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6 - 전주천, 차가운 새벽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1 - 가즈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2 - 전주 도착, 여행자의 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3 - 한옥마을, 오목대, 풍남문, 카페 어떤 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4 -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 부채문화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5 - 전주향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6 - 전주천, 차가운 새벽(현재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7 - 히치하이커, 풍패지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8 - 자만 벽화마을, 전동성당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09 - 풍남문 광장 세월호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0 - 덕진공원, 혼불공원, 고공농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1 - 전주 마지막 밤, 1930 가맥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2 - 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군산, 장미 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3 - 미즈커피, 초원 사진관, 동국사, 왕대숲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4 - 은파호수공원, 청년푸드트럭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5 - 군산 철도마을, 3.1운동 역사공원, 복성루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6 - 군산 해망굴, 월명공원, 카페 레나타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7 - 공주 공산성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8 - 공주 황새바위성지, 유천냉면, 무령왕릉, 공주한옥마을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19 - 부여 부소산성, 금강 유람선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0 - 카페 하품, 정림사지, 서동공원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1 - 수원 장안문, 행궁동 벽화마을, 화성행궁

11년 만의 혼자 떠나는 여행 #22 - 화성, 수원천

 

전주향교를 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전주천이 보였다.

 

전주천과 남천교

 

전주천은 불광천처럼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쪽에는 산책로, 자전거 도로가 있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남천교.

남천교는 영조 29년에 유실되었고, 현재 다리는 2009년에 옛 고지도상의 모습을 본떠 건설한 것.
호기심에 건너 보았는데 누각도 있었고, 어르신들이 한가로이 앉아 쉬고 있었다. 누각은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

다시 경기전 쪽으로 갔다. 이번 목표는 전동성당이었다. 전동성당에 도착해 그림을 그리다가 어디선가 휴대용 방석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전주 향교인가?

전주향교에는 없었다. 1시간이 넘도록 온 사방을 헤맸다. 마침내 점심에 닭날개밥을 포장해 먹을 때 놓고왔음을 깨달았다. 그 가게 앞에서 먹었으니 가게만 찾으면 될 것 같았다. 경기전 앞이었지 싶어 경기전 주위를 돌았지만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던 길이 나오지 않았다.

모카 우체국.

 

헤매다 스친 카페. 맥심에서 만들어 운영하는 카페가 아닌가 싶다. 색깔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아까 그 가게를 어떻게 찾지, 하다가 카드로 계산한 걸 깨닫고 카드에 쓰인 주소를 네이버 지도에 입력. 이때 네이버 지도의 위력을 깨달았다. 이렇게 편할 수가. 보니까 내가 반대 방향으로 돌았더라. 아까 방향만 맞게 돌았어도 바로 찾는 건데.

방석은 없었다. 못 찾을 것 같긴 했는데 찾을 만큼 찾아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아우 방석 빌려온 거였는데. *훌쩍*

보통 접이식 방석보다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편할 것 같아서 잘 챙겨왔는데...

다시 전동성당에 갔다. 그림을 다시 잡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6시라 나가야 했다. 아이고, 데이고;;

이제 뭐하지?

야시장은 주말에 여는데 12일 화요일이었다. 고민하다 남부 시장에 갔다. 여기 청년몰인지가 있다기에 가보려고. 그러나 지방 시장은 일찍 닫는다. 몇 식당이 문을 열긴 했는데 딱히 끌리는 음식이 없었다. 배가 고픈 것도 같고, 순대국밥이 유명하다는데 양이 과할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맸다. 청년몰은 2층에 있다는데 2층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고...

시장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남부 시장 안 카페 로앤진

시장 안 카페라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라떼를 시켰는데 커피 맛은 평범했다. 왼쪽에 있는 건 물잔.

카페에서 노닥이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남부시장 안내판이 있었다. 무심코 보는데 '바 차가운 새벽'이 보였다. 헤에...

차가운 새벽은 칵테일 바다. 여기 사장님이 먼 인연으로  내 페친 친구다. 종종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거나 오늘은 일이 있어 일찍 문을 닫는다거나 하는 글들을 보면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지방이라 실제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차가운 새벽이 있었다. 갸아-

카페에 돌아가 2층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세상에 카페 바로 옆에 계단이 있었다. 어둡고 좁아 눈에 잘 띄지 않은 것.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2층으로 갔다.

2층 분위기는 약간 애매했다. 1층은 시간이 늦어 문 닫은 가게가 많다지만, 2층은 늦게까지 하는 주점, 바가 있는데도 아직 공사중인 느낌? 휑했다. 곧 선거라 투표하자는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지방 선거 내 마음에 저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차가운 새벽은 내가 올라간 쪽에서 가까워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차가운 새벽

5~6인 정도가 앉으면 꽉 차는 작은 바가 전부라 자리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바텐더이자 사장님은 오래 전 우리가 만난 일을 기억해 주셨고 고마웠다. ^^
차가운 새벽은 좋아하는 칵테일이나 진, 보드카, 럼처럼 좋아하는 술을 이야기하면 그에 맞춰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정해진 음료나 메뉴판이 없는 조금 특이한 곳.

한동안 칵테일을 마시지 않았다. 일단 떠오른 술은 가미가제였다.

가미가제를 처음 마신 건... 음... 10년은 더 지난 일이 맞을 것 같다.
한 언더그라운드 단편 소설을 읽은 게 계기였다. 거기서 주인공이 가미가제를 마셨다. 이 분 계속 글을 쓰시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그 글에 흠뻑 빠졌고 그 뒤 한 동안 가미가제를 즐겨 마셨다.

바텐더님은 진 향을 싫어하지 않는지 물었다. 진 베이스로 가미가제와 비슷한 술이 있다고. 술 잘 몰라서 일단 마셔보겠다고 대답했다.

김렛이라고 가미가제 비슷한 술

옆에 물잔은 원래는 청주를 담아 파는 거였다고 하셨던가. 고전적인 꽃무늬가 마음에 들었다.

어른을 위한 아이스크림

 

바닐라 리큐르(25도)에 초콜릿이 얹힌 어른을 위한 아이스크림. 페북에서 몇 번 소개를 보고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마지막 술 이름은 잊었다

보드카 베이스로 만든 달달한 술이었는데 내 경우 이게 가장 취향에 맞았다.
난 진보다는 보드카 취향이었다!

이렇게 연이어 여러 잔을 마실 줄은 몰랐다. 옆자리에 앉은 이날 처음 본 분하고도 별다른 자기 소개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늘 찍은 사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여행을 오면 인터넷은 정보를 찾기 위한 용도 외에는 하지 않는다. 이멜 확인도 안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 받지도 않는다.

나는 여행이 주는 고립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찮게 연이 닿은 분을 만나는 것, 그간의 근황을 나누고, 어쩌다 잠시 묻어두고 싶은 일들도 화제에 오르기는 했지만, 이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11시 반쯤 나왔던 것 같다. 밤이라 거리도 어둡고 사람도 거의 없는데 믿었던 네이버 지도가 갑자기 계속 먹통이 되는 바람에 가벼운 멘붕이 왔었다.

지나가는 분을 겨우 만나 길을 묻고 다시 작동된 네이버 지도에 의지해 숙소로 돌아왔다.

... 사장님(남자임)이 숙소를 청소하셨다;;;;

나 속옷 세탁해 널어놓고 나갔었는데 좀 민망했다. ㅠㅠ

매일 청소할 줄 예상 못함;;;;;

둘째날이 지났다. (18.06.12)