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다낭/호이안/후에 #009. 어느 레스토랑에서

by 운가연 2020. 6. 6.

다낭/호이안/후에 #001. 12년 만의 자유여행, 베트남 너로 정했다!

다낭/호이안/후에 #002. 혼자 자유 여행이 처음도 아니거늘....

다낭/호이안/후에 #003. 눈치보지 마, 아무도 너한테 신경 안 써!

다낭/호이안/후에 #004. 스무 살 때의 나처럼

다낭/호이안/후에 #005. 혼자 떠난 자유 여행의 맛

다낭/호이안/후에 #006. 유명한 많은 곳을 놓쳤지만, 뭐 어때

다낭/호이안/후에 #007. 여행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다낭/호이안/후에 #008. 나 혼자는 나 혼자 뿐

다낭/호이안/후에 #009. 어느 레스토랑에서(현재글)

다낭/호이안/후에 #010. 후에 투어, 잇 워즈 뷰우우우우우리풀!

다낭/호이안/후에 #011. 후에, 못다한 소소한 이야기

다낭/호이안/후에 #012.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 어떻게든 된다.

다낭/호이안/후에 #013. 나 이거 꼭 해 보고 싶었어!

다낭/호이안/후에 #014.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마저 좋았다.

 

 

시타델을 보고 나오니 어느새 어둑했다.

흐엉 강이 보이는 야경

후에 밤 거리

 

후에에는 황제릉이 일곱 군데 있다. 거길 돌아보려면 투어를 신청하는 게 낫다고 했다. 숙소에서 개인 택시 대절해줄 수 있다고 했다. 시간 등등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베트남 물가 기준으로 가격이 겁내 비싸긴 했다. 길든 짧든 여행을 가면 거기 물가에 삽시간에 길들여지는 지라. 지나치게 사치가 아닌가 싶었다. 개인 택시 기사와 1:1로 다니는 것도 과하게 느껴졌고, 불편하기도 했다. ... 어째서 갑자기 낯가림증이;;;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현지 투어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 보니, 개인 기사와 함께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설령 더 비쌌더라도 딱 내가 원하는 곳만 가서, 원하는 시간 만큼 마음껏 둘러보고 올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언제 다시 베트남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베트남 물가 기준으로 비쌌을 뿐, 기왕 간 여행에서 쓰지 못할 돈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회가 돈보다 더 귀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다음 번에는 괜히 돈 아끼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으나 그렇다고 새삼 후회하는 것까진 아니다. 어차피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하고 돌아오기는 어렵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 단체 투어도 단체 투어 나름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 이 이야기는 투어 때 쓰기로 하고.

시타델을 나와 번화가에 들어섰다. 길 가다 보인 여행사에 들어가 투어 문의를 했다. 티켓비 제외하고 28만 동이었다. 코스를 보니 시타델이 있어 이미 갔다 왔다고 말했다. 투어에 참여하려면 8시까지 와야 하는데, 시타델은 이미 다녀왔다면 10시에 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1인당 요금이라 깎아줄 수는 없다고.

다른 곳은 더 알아보지도 않아 놓고;; 직관적으로 적절한 가격이라고 느꼈다.

 

다음 날 이 투어에서 한국분을 만났다. 그 분은 25만동이었는데, 자기가 머무는 숙소를 통해 예약한 거라 숙소 손님 할인이 있었던 거라 내가 지불한 가격도 괜찮았던 것 같다.

3만 동 차이는 1500원이다. 사실 큰 차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꼼꼼히 가격을 따져보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게 100원이라도 바가지를 썼거나 사기를 당했다 싶으면 속상하고 약이 오르는 것이다. ㅋㅋ

베트남 여행은 편했다. 딱히 시장에서 물건을 사지 않아 이거저거 흥정할 필요도 없었고, 숙박비도 앱에서 보고 골라 결제하면 그만이었다. 그랩도 정찰제나 마찬가지. 첫 배낭여행이었던 인도는 숙소부터 이동하기 위한 택시, 투어비 등등 모두 흥정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굳이 다른 여행사를 더 알아보지 않고;;; 3시간 걸었더니 피곤하기도 했고, 가격도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하겠다고 돈을 냈고, 모레 다낭행 슬리핑 버스도 여기서 타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며 쉴 시간이었다. 어디로 갈까, 하는데 눈에 띄는 3층 레스토랑이 있었다. 물안개가 자욱하고 등을 잔뜩 달았는데 차이니즈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먹는 중국 음식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가게가 너무 매력적이라 들어갔다. 2층 창가에 앉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더라.

 

외형이 이렇게 생기진 않았습니다. ^^;

 

 

낮에 본 모습

 

1층에 있는 복도는 개울처럼 물이 흘렀고 징검다리처럼 완전히 원형으로 돌을 놓았다. 물안개가 자욱한 풍경이 몹시 예뻤다. 직원이 날 보고 "쎄쎄."라고 인사하는 걸로 보아 손님 중에 중국 사람이 많은 것 같았고, 사장도 중국 사람인 것 같았다.

내부에도 등이 엄청 많았다. 눈이 호강하는 곳이었다.

메뉴판은 재료 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개구리 코너가 있었다. ... 차, 차마 시도해볼 엄두는 나지 않아 굴 요리를 시켰다.

 

다 먹었다!

식당에 혼자 온 사람 나 하나. *이젠 뭐, 으쓱.*

 

레스토랑에서 그린 바깥 모습

창가에 있는 바처럼 된 자리에 앉아 창밖을 그렸다.

 

굴요리는 넘나 맛있었다. 그림도 그렸다. 나를 서빙해 준 직원(20대 초반, 여자아이)이 스케치북을 봐도 좋은지 물어 보여 주었다.

레스토랑에서 그린 내부 그림.

바로 위에 있는 그림을 보더니 어딘지 물었다. 나는 이 레스토랑이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그림과 내부를 번갈아가며 보더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예쁘네."

이렇게 보니 예쁘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내게는 너무 예쁘고, 음식도 맛있고, 풍경도 좋고, 편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 아해에게는 힘들게 일하는 직장인 것이다. 종업원 수가 딱히 적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많아 붐비는 곳이라 일하는 내내 정신 없으리라.

내가 주문한 게 잊히기도 했다. 나는 단지 음식이 늦는 게 아니라 - 우리나라처럼 음식 빨리 나오는 곳이 많지 않음 - 잊혔다는 생각에 다시 말하자 어쩔 줄 모르고 미안해 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안 급하다고 말했다.

나는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냥 기뻤고, 모든 게 흥겨웠다. 그래서 음식이 나오고, 맥주가 나오고, 기타등등 할 때마다 활짝 웃으며 "깜언!"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식당을 나갈 때 이 직원이 웃으며 "쎄쎄."라고 말했다. 친절한 손님으로 느낀 듯해 고마웠다. 한국인이라고 말하려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냥 "쎄쎄."라고 해버렸다.

힘들 때, 완전히 낯선 사람의 가벼운 친절이 주는 따뜻한 위안을 겪어 본 적이 있다. 바쁘게 일하던 이 직원에게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면 감사한 일이다. 직원이 내게 고마워한 웃음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굴 요리로 충분히 배가 불렀는데, 하나 더 먹고 싶었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커플이 메인 요리 2개에 사이드 메뉴도 2갠가 시켜 먹는 모습을 보고 넘나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밖에 못 시키는데... 혼자 온 여행의 슬픔이지. 왠지 속상해 하나 더 먹기로 하고 매운 돼지 내장 볶음을 시켜 힘내서 다 먹었다. 배 터지는 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숙소로 돌아가는 마지막 셔틀 버스가 8시 반이었다.

8시에 나와 소화시킬 겸 걸었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주점/레스토랑 두 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음악도 엄청 컸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걸 보니 맛있는 곳인가? 베트남 젊은이들이 저녁에 즐겨 찾는 곳 같았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배부르고 곧 셔틀 버스 올 시각.

셔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19. 1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