밤바다는 황홀하게 아름다웠고,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한 것도 좋았다. 크흑- ㅠㅠㅠㅠ

왜 우냐면, 케이블카가 자연에 안 좋아서 ㅠㅠㅠㅠ

설악산 케이블카 짓는 거 반대하는 서명 받을 때 서명도 했었는데... ㅠㅠㅠㅠ

그런데 여수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밤하늘을 나는 기분에 취하고, 밤바다에 취하고... 하아.... ㅠㅠㅠㅠ

지금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그러했듯 밤하늘을 반딧불이처럼 지나는 케이블카를 보고 있겠지, 그 안에 나 있다!

꺄하하하하 했다.;;;;

 

풍광도 그 순간의 기분도 모두 황홀했음을 건 부정할 수가 없도다....

 

밤의 돌산대교를 건넜다. 친환경 LED 조명을 쓴다고 했다. 대교를 건너 숙소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아,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버튼을 눌러야 초록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푸하하하

 

두 번째 만난 신호등은 바로 버튼 누름.

 

3. 숙소로 돌아왔다.

 

그림일기를 쓰고, 혼맥을 즐기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돌산대교의 LED 조명도 꺼져 있었다. 조명이 사라진 고즈넉한 밤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밤에 홀로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불러일으켰다.

잊지 못할 시간이다.(22.06.22)

 

+ 이날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