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호이안/후에 #001. 12년 만의 자유여행, 베트남 너로 정했다!
다낭/호이안/후에 #002. 혼자 자유 여행이 처음도 아니거늘.... (현재글)
다낭/호이안/후에 #003. 눈치보지 마, 아무도 너한테 신경 안 써!
다낭/호이안/후에 #005. 혼자 떠난 자유 여행의 맛
다낭/호이안/후에 #006. 유명한 많은 곳을 놓쳤지만, 뭐 어때
다낭/호이안/후에 #010. 후에 투어, 잇 워즈 뷰우우우우우리풀!
다낭/호이안/후에 #011. 후에, 못다한 소소한 이야기
다낭/호이안/후에 #012.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 어떻게든 된다.
다낭/호이안/후에 #013. 나 이거 꼭 해 보고 싶었어!
다낭/호이안/후에 #014.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마저 좋았다.
1.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ATM에 체크 카드를 넣고 미리 예약해 둔 달러를 찾고, 역시 미리 주문해 둔 유심을 찾고, 발권하고 나니 7시 45분이었다.
너무 일찍 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일찍 온 덕에 비상구 좌석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선착순으로 물어본 게 아니었나 싶다. 에어서울이 저가 항공 중에서는 좌석이 넓은 편이라고 들었다. 그래도 넓게 가면 좋잖아?
비상구 좌석에 앉은 사람은 유사시에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옛날 옛날 먼 옛날 내가 비행기를 탈 때는 비상구 좌석은 할인해 주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 좌석이 더 비싸다;; 넓어서 그런가 보다.
비행기에 탄 뒤 승무원이 비상 상황시 비상구 좌석 승객이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나는 진짜 열심히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라. 음냐;;;
전날에 5시간도 채 자지 못해 머리가 멍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콜라를 하나 시키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일찍 와서 늦장 부리다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권 후에도 뭔가 과정이 있지 않나?
맞다, 그러했다. 여권 확인, 짐 확인, 보딩 체크 등등이 있었다. 가방 크기가 기내 가방 크기에 맞아서인지, 달리 무게를 재지는 않았다.
인천국제 공항은 처음이었다. 저가항공은 1터미널이라는데 지하철 같은 걸 타고 가야 했다. 거리가 좀 있구나. 일찍 오길 잘했다. 탑승구에 도착하니 9시 16분이었다. 아직도 1시간 15분이 남았어. 아이고 데이고 졸린 거.
ㅈㅁ이 추천한 카카오페이지에 있는 '옹동스'를 보았다. 아, 스노우캣 작가 고양이 일상툰이구나.
언젠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오래 전 스노우캣 홈페이지에 가서 일상툰 열심히 봤었다. 스노우캣이 디자인한 다이어리도 샀었는데, 내가 산 다이어리 중 가장 쓰기 좋고 편했다. 쓸데 없는 게 없었고 필요한 게 많았달까...
2. 마침내 비행기에 올라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 보니 다낭이었다.
현지 시각 13 : 58이었다.
유심을 갈아 끼우고, 한국 유심을 소중히 보관하고 환전을 했다.
3. 인터넷에서 그랩 사기를 주의하라는 글을 그렇게 봤거늘....
베트남에는 그랩이라고 일종의 카카오 택시가 있다.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를 입력하면 금액이 나온다. 그랩에 카드를 등록하면 별도로 돈을 줄 필요가 없이 자동 결제 된다. 이게 꽤 편한 이유가..
1) 택시비를 흥정할 필요가 없다.
2) 택시가 길을 돌아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3) 잔돈 염려도 없다.
3)은 카드를 등록해 자동 결제할 경우임. 그걸 '모카'라고 하더라.
베트남 돈으로 만 동이 우리 돈으로 500원이다. 만 동 이하는 정말 작은 돈이다. 간혹 택시 기사가 잔돈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럼 덜 주긴 그러니 더 주게 된다. 사실 더 줘도 오백원, 천 원이긴 하다만.
그랩 덕분에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랩으로 목적지를 검색하면 근처에 있던 택시 기사가 그랩 가격으로 가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 흑정하거나 그랩 택시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설사 더 주더라도 큰 돈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만 동이 500원이니까.
사실 돈보다 '사기를 당했다' '바가지를 썼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하는 거라, 그랩이 좋긴 하더라.
하지만 첫날에는 실수했다. 첫날이 제일 어렵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주의를 들었거늘...
간혹 자기가 내가 부른 그랩 기사라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바가지 요금을 부를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반드시 그랩 앱에서 내가 부른 택시 번호를 확인하라는 글이 많았다. 공항에서 그랩 기사를 부르고 폰을 보고 있으니 누가 와서 자기라고 우기는데 촉이 딱 아니었다. 그런데 그 택시를 타게 된 건, 내가 숙소 이름을 착각해 호이안 숙소 주소가 아니라 마지막 날 다낭 숙소 주소를 찍었는데, 그 사람이 내 주소를 보고 "여기 다낭이야. 호이안 아니야." 라고, 거기가 진짜 내 목적지인지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택시에는 번호판도 없었다. 음냐;;;
... 결국 우리 돈으로 만 원 더 냄. ㅠㅠㅠㅠ
가는 길에 그랩으로 요금을 확인했고, 더 달라고 하면 그걸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낯선 도시 첫날이었고, 여러모로 긴장도 되고 스트레스도 받아 그냥 주고 말았다. *훌쩍*
하지만 이후 만난 그랩 기사들은 다 친절했다. 내가 모카로 자동 결제되는 걸 깜빡하고 돈을 주려고 하면 다 거절하는 식. 물론 카드 알림 오고, 그랩이 신고 기능도 있는 듯해서 문제가 생길 걸 염려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대체로 친절하고 좋았다.
보통 대도시, 특히 공항 근처에서 조심해야 한다. 나처럼 갓 도착해 현지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조금 속상했지만, 마음에 담아 두면 남은 여행이 메롱해지기 때문에 털어냈다.
이야기를 조금 뒤로 돌려서...
택시에서 리조트로 가는 길에 넋을 잃고 풍경을 보았다. 해외 자유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12년 만에 혼자 자유 여행을 떠나려니 막막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잖아?
거리에서 우뚝 선 야자수가 머리를 날렸고, 집들은 우리나라 펜션 느낌으로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다만 페인트는 칠한지 오래 되어 대부분 빛이 바랬고, 도로 쪽만 페인트를 칠한 경우가 많았다. 도로 쪽은 꼭 칠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 여행 때도 느꼈지만, 시내 대중 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대부분 오토바이를 탄다.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여자, 남편이 몰고, 부인이 아기를 타고 뒷좌석에 앉은 모습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게 우리나라였다면 금지되었을 운전.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4. 첫 번째 숙소는 호이안의 Silk Sense Hoi An River Resort 였다.
호이안과 후에에서 관광지/시내가 가까운 도심에서 숙박할지, 떨어져 있는 리조트에서 숙박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관광지에서 가까운 호텔은 싸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리조트는 하루에 몇 차례 정해진 시간에 시내를 오가는 셔틀 버스가 있다. 조용하고, 예쁜 대신 비싸고 셔틀 버스가 만원이면 못 타서 택시를 불러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굳이 리조트로 정한 건, 혹시라도 밤에 혼자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수영도 할 수 있고, 정원이 예쁘다니 산책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크 센세에 들어가자 웰컴 티와 물수건을 주었다. 오토바이가 많은 만큼 매연도 많아서 물수건이 필수인 듯. 방은 넓고,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여길 잡기 잘했어!
잠시 쉬고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시내로 가는 셔틀 버스 시간은 5시였다. 내가 도착한 게 4시 넘어서였던 걸로 기억. 짐 풀고 잠깐만 쉬다 바로 나왔던 것 같으니까.
로비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사무치게 외로웠다. 셔틀 버스에 혼자 탄 사람은 나 하나였다. 가는 동안 노을이 진다 싶더니 시내에 도착하자 어두웠다. 같은 셔틀 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일행과 흩어졌다. 나만 막막하게 서 있었다. 관광할 시간은 끝났고, 카페에 가거나 레스토랑에서 저녁과 맥주를 곁들이며 쉴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호이안에 도착했다구!
거리를 하릴없이 헤매는 동안 점점 외롭고 서러워졌다. 괜히 왔어. 이번 여행 망했어. 나 이제 어떡하지? 호이안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어딜 관광하면 좋을지 제대로 자료 못 찾고 왔는데...
그러다 남원-담양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남원에 도착했을 때 초저녁이라 어두워질 때였고, 여행 준비 하나도 안 해왔고 막막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미나게 여행하지 않았나.
괜찮아질 거야. 나를 달래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길거리 음식점을 발견했다. 인도에 낮은 의자와 탁자를 늘어놓고, 사장이자 주방장도 한쪽 의자에 앉아 비빔국수 비슷한 걸 팔고 있었다. 자리가 꽤 많았는데 거의 다 차 있었다. 저녁 시간에 손님이 많다는 건 맛있다는 소리겠지?
이때가 베트남 시간으로는 오후 5시 반~6시 경,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7시 반~8시였는데 아직 한 끼도 못 먹었다. 공항에서 콜라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다.
용기를 내 들어가니 사장님 -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 - 이 손가락으로 국수를 가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물이 있는 국수는 아니었다. 사장님은 그릇에 채소 깔고, 면 깔고, 땅콩 가루 올리고, 소스를 뿌려 주었다. 이게 면이 아니라 말린 해파리였던 듯? 새콤짭조롬달콤하니 맛있었다.
좋아, 밥을 먹었어! 잘했어!
3만동, 1500원이었다.
또 거리를 헤맸다. 오토바이는 정신없이 달리고, 가족 단위로 온 한국 사람들 목소리도 들렸다. 레스토랑이 대부분 인도까지 좌석을 놓는지라 맥주를 마시는 서양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말랐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충동적으로 영어 간판이 없는 가게에 들어갔다. 당연히 메뉴판에 영어 이름도, 사진도 없었다. 사장님이 - 20대 여자 - 나한테 휴대전화에 찍힌 음식 사진을 보여 주었다. 밥은 먹었고, 나는 베트남 어를 못하고, 사장님은 영어를 못한다. 음... 그러다 메뉴판에서 맥주를 보았다. 이건 어째서인지 영어로 써 있음. 우리나라도 커피, 맥주 등은 영어로 써 놓는 경우가 많은데 베트남도 비슷했다.
비아 사이공을 한 캔 시켰다. 뭔가 안주도 먹고 싶어졌다. 식사를 시키기엔 과하고... 오기 전에 찍은 음식 사진에서 춘권 튀김을 찾았다. 사장님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계산대에 서 있기에 사진을 보여 주며 "이거 있어요?" 라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좌절해 자리에 돌아와 맥주를 홀짝였다. 사장님의 아버지 혹은 시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잠옷 바람으로 한 테이블에서 손자 둘에게 밥을 먹였다. 애들은 먹는데 집중하지 않고 자꾸 딴짓하고, 어르신은 숟가락 들고 좀 먹으라고 달래고. 애들 밥 먹이느라 애 먹이는 건 우리나라나 베트남이나... ㅋㅋ
근데 갑자기 짜조 넴이 나왔다. 안 된다는 게 아니었나? 아니면 메뉴판에 없는데 만들어준 건가? 암튼 안 된다는 게 아니었나 봐. 고마워라.
씹으면 바삭,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잘 튀겨 졌고, 내용물은 2개씩 각기 달랐다. 맛있었어. 오늘 2가지 다 성공했어.
나와서 또 열심히 여기저기 걸었다. 아까 걸은 곳을 몇 번 다시 걷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
가게가 보여 캔맥주를 종류별로 4캔을 샀다. 다 355ml로 500은 안 보이더라. 근데 355 사길 잘했다. 국수 먹고 짜조 넴까지 먹었더니 배불러서 못 먹음. 걍 냉장고 행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셔틀 버스 시간이 8시 20분이었다. 1시간 반 정도 남은 상황. 물론 택시 타고 일찍 숙소에 돌아가도 괜찮았다. 수영장도 있으니까 밤수영해도 된다. 숙소에도 레스토랑 있다. 잠들기 아쉬우면 거기서 맥주 홀짝여도 된다. 정원도 예쁜 곳이고... 좀 비싸겠지만, 여행 와서 넘 돈 아끼는 것도 글찮아? 큰 마음 먹고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숙소를 지르지 않았나. 하룻밤에 무려 1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숙소를 즐기는 것 또한 여행이다.
그런데도 나는 숙소에 갈 수가 없었다. 일단 내가 호캉스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재미에 대한 감이 1도 없었던 터라 숙소에 돌아간다는 건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소리였다. 아쉽고 아쉽고 아쉬웠다. 뭘 먹은 것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기분이었다. 여행에 나왔으니 거기서 현지 음식을 먹은 것만으로도 뭔가 한 것인데도, 이대로 돌아가면 할 일이 없어서 일찍 돌아왔다는 좌절이 찾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또 거리를 헤매다 다리가 아플 무렵 노천 카페를 하나 찾았는데 베트남 사람으로 다글다글했다. 오, 저기 뭔가 맛있을 것 같아! 가서 코코넛 커피를 시켰다. 이건 베트남에서밖에 못 마실 듯해서....
코코넛과 커피를 섞지 않아 몽실몽실한 코코넛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컵도 엄청 컸다. 커피다, 베트남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고 있어! 냐하하하하하하
스케치북을 꺼내 거리 풍경을 그렸다. 발 자세를 바꾸다 발이 탁자에 걸렸고, 작고 가벼운 탁자라 날아갔고, 지나가던 서양 여자 관광객이 맞을 뻔했다. 맞은 것 같진 않고, 냉커피라 커피 컵에 맺혔던 물방울만 튄 듯 했다. 공황이 왔다. 미안하다, 괜찮냐, 미친듯이 사과하며 휴지를 찾는데, 가방 깊은 곳에 있어서 나오지를 않았다. 가방에서 겉옷, 아까 산 맥주 등등을 마구 거리에 꺼낸 끝에 휴지를 찾았을 때는 일행이 이미 물티슈를 준 상황. 맞을 뻔한 사람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진짜 공황이 올 뻔;;;; 부딪쳤으면 어쨌을 거. ㅠㅠㅠㅠㅠㅠㅠㅠ
그쪽에서 괜찮다고 간 뒤에도 심장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자괴감이 찾아왔다. 그동안 커피 가게 사장님이 탁자도 세워 주고, 제법 마신 상태라 쓰러졌지만 쏟아지지는 않았던 커피 컵도 다시 놔줬더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괜찮은지 걱정하는 눈빛도 보이고 해서, 뭐, 이런 손님이 다 있음? 하고 쫓아내려는 것 같진 않아서, 공황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날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인터넷이 날 구원했다. 페북에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자 페친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짜조 넴이라고 음식 이름도 알려 주었다. 여행 잘 다녀오라는 댓글도 달렸다. 그걸 보자 외로움이 한결 가셨다. 외로운 것보다 외로움이 없는 게 인생에서 더 경계해야 할 지점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은 인터넷이 있어서,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19.11.03. 베트남. 호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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