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는 걷는 게 도움이 된다.
몸에 기분 좋은 피로감이 찾아오는 게 정신의 우울감을 가시게 해주는 한편으로, 걸었어, 라는 자기 위안이 있다.
한 시간 이상 걸었어, 운동을 했어, 살이 빠지면 좋겠다, 최소한 덜 찌겠지? 라는 기대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런데 왜? 나는 왜 살을 빼고 싶을까?
예쁘고 싶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날씬함과 예쁨이 거의 같은 말이 되었고 말이지.
그리고 사회적 동물인 나는, 그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한때 나는 44사이즈를 입었고, 너무 말랐다며 살 좀 찌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나는 66사이즈를 입는다. 멀쩡한 새 옷들을 두 번이나 싹 퇴출시켜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과체중인 건 아니다.
무릎이 약하고, 허리는 약해지고 있어서 - 크흑! - 살을 빼는 게 도움이 되겠지만,
허리와 다리 운동을 해서 근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살을 빼는 것과 근육을 만들 정도로 운동을 하는 것, 둘 다 어려운 일인데
나는 기왕이면 살을 빼고 싶은 거다.
자기 키 대비 적정 체중을 계산하는 계산식이 있다. ... 까먹음;
계산해서 나온 값에서 -5~+5까지는 정상 체중이라고 했다.
44사이즈를 입을 때 나는 -5kg에 가까운 정상 체중이었고, 지금은 +5kg에 가깝지만 어떻든 정상 체중이다.
나름 나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외모에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예뻐지고 싶은 것이다. 크아앙-
말라야 예쁘다는 관점이 생긴 건 최근의 일이다. 현대 사회 전에는 풍만해야 미인이라고들 했다.
과거에는 음식이 부족했다. 흉년이 들면 아사자들이 속출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과체중인 사람이 부와 건강과 미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음식이 넘쳐흐른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는,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굶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다.
음식이 풍족한 시대이기에, 일부러 덜 먹는 사람, 날씬하다 못해 마른 사람이 부와 건강과 미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예전에 초콜릿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초콜릿도 비슷하다.
어느 순간부터 단 초콜릿보다 쓴 초콜릿이 더 고급스러운 맛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단맛이 귀했던 시절에는 단맛이 좋은 맛이었다.
단 음식이 넘치는 시대가 되자, 쓴맛이 고급 맛이 된 것이다. 시럽을 넣지 않은 쓴 아메리카노처럼...
참고로 본인은 시럽을 넣어 마신다. 쓴맛과 단맛의 조화를 중시한달까. ......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실 요즘 말하는 날씬함은 저체중이다. 정상체중을 밑돌아야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남들 시선일 뿐,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나 편할 대로 살면 되잖아,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불편함이 따라온다.
어느 날 옷가게에 갔는데 점원이 날 보자마자 말했다. "저희 가게 사이즈 교환 안 돼요."
우리 가게에는 너님 사이즈 없음, 이라는 말이었다.
헐... 그때 나는 딱 정상 체중에서 +2~3kg 일 때였다. 그러니까 진짜 내 키 대비 표준 체형이었다는 말이다.
나 정도가 못 사는 옷가게라니? 너무 하는 거 아냐?
날 다른 손님처럼 대하고 이런저런 옷을 권해준 옷가게에서 나에게 맞는 옷이 아예 없기도 했다.
나도 당황하고 점원도 당황했다. ...
표준체중인 내가 이 정도면 과체중은 어디서 옷을 사지?
여기까지는 불편함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나도 내 체형에 맞으면서 예쁜 옷을 파는 옷가게를 찾았으니까.
진짜 문제는 과체중을 게으른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이다.
살은 노력하면 빠진다, 따라서 과체중은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이제 한 10년 되었나? 다이어트에 대해서 "자기관리"라는 말이 나온 무렵, 소름끼쳤었다.
뭘 자기관리라는 말씩이나 해?
체질이라는 게 있다고! 사람 나이 들면 나잇살 붙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빡세게 다이어트를 해서 8~9kg을 빼고, 20대의 몸매로 돌아갔던 적이 있다.
그때 자기관리라는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내가 일찍 일어나게 되더라.
오후 7시 이후 따뜻한 물만 마셨으니까. 배고파서 눈이 떠지고, 아침 거르면 억울해서 일찍 일어나게 되더라.
그러나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나 떡볶이 안주로 맥주 마시는 거 좋아하는데. 그걸 평생 참아야 해?
야식과 맥주는 둘째치고 온종일 배가 고팠다.
이렇게 배가 고픈 걸 참고 사는 게 어떻게 '자기관리' 일 수 있어? '자기학대' 아냐? ...
... 도로 쪘다. 낄-
체중은 체질이기도 하다. 미드 '하우스'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비만인 사람이 내원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비만은 내 병의 원인이 아니다. 그걸 원인으로 보겠다면 치료를 받지 않겠다."며 강경한 반응을 보인다.
그 사람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마른 사람이 병 걸리면 병 걸렸으려니 하면서, 뚱뚱한 사람이 병 걸리면 뚱뚱해서라고 생각하는 거, 몹시 이상하지 않은가?
마른 당뇨도 있다. 마르다고 다 건강한 거 아니다.
내 지인들 중, 나잇살 붙지 않고 20대 체형 유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위나 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
'하우스'에서 그런 에피소드를 다룰 만큼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고, 비만인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
참고로, 하우스의 그 환자의 병은 비만이 원인이 아니었다.
당신이 비만에 대한 시선을 지금 당장 바꿔야하는 이유 - https://youtu.be/7Yo4KuZZu1o
나이가 들면서 살이 붙어 괴로워하는 나에게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링크다.
실제 비만인 사람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 비만에 대한 편견, 어째서 체중 감량이 노력의 문제만이 아닌지를 다뤘다.
노력하지 않아서 뚱뚱한 거다, 라는 도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노력한다고 다 되나? 노력한다고 다 서울대 가고, 하버드 가나?
서울대에 가고 하버드에 간 사람들이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공부가 체질에 맞기도 했던 거다.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다. 하버드에서 정의 과목을 가르친 걸 책으로 펴낸 거.
내가 살 때는 CD가 부록으로 있었다. 요즘은 QR코드로 주려나 ㅋ
한 천 명? 이상? 듣는 것 같은 진짜 거대한 강의실에 학생들이 빼곡하다.
마이클 샌델이 묻는다. "첫째인 사람?"
8~9할이 손을 든다.
마이클 샌델은 "10년째 하버드에서 이 강의를 하고 있다. 해마다 같은 질문을 했는데 해마다 8~9할이 손을 든다."고 말했다.
오로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공부해서 세계적인 명문대라는 하버드에 갈 수 있는 거라면,
왜 하버드생의 비율에서 첫째가 절대다수인가.
마이클 샌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노력" 또한 오롯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말에도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
첫째가 생물학적으로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몰빵 받든, 동생이 생기며 경쟁심으로 인한 승부 근성이 빨리 발달하는 것이든, 첫째가 적어도 하버드대에 입학하는 데에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다는 거다.
체중 또한 체질과 유전적인 부분이 존재하는데, 게을러서 비만이라는 건 명백한 편견이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마른 사람은 다 부지런하고, 비만인 사람은 다 게으른가?
1년에 평균 1kg씩 찌면서 한 10kg 가까이 찐 뒤 몇 년 유지하다가, 또 살이 추가되었다.
20대 때에 견주어 먹는 양은 줄이고, 운동량은 늘렸는데, 또 옷장을 갈아엎어야 하나, 무릎에 이어 허리도 아프기 시작하는데, 빼긴 해야 할텐데, 무엇보다 나 아직 한창 때인데, 예쁘고 싶은데. 크흑-
거울에 비친 나는 제법 예쁘다. ... 내 눈의 착시. ㅋㅋㅋㅋㅋㅋ
사진에 찍힌 나는 둥글둥글하고, 나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사진은 어째서 이렇게 정직한 거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건강하게 늙기 위해 운동하고, 건강식 챙겨먹고, 나이에 따라붙는 살을 받아들이자, 는 마음 한편으로, 포기하지마! 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이렇게 산책 하나에 긴 글이 탄생함. ㅋ
야경을 보며 아무도 없는 서강대교를 걷는 기분은 꽤 쏠쏠했다. 야경은 왜 예쁠까? 반짝이는 건 왜 예쁠까? 그래서 보석이 비싼가? 반짝이는 건 왜 귀할까? 보석이 자갈보다 드물긴 하지. 같은 잡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며 걸었다.
여수 여행이 생각났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던 예쁜 야경. 여수는 이렇게 차소리가 크지 않았고, 파도가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고...
아, 여행 가고 싶다. ㅋ
연이어 우울감에 시달린다는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밀린 산책 일기 쓰느라 그러하다.
지금은 우울감이 가셨고, 바쁜 일상을 열심히 살면서 속초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 전에 밀린 산책 일기 다 올려야 할 텐데. ㅋ (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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