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2 - 전주 도착, 여행자의 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3 - 한옥마을, 오목대, 풍남문, 카페 어떤 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4 -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 부채문화관(현재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6 - 전주천, 차가운 새벽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7 - 히치하이커, 풍패지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8 - 자만 벽화마을, 전동성당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9 - 풍남문 광장 세월호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0 - 덕진공원, 혼불공원, 고공농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1 - 전주 마지막 밤, 1930 가맥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2 - 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3 - 미즈커피, 초원 사진관, 동국사, 왕대숲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4 - 은파호수공원, 청년푸드트럭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5 - 군산 철도마을, 3.1운동 역사공원, 복성루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6 - 군산 해망굴, 월명공원, 카페 레나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8 - 공주 황새바위성지, 유천냉면, 무령왕릉, 공주한옥마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9 - 부여 부소산성, 금강 유람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0 - 카페 하품, 정림사지, 서동공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1 - 수원 장안문, 행궁동 벽화마을, 화성행궁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2 - 화성, 수원천
새벽에 좀 추웠다.
전기장판을 틀면 되는데 코드가 빠져 있어 코드를 끼기 귀찮아 걍 버티느라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느긋하게 일어나 씻고 경기전으로 갔다.
한옥마을 곳곳에 한복대여하는 곳들이 있었다. 대부분 50퍼센트 할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복을 입고 한옥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20대 딸과 엄마, 애인, 친구들...
한복은 아주 어릴 때는 몇 번 입었던 듯하고, 커서는 입을 일이 없다가 고등학교 때 생활관에서 절하는 법 등 전통 예절을 배울 때 입은 게 마지막이다.
엄마에게 학교에서 생활관 수업을 하는데 한복을 입고 오라더라고 말했다. 그때 입고 다시 입을 일이 없을 터라 사기는 그렇고 엄마의 오래된 한복을 입고 갔다. 한복으로 아이들의 경제 상황이 드러났다. 누가 봐도 산뜻하고 예쁜 새로 맞춘 듯한 고운 한복을 입은 아이가 둘, 그럭저럭 평범하고 무난한 한복을 입은 아이들 속에 나처럼 아무리 봐도 오래도록 옷장에서 나온 적 없어 보이는 구닥다리 한복을 입은 애들이 있었다.
피차 한복입을 일 거의 없는 건 마찬가일 텐데 저 아이들은 어떻게 새 한복을 입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한복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을 위해 저 정도 금액을 쓸 수 있다는 건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된다는 거니까. 우리집이 딱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건 아니지만 굳이 그런 사치?를 할 이유는 없었다.
3박 4일 간 나는 그 한복을 입고 생활관 교육을 받았다. 달리 마음이 상했던 건 아닌데 고운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어릴 때는 이런 애매하게 부끄러운 듯 부끄럽지 않은 듯한 기억들이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여자여자한 성격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소풍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한 아이가 말했다. "어제 입었던 옷이야?" 나는 별 생각없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왜 그걸 물어봤나 생각하다가 한 발 늦게 소풍 때 막 입고 돌아다닌 옷은 빨고 새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머리를 예쁘게 묶기,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신경 쓰는 일 등등이 어려웠다. 역시 초등학교 때 한 번은 선생님이 "왜 그렇게 남자애처럼 입고 다니느냐."고 해서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에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매일 치마를 입고 가기도 했다.
다 지난 일이다. 사춘기 때부터 다른 사람 시선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했다. 10대 때는 머리를 짧게 깎고, "치마 싫어!" 하며 전교에서 몇 명 입지 않는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원한다면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을 수 있었는데 심각하게 촌스러웠다.
그러다 소위 '보이시'한 스타일은 할 만큼 했어, 이제 '여자여자해지겠어!'라는 뜬금없는 결심을 하고 치마를 즐겨입다가 오래 전부터 외출복은 당연하다는 듯 원피스가 되었다.
원피스는 대충 뒤집어쓰고 나가도 신경 써서 나온 듯한 모양새를 내준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겨울엔 좀 춥지만 여름엔 시원하다. 덕분에? 첫인상을 여자여자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면은 변하지 않았다.;
어릴 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커서도 탈 수 있지만, 커서 새로 배우려면 힘들 듯, 어릴 때 머리 예쁘게 묶고 드라이하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 지금도 못한다.;
괜찮다. 미용실 가서 "말리고 그대로 두면 되도록 웨이브/매직해 주세요." 라고 말하면 된다. ^^
이번 여행 전에도 머리에 투자를 했다. 셀카를 찍지 않아서 여행 때 내 사진을 찍을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기왕이면 곱게 하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얼마 전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몰골이 왜 이러냐,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직업 특징상 밖에 나갈 일이 없다. 게다가 나는 카페에서 작업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익숙한 내 책상이 좋다. 작은 놋북 화면으로 글을 쓰는 것도 답답하다. 달리 외출할 일이 없는데다 평소 외모에 큰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살았는데 뭐랄까, 가관이랄까, 반곱슬이 엉망으로 휘날리는 머리를 보자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큰 마음 먹고 염색하고 웨이브도 했다. 한동안 안 신은 하이힐을 신고 마트에 갔다. ... 내가 갈 곳이 도서관 아니면 마트지;;; 오랜만에 신어 걷기 불편한데다가 발이 까졌다! 오래 신어 익숙한 힐인데도...
아우가 신이 아니라 발을 길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발을 길들이는 거였구나. 신을 길들이는 게 아니었어.
다시 전주로 돌아가서...
한복을 입고 한옥거리를 걷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지만, 빌려입었다고 혹시라도 지저분해질까 신경 쓰여 결국 빌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난 이날 원피스를 입었다고. ^^
여행 짐을 쌀 때 원피스를 넣은 적이 없었다. 여행지에서 입을 옷은 아무데나 주저앉아 쉬어도 되고, 더러워져도 아까울 게 없는 옷으로 준비했었다. 이번에는 원피스를 넣었다. 굽이 낮고 푹신해 오래 신을 수 있는 샌들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바빴고, 가방도 여유가 없어 운동화를 신고 갔다. 샌들은 신지 못했지만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걸으니 그냥 내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여행 때 원피스 가지고 다녀야지. 헤헷
경기전에 들어갔다.
경기전은 한 때 무료였다. 지금은 3000원. 전주에 관한 자료를 찾을 때 경기전을 유료화해야 한다는 글을 봤다. 2008년 경 나온 책이었다. 아끼고 보존해야 하는 문화자원인데 무료면 가볍게 생각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사람 마음이 공짜는 가볍게 여기기 쉬우니 맞는 말이고, 돈으로 가치가 측정된다는 건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어떻든 3000원을 내고 입장.
경기전에는 어진(왕의 초상화)이 있는데 대부분의 어진이 전란 등으로 유실되었고, 현재 경기전에 있는 어진은 상상도이거나 모사한 그림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현재(2018년) 별도로 보관 중이라고.
제기고는 제사에 쓰는 물품을 놔두는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
위에 올린 진사청은 집에 돌아와 그렸고, 제기고는 현장에서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아, 불길해;;;
아주머니는 자기 딸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며 혼자 여행왔는지 물었다.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으며 대화하는데, 아, 전도였다;;;
다음 일정도 있고 대화가 길어지면 곤란하다, 고 하니 그럼 전단지만 주고 간다고 했다. 좋게 헤어지고 싶어 받겠다고 해서 받으니 본격 전도를 하려고 했다.
나 :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아주머니 : 왜애? 뭐가 곤란한데?
혼자 여행왔으니 다음 일정도 다 내 마음대로 아니냐, 여기서 잠깐/많이/실컷 이야기한다고 뭐가 문제냐, 라는 의미였다.
나 :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싶어서요.
아주머니 : 응?
나 :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싶어요.
곱게 여행 잘하시라고 인사하고 보내고 싶었다. 정색하고 날카로운 말을 하면 나도 오늘 하루에 금이 간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주머니가 물러났다.
실록들이 보관되어 있던 사고. 이 그림은 이날 저녁에 간 바 '차가운 새벽'에서 그렸는데, 옆에 앉은 분이 아마도 기둥 때문이겠지만 전주사고임을 알아봐 주셔서 기뻤다. ^^
나와서 여행 안내소에서 전주 지도를 얻었다. 지도가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런데 도대체 이 넘의 지도 어떻게 봐야 하는 거니;;;
무작정 걷다 보니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이 나왔다.
나중에 최명희 공원에도 갔다. 예전에 알던 사람이 이제껏 읽은 책 중 혼불을 최고로 꼽은 적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최명희 작품 중 읽은 게 없었다.
고전 명작을 읽는데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 혼불을 읽으리라 다짐했고, 돌아온 뒤 도서관에서 10권을 한꺼번에 빌려 다 읽었다.
당시 10권으로 책이 나오며 완결이라고 광고를 했다는데, 최명희는 언제든 뒤를 다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완결이라고 광고를 한 만큼 어느 정도의 마무리는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기승전결의 승에서 끝난 느낌이랄까? 기에서 승으로 갓 넘어갔달까? 주요 인물들의 운명이 기로에 놓이는데 끝났다. 무려 10권 분량인데 말이다.
그것도 오래된 책이라 10권이지, 요즘 같으면 20권으로도 나올 수 있는 분량이었다.
인물들, 사건, 당시 시대 서술 등등 놀라운 글이었다. 계속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고 작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안타깝다.
바로 옆에 있던 부채문화관에 갔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그림에 자신이 없어서;;; 하지는 않았다.
보고 그리는 건 짬짬이 훈련한 덕에 어느 정도 되지만, 창작 그림, 낙서가 어렵다. 낙서, 창작 그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손을 놀려야 가능한데 늘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고 보고 그리기만 하고 있다;;;
아침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어제 전주에 와서도 김밥 한 줄 먹었다.
식도락에 큰 취미가 없다. 전주는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비빔밥이 딱히 땡기지 않았고, 콩나물 국밥은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지인 둘과 잠시 전주에 왔을 때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에 갔는데 나는 거기서 다른 거 시켰을 걸?
지인1은 전주 유명 콩나물국밥집에서 다른 걸 시킨다고 황당해했지만;;
아무튼 뭔가 먹긴 먹어야할 듯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길거리에 늘어선 포장판매하는 음식점에서 닭날개밥이라는 걸 하나 샀다. 닭날개 살을 파서 밥과 같이 볶아 닭날개 안에 넣는 것. 맛있었다. 양념 등등이 타코야키와 비슷해 타코야키의 밥버전 같은 느낌도. (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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