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9 - 부여 부소산성, 금강 유람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1 - 가즈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2 - 전주 도착, 여행자의 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3 - 한옥마을, 오목대, 풍남문, 카페 어떤 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4 -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 부채문화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5 - 전주향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6 - 전주천, 차가운 새벽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7 - 히치하이커, 풍패지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8 - 자만 벽화마을, 전동성당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9 - 풍남문 광장 세월호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0 - 덕진공원, 혼불공원, 고공농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1 - 전주 마지막 밤, 1930 가맥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2 - 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3 - 미즈커피, 초원 사진관, 동국사, 왕대숲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4 - 은파호수공원, 청년푸드트럭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5 - 군산 철도마을, 3.1운동 역사공원, 복성루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6 - 군산 해망굴, 월명공원, 카페 레나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7 - 공주 공산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8 - 공주 황새바위성지, 유천냉면, 무령왕릉, 공주한옥마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9 - 부여 부소산성, 금강 유람선(현재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0 - 카페 하품, 정림사지, 서동공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1 - 수원 장안문, 행궁동 벽화마을, 화성행궁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2 - 화성, 수원천

 

 

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나는 꿈을 총천연색으로 꾸고, 가끔 살인마들도 등장해 피를 본다. 이날 꿈은 그러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확하게 기록하지는 않았다. 어지러운 꿈을 굳이 적어둘 필요는 없다.

소리가 필요해 텔레비전을 틀고 짐을 꾸렸다. 동물농장이 나왔는데 하필 학대받고 유기당한 고양이, 강아지 이야기가 나와 또 울었다.

연이가 떠나고 나서 가릉이가 갑자기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호흡곤란이 와 병원으로 데려갔다. 별 이상 없다며 한 시간 정도 산소를 맞고 가라고 했다. 1시간이 지나 가릉이를 데려왔다. 그런데 숨쉬는 게 아까보다 이상해 전화하니 산소 맞고 나면 잠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가릉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새벽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가릉이가 안정되어 돌아왔다. 다음 날 오후에 담당 의사를 만났다. 밤에 있던 의사는 다른 의사였다.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다시 다음 날 오후, 병원에 가보려는데 전화가 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대로 달려갔다. 의사가 이렇게 숨을 못 쉴 이유가 없다며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떡하면 좋은지 물었다. 의사가 가릉이 몸에 있는 것들을 제거하고, 아래층 면회실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가릉이는 아래층 면회실이 준비되기 전에 떠났다. 의사 선생님이 곧 떠날 거라고 말해서, 가릉이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정신없이 했던 것 같다. 의사가 지금 기계에 뜨는 건 심장 잡음이라고 했다. 떠났다는 말이었다. 면회실에서 기다리면 데려다 준다고 해서 처치실을 나왔다.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정신이 없었다. 따라오는 간호사가 발을 조심하라고 했다.

혼자 들어간 면회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간신히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간호사가 가릉이를 데려왔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 죽는다. 영화에서는 손으로 슬쩍 내리면 눈이 감기던데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게 한 번에 되지는 않는다. 가릉이 눈을 감기고 경직이 올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게 잡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왔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몰랐다. 가릉이는 떠났다. 더 이상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선생님 말을 듣고 어떻든 의사는 증상과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의사 선생님이 혹시 또 고양이를 기를지 물어봤다. 그때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나는 더듬더듬... "모르겠어요. 이 일을 겪고도 또 입양하는 지인도 봤고... 다시는 못 하겠다는 지인도 있고... 저는.... 생각 안해봤어요. (연이에 이어) 가릉이가 떠났는데 (둘 다) 많이 아파하고 많이 기억해 줘야죠."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넘들하고만 10년을 살다 가족과 합친지 만 2년 6개월이었다. 다른 사람과 일상이 섞이는 게 힘들었다. 특히 나는 집에서 일하게 때문에 더. 카페에 가보려고 했는데, 좁은 모니터 화면으로 글쓰기 힘들더라. 집에서 작업하는 게 습관이 되어 나가는 것도 일이다.

고립과 단절이 간절해 다시 여행을 갈까 싶어졌다. 공주와 부여에 며칠 있으면 어떨까. 문제는 여행은 피로를 풀어주고 단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론 단기라도 간절할 때는 가야 하지만...

그러다 이 여행기를 쓰는 기준으로 어젯밤, 방문을 닫아두면 고립감이 생기리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 때를 제외하면 문을 열어놓는다. 문이 닫히지 않도록 신경 써 왔다. 넘들 때문이었다.

더 이상 문을 열어둘 필요가 없음을, 넘들이 떠나고 만 1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습관의 무서운 점이지. 가을 옷을 꺼내니 넘들 털이 붙어있었다. 전에는 테이프로 떼며, 또 붙겠지, 했는데 이젠 또 붙을 일은 없다......

부여행 버스가 있는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낙서

 

 

버스를 기다리며 낙서 2

 

버스를 기다리다 언제 오는지 매표소에 물으니, 왔다가 바로 가니 오면 빨리 타야 한다고 했다. 손님이 많지 않으니 일반 버스처럼 스쳐가나 보다. 밖으로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대전행으로 쓰여 있기에 물어보니 부여행이 맞았다. 행선지를 미처 안 바꿨었다고...

창밖으로 부여 군수 당선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헐, 빠르다. 가깝구나.

고민하지 않고 모텔을 잡았다. 저번 모텔보다 5000원 비쌌고 그만큼 더 넓고 좋았다. 모텔은 출장 마사지, 여고생(ㅡㅡ;;;) 출장 마사지 따위가 적힌 곽티슈를 봐야한다는 점을 빼면 지내기 좋다. 진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고생이라고 쓰지 말자. ㅡㅡ;;

내가 잡은 모텔은 부여중앙시장 가까이에 있었다. 할머니들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여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은 장원 막국수라고 했다. 부소산성에서 좀 더 가면 있다. 어제 회냉면을 먹어서 굳이 막국수를 먹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부소산성 앞에는 구드래 혹은 굿뜨래라고 하는 음식문화 거리가 있다. 첫 끼니를 해야 할 시각이었다. 뭘 먹을지 또 한참을 고민하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 내장탕을 시켰다. 내장탕, 너 참 오랜만이다. 내장전골 미치도록 좋아했는데 한동안 못 먹었네.

내장탕. 밥도 싹싹 긁어 먹었다.

 

공주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 이날은 부지런히 돌기로 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있는 부여객사

 

안내판에 있는 설명에 따르면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청으로서 동헌, 객사, 내동헌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객사를 구경하고 부소산성에 올랐다. 산성 걷는 거 좋아. ^^

부소산성 영일루에 있던 조각. 머리는 용인데 몸통은 물고기다.

 

역시 안내판에 쓰여 있던 설명에 따르면 부소산성은 백제시대의 중심을 이루는 산성으로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시설이며,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 16년(538)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다고 한다.

반월루

 

이런 누각도 좋아한다. 사극 쓰고 싶어진다. 갸아-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 상태에서 마커를 인식시키면(마커는 뭐지?) 부소산성과 관련된 이야기 영상이 재생된다는 AR스토리텔링투어 안내판이 보였다. 뭔지 몰라 그냥 갔다;;

낙화암

 

최명희는 혼불에서 의자왕을 무능하게 그린 건, 승자의 논리로 왜곡시킨 역사라는 주장을 꽤 긴 쪽에 걸쳐 썼다. 설득력있는 내용이었다. 조선시대 이전으로 내려간 사극 판타지를 쓰고 싶은 로망이 있기에 유심히 읽었다.

여기도 한 두어 시간 걸었던 것 같다. 며칠 연이어 걸은 피로가 몰려왔다. 유람선 안내판이 보였다. 저걸 타고 갈까? 금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 또한 흥취 아닌가. 갸아-

유람선

 

정교하지는 않지만 옛날 분위기를 낸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배들도 있었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나루터 선착장까지 12분 걸렸다. 꿈 같던 일주일 여행도 강물처럼 흘러갔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 언제 가든 상관없지만 언젠가는 가야하며, 이제 가야할 때라는 느낌이 왔다. 일상 속으로 돌아가 다시 글을 써야 했다.

 

유람선에서 본 금강

 

구드레 나루터 선착장에 도착했다. 물고기들이 보였다.

이름은 눈불개인데 강냉이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었다.

가까이에서 강냉이를 팔더라.

엄마와 온 어린아이가 눈불개에게 강냉이를 주는 모습을 잠시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