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어머니와 ㅁㅈ이 점심 무렵 숙소로 왔다.
ㅁㅈ이 약속 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편이 아닌 줄 알기에, 여유있게 놀고 있었는데, 어쩐 일로 시간 맞춰 옴.
어차피 여행 온 거고 해서 "너 늦는 거 안다. 늦게 와도 된다. ㅋㅋ" 했는데 마음에 걸렸던 듯?;; ㅋ
난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뎅. 히히-
여행 와서도 게으른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멍 때리고 있었다.
도착했다는 연락에 밖으로 나왔다. 숙소 입구가 찾기 힘들어서 데리고 오려고.
모녀는 좁은 계단을 내려오며 사진 찍기 바빴다. 특히 ㅁㅈ ㅋㅋ
ㅁㅈ은 오프라인 옷가게를 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온라인으로도 주문을 받는 지라, 인스타 관리에 열심이다. 틈날 때마다 사진을 찍는데 작은 어머니가 찍는 사진이 성에 안 차서, 딱 이 각도로 터치만 하라고 폭풍 잔소리. ㅋㅋ
아, 이 모녀 너무 귀여운 거.
둘 다 숙소 보고 예쁘다고 해서 몹시 기뻤다. 데헷~
2. 남산동 카페에서 샐러드와 커피를 먹었다.
유명한 카페고 숙소 바로 앞인데도 어쩌다 보니 이날 가게 되었네. 그런데 사진을 안 찍었네~
남산동 샐러드가 블로그마다 극찬이었는데, 에, 평범했다;;;; 채 썰은 야채와 저민 마늘 구이, 마요네즈 기반 소스.
뭔가 특이한 점이 있나 했었다. 하지만 맛은 좋았다는 거. ^^ 워낙 샐러드를 좋아한다.
3. 물회를 먹으러 갔다.
지방에 지인이 있다는 건 이래서 좋은 거지. 서울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맛집에 갈 수 있다는 것.
커다란 유리 그릇에 나오는데 보기에도 좋고, 맛도... 우와.......
이제 어디 가서 물회 먹겄나.;;;;;
아버지에게 ㅁㅈ 덕에 엄청 맛난 물회 먹었다고 하니까 그 집 적어두라 하심. ㅋㅋㅋㅋ
여수와서 처음으로 밥/쌀을 먹음. 비빔밥도 엄청 맛있었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
부른 배를 뚜들기며 스타벅스로 갔다. 여기가 바다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라, ㅁㅈ이 겸사겸사 사진 찍기 좋은 거.
ㅁㅈ은 본질적으로 건강하고 강한 아이이다.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참 안 받고, 잘 넘긴다는 말을 듣는다는데, ㅁㅈ 왈 "저라고 왜 스트레스를 안 받겠어요." 라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고,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어떤 면에서는 평범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인데, 보편적 가치관에 따라 사는 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도, 누구보다 자유롭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삶이라고 해서 스스로 택한 삶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둘이서 긴 시간을 보낸 건 이번 여행 때 처음이었는데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앉아서 건강, 근황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몹시 뜨끔한 말을 들었다.
ㅁㅈ : 큰아버지 오실 때마다 울 아버지가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알죠? 전 부치다가도 뛰쳐나간다니까요?
알지;;;
언젠가 추석 혹은 설의 일이다. 작은 어머니가 전을 부치고 있는데 울 아부지가 도착하심. 집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밖에서 밥 먹기로 했던 듯.
작은 아버지가 "형님 도착하셨으니 바로 가야 한다."고 작은 어머니를 닦달해서 전 부치던 것 제대로 마무리나 뒷정리도 못하고 급하게 나온 적이 있는데, 이게 두고 두고 회자되고 있다.
나 : 근데 (작은 아버지는) 왜 그러실까?
어릴 때는 무심코 지나갔지만 이제와서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1) 우리 아버지가 도착 시간을 예고하지 않았다.
--> 이건 절대 못 고치심;;;
2) 본인이 도착 시간을 예고하지 않은 만큼, 천천히 나와도 아무 말 안하심
--> 이것도 진짜임.
근데 작은 아버지는 왜 그렇게까지 우리 아버지(작은 아버지에게는 형)에게 지극정성이실까?
이런 경우 가능한 가설이 몇 가지 떠올랐다. 울 아버지 성품 상 충분히 가능한 어떤 일들 말이다. 작은 아버지는 울 아버지에게 뭔가 고마운 게 있는 거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아버지도 대단하시다. 보통 형제간에 도움 받았다고 - 물론 가설이지만 - 두고두고 잘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며 부모 부양, 재산 문제로 철천지 원수 되는 형제지간이 한둘인가.
부모에게 시간과 애정과 돈을 쓴 자식이 외면 당하고, 받기만 한 형제가 부모의 사랑을 등에 업고 뻔뻔하게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우리 부모님 어린 시절만 해도, 여자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만 보내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졸업식 정서는 슬픈 거다. 졸업하면 학교에 더 다닐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았던 거다.
고모 - 울 아버지의 누나 - 가 바로 그랬다. 울 아부지는 대학까지 나왔지만, 고모는 초등학교만 다니며 아버지를 키웠다. 옛날에는 누나들이 남동생 키우곤 했다.
그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아버지는 고모에게 뭐든 갚아 주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이야기했다. "이제 와 (내가 이런저런 걸 좀 보탠다고) 그 한이 풀리겠냐..."
형제지간의 우애가 좋은 건 인생의 복이다. 내가 잘한 사람이 나중에 내게 잘하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특히 가족 간에는 극히 드물다. 가족이 주는 것, 가족이 배려한 것, 가족이 자기를 대신하거나 위해서 한 일들은 그냥 허공으로 흩어지고, 지금까지 네가 했으니 앞으로도 네가 해라, 좋아서 한 거 아니었냐, 누가 하랬냐, 적반하장으로만 나오지 않아도 다행스러운 것이다. ...
그러나 남편이 효자인 게 부인 입장에서는 힘든 일일 수 있듯, 형제지간의 우애가 돈독하니 작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울 아부지가 오면, 언제든, 작은 아버지는 즉시 달려나가야 하니 말이다.
ㅁㅈ : 언니, 우리 엄마 나이가 몇이에요. 언제까지 시아주버님 시중 들어야 해.
나 : .........................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버지는 몇 해 전 쉬고 싶다며 일을 그만 두었다. 1~2년 쉬다가 다시 작은 일을 하나 하긴 하는데 사실상 백수에 가깝다;;;
노년에 쉬면서 좋아하는 여행 다니며 보낼 수 있는 것 또한 인생의 복이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아오신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스스로 노년을 잘 사시니 부족한 자식 입장에서 그저 감사한 일이다. ㅠ
하지만 작은 어머니에게는 힘든 일인 것이다. ㅠㅠ 이젠 명절이 아닌 때도 오시니 말이다. ㅠㅠㅠㅠ
나 : (아버지가 오는 건 못 막아도) 내가 같이 와서, 아버지 옆에 붙어서, 작은 어머니가 손 안 가게 해야 하는데... 미안타. ㅠ 나두 울 아부지가 편하지만은 않다. ㅠㅠㅠㅠ
아버지의 입버릇은 "편하게 해, 편하게~"다. 어느 면, 진짜다. 위에 썼다시피 본인이 도착 시간을 예고하지 않았으니 늦게 나와도 괜찮다. 한 편으로 특히 식도락에 있어서는 취향이 너무나도 확고하고, 뭐랄까, 암튼 같이 있으면 끝없이 시중;;을 들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고, 어느 순간, 내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 하고픈 일들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졌다.
2~3년 전인가? 급성 우울증이라고 해야 하나? 딱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비좁은 상자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절망적인 기분과 공황이 찾아왔었다.
태어난 게 업이려니, 받아들이면서 내 나름 최선을 다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러다 내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내가 죽어야 끝나지, 그런 생각이 수시로 머리를 헤집었다.
가족이란 도대체 뭔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인생은?
엄마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어떻게든 엄마를 케어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어둡고 비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밥도 못 먹고,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며 허우적 대던 내게 친구가 보내준 이미지이다.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했지만, 나도 살아야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왔는데, 저때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아버지는 건강하고 스스로의 인생 잘 살아가시니까, 라는 핑계로 전화만 하고 만나는 건 피해 왔다. 사실 그 몇 해 전부터 아버지와 만나서 밥 먹는 거면 모를까 친척을 만나러 가며 하루 이상을 함께 보내야 하는 건 다 거절해왔었다.;;;;;;;;
나 : 작은 어머니, 죄송해요. ㅠㅠㅠㅠ
다른 화제로 옮겨가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연출 사진을 찍으며 ㅁㅈ은 기분이 들떠 있었다.
ㅁㅈ : 언니, 우리 만나서 이렇게 편한 거 처음이에요. 큰아버지가 없어서 편한 거예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오늘 나도 편했다. 아버지 없이 작은 어머니, ㅁㅈ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울 아버지, 진짜 손 많이 간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병원 한두 군데는 다니게 되는 법. 보호자가 따라가야 할 때도 있고.
아부지랑 한 번 병원 가는게, 어머니랑 3번 가는 것보다 17배 정도 힘들다. .... 갸갹;;;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게 힘든 사람이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더는 이렇게 못 산다고 공황에 빠져 악을 썼을 때, 결단을 내리고 해결책을 찾아준 게 아버지다.
늘 나 잘 사는지 걱정하고, 나를 사랑한다. 다만 그 어떤 인간관계도 좋은 점만 있지는 않을 뿐이다.
손 많이 가는 울 아버지, 사랑합니다.
ㅁㅈ은 얼마 전 아버지가 왔을 때 이야기를 했다. ㅁㅈ의 두 딸이 애교를 부리자 너무 좋아하고, 애들 예쁘다고 사진을 찍었다고. 와, 울 아버지 사진 안 찍는데... ㅁㅈ도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앞으로 내게 너희를 몇 번이나 보겠냐."
그 말이 가슴에 콕 와서 박혔다. 공황 사태 이후, 나 자신에게 몰두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소홀했었다. 전화는 하고, 만나는 건 피했다. ............... ㅠㅠ
아버지는 곧 여든, 팔순을 맞이한다. 팔순 잔치 때 모이기로 했다. 사이에 볼 수 있으면 좋지만, 이번에 만난 것도 몇 년 만인가. 그렇구나, 정말로, 앞으로 몇 번이나 만나게 될지 모르는구나.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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