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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다낭/호이안/후에 #004. 스무 살 때의 나처럼

by 운가연 2020. 5. 20.

다낭/호이안/후에 #001. 12년 만의 자유여행, 베트남 너로 정했다!

다낭/호이안/후에 #002. 혼자 자유 여행이 처음도 아니거늘....

다낭/호이안/후에 #003. 눈치보지 마, 아무도 너한테 신경 안 써!

다낭/호이안/후에 #004. 스무 살 때의 나처럼 (현재글)

다낭/호이안/후에 #005. 혼자 떠난 자유 여행의 맛

다낭/호이안/후에 #006. 유명한 많은 곳을 놓쳤지만, 뭐 어때

다낭/호이안/후에 #007. 여행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다낭/호이안/후에 #008. 나 혼자는 나 혼자 뿐

다낭/호이안/후에 #009. 어느 레스토랑에서

다낭/호이안/후에 #010. 후에 투어, 잇 워즈 뷰우우우우우리풀!

다낭/호이안/후에 #011. 후에, 못다한 소소한 이야기

다낭/호이안/후에 #012.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 어떻게든 된다.

다낭/호이안/후에 #013. 나 이거 꼭 해 보고 싶었어!

다낭/호이안/후에 #014.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마저 좋았다.

 

 

안방 비치로 가기 전에 수영복을 속에 입고 갈지 말지 잠시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수영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갔다. 해변에서 신을 만한 마땅한 슬리퍼가 집에 없었던 터라, 가서 사지 뭐 하고 운동화에 양말까지 고이 신고 갔다.

안방 비치는 호이안에 있는 해변으로 모래 사장이 4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했다. 3~8월에 가면 열대 지방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프렌즈 베트남 참고)

 

안방 비치. 한적했다.
안방비치. 베트남에서 그린 그림.

나는 11월 초에 간지라 푸른 바다색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수영 금지라는 팻말이 보였다. 여름이면 수영이 가능한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암튼 수영 금지라니, 수영복 안 입고 오길 잘했군, 하고 천천히 해변을 걸었다. 발을 적시자니 신발을 벗어야 해 귀찮기도 하고, 바닷물에 발바닥 정도는 담가 보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

낚시를 하는 베트남 남자들이 보였다. 파도가 없지 않은데 여기서 고기가 잡히나? 잠깐 구경하다 계속 걸었다.

서양 남자 관광객이 수영복 바지만 입은 채 양쪽에 신발을 들고 걷는 모습이 보였다. 체격이 큰 서양 여자 관광객은 빨간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산책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샌들을 신은 사람도, 운동화를 신은 사람도 있었다.

해변에 나갈 때를 대비해 비치 가방을 사야 하지 않을까 하고 한참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던 내가 생각나서 속으로 혼자 웃었다.

12년 차이가 나면 띠동갑이라고 한다. 마지막 자유여행 때와 지금의 난 띠동갑이다.

 

띠가 한 바퀴 돌 시간이 흘러서 다시 자유 여행을 나오며,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혼란스러워 하는 내게 사촌 ㅎㅈ이 말했다.

 

"스무살 때의 언니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맘 가는대로 놀아요."

스무 살 때도 비키니는 못 입었지만 ㅋ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

스무 살 때 첫 자유여행을 갔다. 국내 여행도 다녀 본 적 없었으니, 자유 여행에 대해 알게 뭔가. 비행기도 난생 처음 탔었는데. 그땐 뭐 알고 갔나? 모르고 가서도 잘 놀고, 잘 먹고, 즐기다 왔다.

 

새삼 겁 먹을 게 뭐지?

해변에 긴 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오지 말라는 법 있나? 해변에 가면 꼭 수영해야 하나? 수영 금지 팻말이 있다고 수영복 입고 돌아다니면 안 되나? 수영복은 수영하라고 입는 옷이지, 누구 보라고 입는 옷이 아니다. 비키니를 입으며 남 눈치는 왜 보나.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없다. 설사 있다 해도,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다.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면 된다.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즐기다 오면 된다. 혼자 왔으니 동행과 의견 조율할 필요도 없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양말을 각기 운동화 속에 집어 넣고, 한 손에 하나씩 든 채 해변에 발을 담그고 걸었다. 조개가 있는지 간혹 모래에 빨대를 꽂았다 뺀 것처럼 자그마한 원들이 보였다.

그네가 보이기에 잠시 앉아 쉬었다. 베트남인 커플이 와서 여자가 의자에 앉고, 남자가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이 보여 독사진을 찍도록 피해 주었다
멀리 보인 짓다 말고 방치된 느낌의 건물

안방 비치에서 느리게 산책한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전날의 공황은 사라졌다. 수채화 킷을 챙겨오며 기대했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닌 황토색 바다였지만 여긴 베트남이고, 마감 후 여행이라는 로망을 실현했고, 베트남에 와서 안방 비치를 걷고 있다.

 

그걸로 충분했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안방 비치에는 야자수로 만든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선 비치도 구비하고 있다.

한참 걷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해변가를 따라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었고, 레스토랑마다 선 비치를 두고 있었다,

 

어디에 들어갈지 고민하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선 비치 위에 있던 고무판을 다급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이어 머리 위로 빗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헐, 비오시려나?

비는 삽시간에 거세졌다.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가까이 있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선택 장애를 물리쳐 준 비님에게 감사를...

 

레스토랑에서 그린 그림.

다시 가도 좋을 만큼 맛난 곳이었는데 가게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

 

사실 언제 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올 초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메뉴판을 보고 한참을 고심하는데 사장님이 새우 요리와 가리비 요리를 추천했다. 옹, 이게 이집에서 잘하는 건가? 그래서 가리비 요리를 택했다.

 

 

짭쪼롬한 게 끝내주게 맛있었다. 맥주 안주로 딱이다 싶었지만 낮술은 즐기지 않은 편이었다.

 

문득 맥주를 나만큼 좋아하는 ㅈㅁ 생각이 나더라. 아니나 다를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자 맥주 안주로 좋겠다는 ㅈㅁ의 댓글이 있었다.

아침도 안 먹은 상태에서 가리비 요리 몇 점으로 배를 채우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도 가리비 요리만 시킨 이유는, 바로 후식 때문이었다.

 

초콜릿과 땅콩 소스를 얹은 망고 튀김

디저트 페이지에서 튀긴 망고에 초콜릿과 땅콩 소스를 끼얹은 디저트를 보았다. 이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 못 먹어볼 디저트라는 감이 왔다. 게다가 가리비가 넘나 훌륭했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시켰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하고 초콜릿 소스도 풍미를 더하고 아작낸 땅콩이 씹는 맛을 주었다. 우와- 이건 정말 천상의 맛이다아아아아아!

잠시 후 가족 단위로 온 한국인들이 들어왔다.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얼핏 옆집이 맛집으로 유명하지만 이 집이 더 맛있다, 는 말이 들렸다. 그렇군. 잘 들어왔군아. 비님아, 낵아 넘나 감사한다.

 

레스토랑에서 그린 그림

 

맛나게 밥을 먹고, 내부도 한두 점 그리고 나니 비가 그쳐 바깥에 나가 선 비치에 누워 해변도 그렸다.

 

현장에서 그린 그림은 확실히 집에 돌아와 사진 보고 그린 그림과는 다른 현장감이 있달까.

 

땅콩 소스 가리비 구이
튀긴 망고에 초콜릿과 땅콩 소스

 

(19.11.04. 베트남. 안방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