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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3 - 한옥마을, 오목대, 풍남문, 카페 어떤 날

by 운가연 2020. 8. 5.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1 - 가즈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2 - 전주 도착, 여행자의 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3 - 한옥마을, 오목대, 풍남문, 카페 어떤 날(현재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4 -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 부채문화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5 - 전주향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6 - 전주천, 차가운 새벽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7 - 히치하이커, 풍패지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8 - 자만 벽화마을, 전동성당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9 - 풍남문 광장 세월호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0 - 덕진공원, 혼불공원, 고공농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1 - 전주 마지막 밤, 1930 가맥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2 - 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3 - 미즈커피, 초원 사진관, 동국사, 왕대숲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4 - 은파호수공원, 청년푸드트럭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5 - 군산 철도마을, 3.1운동 역사공원, 복성루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6 - 군산 해망굴, 월명공원, 카페 레나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7 - 공주 공산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8 - 공주 황새바위성지, 유천냉면, 무령왕릉, 공주한옥마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9 - 부여 부소산성, 금강 유람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0 - 카페 하품, 정림사지, 서동공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1 - 수원 장안문, 행궁동 벽화마을, 화성행궁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2 - 화성, 수원천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니 7시 경이었다.  해가 길어져 오후 4~5시 느낌이라 느긋하게 경기전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한옥 건물들이 즐비해 보여 들어가 보니 거기가 바로 한옥마을이었다.

전주에 두어 번 왔는데 경기전 내부만 보고, 유명하다는 가맥집에서 가맥 한 번 하고, 다른 곳은 둘러본 적이 없었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가게(슈퍼)에서 의자를 두고 맥주를 파는 걸 말한다. 가게마다 계란말이나 황태구이를 팔기도 하는데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전주 명물이랄까. 이번에는 혼자 여행이라 가맥집에는 들르지 않았다.

한옥마을 거리

 

한옥마을 거리

한옥마을과 경기전 부근은 새로 건물을 지을 때도 한옥 형태로 지어서 거리 분위기를 유지한다고 했다.
관광객이 보기는 좋아도 막상 사는 사람들은 수리할 때도 제약이 많아 힘든 부분도 있다고.


사실 우리나라에 수백 년 된 한옥은 드물고, 전주 한옥마을도 대체로 일제시대 때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나무다 보니 화재에 취약해서... 그래도 100년 된 건물들이다. 지금은 100년이지만 잘 보존시키고 100년이 흐르면 200년 된 거리, 또 100년이 흐르면 300년 된 거리가 되겠지.


한옥들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그렇게 목적없이 걷다 보니 어디서 잘지 검색하다 나왔던 숙소들도 보였다. 그런 소소한 것들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마지막으로 혼자 갔던 여행은 07년에 갔던 필리핀이었다. 2~3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갔는데 어쩌다 보니 꽤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고, 일단 배낭을 멨으면 한 달은 기본이지, 라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데 정말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려서였는지 모르겠다.

너무 못 갔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 여행가고 싶다, 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또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러다 친구들과 몇 번 짧게나마 여행을 다니며 국내 여행의 맛을 알았고, 꼭 길게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작년 ㄴㄹ와 통영에 갔을 때도 여러 모로 마음이 힘들 때였다. 작년에도 연초가 그랬지. 여행을 다녀오자 힘들었던 마음에 많은 위안을 받았고, 올해도 그러했다.

지인 작가분이 언젠가 "작가 모드일 때 자기 성격의 안좋은 점들이 다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도 그렇다. 글은 내 아킬레스 건이라 가장 깊게 마음을 다치는 일은 언제나 글로 인해서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로 힘들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는데, 있는 힘껏 썼는데,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만 흘러가지는 않아 여러 모로 지쳐 있었다.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내 못난 마음에 스스로를 할퀴어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염없이 걷는데 어딘가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무작정 올라갔다. 혼자 온 여행은 외롭기도 하지만 그때 그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장점이 있다.

오목대였다.

오목대는 1380년(우왕 6)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으로 1900년(고종 37)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가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목대

그림은 대부분 집에서 그렸다. 몇 년 전 수채화 기초 교재를 뗐는데, 덕분에 수채화에 조금 익숙해졌다. 그래도 한옥을 그리는 건 힘들었다. 특히 지붕을 균형에 맞게 그리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이 여행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며 주구장창 그려댄 덕에 여행 후반에 그린 그림들은 조금 자신이 붙었다. 이제 한옥, 궁궐 등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뿌듯하다.

 

오목대

주변에 나무가 가득해 아래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긋하게 둘러보며 나무 냄새 맡고 멍하니 있기 좋았다. 낮은 언덕이라 올라가기도 어렵지 않다.

오목대에서 내려오며. 불 켜진 한옥들이 따뜻했다.

오목대를 내려오자 슬슬 다리가 아팠다. 숙소에서 경기전으로 오던 길에 잔잔한 느낌의 카페가 있었다. 거기서 멍 때리고, 그림도 좀 그리다 숙소에 가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길치인데도 정처없이 걸으며 걱정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네이버 지도다.

지도에서 가라는 대로 걷다보니 거대한 문이 나왔다. 풍남문이었다.

전주읍성의 남문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으며, 1734년 영조의 명으로 개축되었다. 176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풍남문

 

풍남문

 

풍남문을 따라 둥글게 길을 내어 만든 사거리가 있었다. 평범한 도시 풍경에 우뚝 솟은 풍남문은 어쩐지 이 거리를 지켜주는 것도 같고, 불빛을 밝힌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를 걸어 목적지인 카페 어떤 날에 갔다. 10시까지 한다고 했다. 이때가 8시가 좀 넘었을 때였나...

카페 어떤 날

 

카페 어떤 날

공간 드로잉을 배우기 전이구나. 배운 뒤였다면 카페 내부도 그렸겠지. 이제는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돈과 시간은 꽤 여러가지를 가능하게 해 준다.;;

 

카페 어떤날은 드라이플라워를 주제로 한 카페였다. 탁자마다 드라이플라워가 있었고, 조명도 드라이플러워로 장식했으며, 드라이플라워를 팔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숙소인 '여행자의 별'에서도 드라이플라워 장식을 본 기억이 났다. 느낌이 여기서 파는 것과 비슷했다.

한 시간 좀 넘게 멍 때리고 낙서를 하다 캔맥주와 과자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숙소 나갈 때는 경기전에 가려고 했었다.

혼자 여행 오면 일정과 상관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즐거움이 있달까.


잠시 나와 바람을 쐬이는데 가까이 있는 가맥에서 여럿이 큰 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 좋은 외로움이 차올랐다.

숙소에서 먹은 맥주와 과자

이 숙소가 텔레비전이 안나왔다. 있기는 있는데 장식품. 어쩌다 켜지기도 했지만 채널이 안 돌아가고 지직거리는 화면만 나와 의미 없;;


그런데 왜 케이블 기기는 있는 거지?

텔레비전이 안나온다는 건 다른 블로그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 즐겨 보지도 않고, 폰에 넷플릭스도 있어 별 문제가 안 될 줄 알았는데 문제였다;;;

맥주 마시며 낙서 좀 하다 자려고 했다. 사진 찍은 걸 보고 그리려는데 음악이 없었다. 글을 쓸 때는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지만 그림 그릴 때는 뭐든 틀어놓는 지라 너무 조용하니 난감했다.

유튜브에 들어가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 다른 앱을 실행 시키면 사진 앱이 꺼지니까;;; 

가벼운 멘붕이 왔다. 다음 여행 때는 잊지 말자, 음악;;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 편 보다 그닥 취향에 안 맞아 끄고, 잠이 오지 않는 이 밤을 어째야 하나 황망한 중에 잠시 들어간 게임에서 게임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톡방이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여행 때는 지인들과 굳이 연락하거나 sns를 하지 않는데, 이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내가 여행 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나도 이 사람들을 모르고, 굳이 여행왔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그냥 게임 수다 겸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다. 낯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달까.

 

덕분에 첫날 밤, 무사히 잠들 수 있었다. (1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