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해면 일출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일출을 보리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전날 확인해 보니 이날 해 뜨는 시각은 6시 36분이었다. 그 시간에 절대 못 일어나지.
마음 편하게 잤고, 눈을 뜨니 6시였다. 알람 맞춘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지?;;;
눈이 안 떠졌으면 모를까, 떠졌는데 일출을 안 볼 수는 없잖아!
다급히 베란다로 나가 보니 바다 위로 따뜻한 기운이 솟고 있었다.
심지어 날씨가 좋아서 선명한 일출을 볼 수 있을 각이었다.
베란다 위치 상 건물로 바다가 일부 가려졌다. 넓은 베란다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었다.
그렇게 아쉽게 볼 색감이 아니었다. 잠옷 위에 코트 걸치고 눈곱도 안 떼고 튀어나갔다.
해변에는 나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로 추정)뿐이었는데, 바다에서 해가 달걀 껍데기에서 달걀 나오듯 둥실, 떠올랐을 때 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나도 동시에 같은 마음이었다.
황홀한 순간이었다.
여행 다니며 일출 시각에 맞춰 나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목도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눈이 아프도록 해를 보다가 겨우 정신 챙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도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출을 또 봤다. 누우면 바로 잠들고 아침이면 가뿐하게 일어나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그러다 동향이기에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은 밤에도 어둡지 않다. 지방은 밤이면 온통 깜깜해진다. 동향인 방에서, 암막 커튼을 일부만 열어 두고 자면, 아침 햇살과 함께 주위가 자연스레 밝아지며 잠에서 깬다.
평소 올빼미로 사는데, 그건 서울이라서 밤에도 어둡지 않고, 집 구조 상 아침 햇살이 자연스레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여행 뒤 인천에 가서도 암막 커튼을 조금만 열어두는 방식으로 자봤는데 통하더라.
첫날은 낯선 잠자리로 조금 뒤척이지만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이 떠지는 것이다.
다음 집은 필히 동쪽에 침실을 만들어야지! *두 주먹 불끈*
2. 설악산으로 가는 길
이날 목표는 설악산이었다. 속초까지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네이버 버스시간표로는 7시 9분 뒤에는 8시 29분이었다. 7시 9분 차는 늦은 지라 8시 29분 거 탈까 하고 느긋하게 나왔다.
네이버 버스 시간표가 지방은 잘 안 맞아서, 얼굴에 물 묻히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8시 못 된 시각.
운 좋게 정류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버스가 왔다. 오우!
역시 네이버 시간으로는 버스로 속초까지 30분이랬는데 10분도 안 걸려서 왔다.
정류장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이 없어서 거의 택시였다.
속초에서 내린 뒤 설악산까지 가는 7번 버스를 기다렸다.
조금 전 정류장이 보여도 버스가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 걸 봤기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버스가 그냥 가버리는구나 싶어서 계속 전방을 주시했다.
뭔가 덕지덕지 붙은 커다란 차가 오는 게 보였다. 버스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두 번 다 앉아서 탔다. 신남. ^^
새벽에 일어난 여파로 졸렸다. 졸다 깨면 네이버 지도로 내 위치를 확인했다.
내 목적지인 설악산 소공원이 7번 버스의 종착역이라는 걸 몰랐다. ㅋ
한참 졸다 네이버 지도를 확인했는데 제자리였다. 내가 오래 존 게 아닌가?
도로 눈이 스르륵 감겼다. 깨서 지도 확인했는데 제자리.
이걸 3회 반복한 후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졸린 눈을 부릅 뜨고 창밖을 보았다.
인도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버스는 앞뒤가 꽉 막혀 있었다.
헐?
왜 갑자기 길이 막혔지?
나가는 길은 텅 비어있는데 들어가는 길은 거의 제자리 걸음이었다.
뭔가 이상해 지도를 확인하며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1) 자차를 몰고 설악산에 오는 사람들로 인해 들어가는 차가 많다.
2) 설악산 소공원 바로 못 미쳐 켄싱턴 호텔이 있다. 그 호텔에 들어가는 차다.
이 두 가지 원인이 결합해서 생긴 정체가 아닌가 싶다.
한 어르신이 속이 울렁거려 불편하다고 버스 기사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각이라 중간에 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앉아서 조는 동안 텅 비어있던 버스가 거의 차 있었다.
도로 정체로 인해 버스 안에서 계속 서 있는 건 몸과 마음 모두 지치게 한다.
게다가 창밖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박탈감까지 더해진다.
기사님은 정류장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우면 안 된다고 짜증을 냈고,
어르신은 굳건히 기다렸고, 결국 기사님이 버스를 세우자, 여기저기서 "감사합니다!"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전원 기다렸다는 듯 내렸다. 나도 내렸다.
그런데 기사님이 또 와락 짜증을 냈다.
일기에 쓰고 기억해야 할 순간이었다.
짜증은 불쾌한 감정의 발산으로 자기 자신과 상대를 모두 더 불쾌하게 만들 뿐,
상대방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
정중하게 화를 내거나, 차분하면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3. 설악산이다!
입구에 있던 거대한 부처상. 부처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을 올리는 불자들, 그저 감탄하며 관람하고 사진을 찍는 나 같은 관람객.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상은 마주할 때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4. 금강굴
설악산은 다양한 산행코스가 있고,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고 했다. 다만 다른 코스를 가려면 시작점으로 와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금강굴을 택한 건 3~4시간 코스에, 평지 7~8할, 이후 계단 2~3할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난이도가 중급이었는데도, 힘들긴 해도 계단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까르르-
평지를 걷는 건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4일 째 혹사당하고 있는 발이었다. 발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발은 미치도록 아팠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기대 열심히 걸었다. 평일이지만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등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나 포함 한 3~5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낄낄-
나머지는 외국인 중에 있었다는 거.
산에 오를 때마다 나처럼 청바지에 코트 입고, 운동화 신고 오르는 사람 거의 못 봤던 터라 개의치 않았다. 가벼운 차림으로도 가능한 산행만 한다.
설악산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나무들로 우거진 곳, 바위가 많은 실개울, 깎아지른 듯한 절벽...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웅장한 산세였다. 천마를 아래에서 올려다 본 느낌? 저 각도로 찍어보겠다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내가 아무리 저질 체력이라지만 계단은 오르지, 했다.
요가는 어려운 자세는 못하잖아. 그래도 걷기는 천천히 가도 걸으면 되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나무 계단이 아니라 돌 계단이었는데 경사가 가팔랐다. 나중에는 기어감. 나만 기어간 게 아님.;;;
이날, 지압이라는 게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다. 발 지압판들이 가끔 있는데, 그게 정말 효과가 좋을지 딱히 신뢰가 가지 않았던 거.
그런데 평지에서는 발이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울퉁불퉁한 돌을 밟자 발이 안 아픈 게 아닌가!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 건 힘들고 체력 소모가 엄청났지만, 발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살 것 같았다. 와, 이런 신세계가 있나.
내가 정말 산행 경험이 없음을 실감했다. 높이 올라도 논밭, 마을, 아파트 같은 인공물이 전혀 보이지 않고 산 뒤에 산, 봉우리 뒤에 봉우리였다. 첩첩산중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가다가 200미터 남았다는 팻말을 보고, 휴, 거의 다왔군, 했는데, 거기가 지옥의 시작이었다. 경사가 갈수록 가팔라졌다. 기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지 싶다.
중간에 잠깐 풍경 보며 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별 생각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 최종 목적지를 보고야 말았다.
저 구멍이 금강굴이었다. 저걸 발견한 순간 빵 터졌다.
나는 당황하거나 놀라면 웃음이 터지곤 한다. 저길 가야 하는 거였어? 그런 거야? 우와;;;
올라가며 겪은 저 계단은, 보통 계단의 2칸 높이여서, 오면서 이미 기운을 다 쓴 입장에서 여간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게다가 계단 틈으로 아래가 보이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다.
그걸 안/못 찍었네. 계단에서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몸이 좀 저릿해지기 때문에 - 약한 고소공포증 -
사진기 떨어뜨릴까 봐 엄두가 안났다.
저 안에 원룸 정도의 폭에 좀 긴 동굴이 있다. 실제 스님이 수련하는 곳이고, 안쪽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스님은 설마, 매일 이 길을 오가는 걸까?;;;;;
이 돌계단, 여기에 있는 나무 계단은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만드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가 여길 오네요.
불자로 추정된 노부부를 가는 길에 만났다. 죽기 전에 오려고 왔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에게도, 죽기 전에 거기는 꼭 가봐야지, 하고 어딘가로 가게 되는 날이 오겠지... 거기가 어딜까?
5. 하산
절벽에 붙은 계단을 내려갈 때 아찔했다. 엉덩이를 계단에 붙이고 한 발, 한 발, 내려왔다. 경사가 급한 데다 내려가느라 밑이 보여서 더 짜릿했달까.
아까 내 목적지를 확인한 곳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꼭대기까지 올랐던 분이, 영화에서 본 것처럼 밧줄을 타고 하강하는데, 와아-
아마도, 나는 암벽 타기는 해보지 못하겠지. 그러고 보니 가까운 곳에 실내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해봐야지, 했던 게 기억난다. ...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다. ㅠ
다시 버킷리스트에 넣어야지. ㅠ
같은 길을 내려가며 올라갈 때와 같은 듯 다른 풍경을 보며 즐거웠다.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묻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았다. 가다 보면 도착할 거, 영화 보기 전 스포일러를 피하는 심정으로 그저 걸었다.
내려가는 길에 누군가, 내가 은근히 바라던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남았나요?"
"얼마 안남았는데 갈수록 험해져요."
나는 온 얼굴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갔다 내려온 자의 의기양양함이랄까. 깔깔
그러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부부를 만났다. 남편분이 내게 얼마나 남았는지, 많이 험한지 물었는데, 둘 다 녹초가 되어 있기에, 진지한 얼굴로 뒤로 가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부인이 "아이고, 나는 더 못가!" 했다.
듣고 보니 두 분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었다! 훨씬 편한 코스인 무슨 계곡으로 가려다 시작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뜨아;;;
아마 다시 내려가셨을 것 같다;;;;
돌계단이 끝나고 평지가 나오자 다시 뾰족한 돌멩이 여러 개로 발을 막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이 돌아왔다.
아픈 발을 끌고 마저 관람을 마치고 휴게소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마사지샵을 검색했다.
마사지라도 받아야지, 도저히 안 되겠더라.
가는 길을 검색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버스가 왔는데 나는 뒷줄이었다.
다음 차를 타면 앉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고민하다 그냥 탔다. 아, 진짜 중간에 내리는 사람 거의 없었다. 크크크크크
그런데 버스에 말벌이;;;; 말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거대한 벌 같은 게;;;;;;
너무 무서웠다. 난 너무 무서운데 사람들은 다 너무 태연한 거야.;;
그러다 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버스에 공포가 퍼지기 시작. 나는 다급히 창문을 열었고, 어떤 분이 벌을 밖으로 유도했다.
벌이 나가자 창문 쪽 좌석에 앉은 분이 빠르게 창문을 닫았다. 휴.... ㅠㅠㅠㅠ
6. 북경마사지샵
검색해 보니 마사지샵이 여러개 떴는데 찍어서 갔다. 마사지는 태국, 베트남 여행할 때 받아봤고 한국에서 받는 건 처음이었다.
이날 마사지 쌤에게 유용한 정보를 몇 개 들었다.
1) 우리나라 사람들은 센 마사지를 좋아하는데, 센 게 좋은 게 아니다. 근육 다친다.
2) 마사지 사들은 전문가라 손감각으로 어느 정도 강도로 해야 근육이 풀리는 줄 아니 믿고 맡기면 된다.
3) 약한 마사지를 자주 받는 게 좋다.
4) 마사지로 근육을 푸는 과정에서 근육이 다친다. 다친 근육이 치료되는 데는 최소 48시간이 필요하다.
5) 고로 마사지는 일주일에 한 번이 적당하고, 응급시에는 사흘에 한 번한다.
6) 아프면 아프다고 말한다. 아프면 근육이 수축되어서, 마사지가사 근육이 뭉친 줄 알고 더 세게 하게 되니 근육 다친다.
7) 어느 정도 아픈 건 근육을 푸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한다.
8) 이번 한 번으로 풀리지는 않는다.
나는 믿고 맡기겠다고 했다.
푸는 과정에서 아플 수도 있다더니, 정말 드럽게 아팠다. ㅋㅋㅋㅋ
특히 종아리와 발, 그중에서도 평발인 오른발이 특히 고통이었다.
절로 "으악, 선생님!" 소리가 나오더라. ㅋㅋㅋㅋㅋㅋ
이 쌤 진짜 전문가였다. 독주를 마시면 내장들의 위치가 확인되듯, 쌤의 손이 들어올 때마다 근육과 뼈가 인지되었다.
이날 마사지쌤에게 속초 여행 팁도 하나 들었다.
뉴스에서 설악산 단풍 절정이라고 할 때 올 필요 없다. 그 전주나 그 다음 주나 다다음 주도 단풍 색깔 비슷하다.
지난 주가 절정이랬는데, 그때 온사방에서 관람객이 모여서, 도로가 꽉 막혀 서울인 줄 알았다고. ㅋㅋ
그냥 내 일정에 맞게 움직인 건데, 결과적으로 운 좋게 잘 맞춰온 것 같다.
마사지 쌤도 친절했지만, 나도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누군가를 기분좋게 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 반동으로 나도 친절함을 돌려받고 기분좋아짐을 느끼고 싶다.
그게 안 되면 유리멘탈이 아작난다.
어제 숙소 일로 받은 타격이, 친절한 마사지 쌤 덕에 회복되었다.
7. 속초회관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이자카야에 갔다. 춥지 않으면 바깥 테이블에서 불멍도 때릴 수 있다고.
이때는 추워서 불멍은 무리.
고민하다 돌문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35,000;; 한 끼로는 사치지만;;;;
오늘 나 수고 많았어. 이 정도 사치해도 된다고. ^^
담음새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이었다. 마늘 한 톨 안 남기고 싹 먹었다. ㅋㅋ
혼술하는 분이 두어 명 더 있어서 혼자 가기에도 부담없는 곳이다.
속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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